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친 뒤의 궁은 늘 그랬다.젖은 기와에서 묵은 물 냄새가 올라오고, 회랑 바닥에는 고인 물이 얇게 빛을 받았다.마치 누군가 오래 서 있다 떠난 자리처럼, 그 흔적만이 조용히 남아 있었다.군영 쪽 하늘은 다른 전각들보다 조금 더 탁해 보였다.그곳에서는 언제나 쇠와 땀, 흙먼지가 뒤섞인 공기가 흘렀다.그 속에서 도진은 평소와 다름없이 검을 손에 쥐고 서 있었다.표면적으로는 그랬다.오늘 새벽, 군영에는 낯선 얼굴이 하나 들어왔다.문무를 겸한 듯한 몸가짐,고개를 숙일 때도 눈을 감지 않는 습관 그 남자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내금위에서 왔사옵니다. 궁 내 순찰 체계 점검을 맡으라는 전교가 있어 잠시 몸을 의탁하게 되었사옵니다.”이름은 석윤이라 했다.도진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명이라면 따를 뿐이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내게 말하라.”말은 그렇게 했지만 도진의 눈빛은 그 남자의 발끝, 손끝, 숨 쉬는 결까지 살피고 있었다.‘내금위에서 군영으로 사람을 보냈다는 것 순찰 점검이 목적이 아니옵니다.’‘경계를 점검하겠다 말하지만, 실상은 사람을 점검하는 법이지요.’그가 알고 있는 것을 석윤 또한 모를 리 없었다.“듣기로는, 경께서 저하의 곁을 가장 오래 지키신 분이라 하더이다.”석윤이 낮게 말을 건넸다.“궁의 길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시겠사옵니다.”도진은 짧게 웃음 비슷한 것을 흘렸다.“길은 다 거기서 거기지. 다만 어디로 가느냐를 정하는 것은 걸음의 주인일 뿐.”“허나, 어떤 길은… 걸어서는 안 되는 길도 있사오니.”석윤의 말이 거기서 한 번 더 내려앉았다.“특히,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길은 때로 궁에 독이 되기도 하지요.”대놓고 말하지는 않았다.그러나 이 말을 모를 수 있는 사람은 이 궁에 없었다.도진은 대답 대신, 칼끝을 점검하듯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였다.“그래서 걷지 말라 하였느냐. 일부 회랑을 봉쇄한 것도 그 때문이겠지.”“명이라 하였사옵니다.”석윤이 고개를 숙였다.“도진 경께서… 괜한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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