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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作者: 유월냥이
이후 며칠 동안 하지혁은 심효연을 대동하고 대외적인 자리에 요란하게 참석했다.

그녀는 명품 드레스나 화려한 주얼리를 거부한 채, 늘 화장기 없는 얼굴에 수수한 원피스 차림, 생머리나 포니테일 스타일을 고수하며 상류사회에서 보기 드문 청량한 매력을 뿜어냈다.

하지혁은 그녀가 남다르다며 공개적으로 애정을 과시했고, 이에 자극받은 많은 재벌가 영애들이 그녀의 스타일을 모방하기 시작했으며 디자이너들 역시 그녀를 영감의 원천 삼아 새 시즌 의상을 제작했다.

심효연의 약시 치료를 위해 하지혁은 막대한 비용을 아끼지 않고 전세기까지 띄워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을 초빙해 협진 팀을 꾸렸다.

하지만 선천성 약시는 현대 의학으로도 되돌릴 수 없었고 의료진이 제시한 건 겨우 상태 악화를 막는 방도뿐이었다.

이에 하지혁은 불같이 화를 내며 차라리 자신의 눈을 망가뜨려 그녀와 함께 장애를 안고 살아가겠다며 미쳐 날뛰었다.

홀로 병실 침대에 누워 뼈저린 쓸쓸함을 느끼던 서이나는 휴대폰 화면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하지혁과 심효연의 다정한 기사들을 바라보며 서서히 마음을 정리해 갔다.

결국 하지혁이 보여준 사랑은 대체 가능한 것이었으며, 그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도 얼마든지 이토록 광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서이나는 의식 불명 상태인 남동생 서진우를 보러 갔다. 3년 전 등굣길에 당한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던 동생을, 당시 하지혁은 세계 최고의 의료진을 소집해 저승사자의 손에서 기적처럼 빼앗아 살려냈었다.

그러나 서진우는 끝내 깨어나지 못한 채 의료 기기와 약물에 의존해 하루하루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서이나는 얼굴을 붉히며 서진우의 손을 꼭 쥐었다.

“진우야. 누나 이제 떠나려고 해. 가기 전에 너도 다른 병원으로 옮겨 줄게. 한때는 하지혁이 내 삶의 전부이자 행복이라 믿었는데, 그건 다 부질없는 착각이었어.”

서이나는 마침내 감정의 배출구를 찾은 듯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아두었던 억울함과 슬픔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그녀는 겨우 눈물을 닦아내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서이나는 먼저 구청을 찾아가 자신과 서진우의 주민등록 말소 신고 절차를 진행했다. 특별 절차를 밟아 업무일 기준 7일이면 완료될 터였다.

그러고는 하지혁이 선물했던 별장으로 가 그동안 보물처럼 아끼던 선물들을 모조리 정리하여 경매 회사에 위탁 판매를 의뢰했다.

이어 작은 법률사무소를 찾아 명의 이전 서류를 작성하고 별장을 다시 하지혁에게 돌려주었다.

마지막으로 저택에 돌아온 그녀는 자신이 하지혁을 위해 직접 만들었던 선물들을 찾아냈다. 값어치 없는 자잘한 물건들에 불과했지만, 예전의 하지혁은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좋아하던 것들이었다.

이제 그녀는 그것들을 하나씩 불길 속으로 던져 넣었다.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하지혁과의 달콤했던 추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정말 서로를 열렬히 사랑했었다.

그러나 그 행복은 물거품처럼 허망하고 나약했다.

마침내 불길이 사그라들자 그들의 과거 역시 연기처럼 사라졌다.

어느새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흥건했다.

눈물을 쓱 훔치며 고개를 돌린 순간, 의아한 시선으로 자신을 살피고 있는 하지혁과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의 심효연이 눈에 들어왔다.

“뭘 그렇게 태우고 있어?”

하지혁이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서이나는 굳어 있던 몸을 추스르며 담담하게 답했다.

“필요 없는 물건들이야.”

하지혁은 무심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지시하듯 덧붙였다.

“전에 내가 줬던 비취 팔찌 말인데, 찾아서 효연이한테 넘겨줘.”

이미 떠나기로 결심했음에도 서이나의 심장이 콕콕 찔린 듯 아파왔다. 그 팔찌는 오직 맏며느리에게만 전해진다는 하씨 가문의 대대손손 내려온 가보였다.

그런데 이제 하지혁은 그것을 심효연에게 아낌없이 주려 하고 있었다.

서이나는 손끝을 미세하게 떨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지금 가져다줄게.”

어차피 이혼한 사이였으니 그 팔찌는 처음부터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심효연은 팔찌를 챙기러 위층으로 올라가는 서이나의 뒤를 자진해서 따라갔다. 드레스룸을 가득 채운 화려한 옷과 보석들을 본 그녀의 눈에 질투와 원망이 스쳤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함을 유지했다.

서이나는 화리목 상자를 꺼내 심효연에게 건넸지만 미처 심효연의 눈빛에 스쳐 지나간 음험하고 독한 기운은 눈치채지 못했다.

“서이나, 당신 이미 이혼했잖아. 왜 아직도 안 떠나고 질척거려? 정말 구차해 보이네.”

심효연이 뒤에서 비아냥거렸다.

“신경 꺼, 갈 테니까.”

서이나가 그녀를 덤덤하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곳을 떠날 생각이었고 모든 것을 심효연에게 남겨줄 작정이었다.

“동정하는 척 위선 떨지 마. 네가 양보한 게 아니라 내가 내 손으로 쟁취한 거니까. 서이나, 난 내 앞날을 막아서는 자는 그 누구라도 가만두지 않아.”

심효연은 평소의 유순한 태도와는 180도 다른 악랄한 표정을 지으며 눈에 독기를 품었다.

그녀는 나무함에서 팔찌를 꺼내 바닥에 사정없이 내팽개치더니, 그대로 서이나를 계단 아래로 밀쳐 버렸다.

“아악!”

비명과 함께 무방비 상태로 계단을 구른 서이나는 이마를 부딪쳐 찢어졌고 상처에서 순식간에 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심효연은 곧바로 바닥에 주저앉더니 독한 마음으로 날카로운 옥 파편을 집어 들어 제 다리를 그어버렸다.

“하 대표님, 어서 서이나 씨를 구해주세요!”

우당탕하는 요란한 소리에 놀란 하지혁이 황급히 달려왔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서이나를 한 번 힐끗 보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계단을 올라가 심효연을 안아 올렸다.

심효연의 다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본 그의 눈빛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굳어졌다.

“이나가 널 다치게 한 거야?”

심효연은 가련한 척 고개를 끄덕이며 계단 아래의 서이나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제가 이 팔찌를 가질 자격이 없다는 건 알아요. 서이나 씨가 저한테 주기 싫어 일부러 부숴 버린 것도 이해하고요. 하지만 날 모함하려고 스스로 계단 아래로 구를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어요.”

하지혁은 서이나를 한 번 매섭게 쏘아보고는 가정부들을 불러 심효연의 상처를 치료하게 했다.

“일단 상처부터 치료하자. 이 일은 내가 해결할게.”

잠시 후, 하지혁은 경호원들을 시켜 서이나를 거실로 끌고 오게 했다.

“이나야, 왜 갈수록 말귀를 못 알아먹지?”

하지혁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읊조렸다.

“내가 경고했잖아, 효연이는 건드리지 말라고.”

서이나는 피범벅이 된 눈을 간신히 뜨고 몸을 일으키려 버둥거리며 그와 눈을 맞췄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한 글자씩 내뱉었다.

“그 여자가 날 밀었어!”

서이나가 그렇게 말할 줄 짐작이라도 한 듯 하지혁이 헛웃음을 지었다.

“요즘 들어 왜 자꾸 내 뜻을 거스르는 거야? 잘못을 인정하지 않겠다면 가법대로 다스리는 수밖에.”

“하지혁! 왜 CCTV는 확인도 안 해보는 건데?”

서이나는 공포에 질려 버둥거렸다.

“그럴 필요 없어. 효연이는 날 속이지 않으니까. 오히려 요즘 자꾸 질투심에 눈이 멀어 내 화를 돋우는 건 너잖아.”

하지혁이 손짓을 하자, 집사가 매질을 위한 회초리를 가져왔다.

서이나의 몸이 저도 모르게 떨려왔다. 하지혁이 내연녀를 싸고도는 꼬락서니가 이 지경에 이를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쫙!

해명할 기회 따윈 없었다. 가차 없이 날아든 회초리가 서이나의 등을 모질게 강타했다. 살점이 찢겨 나가고 붉은 피가 옷자락을 적셨지만, 서이나는 비명 대신 입술을 짓씹으며 고통을 삼켰다.

냉담하기 짝이 없는 하지혁의 방관 속에서, 서이나는 구걸을 포기했다. 그저 절망 속에 눈을 감고 짓이겨지는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낼 뿐이었다.

문득 지난날이 떠올랐다. 하지혁의 할아버지 하태수가 하지혁과 그녀의 결혼을 반대하며 사당에서 그를 3일 밤낮으로 매질하던 날 말이다. 장장 삼백 대를 맞고 숨이 끊어질 듯한 고통 속에서도 그는 끝내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다.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그는 서이나가 아니면 안 된다고, 평생 그녀만을 사랑하겠다고 울부짖었다.

그녀가 제 목숨보다 소중하다고, 눈물 한 방울 흘리게 하지 않겠다고, 전 세계에 서이나가 제 아내임을 똑똑히 공표하겠다던 그였다.

그런데 지금, 그는 다른 여자 때문에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워 가법을 들이대고 있었다.

‘하지혁, 너 정말 심효연이랑 그냥 즐기는 사이인 게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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