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판 / 천년의 기억 / Chapter 31 - Chapter 32

All Chapters of 천년의 기억: Chapter 31 - Chapter 32

32 Chapters

31. 위험한 반문

밤은 이미 궁을 완전히 삼켜버렸다.달빛은 높고 얇아서 궁의 지붕들을 희미하게 빛으로 두드릴 뿐, 회랑에는 그림자만 길게 늘어져 있었다.바람조차 살금살금 스치는 듯한 고요한 밤.그 고요 속에서 한 사람의 방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세자의 처소였다.현은 책상 앞에 홀로 앉아 있었다.등불은 작은 불씨처럼 흔들렸고, 그 불빛 아래에서 현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하루 내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장면.전날 밤 회랑에서 보았던 이수와 도진의 모습.정확히 무엇을 본 것이라 말할 수는 없었지만그 침묵 속의 떨림, 눈빛의 잔해,서로를 향한 알 수 없는 맴돌음.그 모든 것이 현의 마음 한 부분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깨워냈다.그는 하루 종일 그 감정을 억눌렀다.'빈이 흔들린 마음을 숨기려 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내가 그 마음을 들여다보려 하는 것인가.'그 질문은 현 자신에게조차 위험한 것이었다.그는 책상 위 술잔을 집어 들었지만 입에 대지 못했다.술보다 더 뜨겁고 더 혼란스러운 것은 이미 그의 가슴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그때 조용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전하, 모실까요?”내관이었다.현은 술잔을 내려놓고 작게 일렁이는 눈빛으로 문을 향해 말했다.“들라.”내관은 조심스럽게 들어와 예를 올렸다.형식적인 절차였으나, 그 순간만큼은 공기 자체가 단단하게 굳어지는 듯한 긴장감이 있었다.내관은 재촉하지 않았고, 현은 서두르지 않았다.잠시, 둘 사이엔 침묵이 내려앉았다.그리고, 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오늘 궁의 움직임을 어찌 보았느냐.”내관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특별한 일은 없었사옵니다. 다만… 빈마마께서 밤에 잠시 회랑을 거닐었다는 정도만…”현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그 움직임은 발각될 만큼 크지 않았지만,내관은 그 미세한 흔들림이 오늘의 대화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잠시 후, 현이 낮게 말했다.“도진은… 어디에서 경계를 섰느냐.”내관은 숨을 삼키듯 대답했다.“호위관 도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6-23
Read more

32. 검을 쥔 손이 흔들리다.

새벽의 궁은 하루 중 가장 맑고 가장 차가운 공기를 품고 있었다.아직 해가 뜨지 않은 흙빛 하늘 아래에서 살짝 하얀 물안개가 땅 위를 흐르는 듯 피어오르고,대나무 숲은 서늘한 바람에 조용히 몸을 떨었다.이 시간은 도진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잡념이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검과 하나가 되는 시간.단 한 번도 흐트러진 적이 없었던 시간.그러나 오늘은 달랐다.수련장은 아직 텅 비어 있었고, 도진은 홀로 검을 들고 서 있었다.그의 손끝에 닿은 검의 감각은 늘 같아야 했다.단단하고, 차갑고, 정확한 감각.하지만 오늘, 그 감각이 이상하게 생경했다.마치 손이 아닌 마음이 먼저 흔들리는 듯한 기분.도진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요란한 감정이 아니라, 아주 미묘한 흔들림이었다.그런데도 그 흔들림은 심장을 아주 조용히 휘감으며 검을 쥔 손까지 퍼져갔다.그는 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칼끝이 새벽 안개 속에서 반짝였고, 몸을 낮게 숙이며 발을 굴렀다.첫 동작은 정확했다.둘째 동작도 흠잡을 데 없었다.그러나 셋째 동작에서 칼끝이 흔들렸다.아주 미세한 흔들림.하지만 도진에게는 치명적인 흔들림이었다.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그는 눈썹을 좁히며 자세를 고쳤다.다시 한 번. 검을 높이 올리고, 허공을 가르며 내리쳤다.휘익~소리는 정확했지만 동작의 맥이 끊겼다.도진의 숨이 깊게 흔들렸다.'왜 이리… 집중이 되지 않는가.'평생 칼을 잡아온 사내에게 이 정도의 흐트러짐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그러나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그는 검을 들고 선 채 가볍게 눈을 감았다.그리고 아주 느린 속도로 어젯밤의 장면이 떠올랐다.달빛 아래에 선 이수.바람결에 흔들리던 그녀의 머리카락.가볍게 떨리던 목소리.“…유난히 긴 밤이옵니다.”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던 자신의 눈.그 눈 속에서 자신이 보아서는 안 되는 결이 조금씩 피어나고 있었다.도진은 숨을 내쉬었다.그 순간 현의 음성이 머릿속에서 울렸다.‘호위관은… 자리를 지키는 법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6-23
Read more
PREV
1234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