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혁은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오늘은 늦을 것 같다’는 말조차 떠올리지 않았다.말을 꺼내지 않는 순간, 사람은 이미 선택을 끝낸 상태다.그는 차를 몰아 익숙한 방향으로 향했다.몇 번이나 왔던 길이었고, 그만큼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생각이 사라지는 길은 늘 위험하다.민지는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 자체가 초대처럼 느껴졌지만,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준혁은 잠시 문 앞에 서서 그 공간을 바라봤다.불이 환하게 켜진 것도 아니었고, 어둡지도 않았다.딱, 머물기 좋은 밝기였다.“왔어요?”민지의 목소리는 놀라지 않은 톤이었다.기다렸다는 말도, 기다리지 않았다는 말도 아니었다.“네.”준혁은 짧게 답하고 들어왔다.신발을 벗는 동작이 이미 자기 집처럼 자연스러웠다.그 사실이 그를 잠시 멈칫하게 했지만, 그 멈춤은 아주 잠깐이었다.둘은 나란히 앉아 있었다.술잔이 있었고, 음악은 낮게 깔려 있었지만 대화는 거의 없었다.말이 없다는 건 어색함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공유된 공기라는 뜻이었다.“요즘,”준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집에 있으면 숨이 좀 막혀.”그 말은 지연을 향한 말이 아니라고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하지만, 민지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여긴,”그녀는 잔을 건네며 말했다.“아무것도 설명 안 해도 되잖아요.”준혁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몸이 조금 풀어지는 걸 느꼈다.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그는 그 단어를 마음속에서 여러 번 되뇌었다.잔이 몇 번 오갔고, 시간은 의미 없이 흘러갔다.준혁은 자기 손이 어느새 민지의 손 근처에 와 있다는 걸 늦게 알아차렸다.닿지는 않았지만, 가까웠다.그 거리는 의도하지 않았다고 말하기엔 너무 정확했다.민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손을 치우지 않았다.치우지 않는다는 건 허락도, 거절도 아닌 가장 위험한 선택이었다.그 순간, 준혁의 머릿속에 지연의 얼굴이 스쳤다.침묵으로 질문하던 눈,묻지 않기로 결심한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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