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밤은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그러나 이 밤이 지나면, 궁의 공기는 이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도진은 군영의 끝자락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불빛이 닿지 않는 그늘 속에서 그는 자신의 숨소리를 세고 있었다.숨이 고르면 마음이 가라앉고, 마음이 가라앉으면 판단이 또렷해진다.그것이 그가 살아온 방식이었다.야간 순찰에서 빠진 첫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몸이 기억해온 리듬이 깨졌다.이 시간이면 그는 이미 궁의 가장 깊은 복도를 지나빈의 처소와 가장 가까운 어둠을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오늘 밤, 그 자리는 다른 이의 발걸음으로 채워졌을 터였다.도진은 손바닥을 천천히 펼쳤다.검을 쥐지 않은 손이 이토록 무거운 밤도 드물었다.검이 없을 때 사람은 비로소 자신의 감정을 손으로 느낀다.그는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말했다.‘지금은 나서지 않겠다.’‘지금은 버티겠다.’그러나 그 문장은 확신이 아니라 다짐에 가까웠다.그때, 군영 바깥에서 낮은 기척이 스쳤다.숨을 죽인 움직임. 말을 섞지 않는 두 사람의 교대.도진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그 대신 그들의 그림자가 지나가는 방향과 사라지는 속도를 읽었다.서쪽. 다시 서쪽이었다.빈의 처소로 이어지는 길. 도진은 눈을 감았다 떴다.감정이 먼저 움직이려는 것을 이성으로 눌러야 했다.지금 그가 나서면 그 순간부터 모든 행동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로 기록될 것이다.그는 천천히 돌아섰다.군영 안쪽, 가장 많은 시선이 모이는 곳으로.보이지 않게 움직이는 것보다보이는 곳에 머무르는 편이 지금은 더 안전했다.그 시각, 이수는 홀로 창가에 서 있었다.문은 닫혀 있었으나 창은 아주 조금 열려 있었다.차가운 밤공기가 비단 옷자락 사이로 스며들었다.상궁은 그 모습을 보고 몇 번이나 말을 꺼내려다 삼켰다.이수의 등 뒤에는 지금 말을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은 고요가 서려 있었다.“김 상궁.”이수가 먼저 불렀다.“예, 마마.”“오늘 밤, 도진 경의 이름이 몇
야간 순찰은 궁의 가장 깊은 부분을 오가는 임무였다.그 자리는 도진이 가장 오래 맡아온 자리이기도 했다.“…이유를 여쭈어도 되겠는가.”전령은 한 박자 늦게 답했다.“나으리의 몸이 아직 회복 중이라 저하께서 염려하신다 하옵니다.”염려.그 단어는 궁에서 가장 부드러운 얼굴을 한 가장 날카로운 칼이었다.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그 대답은 짧았고, 그 이상은 필요하지 않았다.전령은 더 말하지 않고 물러났다.도진은 혼자 남았다.야간 순찰에서 빠진다는 것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었다.궁의 어둠에서 한 발짝 물러나라는 뜻이었고, 그만큼 시야에서도 멀어지라는 뜻이었다.그는 그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빈의 처소에서 더 멀어지라는 뜻. 도진은 천천히 손을 풀었다.손바닥에는 아직 식지 않은 긴장이 남아 있었다.그는 마음속으로 이수의 얼굴을 떠올렸다.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이 거리로… 지킬 수 있는가.’그 질문에는 아직 답이 없었다.그 시각, 이수의 처소에서는 상궁이 낮은 목소리로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마마, 야간 순찰 명단이 오늘 바뀌었사옵니다.”이수는 고개를 들었다.“어디가 빠졌느냐.”“…도진 나으리의 이름이 빠져 있사옵니다.”그 말은 촛불보다 먼저 이수의 가슴을 건드렸다.그녀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그러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이유는.”“나으리의 부상이 아직 남아 있으니 당분간 휴식을 취하라는 분부라 하옵니다.”이수는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그 말이 얼마나 정중하게 포장된 압박인지 그녀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김 상궁.”“예, 마마.”“세자 저하의 염려는 늘 이런 방식으로 시작된다.”상궁은 말을 잇지 못했다.“멀어지게 하고, 보이지 않게 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이수는 말을 멈췄다.끝을 말하지 않아도 이미 그 결말은 충분히 무거웠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방 안을 걸었다.발걸음은 느렸으나 머릿속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오늘 밤, 저하께서 나를 다시 찾지는 않
그는 더 묻지 않았다.지금 묻는 질문은 모두 기록으로 남을 질문이었기 때문이다.근위는 예를 갖추어 물러났고, 도진은 그 뒷모습을 보지 않았다.그의 시선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다.빈의 처소.그곳을 떠나며 택한 선택이 지금 이 순간부터는 그녀를 향한 가장 가까운 길이되었다는 사실을 도진은 스스로에게 여러 번 되뇌었다.그 시각, 이수는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상궁은 조용히 등을 걷어 올려 촛불을 하나 더 밝혔으나,이수는 그 불빛조차도 너무 또렷하다고 느꼈다.“마마.”“말해 보아라.”“오늘 밤, 근위의 교대가 잦아졌사옵니다.”“어느 쪽이냐.”“서쪽 회랑과… 군영으로 이어지는 길이옵니다.”이수의 손끝이 잠시 멈췄다.서쪽 회랑은 도진이 가장 자주 지나는 길이었다.“저하의 뜻으로 보이느냐.”“예.”상궁은 잠시 말을 골랐다.“아직은 ‘감시’라기보다는 ‘정리’에 가깝사옵니다.”정리. 그 단어는 이수의 마음을 차갑게 만들었다.정리는 늘 사람을 지우기 전 단계에서 사용되는 말이었다.“김 상궁.”“예, 마마.”“지금부터는 내 처소에 드나드는 사람의 이름을 하나도 빠짐없이 적어두어라.”“예, 마마.”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말은 언제든 바뀐다. 그러나 기록은 나중에라도 진실이 된다.”상궁은 그 말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이수가 무엇을 대비하는지는 느낄 수 있었다.“그리고…”이수가 잠시 말을 멈췄다.“도진 경이 이곳을 오가게 되는 날이 있거든.”상궁의 숨이 짧아졌다.“…그날은 나에게 먼저 알리되,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말아라.”“예, 마마.”이수는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보았다.닫힌 문 너머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눈과 귀가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그녀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기로 했다.피하는 순간, 의심은 사실이 된다.대신 그녀는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더 또렷하게 드러내기로 했다.그 시각, 세자의 침전에서는 한 장의 종이가 조용히 접혔다.현은 종이를 내려놓고 촛불을 오래 바라보았다.불꽃
상궁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이수의 음성에는 이미 결론을 받아들인 사람의 고요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그 시각, 세자의 침전에서는 불이 아직 꺼지지 않고 있었다.현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으나 서책은 펼쳐져 있지 않았다.손은 탁자 위에 올려져 있었고, 손가락 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도진.’그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마다 가슴 아래 어딘가에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이 올라왔다.믿고 싶은 마음과 믿을 수 없다는 감각이 서로를 물어뜯고 있었다.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나는 의심하지 않으려 했다. 나는 빈을 믿고자 했다.’그러나 그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마다 도진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침전 안을 몇 걸음 오가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확인해야겠다.”그 말은 혼잣말이었지만, 이미 마음속에서는 여러 갈래의 길이 정리되고 있었다.누구를 불러야 할지,무엇부터 살펴야 할지,어디까지 허용할지.그는 조용히 결심했다.‘아직은… 칼을 들 때가 아니다.’‘그러나 칼을 꺼낼 준비는 해야 한다.’그 순간, 침전 밖에서 내관의 발소리가 들렸다.“저하.”“말하라.”“오늘 밤, 도진 나으리의 움직임이 평소보다 잦았다는 보고가 들어왔사옵니다.”현의 눈이 아주 천천히 가늘어졌다.“…어디를 오갔다더냐.”“빈마마의 처소 인근을 포함하여 궁의 여러 통로를”“그만하라.”현은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그리고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지켜보라. 아직은… 지켜보기만 하라.”그 말 속에는 ‘아직’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무겁게 실려 있었다.내관이 물러나고 침전은 다시 조용해졌다.그러나 그 조용함은 결코 평온함이 아니었다.그날 밤, 궁은 누구도 잠들지 않았다.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의심하고, 서로를 지키려 하고,서로를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그리고 그 모든 움직임은 조
문을 닫고 난 뒤에도, 도진은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문 안쪽에서는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았고, 복도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졌다.그러나 그 고요는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었다.숨을 고른다고 해서 사라질 기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도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어둠 속에서 시선이 닿는 곳마다 궁의 벽과 기둥, 처마의 그림자가 모두 조금씩 달라 보였다.어제까지는 단순한 구조물이었고,그저 지켜야 할 공간이었을 뿐인 곳들이오늘은 마치 누군가의 시선을 숨기기 위한 장치처럼 느껴졌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켰다.그리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지금부터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어서는 안 된다.이수의 처소를 등지고 몇 걸음 물러났을 때, 도진은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안에는 더 이상 기척도 말소리도 없었다.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그 안에서 이수는 결코 편히 쉬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세자의 의심은 말로 끝나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그것은 한 번 시작되면 사람을 시험하고,사람을 고립시키고, 마침내 사람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자라났다.도진은 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세자의 곁에서 오래 지켜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그가 발걸음을 옮길수록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점점 더 위험한 곳으로 바뀌고 있다는 감각이 들었다.빈의 처소 근처를 도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기록에 남을 수 있고, 누군가의 입에 오를 수 있었다.그 순간, 멀리서 낮게 울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도진은 즉시 몸을 낮추었다.기둥의 그림자 안으로 반 발짝 물러나 소리가 나는 방향을 주시했다.근위 둘이 조심스레 걸어오고 있었다.평소와 다르지 않은 순찰처럼 보였으나, 걸음의 속도와 간격이 미묘하게 달랐다.둘 다 말을 하지 않았고, 서로를 확인하는 눈빛만을 주고받고 있었다.도진은 그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그 시선은 자연스러웠으나, 마음은 이미 결론을 향해 가고 있었다.세자의 명이 내려간 것이다.직접적인 명령일 수도
바람이 멈춘 듯 고요한 밤이었다.궁의 처마 밑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조차 지나치게 크게 들릴 만큼, 모든 기척이 조심스러웠다.이수의 처소에서는 촛불이 낮게 흔들리고 있었다.방금 전 세자가 문을 닫고 돌아선 여운이 아직 공기 속을 떠돌았다.그 여운에는 의심과 질투,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상처가 섞여 있었다.상궁은 여전히 긴장으로 굳은 어깨를 움츠린 채 서 있었다.말을 꺼낼 수 없어서가 아니라, 어떤 말도 지금의 이수를 안정시키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이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숨을 고르려 했으나,숨이 생각처럼 고르지지 않았다.세자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가 얼마나 무겁게 마음을 흔드는지오늘 밤만큼 또렷하게 깨닫는 순간은 없었다.“상궁.”그녀가 아주 낮게 부르자 상궁은 즉시 허리를 숙였다.“예, 마마.”“문을… 잠시 열어두어라.”상궁은 놀란 눈을 들었다.“마마, 혹여 밤공기가”“괜찮다. 이 밤의 공기가… 나를 더 차분하게 만든다.”상궁은 더 묻지 않았다.문이 반쯤 열리자, 어두운 복도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이수의 소매를 가볍게 스쳐 지나갔다.기척 하나가 문 안쪽의 기류를 약하게 흔들었다.바람도 아닌데 생긴 흔들림이었다.잠시 후, 복도 끝에서 낮게 들려오는 발걸음.서두르지 않고, 그러나 숨을 누르고 오는 걸음이었다.도진이었다.그는 문턱 앞에서 멈춰섰다.상궁이 그를 알아보고 조용히 말렸다.“마마께서… 지금은 사람이 드나드는 것을…”“압니다.”도진은 상궁의 손보다 먼저 말을 막았다.“문 앞까지만. 그 이상은 들지 않겠습니다.”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으나, 그 낮음 안에서조차 깊이 가라앉은 우려가 흘러나왔다.상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러서며 이수를 돌아보았다.이수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문 가까이로 한 발 다가왔다.두 사람 사이에는 여전히 문턱이 있었지만 그 문턱은 오히려 서로를 정확히 바라볼 수 있는 거리였다.도진은 허리를 곧게 세우고 예를 갖추었다.“마마, 이렇게 밤중에 찾아
도진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소문은 이미 들었지만, 직접 그의 입에서 들으니 사실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세자가 혼례를 치르는 문제는 나라 전체의 일이며 궁 전체가 흔들리는 날이었다.“좌상댁의 영애라 하더군.”이현이 덧붙였다.“예, 저하.”도진은 짧게 대답했다.그 이상의 말을 할 권리는 그에게 없었다.하지만 그 순간 전각의 문 밖에서작은 물방울 하나가 지붕 끝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촛불이 그 작은 소리에 반응하듯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그리고, 그 흔들림과 동시에 도진의 머릿속 어딘가가이유 없
귓가에 닿은 목소리는 위로인지, 반가움인지, 그리움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도진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사람들의 시선도, 사인회장도, 현실도 그에게는 모두 멀어졌다.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이수는 대답하지 않았다.대답 대신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올렸다.그리고, 정말로 오래 기다린 사람에게 하듯 조용히, 그러나 확신 있게 입맞춤을 했다.그 순간 도진의 다리가 풀렸다.머리가 가벼워졌다.심장이 너무 크게 뛰었다.세상이 기울었다.그는 휘청이며 앞으로 쓰러졌다.이수의 손이
비는 오후 내내 흐릿하게 내리고 있었다.도심의 커다란 유리 건물들은 회색 안개 속에서 윤곽이 무뎌져 있었고,사람들은 비를 피해 우산을 들고 바삐 움직였지만,이제 막 내리기 시작한 냄새는 오히려 공기를 맑게 정돈하고 있었다.도진은 백화점 입구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늘 그렇듯, 아무 계획 없이 들른 곳이었다.욕망도, 필요도 없이 그저 시간이 남아서 들어오는 곳그의 삶은 지루할 정도로 완벽했고, 어떤 자극도 오래 머물지 않았다.비가 어깨를 적셔도 그는 대수롭지 않았다.몇 백 년 동안 수없이 맞아온 비였다.어떤 비
밤은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달빛은 기와 위에서 희미하게 번졌고,바람은 소리 없이 건물의 모서리를 스쳤다.도진은 이수의 처소에서 멀어질수록오히려 마음 한가운데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자리 잡는 걸 느꼈다.그 감정은 단순한 경계심이 아니었다.호위무사로서 세자빈을 지키려는 의무감도 아니었다.그것은 그녀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가슴을 묘하게 죄어오는 부끄러울 만큼 인간적인 감정.도진은 발걸음을 멈췄다.그는 무사였다.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욕망을 절제하며, 의무를 지키기 위해 살아온 사람이었다.그런 그가 오늘 하루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