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성은 이제 바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았다.기억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그에게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아니, 사람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였다.민지는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같은 시간대, 같은 표정. 그 반복이 태성을 안심시켰다.변하지 않는다는 건 통제할 수 있다는 뜻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오늘은,”그가 재킷을 벗으며 말했다.“좀 늦었어요.”“알아요.”민지는 웃으며 답했다.“그럴 줄 알았어요.”‘그럴 줄 알았다’는 말은 기다렸다는 뜻이 아니라, 예상했다는 뜻이었다.태성은 그 말이 좋았다.자기 삶이 누군가의 예측 안에 있다는 감각은 이상하게 편안했다.“여긴,”그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이제 꽤 익숙해졌네요.”“그럼,”민지가 잔을 밀어주며 말했다.“여기가 편해졌다는 거네요.”태성은 그 말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편하다는 말은 너무 많은 걸 인정해야 하는 단어였다.대신 잔을 들어 올려 한 모금 마셨다.“여기 오면,”그가 천천히 말했다.“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느낌이 들어요.”그 말은 민지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그 공간 전체를 향한 말이었다.민지는 그걸 알아차렸고, 그래서 더 말을 아꼈다.“집에서는,”태성이 말을 이었다.“늘 뭔가를 설명해야 하거든요.”“설명,”민지가 조용히 되물었다.“왜 늦었는지,”“왜 피곤한지,”“왜 말이 없는지.”그는 한숨처럼 말을 흘렸다.그 말들은 불만이 아니라 변명이었다.“여기선,”그가 덧붙였다.“그럴 필요가 없잖아요.”민지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대신 고개를 끄덕였다.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을 유지하는 게 자기 역할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태도였다.그날 밤, 서윤은 집에 혼자 있었다.불은 켜지 않았고, 소파에 앉은 채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시계는 이미 밤 열 시를 넘기고 있었지만, 귀가 알림은 오지 않았다.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서윤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전화도, 메시지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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