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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los capítulos de 천년의 기억: Capítulo 161 - Capítulo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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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돌아와도 늦을 때까지

변방의 밤은 궁보다 훨씬 조용했다.그러나 그 조용함은 잠들기 위한 고요가 아니라 숨을 죽이기 위한 고요에 가까웠다.도진은 말에서 내려 갑옷을 풀지도 않은 채 천막 앞에 서 있었다.불은 피워져 있었으나 그 불빛은 따뜻함을 주지 못했다.그는 그 불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불을 보면, 지금 이 자리가 어디인지 더 또렷해지기 때문이다.변방의 공기는 얇았다.숨을 들이마실수록 가슴 깊숙한 곳이 쓸렸다.그 쓸림은 부상의 통증이 아니었다.몸은 회복되고 있었으나 감각은 그렇지 않았다.그날 이후로 그는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고 있었다.칼날이 번뜩이고, 누군가의 손이 붉게 젖고, 말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울음만 남아 공기 속을 떠다니는 꿈.깨어나면 심장이 이유 없이 세게 뛰었다.손끝에는 아무것도 쥐지 않았는데도 검의 무게가 남아 있었다.“…청명.”그는 무심코 그 이름을 입 안에서 굴렸다.여기에는 없는 것,지금은 쥘 수 없는 것.그 순간 가슴이 한 번 세게 조여왔다.숨이 멎는 듯한 통증.도진은 이를 악물고 천막 기둥을 붙잡았다.‘아직 아니다.’‘아직은… 돌아가면 안 된다.’그는 알고 있었다.지금 돌아가라는 명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돌아오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돌아와도 늦을 때까지 버티라는 뜻이라는 것을.그 시각, 궁.봉쇄된 처소 안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공간 같았다.낮과 밤의 경계가 흐려졌고 기척은 모두 문밖에서 멎었다.이수는 창가에 앉아 있었다.밖을 볼 수는 없었다.휘장과 문, 그리고 봉쇄라는 이름의 벽이 겹겹이 그녀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떨리지 않았다.놀라울 정도로 고요했다.사람은 이미 모든 것을 잃었다고 느낄 때 오히려 이렇게 차분해진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마마…”상궁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들렸다.“내명부에서 사람이 다녀갔사옵니다.”이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무엇을 가져갔느냐.”“가져간 것은 없사옵니다.”상궁의 숨이 흔들렸다.“다만…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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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닫히는 문들

밤은 조용히 내려앉았으나 그 고요는 잠을 부르는 종류가 아니었다.궁 안의 모든 문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하나씩 닫히고 있는 듯한 밤이었다.이수의 처소는 여전히 봉쇄된 채였다.문밖에는 기척이 있었으나 그 기척들은 들어오지 않았다.들어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이미 안쪽에서 움직일 수 있는 것들이 모두 묶여 있었으므로.이수는 등불을 끄지 않았다.어둠 속에 숨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지금 이 시간은 피하거나 낮출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그녀는 단정히 앉아 손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손끝은 차분했다. 이상할 정도로.사람은 마지막을 감각할 때 이렇게 조용해진다.문밖에서 발소리가 멎었다.그 발소리는 궁인도, 내관도 아니었다.걸음의 간격이 일정했고 멈춤이 없었다.상궁이 숨을 삼켰다.“마마…”“괜찮다.”이수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올 것이 온 것이다.”문이 열렸다.이번에는 상궁의 목소리를 흉내 내지 않았다.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현이 들어섰다.그의 옷자락에는 밤의 냄새가 묻어 있었다.차갑고, 얇고, 어디선가 피 냄새가 섞인 듯한 밤의 공기.“빈.”그가 낮게 불렀다.그 호칭은 예우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으나 그 안에는 더 이상 여유가 없었다.이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예를 갖췄다.“저하.”두 사람 사이에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듯 보였으나실은 너무 많은 것이 말해지지 않은 채 쌓여 있었다. 현은 방 안을 둘러보았다.등불, 자리, 아무도 숨지 않은 공간.“이토록 조용할 줄은 몰랐소.”“조용해야 했기 때문이옵니다.”이수가 대답했다.현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빈은…”그가 말을 고르듯 잠시 멈췄다.“지금 이 상황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정말 모르겠소?”이수는 고개를 들었다.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저하께서 묻고자 하시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확신이옵니다.”현의 입술이 굳었다.“그 확신의 중심에 도진이 있지 않소.”그 이름이 방 안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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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명 없이 땅을 차는 말발굽 소리

밤은 깊어졌으나 궁은 잠들지 않았다.잠들 수 없는 밤이 있다는 것을이 궁은 너무 오래 알고 있었다.이수의 처소에는 더 이상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문밖의 기척조차 사라진 뒤였다.지키는 자도, 감시하는 자도 이미 자리를 옮긴 뒤였다.이수는 그 사실을 의아해하지 않았다.지금 이 고요는 풀어주는 고요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무언가가 결정되고 있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밖은 보이지 않았으나 공기의 흐름이 바뀌어 있었다.바람이 멎고, 대신 묵직한 정적이 깔리는 감각.“얼마 안 남았구나…”그 말은 체념이 아니었다.이 순간을 오래 기다려온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숨이었다.상궁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마마, 내명부에서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했사옵니다.”“대비전이겠지.”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예, 마마. 그리고… 저하의 침전도 불이 꺼지지 않았사옵니다.”이수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저하께서는 결심하신 모양이구나.”그 말에는 원망도, 분노도 없었다.다만 이미 알고 있었다는 조용한 인정만이 남아 있었다.“상궁.”이수가 말했다.“지금부터 내 처소에 드나드는 말은 하나도 기록하지 말거라.”상궁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마마, 그게 무슨”“기록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죽이기도 한다.”이수는 담담했다.“내 이름으로 남는 기록은 이제 충분하다.”상궁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더 묻지 않았다.이미 물을 수 없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녀 또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그 시각, 대비전.향은 짙었고 사람들의 시선은 바빴다.말은 많지 않았으나 결정은 빠르게 내려지고 있었다.“빈의 처소에서 나온 물건들은 모두 정리되었습니까.”대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그 부드러움은 언제나 가장 단단한 형태였다.“예, 마마. 이미 대전 쪽에도 보고가 올라갔사옵니다.”“도진은?”잠시 침묵이 흘렀다.“…변방에 있습니다.”그 대답에 대비의 입가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잘 보내졌구나.”그 말은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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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새벽에 적힌 이름

새벽은 예고 없이 도착했다. 종도 울리지 않았고 북도 울리지 않았지만, 궁은 분명히 깨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운명이 바뀌는 순간을 목격하려는 듯, 어둠 속에서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이수의 처소 앞에 발소리가 멎은 것은 동이 트기 전이었다. 아직 하늘이 푸르지도 어둡지도 않은, 그 애매한 시간. 밤과 낮 사이,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은 경계의 시간이었다.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없었다. 두드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허락은 위에서 내려와 있었고, 남은 것은 문을 여는 절차뿐이었다."분부에 따라 처소를 열겠습니다."내관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명령을 전달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항상 그렇게 비어 있는 법이었다. 마치 자신이 전하는 말의 무게를 느끼지 않으려는 듯 상궁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무슨 분부이옵니까.""빈의 처소에 대한 정식 조사입니다."'정식'이라는 말이 공기 속에서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그 말은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궁 전체가 지켜보는 일이 되었다는 뜻이었다.이수는 상궁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자신의 말은 기록으로만 남게 된다는 것을. 변명도, 해명도, 모두 문서 속 활자가 되어 누군가의 판단을 기다리게 될 것이었다.문이 열렸다.아침 공기가 처소 안으로 밀려들었다. 차갑고 정돈된 공기, 사람을 몰아내는 공기였다. 이수는 그 차가움이 피부를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이것이 시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빈마마."내관이 고개를 숙였다."조사에 앞서 간단한 확인이 있겠습니다."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묻거라.""최근 이 처소에 외부인이 드나든 일이 있습니까?"'외부인.'그 단어 하나에 상궁의 숨이 멎었다. 이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녀의 속눈썹이 아주 천천히 내려갔다 올라왔다."없다."그 대답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아무 의미도 없었다. 진실이란 때로 이렇게 무력한 것이었다.내관은 고개를 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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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느낀다'는 말은 언제나 위험하다

햇빛이 조금 더 깊숙이 처소 안으로 스며들었을 무렵, 문이 다시 열렸다.이번에는 내관 혼자가 아니었다. 내명부의 관리 둘과 기록을 맡은 서리 하나, 그리고 낯선 눈빛을 한 무관이 함께 들어섰다. 그들은 방 안을 빠르게 훑었다. 사람이 아니라 공간을 살피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눈들이었다.이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앉은 채로 그들을 맞았다. 이제는 예를 갖추는 것조차 조사의 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녀의 모든 행동이 기록되고 해석될 것이었다."빈마마."내관이 차가운 목소리로 불렀다."앞서 조사에 이어 몇 가지를 더 확인하고자 합니다.""묻거라."그녀의 대답은 짧았다. 그 짧음 속에는 더 이상 덧붙일 것도, 해명할 것도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도진 나으리와 마지막으로 대면한 시각이 언제입니까?"상궁의 손이 옷자락을 세게 움켜쥐었다. 그러나 이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정확한 시각은... 기억하지 못한다.""기억하지 못하십다고요?"내관이 의미심장하게 되물었다."도진 나으리는 빈의 처소 인근을 여러 차례 순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순찰은 그의 임무이옵니다.""그 임무가 유독 빈마마의 처소에만 집중될 이유가 있습니까?"이수는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은 망설임이 아니라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시간이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증거가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궁이 소란스러웠습니다."그녀가 낮게 말했다."도진 나으리는 저하의 분부를 따랐을 뿐이옵니다."내관은 형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이미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있었다. 이 대답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듯이."빈마마의 처소에서 발견된 물건 중, 외부에서 반입된 것으로 보이는 물품들이 있습니다.""저는 그 물건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그러나 그 물건들이 빈마마의 처소에 있었습니다."이수는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내관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포기도 없었지만, 기대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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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명분이 만들어지는 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이수의 처소로 다시 사람들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발걸음이 느렸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알고 있는 걸음이었다.등불이 하나둘 켜졌다. 낮의 자연스러운 빛이 사라진 자리에 인위적이고 차가운 불빛이 들어왔다. 이 궁에서 등불은 늘 진실보다 먼저 켜지고, 진실보다 오래 남는 것이었다."빈마마."내관의 목소리는 낮고 평평했다. 감정의 굴곡이 모두 깎여나간 목소리였다."오늘 마지막으로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이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이미 '마지막'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마지막이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더 깊은 나락으로 가는 문턱이었다."말하라.""빈마마의 처소에서 발견된 물건 중... 외부 서신 하나가 있습니다."상궁의 숨소리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이수는 그 떨림을 들으면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그 서신에는 빈마마의 이름이 직접적으로 적혀 있지는 않습니다."내관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그러나 그 내용이 빈의 일과와, 궁의 동선과, 특정 무관의 근무 시간과 지나치게 정확히 맞물려 있습니다."이수는 잠시 눈을 감았다.'이제는 물건을 찾는 단계가 아니라, 이야기를 엮어내는 단계로구나.'"그 서신은 내 것이 아니다.""그 서신이 빈마마의 처소에 있었던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내관의 말투에는 조금의 여지도, 흔들림도 없었다."그리고 그 서신의 필체는 궁 안에서 극히 드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누구의 필체인지 밝혀졌느냐?"이수의 질문에 내관은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 자체가 이미 대답이었다."...아직입니다."'아직'이라는 말은 곧 '필요 없다'는 의미였다. 누구의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 서신이 지금 어디에 놓여 있느냐, 누구의 공간에서 발견되었느냐였다."빈마마."내관이 한층 무게 있는 목소리로 다시 불렀다."궁은 우연을 오래 두지 않습니다."이수는 그 말을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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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이제는 말이 아니라 결말만이 남았구나

새벽이 오기 전, 궁 안은 이상하리만치 정돈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법도 없었고, 종이나 북이 울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숨을 죽이고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 고요함이었다.이런 고요한 밤은 언제나 가장 큰 일이 벌어지기 직전의 밤이었다.이수의 처소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질문도, 확인도 없었다. 대신 문이 열리는 소리가 지나치게 단정하고 사무적이었다. 마치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었음을 알리는 소리 같았다.내관이 먼저 들어섰고, 그 뒤로 무관 둘이 조용히 섰다. 그들의 손은 칼에 닿아 있지 않았지만, 언제든 움직일 수 있도록 긴장된 손이었다."빈마마."내관의 음성에는 이제 더 이상 어떤 감정의 여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명령을 전달하는 도구의 목소리였다."대비마마의 분부가 내려오셨습니다."이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이미 일어나야 할 순간은 지나가버렸고, 지금은 받아들여야 할 순간이었기 때문이다."말하라.""빈마마께서는 궁의 질서를 어지럽힌 혐의로 처소를 옮기시게 될 것입니다."'처소를 옮긴다.'그 말은 겉으로는 유배도, 형벌도 아닌 듯 들렸다. 그러나 이 궁에서 그 말은 어떤 선고보다도 무겁고 냉혹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언제.""지금 즉시이옵니다."상궁이 그제야 황급히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저하께서는... 저하께서는 이 사실을 알고 계시는가?"내관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세자저하께서 모든 절차를 직접 재가하셨습니다."그 말이 공기를 가르며 떨어지는 순간, 이수의 숨이 아주 작게,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흔들렸다.'그래, 결국 이 이름으로 오는구나.'"어디로 옮기는가.""대비전 인근, 외부와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된 곳입니다."이수는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했다. 그곳은 사람을 가두기 위한 곳이 아니라, 이야기를 고립시키고 소문을 차단하기 위한 곳이었다. 세상과 단절시키기 위한 곳."짐을 따로 꾸릴 시간을 주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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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이름이 지워지는 밤

밤은 깊었지만 어둠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이 궁 전체가 숨을 멈춘 채, 다음에 벌어질 장면을 숨죽이며 기다리는 것처럼 고요했다.이수가 머무는 방에는 등불 하나만이 외롭게 켜져 있었다. 불꽃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그 부자연스러운 고요함이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천천히 갉아먹었다.그녀는 앉은 채로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생각을 정리하려 애쓰지도 않았고, 하늘에 기도를 올리지도 않았다. 이제는 무엇을 붙잡아도, 무엇에 매달려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문밖에서 발소리가 멈췄다. 이번에는 노크조차 없었다. 그저 기척만으로도 누가 왔는지, 무엇을 전하러 왔는지 알 수 있었다.문이 천천히 열렸다.내관 한 명과 대비전에서 보았던 그 상궁이 조용히 들어섰다. 그들의 얼굴에는 연민도, 분노도, 어떤 감정도 없었다. 그저 업무를 처리하는 이들의 얼굴이었다."빈마마."호칭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오래 그녀 곁에 남아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대비마마의 추가 분부가 계십니다."이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빛은 담담했다."말하라.""내일 해가 중천에 오르기 전, 빈마마의 신분에 대한 공식적인 정리가 있을 것입니다."'정리.'그 말은 판결보다 훨씬 차갑고 냉혹했다. 판결은 최소한 옳고 그름을 따지지만, 정리는 그저 불필요한 것을 치워버리는 행위에 가까웠다. 존재를 지우는 일이었다."그 전까지 빈마마께서는 아무도 만나서는 안 됩니다.""그 명에..."이수가 잠시 숨을 고른 후 물었다."그 명에 세자저하도 포함되느냐."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 몇 초의 침묵이 어떤 말보다도 많은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예."이수는 아주 작게 웃었다. 비웃음도, 체념도 아닌, 그저 숨이 천천히 빠져나간 흔적 같은 웃음이었다."그분도 이제는... 나를 볼 수 없는 위치가 되셨구나."상궁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 그러나 그녀는 곧 다시 무표정을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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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이제는 내가 지켜야 할 차례구나

그날 밤, 이수는 잠들지 않았다.눈을 감아도 어둠은 오지 않았고, 잠도 찾아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말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장면들만이 흐릿한 그림자처럼 스쳐 지나갔다.궁에 처음 들어오던 날의 따스한 햇빛. 세자와 처음 마주했던 그 순간의 긴장. 그리고 도진의 뒷모습.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늘 한 발 뒤에서, 그림자처럼 그녀를 지키던 그 넓은 등.그녀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가슴이 아팠다."이제는... 내가 지켜야 할 차례구나."그 말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졌을 뿐이었다.밖에서는 새벽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해가 뜨면, 이 궁은 이수라는 이름을 조용히, 그러나 철저하게 지우기 시작할 것이다.아직 피는 흐르지 않았다.그러나 그 밤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피보다 먼저 사람이 지워지는 순간이 바로 눈앞까지 다가와 있다는 것을.새벽은 아직 오지 않았다.밤과 낮의 경계가 가장 잔인해지는 시간, 모든 것이 애매하고 불확실한 그 순간을 궁은 놓치지 않았다.이수가 갇힌 처소 앞에는 병사 둘이 새로 서 있었다. 그들은 고개를 숙이지도,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지키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지키는 얼굴은 언제나 가두는 얼굴과 너무나 닮아 있는 법이었다.이수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방 안에서 그녀는 천천히 손을 씻었다. 마치 의식을 치르듯,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지켜야 할 예를 갖추듯이. 물이 대야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이상하리만치 크게 들렸다.그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생각했다.'이제 이 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하나는 선택이고, 하나는 강요였다.문이 다시 열렸다.이번에는 상궁 혼자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밤새 정리한 듯한 무표정이 걸려 있었다. 감정을 모두 지워낸 얼굴이었다."마마."그 호칭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그 안에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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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그렇다면 충분하옵니다

그녀가 조용하지만 또렷하게 불렀다."제가 한 가지만 여쭙고 싶습니다."대비는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말했다."말해보아라.""이 모든 일의 끝에... 저하께서는 계신 것입니까?"그 질문은 법도를 벗어난, 감히 물어서는 안 될 질문이었다. 방 안의 누군가가 작게 신음했다.그러나 대비는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아주 차갑고 명확하게 말했다."그분은 이 나라의 세자이시다."그 말은 대답이었다. 세자는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누구보다 지켜져야 한다는 선언이었다.이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충분하옵니다."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더 말하지도 않았다. 이미 자신이 선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 시각, 궁 밖. 도진은 말에서 내려 땅에 무릎을 짚었다. 갑작스러운 통증이 가슴을 날카롭게 찔렀다. 숨이 잠시 멎는 것 같은, 심장이 비틀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궁의 방향을 향했다."...지금이다."그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러나 확신에 차서 중얼거렸다. 그 느낌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도진은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었지만 아프지 않았다.명은 없었다. 허락도 없었다. 그러나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했다.그 순간, 궁 안에서는 결정이 내려지고 있었다.아직 칼은 들리지 않았다. 피도 흐르지 않았다.그러나 그날 밤, 세 사람의 운명은 이미 같은 방향으로, 피할 수 없는 결말을 향해 돌아가기 시작했다.피는 곧 흐를 것이다. 그리고 그 피는 누군가의 죄가 아니라, 누군가의 선택이 되어 흐를 것이었다.대비전의 문이 닫히는 소리는 놀라울 만큼 조용했다. 그 조용함이 오히려 방 안의 모든 사람을 한 치도 움직이지 못하게 붙들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것처럼.대비는 서책을 덮지 않았다. 덮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기록은 끝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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