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의 높은 담장 안쪽에 자리 잡은 차윤호 회장의 저택은 도심의 소음과 완전히 분리된, 하나의 요새처럼 고요했다.다이닝 룸의 긴 식탁 위에는 촛불이 은은하게 타오르고 있었고, 고급 식기들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간헐적으로 공기를 흔들었다.이미 모든 자리는 준비돼 있었다.오늘의 손님과, 이 자리가 의미하는 바를 숨길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어서 오너라, 유나야. 이게 얼마 만이니.”차윤호의 아내, 박문희 여사가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최유나는 화려한 원피스 차림으로 우아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인사였다.“사모님, 더 젊어지셨어요. 소영이 언니랑 자매라고 해도 믿겠어요.”“어머, 얘도 참. 말은 여전하구나.”박문희는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유나를 자리에 앉혔다.차소영 역시 익숙한 얼굴이라는 듯 자연스럽게 와인을 따라주었다. 세 사람 사이에는 오래전부터 짜인 동선 같은 편안함이 흘렀다.식사가 시작되자, 차윤호는 와인 잔을 천천히 굴리며 유나를 바라보았다.시선에는 반가움보다 계산이 먼저 깔려 있었다.“그래, 한국에는 이제 완전히 들어온 거냐?”“네, 회장님. 아버지가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하셔서요. 이제 경영 수업도 좀 받아야죠.”유나는 그렇게 말하다가, 잠시 숨을 고른 뒤 웃음을 얹었다.“근데요, 사실… 저는 경영 말고도 더 관심 있는 게 있어서요.”그 말에 차윤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였다.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차소영이 자연스럽게 말을 받았다.“아빠, 유나 알잖아요. 예전부터 수혁 오빠만 따라다녔던 거. 이번에 귀국한 것도, 사실 오빠 때문이잖아요.”“언니! 그걸 여기서 말하면 어떡해요.”유나는 부끄러운 척 고개를 숙였지만, 입가에는 숨길 생각조차 없는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오래전부터 준비된 이야기였다.차윤호는 낮게 웃음을 흘렸다.“허허, 그래? 수혁이 그놈… 부모 잃고 혼자 버티는 게 늘 마음에 걸렸는데 말이다.”그의 말투는 다정했지만, 계산은 분명했다.“이제는
Dernière mise à jour : 2026-07-15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