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아내가 바람난 날, 내 슬럼프가 끝났다: Chapter 131 - Chapter 140

182 Chapters

131화 구원자의 완벽한 품(2)

자신은 몸을 굴렸다. 저 밑바닥 시궁창 같은 작업실에서, 짐승 같은 수컷의 밑에 깔려 남편이 사준 명품 옷을 찢어발기며 교미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이 완벽하고 순결한 남편은, 아내의 추악한 진실을 눈앞에 들이밀어도 그것을 '스토커의 망상'이라며 아내를 변호하고 지켜준 것이다."아…… 아아아…… 흑…… 도, 도진 씨…… 여보오……."서아의 입술이 일그러지며, 기괴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슬픔이 아니었다. 구원받은 죄인의 처절한 오열이었다. 서아는 목걸이를 꽉 쥐고 바닥을 기어가 도진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엉엉! 도진 씨! 흐어엉…… 무서웠어, 나 너무 무서웠어……!"서아는 체면도, 고상함도 모두 내던진 채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되어 도진의 고급스러운 실크 가운을 엉망으로 적셨다."내가 잘못했어, 흐윽, 내가 다 잘못했어……! 진작에 당신한테 말했어야 했는데…… 흑! 당신이 걱정할까 봐…… 당신 귀찮게 하기 싫어서 나 혼자 해결하려고 했는데…… 엉엉…… 그 스토커 새끼가 집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어…… 미안해, 진짜 미안해 여보……."서아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토해냈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거짓말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역겨운지 스스로도 알았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 완벽한 구원자의 품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이 가짜 스토커 서사를 완벽한 진실로 굳혀야만 했다.도진은 허리를 끌어안고 발작하듯 오열하는 서아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가운을 찢어질 듯 부여잡은 서아의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의 눈물은 뜨거웠고, 그녀의 공포는 날것 그대로의 진짜였다.'아아.'도진은 속으로 나지막한 탄성을 내질렀다.'얼마나 완벽한 연극인가. 얼마나 눈물겨운 위선인가.'아내는 지금 자신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신(神)에게 구걸하고 있었다. 자신이 싼 똥을 남편이 치워줬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들킬까 봐 벌벌 떠는 그 얄팍한 이기심. 자신의 더러움을 남편의 성스러움으로 덮어버리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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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화 구원자의 완벽한 품(3)

'네가 나를 완벽한 성자로 믿을수록, 네가 짊어져야 할 죄악의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질 테니까. 네가 쌓아 올린 그 알량한 성벽이 이안 그 짐승 새끼에 의해 밖에서부터 박살 날 때, 넌 오직 내 품 안에서만 숨을 쉴 수 있겠지.'도진은 서아의 목에 감긴 보이지 않는 올가미를 꽉 쥐어틀었다.'넌 영원히 내 거야. 내 가장 완벽한 피조물이자, 내 걸작을 완성시켜줄 최고의 도구. 네가 뼛속까지 파멸하는 그 순간까지, 나는 이 따뜻한 지옥에서 널 한 발짝도 내보내지 않을 거야.'"괜찮아, 서아야. 내가 다 지켜줄게."도진이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흑…… 고마워, 여보…… 정말 고마워…… 사랑해, 도진 씨……."서아가 쉰 목소리로 남편을 향한 사랑을 맹세했다.새벽 2시. 한남동의 최고급 대저택 거실. 스스로 지옥을 불러들인 아내와, 그 지옥을 관망하며 소설을 쓰는 악마 남편은 서로를 꽉 끌어안은 채 가장 완벽하고 기괴한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서아의 오열은 조금씩 잦아들었고, 약 기운과 안도감에 취한 몸도 완전히 축 늘어졌다.그래도 거실에는 무거운 정적이 남아 있었다.서아는 도진의 품에서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침실로 올라가자는 말을 들은 뒤에야 겨우 몸을 일으켰다.‘술에 취해 찾아온 작가야.’사실이었다.‘계약 문제로 감정이 상했어.’그것도 일부는 사실이었다.도진이 먼저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놀랐지?"서아는 준비했던 문장을 모두 잊었다."미안해. 내가 더 일찍 정리했어야 했는데.""당신이 왜 미안해."도진은 약을 챙겨 주고 물을 건넸다. 질문은 없었다. 작업실이 무엇인지, 이안이 왜 저런 말을 했는지,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서아는 그 침묵을 용서라고 받아들였다.그녀가 약을 삼키는 동안 도진은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도진은 아내의 등을 토닥이는 그 섬뜩한 손길을, 서아의 떨림이 조금 가라앉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자."그 말에 서아는 더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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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화 타인의 뮤즈, 그 잔혹한 페이지(1)

"흐읍…… 으응…… 도진 씨……."안방 침대 위. 두꺼운 암막 커튼이 쳐진 어두운 방 안에서, 서아는 약 기운과 탈진으로 인해 거의 혼절하듯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무의식은 여전히 끔찍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듯했다. 식은땀에 젖은 몸을 뒤척이며, 서아는 끊임없이 도진의 이름을 부르며 앓는 소리를 냈다.침대 곁에 걸터앉은 도진은, 그 헐떡이는 숨소리를 BGM 삼아 조용히 서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커다란 손이 서아의 뺨을 타고 흐른 눈물자국을 다정하게 닦아주었다."쉬이……. 괜찮아, 서아야. 다 끝났어. 아무도 널 해치지 못해."도진이 나지막하게 속삭이자, 기적처럼 서아의 찌푸려졌던 미간이 스르르 풀렸다. 마치 신의 구원을 받은 어린양처럼, 서아는 도진의 체온이 닿은 뺨을 베개에 부비며 깊고 무거운 수마 속으로 빠져들었다.도진은 서아의 턱끝까지 구스 이불을 꼼꼼하게 덮어주었다. 가장 자상하고 완벽한 남편의 의식. 그 모든 행동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익숙한 순서대로 반복되었다.새근거리는 서아의 숨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방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완전히 잠들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도진의 얼굴에 희미하게 걸려 있던 다정한 미소가, 스위치가 꺼진 것처럼 일순간에 증발해 버렸다."……."표정을 지운 도진의 얼굴은 섬뜩할 정도로 차갑고 건조했다. 그는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서아의 눈물을 닦아주었던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더러워.'도진은 미간을 미세하게 찌푸렸다. 아내의 눈물에서, 아내의 살결에서 그 천박한 길고양이 새끼의 냄새가 묻어나는 것 같았다. 이안의 작업실, 그 곰팡내 나고 싸구려 테레빈유 냄새가 진동하는 침대 위에서 짐승처럼 뒹굴었을 아내의 몸. 그 더러운 몸으로 자신의 실크 가운을 부여잡고 구원을 구걸하던 그 가증스러운 눈물.도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안방에 딸린 욕실로 걸어 들어갔다.치이아아아-!세면대의 수도꼭지를 끝까지 틀었다. 가장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져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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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화 타인의 뮤즈, 그 잔혹한 페이지(2)

대신 다음번 서아가 이안의 연락을 받았을 때 자신이 어디까지 개입하지 않을지 기준을 적었다.‘말로만 위협할 때는 관찰. 물리적 위험이 확정되면 개입.’그 선을 적는 행위 자체가 정상적인 남편의 행동은 아니었다.도진은 알고 있었다.알면서도 원고를 저장했다.도진은 사건표 옆에 감정표를 하나 더 만들었다. 서아가 죄책감을 느낀 시점, 이안에게 공포를 느끼기 시작한 시점, 자신에게 의존하기 시작한 시점.사람의 감정을 표로 만드는 행위가 잔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멈추지 않았다.표는 놀라울 만큼 잘 맞았다. 감정도 사건처럼 원인과 결과를 가졌고, 다음 행동을 예측하게 했다.도진은 그 예측을 현실에서 확인하고 싶었다.도진은 마지막으로 관찰 파일과 원고 파일의 수정 시간을 비교했다. 서아가 무너진 날마다 원고 분량이 크게 늘어 있었다. 숫자로 확인하자 관계는 더 노골적이었다. 아내의 불행이 자신의 생산성이었다.그는 그 표를 지우지 않았다. 오히려 별도 폴더에 저장했다. 자신이 어디까지 왔는지 기록해 두는 것도 관찰의 일부라고 합리화했다.시간이 더 흐르자 도진은 화면에서 눈을 떼고 손목을 풀었다. 몇 시간 동안 썼는데도 지치지 않았다. 서아의 삶을 정리할수록 자신의 글은 더 정확해졌다. 그는 그 사실에 다시 한 번 전율했다.원고가 좋아지고 있다는 확신은 윤리적 의심을 매번 뒤로 밀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도진은 감정표 가장 아래에 자신의 이름도 적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이라고 썼고, 그 아래에는 ‘흥분’, ‘통제 욕구’를 적었다. 타인만 분석하는 척할 수 없을 만큼 자료가 쌓여 있었다.자신도 사건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표 안에서 처음 인정했다.그럼에도 파일명은 ‘관찰’ 그대로 두었다. 이름을 바꾸는 순간 책임까지 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도진은 화면을 닫지 않았다. 표 안에 자신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한동안 바라봤다. 관찰자라고 믿었던 사람이 이미 사건의 원인이 되어 있다는 문장이 떠올랐지만 적지 않았다. 아직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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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화 타인의 뮤즈, 그 잔혹한 페이지(3)

도진은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이제 소설은 중반부의 절정을 향해 치달아야 했다. 위기를 넘겼다고 안도하는 여주인공에게,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더 깊고 질척한 늪을 선사할 차례였다.『남편이 만들어준 안전한 요새. 하지만 아내는 몰랐다. 자신이 스토커라고 명명해 버린 그 침입자가, 오히려 자신을 더 지독한 심연으로 끌고 들어갈 사냥꾼으로 돌변하리라는 것을.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침입자의 애정은 이제 걷잡을 수 없는 집착과 폭력으로 변질될 것이다. 남편은 그저 관망할 것이다. 아내가 침입자의 작업실에 갇혀, 자신의 가장 흉측한 민낯을 마주하며 서서히 붕괴해 가는 그 찬란한 과정을.』타닥. 엔터키를 누르는 소리가 서재의 고요를 날카롭게 갈랐다.도진은 자신이 써 내려간 모니터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이 소설은 강도진 필생의 역작이 될 것이 분명했다. 지금까지 그가 썼던 어떤 스릴러 소설보다도 치밀하고, 어떤 순문학보다도 인간의 바닥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소설의 인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서 숨을 쉬며 자신들의 비극을 스스로 완성해 나가고 있으니까."서아야."도진이 모니터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그러나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날이 밝으면, 넌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완벽한 아내의 얼굴로 나를 위해 커피를 내리겠지. 밤새 악몽에 시달렸으면서도, 나를 보며 안도감에 찬 미소를 지을 거야. 내가 널 끝까지 지켜줬다고 믿을 테니까."도진의 입가에 차가운 비웃음이 얇게 걸렸다."하지만 어떡하지. 네가 스토커라고 쐐기를 박아버린 덕분에, 이제 넌 이안 그 새끼가 무슨 짓을 하든 나한테 경찰을 부르자는 소리도, 살려달라는 소리도 못 하게 돼버렸어."도진의 통찰력은 정확했다. 서아는 불륜을 덮기 위해 이안을 망상증 스토커로 몰았다. 도진이 이를 '믿어주었기에' 서아는 이 치밀한 연극을 유지해야만 한다. 만약 이안이 앞으로 서아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갤러리에 찾아와 난동을 부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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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화 숨 막히는 덫, 짐승의 목줄(1)

끼기긱-. 지하로 연결된 낡은 철제 계단을 밟을 때마다 기분 나쁜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서아는 코끝을 찌르는 곰팡내와 퀴퀴한 지하실 냄새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냄새는 그녀에게 일상의 지루함을 깨부수는 '일탈의 향기'였다. 최고급 디퓨저와 명품 향수 냄새에 질려 있던 그녀에게, 이안의 작업실에서 나는 싸구려 테레빈유와 땀 냄새는 야성적이고 자극적인 최음제와도 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계단을 내려가는 서아의 다리가 사시나무처럼 잘게 떨리고 있었다.[네 집에는 안 간다. 그 인간 집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해.] [대신 오늘 오후 2시. 망원동. 네가 와.] [안 오면 네가 그렇게 목숨 걸고 지키는 갤러리에 자료부터 보낸다. 사진이든 메시지든, 네 남편이 모르는 것부터 차례대로.]두 시간 전, 처음 보는 번호로 도착한 문자였다. 서아가 이안의 기존 번호를 막자마자 다른 번호가 나타났다. 그 문자를 확인한 순간 서아는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을 느꼈다.저택 침입이 있던 밤 이후, 이안은 한동안 한남동 쪽으로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도진이 현관 앞에서 내뱉었던 경고가 그에게도 공포로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서아는 그것을 안도라고 착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안은 물러난 것이 아니라 방법을 바꾸고 있었다. 저택으로 직접 들어오는 대신, 서아가 제 발로 자기 구역까지 오게 만들었다.그날 늦은 오전 서아가 약기운에서 겨우 깨어났을 때, 도진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미지근한 죽을 데워 주고, 약 봉투를 식탁 위에 가지런히 놓고, 오늘은 갤러리를 쉬어도 된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 평온함이 오히려 서아를 더 숨 막히게 했다. 도진 앞에서는 자신이 여전히 보호받는 아내여야 했고, 휴대전화 안에서는 이안이 그 가면을 한 장씩 뜯어내고 있었다.연락을 피하고 갤러리에 틀어박혀 어떻게든 상황을 무마하려 했지만, 메시지는 점점 구체적으로 변했다. 오래전에 주고받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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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화 숨 막히는 덫, 짐승의 목줄(2)

"이안아, 지금 문 열면 여기서 끝낼 수 있어."그녀는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뭘 끝내.""우리 둘 다 더 망가지기 전에."처음으로 ‘우리’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이안의 표정은 누그러지지 않았다.서아는 대화를 이어 가며 문 쪽으로 조금씩 위치를 옮겼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이안이 따라 움직일 때마다 각도를 계산했다.휴대전화는 여전히 손안에 있었다. 신호가 한 칸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두 칸이 됐다."남편한테 전화해도 돼."이안이 비웃듯 말했다.그 말에 서아의 손가락이 멈췄다.도진에게 전화하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시에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았다.그 망설임이 몇 초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위험 앞에서도 체면과 진실의 비용을 계산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서아는 결국 긴급 통화 화면을 닫지 않은 채 한 걸음 더 문 쪽으로 갔다.이번에는 체면보다 출구를 먼저 보기로 했다.늦었지만, 처음으로 순서가 바뀌었다.서아는 작업대 끝에 손을 짚고 이안과의 거리를 유지했다. 목소리는 낮추고 문장은 짧게 했다. 상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나가게 해 줘. 오늘은 여기까지야.""또 도망가게?""도망이 아니라 끝내는 거야."서아는 말하면서도 자신이 그 둘을 처음으로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이전에는 떠나면 패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살아서 나가는 것이 유일한 승리일 수 있었다.그녀는 휴대전화를 더 높이 들어, 아직 켜져 있는 긴급 통화 화면을 이안에게 똑똑히 보였다.이번에는 이안이 보더라도 숨기지 않았다."문 열어. 아니면 누를 거야."처음으로 협박이 아니라 실제 조건을 제시했다.서아의 손끝은 여전히 떨렸지만, 선택지는 하나 남아 있었다.이안은 서아의 휴대전화 화면을 보고 잠시 웃음을 거뒀다. 이번에는 이전과 달리 그녀가 실제로 누를 수 있다는 것을 느낀 듯했다. 서아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공포 속에서도 상대의 반응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의 힘을 돌려줬다. 그녀는 문 쪽으로 한 걸음 더 갔다.서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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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화 숨 막히는 덫, 짐승의 목줄(3)

"어딜 도망가. 넌 이제 여기서 한 발짝도 못 나가." "살려줘…… 제발, 내가 돈 줄게. 네가 원하는 거 다 줄 테니까 제발 나 좀 놔줘, 이안아……."서아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처절한 애원이었다.하지만 이안은 서아의 애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아의 몸을 훑어내렸다. 수백만 원짜리 에르메스 실크 블라우스, 단정한 H라인 스커트. 가장 단정하고 고상한 갤러리 관장의 껍데기."내가 원하는 거? 돈? 지랄하네."찌이익-!이안이 서아의 블라우스를 거칠게 양옆으로 찢어버렸다. 고급스러운 실크 원단이 단추가 뜯겨 나가며 허무하게 벌어지고, 하얀 속살과 레이스 속옷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꺄아아아악!! 안 돼!! 하지 마!!"서아가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지만, 이안의 무거운 체중이 그녀의 허리를 짓누르고 있어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왜 이래? 평소엔 이 침대 위에서 네가 먼저 옷 벗어 던졌잖아. 내 목덜미 핥으면서 짐승처럼 굴었던 년이, 이제 와서 사모님 행세야?" "흐윽, 흐아앙…… 제발, 나한테 왜 이래……." "네가 자초한 거잖아. 네가 날 망상증 스토커로 만들었으니까, 진짜 스토커가 어떤 건지 제대로 보여줘야지."이안의 입술이 서아의 하얀 목덜미를 사납게 물어뜯었다. 부드러운 애무 따위는 없었다. 철저한 폭력이자, 소유권 주장이었다. 서아의 피부에 붉은 멍자국이 얼룩처럼 번져갔다."소리 질러봐."이안이 서아의 귓가에 대고 악마처럼 속삭였다."살려달라고 소리치라고. 밖에서 다 듣게." "아, 아아……." "못 하지? 누가 들어오면 네가 여기 왜 왔는지부터 설명해야 할 테니까."경찰이라는 단어를 굳이 꺼내지 않아도 충분했다. 도움을 청하는 순간 이안의 범죄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서아 자신이 숨겨 온 관계와 거짓말도 함께 조사받게 된다. 그 사실이 목을 조르는 밧줄처럼 선명해졌다."하, 하하하하……."이안이 절망에 빠져 굳어버린 서아의 표정을 보며 광적으로 웃어댔다."얼굴 꼴 좋다. 이제야 네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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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화 기괴한 캔버스, 찢긴 여신(1)

싸늘한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흐윽…… 으흑……."지하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낡은 매트리스 위. 서아는 갈기갈기 찢겨나간 실크 블라우스 조각을 부여잡고, 몸을 둥글게 만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이안이라는 짐승에게 유린당한 육체는 곳곳이 붉은 멍과 잇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수치심과 공포, 그리고 아랫배를 찢는 듯한 통증이 동시에 밀려왔다.'어떡해. 나 이제 어떡해…….'서아의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이 지옥 같은 구렁텅이에 어떻게 제 발로 걸어 들어왔는지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도진에게 이안을 '스토커'라고 거짓말을 해버린 그 순간부터, 그녀는 제 목에 스스로 개목줄을 채운 꼴이 되었다. 이 곰팡내 나는 밀실에서 이안이 자신을 토막 내 죽인다 해도, 남편에게 살려달라고 소리칠 수조차 없는 빠져나갈 틈 없는 외통수.끼기긱-.그때, 작업실 한구석에서 날카로운 마찰음이 들려왔다. 서아가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이안은 상의를 벗어 던진 채, 사람 키만 한 거대한 100호짜리 캔버스를 이젤 위에 거칠게 세팅하고 있었다. 담배를 삐딱하게 물고 있는 그의 눈빛은 이미 이성을 잃은 광인의 그것이었다."일어나."이안이 팔레트 위에 두꺼운 유화 물감을 죽죽 짜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어?" "못 들어? 일어나라고, 이 씨발년아."이안의 입에서 튀어나온 쌍욕에 서아는 어깨를 크게 움츠렸다. 예전의 이안은 가난하고 거칠긴 했어도, 서아를 '뮤즈'라 부르며 맹목적인 애정을 바치던 남자였다. 하지만 강도진에게 철저하게 짓밟히고 조롱당한 이후, 그의 안에 남아 있던 알량한 애정은 지독한 증오와 가학성으로 완전히 변질되어 버렸다."나, 나 갈래…… 갤러리 가야 해. 미팅 있다고 했잖아…… 제발 옷 좀 줘……."서아가 울먹이며 바닥에 흩어진 스커트를 주섬주섬 주워들려던 찰나였다."누구 맘대로 가."쾅-!이안이 팔레트 나이프를 이젤에 집어 던지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는 서아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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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화 기괴한 캔버스, 찢긴 여신(2)

이안의 말에 서아가 겨우 눈을 떴다.예전에도 그는 그녀를 그렸다. 처음 작업실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서아는 몇 번이나 옷을 벗고 그의 시선 앞에 앉았다. 에는 그녀의 목선과 쇄골, 목덜미의 점처럼 가까운 사람이면 알아볼 만한 흔적까지 스며 있었다. 하지만 그 작품은 끝내 얼굴을 흐렸고, 관객이 추측할 여지를 남긴 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전시장에 걸렸다.이안은 새 캔버스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이번 건 전시용 아니야. 얼굴도 안 숨겨. 네가 아니라고 우길 구멍도 안 남겨. 내가 갖고 있을 거야."그 한마디가 이전의 모든 모델 경험과 지금을 갈랐다. 예전 그림은 욕망을 과시하기 위한 작품이었다. 지금 눈앞의 빈 캔버스는 공개하지 않기 위해 만드는 물건이었다. 언제든 공개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서아의 목에 걸기 위한 사적인 인질이었다.타닥, 타다닥. 적막한 작업실 안으로, 이안이 팔레트 위에서 물감을 섞는 소리가 낯설게 울려 퍼졌다.보통 누드화를 그릴 때 사용하는 부드러운 살구색이나 따뜻한 파스텔 톤이 아니었다. 이안이 짓이기고 있는 물감은 핏빛처럼 붉은 크림슨 레드, 썩어가는 살점 같은 칙칙한 올리브그린, 그리고 빛을 모두 빨아들이는 시커먼 제트 블랙이었다.그는 붓을 내려놓고, 끝이 날카로운 철제 팔레트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푹-. 나이프로 물감을 한 움큼 떠낸 이안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캔버스 위로 손을 휘둘렀다.쩌어억-! 쫘악!나이프가 캔버스를 긁어대는 소리가 마치 사람의 살가죽을 찢는 소리처럼 소름 끼치게 들려왔다. 이안은 미친 사람처럼 캔버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붓질 따위는 없었다. 그저 물감을 뭉텅이로 던지고, 긁어내고, 짓이기며 캔버스를 폭행하고 있었다."너 처음 내 작업실 왔을 때 기억나?"거친 나이프 소리 사이로, 이안의 비틀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그 비싼 수백만 원짜리 구두 신고, 바닥에 깔린 쓰레기 밟을까 봐 치맛자락 꾹 쥐고 벌벌 떨었지. 여기 공기만 마셔도 폐병 걸릴 것 같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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