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41 - Chapitre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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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동하는 “네, 수고하십시오!”하고 씩씩하게 인사하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서린은 말없이 동하를 바라보았다.평소에는 허둥대는 줄만 알았는데,일 앞에서는 누구보다 정확했다.그녀의 입가에 아주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그 모습을 보던 김다은 대리가 서린에게 바짝 다가와 속삭였다.“와… 대박. 과장님 보셨어요?”“……네.”“동하 씨, 그냥 사람 좋은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능력자네요. 솔직히 방금 좀 멋있지 않았어요?”김 대리의 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올 기세였다.그녀는 심재호 때문에 기분이 상했을 서린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과장님, 저 인간 저러는 거 하루 이틀 아니니까 너무 맘 쓰지 마세요. 그래도 동하 씨 덕분에 한 방 먹었네요. 쌤통이다.”김 대리가 믹스커피 한 잔을 슬쩍 밀어주었다.서린은 멀어지는 동하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사람을 알 수 없었다.그건 동하도, 자신도 마찬가지였다.“고마워요, 김 대리님.”서린은 김 대리에게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심재호가 투덜거리며 억지로 정산 자료를 입력하는 소리가 들렸다.그렇게 시간이 오후가 되고, 퇴근 시간을 몇 분 앞두고 있을 때였다.서린은 가방 깊숙한 곳에서 작은 USB 메모리를 꺼냈다.어제 엄마에게 받은 쇼핑백 바닥 깔개 아래에 숨겨져 있던 것이었다.가장 안전하고, 은밀하게 전해준 선물.서린은 USB를 컴퓨터에 꽂았다.폴더가 열렸고, 암호 입력창이 떴다.숫자를 입력했다.잠금이 풀리고, 두 개의 파일이 나타났다.[강민재_비공개_일정표.xlsx][미래희망재단_내부_결산서.pdf]서린은 파일을 열어보았다.비공개 일정표에는 강민재가 공식 일정 외에 만난 사람들의 이니셜과 시간, 장소가 빼곡했다.‘우리 엄마, 옛날엔 그리 곱기만 하더니 이젠 능력자가 다 되셨어.’서린은 USB를 뽑아 주머니에 넣고 일어나 수혁에게로 향했다.한 실장에게 눈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대표실로 들어간 서린이 수혁에게 USB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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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다음 날 아침. 자리에 앉으려던 서린의 손이 멈췄다.회색빛 파티션, 흰색 서류 더미, 검은색 모니터.무채색으로 점철된 그녀의 책상 위에, 지독하게 이질적인 색깔 몇 개가 놓여 있었다.투명한 드링크 병에 꽂힌, 이름 모를 분홍색 들꽃 몇 송이.서린은 미간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범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저 멀리 탕비실 쪽에서 박동하가 빗자루를 든 채 쭈뼛거리고 있었다.그는 서린과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잘 익은 토마토처럼 붉어지더니 황급히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도망치듯 사라졌다.“하….”서린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버리자니 너무 매정하고, 두자니 묘하게 거슬렸다.꽃잎에 맺힌 물방울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그 생명력이, 죽은 듯이 살아가는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았다.서린은 결국 꽃병을 책상 가장 구석, 모니터 뒤편으로 슬쩍 밀어두었다.손끝에 잠깐 닿았던 꽃잎의 감촉이 이상하게 남아 있었다.부드럽고, 가볍고, 아무 일도 모른다는 듯한 온도.그런 것들이 괜히 마음을 어지럽혔다.쓸데없는 감정까지 흔들어 놓는 게,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꽃이네요.”옆자리의 김다은 대리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동하 씨가 아침 일찍 와서 화단 뒤지더라고요. 예쁜 것만 골라왔네.”“…….”“좋으시겠어요, 과장님은.”김 대리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평소처럼 웃고 있었지만, 목소리에는 서운함이 묻어났다.서린은 대답하지 않고 컴퓨터 전원을 켰다.이 꽃들이, 생각보다 많은 파장을 일으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사무실의 공기가 한 박자 더 조여드는 순간이었다.대표실 문이 열리고 차수혁이 나왔다.그는 습관처럼 사무실을 훑어보다가, 서린의 자리에서 시선이 멈췄다.삭막한 사무실 한복판.서린의 책상 구석에서 흔들리는 분홍색 꽃 몇 송이.누가 봐도 박동하의 짓이었다.수혁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언제는 도시락이더니, 이번엔 꽃인가.여기가 무슨, 연애 버라이어티 촬영장인 줄 아나.무엇보다 서린이 그걸 버리지 않았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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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이번에는 보고서뿐만 아니라, 본격적인 작전 계획이 담긴 서류도 함께였다.“들어와.”수혁은 아까의 짜증은 잊은 듯,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서린이 들어오자마자 그는 인터폰을 눌러 밖을 향해 지시했다.“한 실장. 지금부터 아무도 들이지 마. 중요 회의니까.”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문을 잠갔다.철컥.밀실이 되었다.“앉아. D사 대포 통장 건,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수혁이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서린은 맞은편에 앉아 자료를 펼쳤다.“변호사님 검토 끝났습니다. 금융당국에 ‘보이스피싱 의심 계좌’로 제보하는 방식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라고 합니다.”“타이밍은?”“다음 주 월요일입니다. 월말 정산이 몰리는 시점이라, 그때 계좌가 동결되면 놈들은 패닉에 빠질 겁니다.”두 사람의 대화는 빨랐고, 막힘이 없었다.하지만 문밖의 분위기는 달랐다.한지우 실장이 굳게 닫힌 문을 노려보고 있었다.왜 둘이서만 회의를 하는 거지.문까지 걸어 잠그고.내가 알면 안되는 일인 거야?예전 같았으면 자신이 배석해서 회의록을 작성했을 자리였다.수혁의 가장 가까운 곳은 언제나 자신의 자리였다.문 안쪽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수혁의 낮은 웃음소리와 서린의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대체 안에서 무슨 작당을 하는 거야.’그녀가 지키고 있는 것은 문이 아니라,수혁의 곁에서 밀려나고 있는 자신의 자리였다.업무가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자리.퇴근 무렵이 되어서 서린이 짐을 챙겨서 옥상으로 올라갔다.동하가 그곳에서 화단 물을 주고 있다는 김 대리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서린의 손에는 아침에 받은 꽃병이 들려 있었다.“동하 씨.”물을 주던 동하가 화들짝 놀라 돌아보았다.서린을 보자마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어? 과장님! 퇴근 안 하셨어요?”“동하 씨한테 할 말이 있어서요.”서린은 동하에게 다가가 꽃병을 내밀었다.“이거, 돌려드릴게요.”“네? 아… 마음에 안 드세요? 그냥 길 가다가 예뻐서….”동하가 시무룩해져서 말꼬리를 흐렸다.“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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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차윤호는 비서실장 김상호를 불렀다.경리과장 하나 정리하라는 말조차 거부한 이후, 차수혁은 더 이상 '통제 가능한 변수'가 아니었다.이제는 좀 더 신중하게 손을 써야 하는 상대가 되어 버렸다.“말해봐.”차윤호가 낮게 말했다.소파 맞은편에 앉아 있던 비서실장 김상호가 고개를 숙였다.“차 대표를 정면으로 치는 건 부담이 큽니다. 명분도 없고, 여론도 안 좋습니다. 무엇보다… 한도오토를 건드리면 강민재 쪽에서 바로 반응이 올 수 있습니다. 아직은 써먹을 가치가 남아 있지 않습니까.”“그래서?”김상호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가장 고전적이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다. 여자입니다.”차윤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김상호는 이미 준비된 이름을 꺼냈다.“회장님, 기억하십니까? 유통그룹 최 회장님 막내따님.”차윤호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멈췄다.“최유나?”“네. 학창 시절부터 차 대표를 병적으로 따라다녔습니다. 유학을 핑계로 떨어져 있었지만… 지난주 귀국했습니다.”김상호는 태블릿을 내밀었다.화면에는 화려한 파티 사진과 기사들이 떠 있었다.“차 대표가 한도오토링크에 있다는 소식 듣고, 집안이 아주 소란스러웠다고 합니다. 최 회장 쪽에서도 은근히 신호를 보내왔고요.”차윤호는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갑자기 무릎을 탁 쳤다.“아, 그 애.”기억났다.단순하고, 화려하며, 갖고 싶은 건 반드시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여자. 거절이라는 개념을 배운 적 없는 아이.***어둠이 내려앉은 도심 한복판, 바(Bar)는 생각보다 소란스러웠다.유리잔이 부딪히는 소리, 웃음소리, 흥에 취한 목소리들이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수혁은 바 카운터가 아닌 안쪽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정민우와 몇몇 남자들이 둘러앉아 있었고, 테이블 중앙에는 ‘결혼을 앞둔 주인공’이 들떠 있었다.“야, 수혁아. 너 진짜 한 잔도 안 마실 거야?”“운전해야지.”“에이, 기사 불러.”“싫어.”수혁은 잔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술을 즐기지 않는 것도 이유였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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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라디오도, 내비게이션 음성도 끄자 차 안에는 엔진 소리와 바람이 스치는 소리만 남았다. 도시의 불빛이 유리창을 스쳐 지나갔다.수혁은 말없이 운전했고, 한적한 전망대에 멈췄다.수혁은 시동을 끄고 내리지도 않은 채 창밖을 바라봤다.강 위로 펼쳐진 야경이 유리처럼 반짝였다.“여기 자주 오세요?”서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가끔.”짧은 대답.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침묵은 이전과 달랐다.무겁지 않았고, 피하지도 않았다.수혁은 창문을 조금 내렸다.밤공기가 차 안으로 스며들었다.“부모님 얘기… 다들 알고 있지.”그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사고였고, 한 번에 가셨고. 그래서 더 할 말도 없고.”서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묻지 않았고, 끼어들지도 않았다.수혁은 그게 마음에 들었다.“그때.”수혁은 잠시 말을 멈췄다.“아무도 안 남은 줄 알았어. 친척도, 회사도, 친구도. 다들 바쁘더라고.”그는 헛웃음을 흘렸다.“민우만 남았지. 걔가 없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야.”서린의 손이 무릎 위에서 살짝 움찔했다.‘아아 그 변호사님...’그녀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대신 숨을 고르고, 조용히 그의 말을 받아내고 있었다.“그래서.”수혁이 고개를 돌려 서린을 봤다.“공 과장도 너무 혼자서만 짊어지지 마.”서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나눠. 누군가랑.”수혁의 시선이 그대로 서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그게… 나였으면 좋겠고.”서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심장이 한 번 크게 뛰고,그 소리만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처음으로 답을 찾지 못했다.“부하직원이 일 잘하려면 어쩔 수 없이 챙겨야 하니까.”수혁은 시선을 피하며 변명처럼 말했다.“대표의 의무야.”서린의 입가에 아주 미세한 웃음이 스쳤다.“대표님답지 않은 변명이네요.”“알아.”수혁이 낮게 말했다.“근데… 오늘은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해.”야경이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비췄다.서린은 창밖을 다시 바라보며 말했다.“저는 비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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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한남동의 높은 담장 안쪽에 자리 잡은 차윤호 회장의 저택은 도심의 소음과 완전히 분리된, 하나의 요새처럼 고요했다.다이닝 룸의 긴 식탁 위에는 촛불이 은은하게 타오르고 있었고, 고급 식기들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간헐적으로 공기를 흔들었다.이미 모든 자리는 준비돼 있었다.오늘의 손님과, 이 자리가 의미하는 바를 숨길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어서 오너라, 유나야. 이게 얼마 만이니.”차윤호의 아내, 박문희 여사가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최유나는 화려한 원피스 차림으로 우아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인사였다.“사모님, 더 젊어지셨어요. 소영이 언니랑 자매라고 해도 믿겠어요.”“어머, 얘도 참. 말은 여전하구나.”박문희는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유나를 자리에 앉혔다.차소영 역시 익숙한 얼굴이라는 듯 자연스럽게 와인을 따라주었다. 세 사람 사이에는 오래전부터 짜인 동선 같은 편안함이 흘렀다.식사가 시작되자, 차윤호는 와인 잔을 천천히 굴리며 유나를 바라보았다.시선에는 반가움보다 계산이 먼저 깔려 있었다.“그래, 한국에는 이제 완전히 들어온 거냐?”“네, 회장님. 아버지가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하셔서요. 이제 경영 수업도 좀 받아야죠.”유나는 그렇게 말하다가, 잠시 숨을 고른 뒤 웃음을 얹었다.“근데요, 사실… 저는 경영 말고도 더 관심 있는 게 있어서요.”그 말에 차윤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였다.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차소영이 자연스럽게 말을 받았다.“아빠, 유나 알잖아요. 예전부터 수혁 오빠만 따라다녔던 거. 이번에 귀국한 것도, 사실 오빠 때문이잖아요.”“언니! 그걸 여기서 말하면 어떡해요.”유나는 부끄러운 척 고개를 숙였지만, 입가에는 숨길 생각조차 없는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오래전부터 준비된 이야기였다.차윤호는 낮게 웃음을 흘렸다.“허허, 그래? 수혁이 그놈… 부모 잃고 혼자 버티는 게 늘 마음에 걸렸는데 말이다.”그의 말투는 다정했지만, 계산은 분명했다.“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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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유나는 기다렸다는 듯 수혁의 팔에 손을 얹었다.“오빠, 회장님이 이렇게 밀어주시는데 우리 잘해봐요. 나, 내조 잘할 자신 있어. 오빠 힘들게 안 할게.”그 손이 닿는 순간, 수혁은 반사적으로 팔을 뿌리쳤다.“저는 팔려 갈 생각 없습니다.”“뭐?”“결혼 생각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사람 불러놓고 통보하지 마십시오. 불쾌합니다.”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문희와 차소영이 놀라 굳어 있었고, 차윤호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이놈이, 어디서 어른 앞에서!”“먼저 가보겠습니다.”수혁은 냉정하게 말했다.“다신 이런 일로 부르지 마십시오.”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식당을 나섰다.등 뒤로 차윤호의 고함이 들려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한편, 자리에 남은 최유나는 당황하기는커녕, 나가는 수혁의 뒷모습을 보며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튕기기는.”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오빠, 곧 다시 보게 될 거야.”그 길로 출근한 수혁은 결재 서류를 책상 위에 툭툭 던지며 짜증을 숨기지 않았다.사소한 보고서 오타 하나에도 날이 섰다.“다시 해 와. 이게 보고서야? 초등학생 일기장이야?”“이런 것도 내가 일일이 챙겨야하나? 제대로 안 할거야!”필요한 결재조차 대표실에 들어가는 족족 퇴짜를 맞았다.사무실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직원들은 숨을 죽였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공 과장과 나란히 서서 웃던 대표의 얼굴이 아니었다.박동하도, 김다은도 눈치를 보며 서린에게 조심스레 물었다.“과장님… 대표님 오늘 왜 저러세요? 무슨 일 있으신가요?”“글쎄요. 저도 잘….”서린은 더 말하지 않았다.다만 대표실 블라인드 너머로 보이는 수혁의 굳게 굳은 어깨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아침에 본사 쪽에서 호출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차윤호 회장과 또 한 번 부딪혔을 것이다.‘힘들겠다.’서린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탕비실에서 이온음료를 하나 꺼내고, 가방을 열어 두통약을 함께 챙겼다.그리고 한지우 실장에게 건넸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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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강민재.”그 이름 세 글자는 주문처럼 떨어졌다.선을 긋고 돌아서던 서린의 발을, 단번에 묶어버리는 강력한 주문.서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시선이 수혁에게 고정되었다.수혁은 유나를 보지도 않은 채, 오직 서린만을 보고 있었다.“뭐라고… 하셨습니까.”수혁이 서린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강민재에 대해 할 말이 있어. 지금 당장.”수혁은 서린의 손목을 잡았다.“오빠! 지금 뭐 하는 거야!”유나가 곧바로 수혁을 쫓아와서 그의 팔을 다시 잡으려 했다.수혁은 그 손을 떼어내며 차갑게 내려다봤다.“비켜. 중요한 업무 중이야.”“업무? 지금 퇴근 시간 지났잖아. 그리고 이 여자가 뭔데 오빠가….”“내 직원이야.”수혁이 잘라 말했다.“그리고... 내가 책임지는 사람이고.”그 말에 유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고, 서린의 눈동자도 미세하게 흔들렸다.'책임지는 사람.'그 말이 공기 중에 잠시 남았다.수혁도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그는 시선을 피한 채 조수석 문을 열었다. “가자.”수혁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서린을 이끌고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서린은 잠시 망설였지만, ‘강민재’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거절할 수 없었다.차에 오르자마자 수혁은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부아앙!차는 거칠게 튀어나가듯 주차장을 빠져나갔다.백미러 너머로, 분을 이기지 못한 유나가 핸드백을 집어 던지는 모습이 스쳤다.차는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강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차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서린은 창밖만 바라보다가, 차가 속도를 줄이자 입을 열었다.“강민재에 대해 할 말이 뭡니까.”차분했지만, 끝이 서늘한 목소리였다.“자금줄을 바꿨습니까, 아니면….”“임기응변이었어.”수혁이 툭 내뱉었다.“뭐라고요?”서린이 고개를 홱 돌렸다.“너를 잡아야겠어서 핑계를 댄거지.”그대로 보내면 안 될 것 같았다.수혁은 자신이 왜 그랬는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그저 그런 생각이 스쳤고, 그대로 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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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혼자 보내는 생일의 쓸쓸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지난번 도시락을 거절하며 상처 줬던 기억도 마음에 걸렸다.“……그래요. 밥 먹으러 가요.”“정말요? 감사합니다!”동하가 뛸 듯이 기뻐했다.그때, 옆자리에서 듣고 있던 김다은 대리가 불쑥 끼어들었다.“어머, 동하 씨 생일이야? 왜 말 안 했어! 나도 갈래. 생일파티 해줄게.”김 대리는 눈치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합류를 제안했다.서린과 단둘이 있는 것을 부담스러워할까 봐 배려한 것이었다.서린은 김 대리에게 고마운 눈빛을 보냈다.“그럼 셋이 가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회사 로비를 지나며 서린이 걸음을 늦췄다. 문 쪽으로 향하던 박동하를 불러 세웠다.“동하 씨.”“네?”“뭐 좋아해요? 오늘은 동하 씨 생일이니까, 동하 씨 좋아하는 걸로 먹어요.”동하는 잠시 멈칫하더니, 얼굴이 환해졌다.“아… 그럼, 초밥이요. 괜찮으시면요.”“좋아요.”그렇게 세 사람은 회사 근처의 조용한 초밥집으로 향했다.나무결이 살아 있는 테이블 위로 정갈한 초밥 세트가 놓이자, 동하의 표정이 한층 더 밝아졌다.“와… 과장님. 진짜 잘 먹겠습니다. 저 초밥 제일 좋아하거든요.”“많이 먹어요. 생일이니까.”서린은 말없이 동하의 접시에 광어 초밥 하나를 더 올려주었다.동하는 감격한 얼굴로 넙죽 받아 먹었다.김다은 대리는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이야, 오늘 동하 씨 제대로 호강하네.”식사를 마친 뒤, 세 사람은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늦은 시간대라 매장은 한산했고, 따뜻한 커피 향이 은근히 퍼져 있었다.긴장이 풀리자 김 대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요즘 다들 퇴근하면 뭐 해요?”“저는 운동이요.”동하가 바로 대답했다.“헬스도 하고, 가끔 러닝도 하고요. 안 그러면 몸이 처져서요.”“역시 건실하다.”김 대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린을 돌아봤다.“과장님은요?”서린은 대답하려다 잠시 멈췄다.퇴근 후의 자신을 떠올려봤다.집에 가면 씻고, 간단히 먹고, 노트북을 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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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대표실 창가에 서 있던 수혁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지하로 내려가는 램프 앞, 택시 한 대가 멈춰 섰다.잠시 뒤, 뒷문이 열리고 익숙한 실루엣이 내렸다.서린이었다.수혁은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그러다, 책상 위에 켜 두었던 노트북 화면을 툭 덮었다.정리하지 않은 서류도, 미뤄 둔 결재도 그대로 둔 채 재킷을 집어 들었다.왜인지 모르게 동작이 평소보다 빨랐다.대표실 불을 끄고 문을 닫았다.복도를 걷던 그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이렇게 서두를 일인가.그러면서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손은 이미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문이 열리자 마자, 빠른 걸음으로 올라 탔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수혁은 낮게 숨을 내쉬었다.뭐야. 내가 꼭 기다린 것처럼.혼잣말처럼 흘러나온 생각에, 수혁은 헛웃음을 삼켰다.‘진짜 어이가 없네.’급한 일은 없었다.지금 당장 보고를 받을 일이 없다는 건, 그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발은 이미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낮 동안의 분주함이 모두 사라진 로비는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자동문 너머로 외등 불빛만 희미하게 번지고, 넓은 공간에는 인기척조차 없었다.정문이 열리며 서린이 안으로 들어섰다.발걸음을 옮기던 그녀의 눈이, 로비 한쪽에 멈췄다.소파에 앉아있는 남자가 시선에 들어왔다.“……대표님.”수혁도 그제야 서린을 보았다.마치 예상하지 못한 사람을 만났다는 듯, 그의 시선이 한 박자 늦게 움직였다.“... 왔네.”반가움도 놀람도 드러내지 않은 목소리.그는 자연스럽게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고쳐 잡았다.“할 일이 남아서요.”서린이 먼저 말을 꺼냈다.“집에 가려다가… 깜빡하고 놓고 간 게 있어서요.”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굳이 캐묻지 않았다.“그래서 다시 온 거구나.”담담한 말투였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시계를 한 번 더 확인했다.그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덧붙였다.“나도 뭐… 일이 좀 있었고.”그는 괜히 넥타이를 한 번 만지작거렸다.“지금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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