지연은 아침을 먹지 않았다.먹고 싶지 않아서라기보다는 굳이 챙겨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냉장고를 열었다가 닫고, 컵에 물만 따라 식탁에 앉았다.물은 차가웠고, 그 차가움이 머리를 맑게 만들었다.오늘은 결정을 내리는 날이 아니라, 결정을 전달하는 날이었다.그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준혁은 출근길에 이상하게도 신호에 자주 걸렸다.빨간 불 앞에 설 때마다 마음이 먼저 멈췄고,다시 출발할 때마다 무언가를 놓친 기분이 들었다.회사에 도착했을 때, 그는 지연에게서 온 메시지를 보았다.오늘 저녁, 얘기하자. 집에서. 짧은 문장이었다.물어보는 말도, 선택지를 주는 말도 아니었다.준혁은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집에서.그 단어 하나가 그를 하루 종일 불안하게 만들었다.지연은 장미 미용실에 들렀다.문을 열자 이수와 하빈이 이미 와 있었다.둘은 말없이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고,그 침묵은 일을 하기 전의 침묵이었다.“오늘,”지연이 먼저 말했다.“말할 거예요.”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말로 꺼내는 게 제일 어렵고,”“제일 중요한 날이죠.”하빈은 지연을 보며 잠시 말을 고르다 입을 열었다.“오늘은,”“붙잡힐 가능성도 있어요.”지연은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알아요.”“그래도,”“이제는 피하지 않을래요.”이수는 지연 앞에 서류 봉투 하나를 밀어두었다.“이건,”“오늘 바로 쓰지 않아도 돼요.”“하지만,”“말을 꺼낸 뒤에 마음이 흔들리면,”“그때 이게 기준이 돼요.”지연은 봉투를 열지 않았다.그 대신 손으로 한 번 눌러보았다.종이의 감각이 분명하게 느껴졌다.저녁이 되었을 때, 지연은 집에 먼저 와 있었다.불을 켜지 않았다.어둠 속에서 창밖의 불빛만 들어오게 두었다.준혁이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그는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집 안이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다.“왔어.”지연이 거실에서 말했다.준혁은 가방을 내려놓고 외투를 벗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무슨 얘긴데.”지연은 소파 맞은편에 앉았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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