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아내가 바람난 날, 내 슬럼프가 끝났다: Chapter 111 - Chapter 120

182 Chapters

111화 진흙탕과 다이아몬드(3)

서아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도진은 다 알고 있는 걸까? 아니, 그럴 리 없다. 이건 그냥 소설 이야기일 뿐이다. 직업병이 도진 것일 뿐이다."당연히…… 성 안을 선택해야지. 순간의 호기심 때문에 자기가 가진 모든 걸 버리는 건…… 너무 어리석은 짓이잖아."서아가 애써 태연한 척하며 대답했다. 그러자 도진의 입가에 아주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맞아. 어리석은 짓이지."도진이 테이블 위로 손을 뻗어 서아의 손등을 부드럽게 덮었다."진흙탕은 처음엔 체온처럼 따뜻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결국엔 말라붙어서 여자의 아름다운 비단옷을 찢어발기고 숨통을 조여버리거든. 성 밖으로 나가는 순간, 여자는 더 이상 고귀한 귀족이 아니라 그저 진흙을 뒤집어쓴 천박한 창부로 전락할 뿐이니까."서아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창부. 그 단어가 비수처럼 날아와 서아의 가슴에 꽂혔다."우리 서아는 참 똑똑해. 역시 내가 사랑하는 완벽한 뮤즈다워."도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안주머니에서 길쭉한 검은색 벨벳 케이스를 꺼내 들고 서아의 등 뒤로 걸어갔다.딸깍-케이스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서아의 눈앞에 영롱하게 빛나는 물방울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자태를 드러냈다. 수십 개의 정교한 커팅이 샹들리에 조명을 받아 눈이 멀 것 같은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최소 수억 원을 호가하는 하이엔드 브랜드의 한정판이었다.서아는 한눈에 이번 보석이 예전에 받았던 기념일 선물과는 다른 새 목걸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물방울 모양의 다이아몬드는 크기와 세팅부터 평소 자신이 고르던 것보다 훨씬 과감했다. “이건 언제 준비했어?”라고 묻자 도진은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 아름다운 선물이었지만 서아에게는 장식보다 표식처럼 느껴졌다. 남편이 자신을 여전히 완벽한 아내로 바라본다는 사실이 안도와 압박을 동시에 만들었다. 그녀는 아직 목에 걸리지도 않은 펜던트를 바라보며 웃었고, 그 미소가 조금 늦었다는 것을 도진은 놓치지 않았다."결혼기념일 선물이야."도진의 양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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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화 진흙탕 사내의 발톱(1)

오후 1시. 마포구 망원동의 후미진 골목 안쪽, 거무튀튀한 적벽돌로 지어진 낡은 상가 건물. 그 지하에 이안의 작업실이 있었다. 서아의 하얀색 포르쉐 파나메라는 골목 한쪽에 멈춰 있었지만, 엔진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서아는 운전석에 앉은 채 굳게 닫힌 철문과 내비게이션 화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화면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경로가 그대로 떠 있었다. 차에서 내리기 전, 그녀는 건물 입구에서 차까지의 거리와 골목이 막혔을 때 빠져나갈 방향을 다시 확인했다. 오늘만큼은 이안에게 끌려온 것이 아니라, 관계를 끝내기 위해 스스로 들어가는 것이었다.그녀는 오늘 이곳에 온 목적을 문장으로 만들어 보았다.'관계를 끝내기 위해.'괜찮은 문장이었다.'통제권을 되찾기 위해.'그것은 더 그럴듯했다.서아는 휴대전화를 꺼내 녹음 기능까지 확인했다. 필요하면 이안의 위협을 남길 생각이었다. 녹음이 켜지는 순간부터는 말의 순서도, 협박의 내용도 기억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됐다. 그 사실이 조금이나마 숨을 고르게 했다.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다시 짐승처럼 달라붙어 올 이안의 거친 숨결이 생생하게 그려졌다."후우……."서아는 깊은숨을 내쉬며 백미러를 보았다. 오늘 그녀는 마치 전장에 나가는 장수처럼 빈틈없이 무장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틈없이 떨어지는 크리스찬 디올의 화이트 수트, 그리고 셔츠 깃 사이로 은근하게 빛을 내뿜는 물방울 다이아몬드 목걸이.어젯밤 남편 도진이 그녀의 목에 직접 걸어주었던, 수억 원짜리 '성 안의 삶'에 대한 증표였다.'이게 나야. 내 진짜 모습이라고.'서아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중얼거렸다. 이안이 주는 쾌락은 불량식품처럼 자극적이었지만, 그녀의 뼈와 살을 구성하는 것은 결국 도진이 제공하는 막대한 부와 명예였다. 가진 것을 잃을까 벌벌 떠는 초라한 불륜녀의 모습은 오늘로 끝이다.서아는 마침내 시동을 끄고 차 문을 열었다. 하이힐 굽 소리를 또각거리며 건물 쪽으로 걸어가면서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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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화 진흙탕 사내의 발톱(2)

이안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 조롱하듯 올라가 있던 입꼬리가 무겁게 내려앉았다."장난감." "앞으로 갤러리 계약은 예정대로 진행할 거야. 내년 개인전도 약속대로 열어줄 거고. 네가 원한다면 작업실 지원금도 더 얹어주지. 하지만 사적인 만남은 오늘이 마지막이야."서아는 명품 백에서 미리 준비해 온 두툼한 봉투를 꺼내 테이블 위에 던졌다."이거면 당분간 물감값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야. 그동안 고마웠어. 앞으로 갤러리 업무 외에는 연락하지 마."서아는 할 말을 다 마쳤다는 듯 미련 없이 돌아섰다. 문손잡이를 잡으려던 찰나였다."야."이안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서아의 발목을 잡아챘다."너 지금 나한테 돈 던졌냐?" "네가 받은 화대라고 생각해."서아가 뒤를 돌아보며 싸늘하게 쏘아붙였다."내가 강도진이랑 이혼할 줄 알았어? 네까짓 게 이혼하라고 하면 내가 갤러리 관장 자리 다 내던지고 너한테 올 줄 알았냐고! 착각하지 마. 넌 그냥 내 호기심을 채워준 도구였어. 주제 파악 좀 해, 이안."그 순간이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이안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꺄악!"서아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이안이 그녀의 머리채를 거칠게 움켜쥐었다."이거 놔! 미쳤어?!"이안은 서아의 비명을 무시한 채 그녀를 질질 끌고 가 작업실 벽면으로 강하게 내동댕이쳤다.쾅-!등이 벽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서아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화이트 수트 위로 회색 먼지가 잔뜩 묻어났다."도구? 장난감?"이안이 서아의 멱살을 틀어쥐며 으르렁거렸다. 그의 눈동자에는 어제와 같은 여유로운 조소 따위는 없었다. 철저하게 무시당한 수컷의 분노만이 핏발 서린 눈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너, 내가 어제 분명히 말했지. 가짜 새끼한테서 떨어져 나오라고." "미친 새끼! 경찰 부르기 전에 당장 손 놔!" "경찰? 불러, 씨발. 불러봐! 경찰 오면 내가 어떻게 대답할까? 저 고상하신 갤러리 관장님이, 남편 눈 피해서 내 침대 위에서 어떻게 허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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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화 진흙탕 사내의 발톱(3)

값비싼 옷감이 찢어지는 파열음이 작업실을 울렸다. 서아의 완벽했던 방어막, 성 안의 귀부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이안의 손아귀에서 갈기갈기 찢겨나가고 있었다."이게 너야, 서아야."이안의 뜨겁고 축축한 입술이 서아의 뺨에 맺힌 눈물을 핥아 올렸다."돈 몇 푼 던지고 고상하게 돌아서는 갤러리 관장이 아니라, 내 밑에서 발버둥 치면서 쾌락에 젖어드는 천박한 여자. 이게 진짜 백서아라고.""흐으윽…… 아니야, 아니야…….""아니긴 뭐가 아니야! 네 몸이 이렇게 정직하게 반응하는데!"이안의 손가락이 서아의 가장 은밀하고 예민한 곳을 무자비하게 파고들었다."아흐읏……!"공포와 수치심 속에서도, 지독하게 길들여진 몸이 조건반사처럼 쾌락의 신음을 토해냈다.그 모순적인 반응이 서아를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자신은 지금 강간을 당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이 진흙탕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인가?도진이 어젯밤 레스토랑에서 읊조렸던 말이 환청처럼 귓가를 때렸다.'진흙탕은 처음엔 따뜻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결국엔 말라붙어서 여자의 아름다운 비단옷을 찢어발기고 숨통을 조여버리거든.'도진의 말이 맞았다. 이안은 단 한 번의 호기심으로 건드려도 될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진흙탕 그 자체였다. 한 번 발을 들이면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늪. 지금 이안은 그녀의 비단옷을 찢어발기고, 그녀의 목에 걸린 다이아몬드를 박살 내며, 그녀를 완전히 진흙탕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하아…… 하아……."이안의 거친 숨결이 서아의 온몸을 뒤덮었다. 비좁은 소파 위에서 두 사람의 살과 살이 마찰하는 질척이는 소리만이 작업실 안에 울려 퍼졌다."도진 씨…… 살려줘…… 도진 씨……!"서아는 고통과 쾌감이 뒤섞인 감각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남편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그것은 이안의 뇌관을 건드리는 최악의 방아쇠였다."씨발, 지금 내 밑에서 그 새끼 이름을 불러?!"이안의 눈이 홱 돌아갔다. 그는 서아의 양쪽 허벅지를 거칠게 벌리고, 그대로 자신의 몸을 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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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화 완벽한 남편의 구급상자(1)

자정이 가까워진 시각. 서아는 한남동 대저택의 지하 차고에 차를 세우고도 한참 동안 내리지 못했다.차에서 내리기 전 서아는 도진의 차가 있는지 먼저 확인했고, 이층 서재 쪽 불빛도 올려다봤다. 검은 트렌치코트의 앞섶과 손목, 목덜미를 차례로 살핀 뒤 거울로 얼굴을 확인했다. 집 안에 들어가면 침착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만 되풀이했지만, 정작 어떤 문장을 말할지는 정하지 못했다. 말을 미리 만들려 할수록 자신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만 더 선명해졌다. 도진이 무엇을 먼저 물을지도 알 수 없었다. 서아는 입술을 다물고 거울 속 표정을 몇 번 고쳐 보았다. 운전대에서 손을 떼는 순간 손끝이 다시 떨렸다. 숨을 길게 내쉰 그녀는 일단 집 안에 들어간 뒤 질문을 듣고 대답하자고 마음먹었다. 완벽한 아내의 얼굴만큼은 차 문을 열기 전에 다시 만들어져야 했다.운전대에 머리를 박은 채, 그녀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아니, 입술뿐만 아니라 손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조수석에는 종이 가방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갈기갈기 찢겨 걸레짝이 된 크리스찬 디올의 화이트 수트가 쑤셔 박혀 있었다. 도저히 그 차림으로 집까지 돌아갈 수 없는 몰골이라, 서아는 찢어진 셔츠 앞섶을 움켜쥔 채 작업실을 빠져나와 차까지 몸을 숨겨 이동했다. 그리고 트렁크에 비상용으로 구비해 둔 검은색 오버핏 트렌치코트를 꺼내 맨살 위에 뒤집어쓴 뒤에야 운전석에 올랐다."하아…… 하아……."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 부근이 욱신거렸다. 이안이 무자비하게 짓눌렀던 허벅지 안쪽은 마치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렸다.서아는 떨리는 손을 들어 자신의 목덜미를 더듬었다. 허전했다. 어젯밤 도진이 직접 걸어주었던, 그 무겁고 차갑던 물방울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이제 없었다. 이안이 짐승처럼 잡아뜯어버린 탓에, 목덜미에는 긁힌 상처와 함께 선명한 이빨 자국만이 남아 있었다.'도진 씨가 물어보면 어쩌지. 목걸이는…… 목걸이는 갤러리 금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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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화 완벽한 남편의 구급상자(2)

그때였다. 뒤에서 다가온 도진이 서아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앗!"서아가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그 반동으로, 단단히 여며두었던 샤워 가운의 깃이 한쪽으로 살짝 흘러내렸다.순간, 정적이 흘렀다.도진의 시선이 서아의 드러난 목덜미와 쇄골에 머물렀다. 그곳에는 핏발이 선 이빨 자국과,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끊어지며 생긴 선명한 긁힌 상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서아는 숨을 들이켜며 황급히 가운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도진의 눈이 그것을 정확히 담아냈다는 것을, 거울을 통해 볼 수 있었다."……서아야."도진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목에 그거, 다친 거야?" "어? 아, 이거……."서아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입술이 바싹 타들어 갔다. 심장 박동 소리가 귓가에서 천둥처럼 울렸다."이게, 그게…… 갤러리 지하 수장고에 내려갔다가……." "수장고에서?" "응. 그, 어두워서 발을 헛디뎠어. 그래서 그림 담아두는 나무 궤짝에 좀 부딪혔어."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다. 넘어져서 나무 궤짝에 부딪혔는데 쇄골에 이빨 자국 같은 멍이 생기고 목에 긁힌 상처가 난다고? 서아 스스로도 자신의 거짓말이 얼마나 허술하고 멍청한지 알고 있었다. 이안에게 짓밟힐 때의 공포가 가시지 않은 뇌는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했다.도진은 말없이 서아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 침묵의 1초, 2초가 서아에게는 영겁의 지옥 같았다. '들켰다. 끝이다. 도진 씨가 화를 낼 거야.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겠지. 그 목걸이는 어디 갔냐고 추궁할 거야.'서아가 눈을 질끈 감고 다가올 파국을 기다리던 그때였다."조심하지 그랬어."도진의 목소리에는 분노도, 의심도 없었다. 오직 안타까움과 다정함만이 짙게 배어 있었다."많이 아팠겠네. 궤짝에 부딪힌 거면 멍이 크게 들었을 텐데." "어? 어…… 조금." "가만있어 봐. 구급상자 가져올게."도진은 몸을 돌려 거실 쪽으로 걸어 나갔다. 서아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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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화 완벽한 남편의 구급상자(3)

"아흡……." "미안. 많이 부었어. 내일 갤러리 쉬고 병원부터 가보는 게 어때? 엑스레이 한번 찍어봐야 할 것 같은데." "아, 아니야! 뼈를 다친 건 아니야. 그냥 부딪힌 거니까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서아는 화들짝 놀라며 변명했다. 행여나 의사가 이 멍의 형태를 보고 폭행이나 강간을 의심할까 봐 두려웠다."그래? 당신이 정 그렇다면 알았어. 그래도 아프면 참지 말고 말해."도진은 구급상자를 닫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고마워, 여보. 내가 조심했어야 했는데."서아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도진을 올려다보았다. 도진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서아의 뺨을 쓰다듬어 주었다."당신이 다친 게 내 마음이 제일 아파. 오늘은 따뜻하게 하고 푹 자." "……응." "목에 걸어준 목걸이는 뺐나 보네. 다칠 때 끊어지거나 잃어버리진 않았어?"서아의 심장이 다시 한번 덜컥 내려앉았다."어? 아, 어……. 그거 너무 무거워서, 일할 때 불편할까 봐 갤러리 금고에 넣어두고 왔어. 잃어버린 거 아니야." "잘했어. 불편하면 안 하는 게 맞지."도진은 서아의 정수리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난 서재에 가서 마저 쓰던 원고 좀 다듬고 올게. 먼저 누워 있어."도진이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서아는 화장대 위로 엎드려 숨죽여 오열했다. 자신을 끝까지 믿고 걱정해 주는 도진의 다정함이, 오히려 그녀의 양심을 면도칼처럼 난도질하고 있었다. 자신은 쓰레기였다. 완벽한 남편을 기만하고, 젊은 남자의 폭력에 굴복한 천박한 여자. 서아는 스스로를 저주하며 밤새 소리 없는 눈물을 쏟아냈다.달칵. 서재로 들어온 도진은 문을 단단히 잠갔다.그의 얼굴에서 다정하고 자상했던 남편의 미소가 뱀의 허물처럼 스르륵 벗겨져 내렸다. 대신 그 자리에 자리 잡은 것은, 기괴할 정도로 번뜩이는 광기 어린 희열이었다."하하…… 하하하!"도진은 참을 수 없다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소리 죽여 웃었다.그녀의 몸에 새겨진 그 노골적인 멍 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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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화 두 개의 지옥, 그리고 환각(1)

째깍. 째깍. 째깍. 벽에 걸린 앤틱 시계의 초침 소리가 고막을 날카롭게 긁어댔다.새벽 3시 40분. 서아는 어둠이 짙게 깔린 침실 천장만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벌써 세 시간째, 눈을 감은 것도 뜬 것도 아닌 기묘한 각성 상태가 이어지고 있었다.옆자리에서는 규칙적이고 평온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도진이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바른 자세로 누워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서아의 쇄골과 골반에 핀 끔찍한 불륜의 흔적들을 보고도,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하아……."서아는 숨을 훅 들이켰다. 가슴통이 뻐근했다. 이불의 무게조차 버겁게 느껴질 정도로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 할 때마다, 그 미친놈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짐승처럼 번뜩이던 이안의 눈동자. 거칠게 몰아쉬던 숨결. 자신의 화이트 수트를 북북 찢어발기던 억센 손아귀와, 귓가에 들러붙어 속삭이던 끔찍한 음성.[이게 진짜 당신이 원하는 거잖아. 안 그래?]"흣……!"서아는 자신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삼키며 상체를 일으켰다.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턱끝으로 뚝뚝 떨어졌다. 환청이었다. 분명 방금 전, 이불장 옆의 시커먼 어둠 속에서 이안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서아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목덜미를 부여잡았다. 도진이 발라준 연고의 미끈한 감촉이 남아 있었지만, 동시에 이안의 뜨거운 혀가 핥고 지나간 것 같은 역겨운 감각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미치겠어. 돌게 생겼다고.'침대에 더 이상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서아는 도진이 깰세라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맨발로 차가운 거실 대리석 바닥을 딛자, 그제야 열이 들끓던 머리가 조금 식는 듯했다.주방으로 걸어간 서아는 정수기에서 찬물을 한 컵 받았다.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켰다. 얼음장 같은 물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며 타들어 가는 속을 조금이나마 달래주었다."하아…… 괘, 괜찮아. 괜찮아, 백서아. 다 지나간 일이야."빈 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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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화 두 개의 지옥, 그리고 환각(2)

"여보세요? 응, 도진 씨." [서아야. 바빠?] "아니, 지금 막 결재 하나 끝냈어. 왜? 원고는 잘 써져가?" [응. 어제 당신이 다쳐서 마음이 아팠는지, 이상하게 글은 더 술술 풀리네. 영감이 막 떠오르더라고.]서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가 무심코 내뱉은 '다쳐서'라는 단어에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그, 그래? 다행이네……." [목에 멍든 건 좀 어때. 연고는 아침에 바르고 나갔어?] "응! 발랐어. 어제 푹 자고 일어났더니 많이 가라앉았어. 걱정하지 마."거짓말. 서아는 오늘 새벽 단 1분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다행이다. 점심은 먹었어? 바쁘다고 거르지 말고. 당신 좋아하는 샐러드 집에서 배달이라도 시켜줄까?] "아니야, 내가 알아서 챙겨 먹을게. 당신도 글 쓰느라 힘들 텐데 밥 잘 챙겨 먹고." [알았어. 이따 저녁에 봐. 사랑해, 서아야.] "……나도 사랑해."통화가 끊겼다. 서아는 폰을 쥔 채로 책상에 이마를 박았다. 도진의 저 숨 막히도록 다정하고 완벽한 목소리. 나를 끝까지 믿어주는 저 순진하고 맹목적인 애정. 그것이 지금 서아에게는 위로가 아니라 목을 조르는 올가미 같았다.'차라리 화를 내지. 차라리 의심을 하지…….'그 완벽한 성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죄책감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까톡-!책상에 박았던 고개를 미처 들기도 전에, 날카로운 메신저 알림음이 울렸다. 서아의 시선이 천천히 스마트폰 화면으로 향했다. 알림창에 떠 있는 발신자.[이안]"힉……!"서아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의자 등받이로 몸을 밀착시켰다. 손가락이 덜덜 떨려서 화면의 잠금을 푸는 데만 몇 번이나 비밀번호를 틀려야 했다. 간신히 메신저 창을 열었다.[이안: 왜 내 연락 무시해?] [이안: 남편이 발라주는 연고는 좀 시원하던가? 당신 다친 거 보고 그 잘난 남편이 뭐라고 해?] [이안: 사진 봐.]서아의 눈동자가 크게 확장되었다. 이안이 보낸 사진. 그것은 어젯밤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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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화 두 개의 지옥, 그리고 환각(3)

"관장님! 관장님!"비서 김 양이 뒤따라 뛰어왔지만 서아는 1층 VIP 라운지의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문을 거칠게 잠가버렸다.철컥!화장실 안은 대리석과 거울로 둘러싸여 차갑고 고요했다. 서아는 세면대 앞 거울에 두 손을 짚고 거친 숨을 토해냈다."하아…… 하아…… 하윽……."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몰골은 처참했다. 산발이 된 머리, 땀으로 얼룩진 파운데이션, 공포에 질려 핏발이 선 눈동자.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답답한 실크 블라우스의 단추를 거칠게 뜯어냈다. 투둑, 투두둑, 단추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블라우스가 벌어지자, 컨실러와 파운데이션으로 떡칠을 해놓은 목덜미와 쇄골의 상처들이 드러났다."지워야 해. 지워야 해, 이거……."서아는 비누를 펌핑해 상처 부위를 마구 문지르기 시작했다.박박, 벅벅-!손톱이 피부를 긁고 지나가면서 생채기가 났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데 거울을 바라보던 서아의 동공이 다시 한번 극한의 공포로 팽창했다."……으, 아아……."거울 속, 자신의 쇄골에 난 이빨 자국과 검붉은 멍 자국들이…… 피부 아래에서 꾸물꾸물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벌레들이 피부 밑에 알을 까고 부화한 것처럼. 시퍼런 멍 자국들이 혈관을 타고 목을 지나, 뺨을 타고, 눈가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환각이었다. 극도의 스트레스가 만들어낸 소름 끼치는 시각적 오류. 하지만 서아에게 그것은 현실 그 자체였다."안 돼! 떨어져! 더러워, 더러워! 내 몸에서 나가!"서아는 자신의 뺨과 목을 정신없이 손톱으로 긁어댔다. 피부가 벗겨지고 피가 맺혔다. 이안의 더러운 흔적이 온몸을 지배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도진이 이 더러운 벌레들을 보게 해선 안 됐다."죽어, 죽어, 죽어!"서아는 오열하며 세면대 아래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차가운 타일 바닥에 웅크린 채, 그녀는 핸드백을 뒤집어엎었다. 립스틱, 거울, 지갑, 깨진 스마트폰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작은 플라스틱 약통이 튀어나왔다. 신경정신과에서 처방받았던, 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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