بيت / 로맨스 / 미열주의 / Chapter 141 -الفصل 150

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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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화. 먼저 보낸 마음, 다시 마주친 거리 (4)

“내가 먼저 보낸 게?”“응.”“문도 잠갔다고 한 게?”“응.”“그게 그렇게 좋아?”태준은 바로 대답했다.“좋아.”너무 망설임이 없어서내가 오히려 당황했다.그는 아주 낮게 덧붙였다.“내가 묻기 전에 네가 말해준 거니까.”가슴이 아팠다.그 말이 너무 정확했다.나는 어젯밤그가 묻기 전에 말했다.도착했어.문도 잠갔어.그건 단순한 보고가 아니었다.안심시킨 것이다.내가 그를.그걸 나도 알고 있다.그래서 더 민망했다.나는 괜히 차갑게 말했다.“별거 아니잖아.”“응.”“그냥 문자야.”“응.”“문 잠갔다는 말이고.”“응.”태준은 전부 긍정했다.그러다 조용히 말했다.“근데 나한테는 별거 아니지 않았어.”나는 더 말하지 못했다.자료실은 좁았다.태준은 문가에 있었고,나는 선반 옆에 있었다.가까운 건 아니었다.그런데 공기가 너무 가까웠다.태준이 나를 보며 말했다.“나 어제 되게 오래 기다렸어.”“알아.”“응. 네가 알아줬다고 했지.”“…”“그 말도 좋았어.”나는 고개를 숙였다.진짜.이 사람은 오늘 왜 이렇게좋았던 걸 하나씩 꺼내놓는 걸까.태준은 조금 숨을 고르고 말했다.“너는 내가 기다린 걸 알아줬고.”“…”“나는 네가 먼저 보내준 걸 받았고.”그가 시선을 내렸다.“그게 나한텐 좀 컸어.”나는 손끝으로 샘플북 모서리를 문질렀다.낡은 종이가 손톱 밑에 걸렸다.아프지는 않았다.그런데 그 감각이 이상하게 선명했다.“그런 말 들으면 내가 부담스러워할 거라고 생각 안 해?”내가 물었다.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생각해.”“그런데 왜 해.”“숨기면 네가 모를까 봐.”“…”“근데 너무 많이 말하면 네가 도망갈까 봐.”그가 아주 작게 웃었다.웃음이라기보다자조에 가까웠다.“그래서 지금도 어디까지 말해야 되는지 모르겠어.”나는 그를 보았다.그 얼굴은정말 몰라서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다.정답을 찾는 사람.하지만 내가 답안지가 아니라는 걸조금씩 배워가는 사람.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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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화. 먼저 보낸 마음, 다시 마주친 거리 (5)

나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태준은 비켜섰다.나를 막지 않았다.길을 열어줬다.그게 또마음에 남았다.자료실을 나오며나는 그를 보지 않고 말했다.“회의실에 사람들 기다려.”“응.”“너 자료 찾으러 온 거라며.”태준이 아주 작게 웃었다.“맞다.”나는 그제야 그를 흘끗 봤다.“진짜 찾아.”“응.”그는 선반 쪽으로 몸을 돌렸다.나는 복도로 나왔다.문이 천천히 닫혔다.안쪽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진짜 자료를 찾는 척하는 건지,정말 찾는 건지 모르겠다.그런데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망했다.정말.조금씩자꾸 망하고 있다.⸻퇴근 전까지 우리는 더 마주치지 않았다.그게 다행인지 아쉬운지잘 모르겠다.태준은 다른 팀과 현장 일정 조율을 하러 갔고,우진은 외근 보고서를 마무리했다.나는 서브 카피 최종 파일을 전송하고메일함을 정리했다.평범한 오후였다.그런데 평범하지 않았다.자료실 문가에 서 있던 태준.지금 정도는 괜찮아.나도 배우는 중이야.그 말이 자꾸 머리에 남았다.내가 말했다.내가.한서윤이.강태준에게.도망가지 않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진짜 돌았나 보다.나는 노트북을 닫고손등으로 얼굴을 눌렀다.열이 있었다.피곤해서인지,민망해서인지,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모르겠다.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오늘은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아, 네. 고생하셨어요.”그는 코트를 들고 잠깐 멈췄다.“한서윤 씨.”“네.”“오늘은 표정이 조금 다릅니다.”나는 멈췄다.“안 좋은 쪽이에요?”“아니요.”그는 희미하게 웃었다.“좀 덜 도망치는 사람 같습니다.”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우진은 더 말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내일 뵙겠습니다.”그가 나가고 나서도나는 한참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덜 도망치는 사람.그 말이 이상하게 따뜻했다.그리고 조금 아팠다.내가 정말덜 도망치고 있나.아니면도망칠 힘이 줄어든 걸까.답은 모르겠다.다만 오늘은어제보다 조금 덜 숨고 있었다.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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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화. 먼저 보낸 마음, 다시 마주친 거리 (6)

가슴이 조용히 내려앉았다.나는 화면을 오래 봤다.핑계가 필요해서.자료실에 올 핑계.내게 말 걸 핑계.고맙다고 한 번 더 말할 핑계.그걸 이렇게 솔직하게 말한다.나는 열차가 도착하는 걸 보면서도움직이지 못했다.사람들이 문 앞에 줄을 섰다.문이 열렸다.나는 타지 않았다.그냥 한 대를 보냈다.별 이유는 없었다.아니.이유는 있었다.그 문장을 조금 더 보고 싶었다.핑계가 필요해서.나는 답장을 썼다.[그런 핑계는 좀 귀엽네.]보내고 나서심장이 떨어졌다.뭐라고?귀엽네?내가?강태준한테?나는 바로 삭제하고 싶었지만이미 늦었다.읽음.그리고 답이 오지 않았다.망했다.정말 망했다.나는 플랫폼 기둥 옆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휴대폰을 손에 쥐고화면만 봤다.태준은 답이 없었다.10초.20초.30초.나는 입술을 깨물었다.왜 답이 없지.기분 나빴나.아니면 너무 좋았나.둘 다 싫다.둘 다 무섭다.마침내 메시지가 왔다.[강태준]* 지금 전화하면 안 되지.나는 숨이 멈췄다.그 한 줄.그 안에너무 많은 게 들어 있었다.전화하고 싶다.하지만 참겠다.너한테 물어보겠다.지금은 괜찮은지 확인하겠다.나는 화면을 보다가천천히 답했다.[안 돼.]읽음.답은 바로 왔다.[강태준]* 응.나는 그 응을 보고입술을 눌렀다.이번엔 안 아팠다.왜냐면내가 하나 더 쓸 거였으니까.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입력했다.[근데 기분 나빠서 안 되는 건 아니야.]읽음.이번엔 답이 조금 늦었다.[강태준]* 알아.[강태준]* 네가 말해줘서 알았어.나는 그 문장을 보며눈을 감았다.네가 말해줘서 알았어.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말하면 배우는 사람.그리고 나는그에게 말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다음 열차가 들어온다는 안내가 나왔다.나는 휴대폰을 내려다보다가한 줄을 더 보냈다.[나 지하철 탈게.]읽음.[강태준]* 응.[강태준]* 조심히 가.나는 그 문장을 보다가이번엔 먼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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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화. 먼저 보낸 마음, 다시 마주친 거리 (7)

집 근처 역에 도착했을 때태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강태준]* 오늘은 먼저 안 물어볼게.나는 계단을 오르다가 멈췄다.무슨 말인지 바로 알았다.들어갔어?문은?밥은?그런 것들.나는 화면을 보며한참 생각했다.묻지 않는 태준.기다리는 태준.그리고 내가 먼저 말할 수 있게자리를 비워두는 태준.이게 좋다.조금.아주 많이.나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왔다.밤공기는 차가웠다.비는 오지 않았다.길은 조용했다.나는 천천히 집으로 걸었다.이번에는혼자라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누가 나를 따라오지 않았고,누가 나를 몰아붙이지 않았고,누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숨이 막히지 않았다.그게오늘의 이상한 변화였다.집 앞에 도착했을 때나는 휴대폰을 꺼냈다.태준에게서 추가 메시지는 없었다.정말 없었다.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신발을 벗고,가방을 내려놓고,도어락을 확인했다.잠겼다.그리고 이번엔망설이지 않았다.입력창을 열었다.[들어왔어.]잠깐 멈췄다가하나 더 썼다.[문도 잠갔고.]전송.읽음.이번에도 바로 읽었다.나는 웃었다.진짜 계속 보고 있었네.답은 조금 늦게 왔다.[강태준]* 안 물어봤는데 말해줬네.나는 휴대폰을 보며작게 웃었다.[그러게.]읽음.태준의 답이 왔다.[강태준]* 좋아해도 돼?나는 숨을 멈췄다.이 사람.이 타이밍에.나는 한참 화면을 봤다.좋아해도 돼?도착했다고 말해준 걸.문 잠갔다고 먼저 말해준 걸.내가 또 그에게작은 안심을 건넨 걸.나는 천천히 답했다.[조금만.]읽음.답이 오지 않았다.한참.정말 한참.나는 현관 앞에 선 채그 기다림을 들었다.이번엔 내가 기다렸다.그리고 메시지가 왔다.[강태준]* 오늘도 조금만 좋아할게.나는 화면을 보다가휴대폰을 가슴 쪽으로 당겼다.어쩐지 웃음이 나면서도눈가가 뜨거웠다.이건 고백도 아니고,약속도 아니고,다시 시작도 아니다.그런데분명 어제와는 다르다.나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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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화. 조금만, 허락된 마음 (1)

조금만.보내고 나서나는 한동안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좋아해도 돼?태준이 그렇게 물었고,나는 그렇게 답했다.조금만.진짜 웃긴 대답이었다.좋아하는 마음에 조금이 어디 있다고.좋아하면 좋아하는 거고,싫으면 싫은 거지.그 사이에 선을 그어놓고여기까지만 좋아하라고 말하는 게말이 되는 일인가.그런데도 나는 그렇게 보냈다.조금만.더 웃긴 건,그 말이 싫지 않았다는 거다.내가 허락한 것 같아서.완전히 밀어낸 게 아니라서.그리고 그걸 태준도 알 것 같아서.나는 화면을 오래 봤다.읽음.한참 답이 없었다.십 초.이십 초.삼십 초.나는 괜히 침대 끝에 앉아휴대폰을 양손으로 잡았다.왜 답이 없지.당황했나.기분이 이상한가.아니면 너무 좋아서 말을 고르는 중인가.거기까지 생각하고나는 이마를 손등으로 눌렀다.진짜 미쳤나 보다.내가 지금강태준이 좋아하길 바라고 있는 건가.그때 메시지가 왔다.[강태준]* 오늘도 조금만 좋아할게.나는 숨을 멈췄다.오늘도.조금만.좋아할게.그 문장을 읽는데이상하게 가슴 한쪽이 뜨거워졌다.그는 장난처럼 말하지 않았다.나를 놀리려고 한 말도 아니었다.그냥,정말 그렇게 해보겠다는 사람처럼 보냈다.오늘도 조금만 좋아할게.말은 다정한데왜 이렇게 아프지.나는 답장을 쓰지 못했다.입력창을 열었다가 닫았다.괜찮다고 써볼까.알겠다고 할까.오늘은 여기까지라고 할까.아니면 그냥,나도 모르겠다고 할까.아무 말도 맞지 않았다.그래서 보내지 않았다.휴대폰을 뒤집어놓았다.그런데 화면을 뒤집어도문장은 계속 남았다.오늘도 조금만 좋아할게.나는 불을 끄고 누웠다.방 안은 어두웠고,창밖으로 차 지나가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았다.이상하게 몸이 가벼우면서도 무거웠다.무슨 일이 크게 벌어진 것도 아니었다.손을 잡은 것도 아니고,안긴 것도 아니고,다시 시작하자고 말한 것도 아니다.그런데 오늘 나는태준에게 아주 작은 문 하나를 열어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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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화. 조금만, 허락된 마음 (2)

전시장에 도착했을 때,안쪽은 아직 반쯤 어두웠다.정식 조명이 다 켜지지 않아공간 전체가 조금 푸르게 가라앉아 있었다.설치팀 사람들이 패널 위치를 맞추고 있었고,한쪽 벽에는 메인 카피가 걸려 있었다.사라진 줄 알았던 온도나는 그 앞에서 잠깐 멈췄다.그 아래에는 내가 쓴 서브 카피가 출력물로 붙어 있었다.오래 머문 감각은, 다시 돌아온다.내 문장인데볼 때마다 남의 비밀을 훔쳐보는 기분이 들었다.사라진 줄 알았던 온도.오래 머문 감각.다시 돌아온다.나는 정말일을 하고 있는 걸까.아니면 자꾸 내 마음을 벽에 붙이고 있는 걸까.그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일찍 왔네.”태준이었다.나는 바로 돌아보지 못했다.먼저 심장이 반응했다.정말 짜증 난다.목소리 하나에 이렇게 되는 게.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태준은 검은 셔츠 위에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손에는 도면이 들려 있었고,머리는 평소보다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밤에 잠을 잘 못 잤나.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그러고는 바로 지웠다.내가 왜 그걸 신경 쓰는데.“너도 일찍 왔네.”내 목소리는 다행히 멀쩡했다.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응.”나는 그를 봤다.“또 응.”태준이 아주 작게 웃었다.“다른 말 생각 중이었어.”“뭔데.”“안녕.”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를 봤다.“그걸 생각해야 나와?”“요즘은 그래.”“진짜 이상해졌네.”“알아.”그 대답이 너무 태준 같아서나는 웃을 뻔했다.웃으면 안 될 것 같아서벽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웃으면 너무 티 날 것 같았다.태준은 내 옆으로 다가오지 않았다.조금 떨어진 자리에 섰다.딱 한 사람 정도 들어갈 수 있는 거리.그 거리가 보였다.너무 또렷하게.예전의 태준은 이런 거리를 몰랐다.가까워지고 싶으면 가까워졌고,내가 물러나면 따라왔다.그게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그런데 지금은다가오고 싶은 사람처럼 서 있으면서도멈춰 있었다.나는 그게 고맙기도 하고,이상하게 서운하기도 했다.정말 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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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화. 조금만, 허락된 마음 (3)

현장 확인은 생각보다 길어졌다.벽면 조명 밝기,패널 높이,동선 안내 사인,관람객이 처음 마주하는 시야.확인해야 할 게 많았다.나는 설치팀과 이야기를 나눴고,태준은 조금 떨어져서 도면을 확인했다.가끔 시선이 마주쳤다.그럴 때마다 태준은 먼저 뭔가 말하려다가 멈췄다.나는 그걸 봤다.너무 잘 보였다.말하고 싶은데 참는 사람.다가오고 싶은데 멈추는 사람.그걸 보니 속이 이상했다.편해야 하는데,편하지만은 않았다.왜냐하면 태준이 참고 있다는 걸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게 나를 안심시키면서도조금 아프게 했다.내가 저 사람을 저렇게 만들었나.아니다.그건 아니다.우리가 그렇게 만든 거다.그와 나,둘 다.나는 괜히 자료를 고쳐 잡았다.그때 태준이 가까이 다가왔다.아까보다 조금 가까웠다.그래도 너무 가깝지는 않았다.“이쪽 조명, 너무 세지 않아?”그가 물었다.나는 벽을 봤다.내가 쓴 서브 카피 위로 빛이 조금 날카롭게 떨어지고 있었다.“세네.”“낮출까?”“응. 이 문장은 너무 밝으면 이상해.”“왜.”“너무 설명하는 것 같아 보여.”태준은 내 말을 듣고 벽을 봤다.“설명하는 것.”“응.”“그럼 어느 쪽이 나아?”나는 잠깐 생각했다.“조금 덜 보이게.”“…”“근데 안 보이면 안 되고.”태준이 아주 작게 웃었다.“어렵네.”“원래 그래.”“문장이?”나는 그를 봤다.“사람이.”말하고 나서또 후회가 왔다.왜 자꾸 이런 식으로 말이 나가는지 모르겠다.업무 얘기를 하다가갑자기 사람 얘기처럼 들리는 말.정확히는,태준과 나 얘기처럼 들리는 말.태준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냥 나를 보았다.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으려고 했지만결국 먼저 벽을 봤다.“조명 낮추자.”“응.”그가 설치팀에 손짓했다.조명이 조금 어두워졌다.문장은 훨씬 나아졌다.사라진 줄 알았던 온도.오래 머문 감각은, 다시 돌아온다.두 문장이 벽 위에서 조금 숨을 쉬는 것처럼 보였다.나는 낮게 말했다.“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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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화. 조금만, 허락된 마음 (4)

태준이 조용히 말했다.“어려운 거 알아.”그 말에 괜히 목이 잠겼다.예전의 태준은내가 어렵다는 걸 싫어했다.아니,싫어했다기보다 견디지 못했다.내가 복잡해질수록그는 더 단순한 답을 찾으려고 했다.잡으면 된다.말하면 된다.기다리면 된다.그런 식으로.그런데 지금의 태준은내가 어렵다는 걸 그냥 인정하고 있었다.그게 마음에 걸렸다.나는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그럼 안 피곤해?”“피곤해.”예상 못 한 대답이었다.나는 고개를 들었다.태준은 나를 보고 있었다.“피곤하다고?”“응.”“근데 왜 해.”태준은 잠깐 생각했다.“안 하면 네가 더 피곤할 것 같아서.”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그 말이 너무 조용하게 들어왔다.안 하면 네가 더 피곤할 것 같아서.이 사람은 지금내가 지칠까 봐 자기가 피곤한 쪽을 고르고 있다.그게 다정해서,짜증났다.너무 늦게 다정해서.너무 늦게 배워서.그리고 지금이라도 배워서.나는 시선을 내렸다.“그런 말 하면 내가 뭐라고 해야 돼.”“몰라.”“너도 모른다는 말 자주 하네.”“요즘 진짜 몰라서.”나는 작게 웃었다.웃음이 났다.화가 나야 하는데웃음이 먼저 났다.“예전엔 다 아는 사람처럼 굴더니.”“그러게.”“진짜 짜증 났어.”“알아.”“그때는 몰랐잖아.”“응.”“지금 안다고 하면 더 짜증 나.”태준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그러고는 말했다.“그럼 지금은 안다고 말 안 할게.”나는 그를 봤다.“그건 또 왜 좀 괜찮냐.”말하고 나서 내가 먼저 당황했다.태준도 멈췄다.나는 바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일하자.”태준이 대답했다.“응.”나는 이번엔 뭐라고 하지 않았다.그 응이 조금 웃겼다.그리고 조금 편했다.⸻파일 수정이 끝날 때쯤,우진이 현장에 도착했다.그는 들어오자마자 벽면 카피를 확인했고,수정된 조명과 간격을 봤다.“좋네요.”우진이 말했다.“처음보다 훨씬 낫습니다.”나는 안도했다.“너무 어둡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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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화. 조금만, 허락된 마음 (5)

오후 확인까지 끝나고,나는 전시장 밖 복도로 나왔다.오래 서 있었더니 다리가 조금 뻐근했다.자판기 앞에서 물을 하나 뽑아뚜껑을 열었다.차가운 물이 목으로 넘어가자그제야 숨이 좀 트였다.현장 안쪽에서는 아직 사람들 목소리가 들렸다.나는 잠깐 벽에 등을 기댔다.오늘 하루가 길었다.어제의 조금만이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그때 복도 끝에서 태준이 나왔다.나는 바로 몸을 세웠다.태준도 나를 보고 멈췄다.우리 사이에는 꽤 거리가 있었다.그는 다가오지 않았다.“쉬는 중이야?”그가 물었다.“응.”“물 더 필요해?”“아니.”“응.”또 응.이번엔 내가 먼저 웃었다.태준이 그걸 보고 아주 작게 웃었다.잠깐의 침묵.어색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그런데 도망치고 싶을 만큼은 아니었다.태준이 말했다.“오늘 괜찮았어?”나는 물병을 손에 쥔 채 그를 봤다.“뭐가.”“나.”그 한 글자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나.오늘의 태준.조심하는 태준.반 걸음 떨어져 있던 태준.모른다고 말하던 태준.피곤해도 하겠다고 말하던 태준.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태준은 재촉하지 않았다.나는 물병을 내려다보다가 말했다.“조금.”태준의 눈이 흔들렸다.나는 괜히 덧붙였다.“괜찮았어.”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래서 내가 더 말했다.“전부 괜찮았다는 건 아니고.”“응.”“아직 이상한 것도 있고.”“응.”“근데 오늘은.”나는 목이 조금 말랐다.“도망치고 싶진 않았어.”말하고 나서심장이 늦게 뛰었다.이건 너무 많이 말한 것 같았다.그런데 이상하게다시 주워 담고 싶지는 않았다.태준은 나를 오래 봤다.그 얼굴을 보니그가 지금 얼마나 많은 말을 참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좋다.고맙다.보고 싶었다.그런 말들이 입술까지 왔다가다시 들어가는 게 보이는 것 같았다.태준은 결국 아주 낮게 말했다.“그럼 됐어.”나는 그 말을 듣고 눈을 깜빡였다.정말,그게 다였다.그럼 됐어.묻지도 않고,더 끌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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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화. 조금만, 허락된 마음 (6)

퇴근 전,벽면 카피 최종 확인까지 끝났다.서브 카피는 그대로 확정됐다.오래 머문 감각은, 다시 돌아온다.나는 그 문장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봤다.처음 쓸 때는 이렇게까지 나를 괴롭힐 줄 몰랐다.그냥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했다.현장 분위기와 맞고,메인 카피를 받쳐주고,너무 직접적이지 않아서 괜찮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지금은 안다.나는 자꾸 내 마음을 피해 쓰다가결국 내 마음이 들어간 문장을 쓰고 있었다.오래 머문 감각.다시 돌아온다.정말 싫다.정말.그런데 이제는 그 문장을 지우고 싶지는 않았다.팀장님은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우진은 최종 파일명만 다시 확인하자고 했다.태준은 조금 뒤에서 벽을 보고 있었다.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정확히는 모른다.하지만 아마,나와 비슷한 문장 안에 있을 것 같았다.나는 그게 조금 무서웠다.그리고 조금 덜 외로웠다.⸻건물 밖으로 나오자하늘이 흐렸다.비가 올 것 같았지만아직 내리지는 않았다.퇴근 시간이라 길에는 사람이 많았다.우진은 먼저 택시를 잡아야 한다며 인사를 했고,팀장님은 다른 업체 담당자와 통화를 하며 먼저 걸어갔다.순식간에 입구 앞에는나와 태준만 남았다.또.이런 식으로 둘만 남는 순간이요즘 너무 자주 생긴다.정말 우연인지,내가 의식해서 그렇게 느끼는 건지 모르겠다.태준은 차 키를 손에 들고 있었다.나는 지하철역 방향을 한 번 봤다.그가 태워다줄까 물을까 봐먼저 말했다.“나 지하철 타고 가.”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응.”“안 물어보네.”“오늘은 안 물어보려고.”“왜.”태준은 잠깐 나를 보았다.“네가 먼저 말할 수 있게.”나는 말문이 막혔다.아.또.이런 식이다.무리하게 다가오지 않고,그 자리에 서 있다가,내가 먼저 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게 싫어야 하는데싫지가 않다.나는 시선을 피했다.“그런 거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라니까.”“해보는 중이야.”“그건 또 괜찮네.”“다행이다.”태준이 낮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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