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좋은 취지의 행사니 빠질 수 없죠.”수혁이 사무적으로 손을 내밀었다.강민재는 짧게 악수를 나눈 뒤, 곧바로 시선을 서린에게 돌렸다.“공 부장님, 이쪽으로 오시죠. 소개해 드릴 분들이 많습니다.”그는 자연스럽게 서린의 등을 에스코트하려 손을 뻗었다.“아니, 잠깐—”수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한 걸음 나섰지만, 강민재가 한발 빨랐다.“김 의원님! 여기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그 유능한 실무자가 이분입니다.”강민재는 서린을 정계 원로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 앞으로 이끌었다.서린은 수혁을 한 번 쳐다보고는,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걱정 마세요.’“인사드리세요. 한도오토링크의 공서린 부장입니다. 이번 자립 지원 사업의 일등 공신이죠.”서린의 숨이 순간 걸렸다.‘하필이면.’김 의원.아버지의 오랜 친구이자, 어린 시절 지안을 무릎에 앉혀놓고 사탕을 쥐여 주던 사람.그 손에 쥐여졌던 사탕의 포장지 색까지 떠올랐다.“허허, 젊은 친구가 아주 똘똘하게 생겼구먼.”김 의원이 안경 너머로 서린을 유심히 훑어보았다.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호탕했지만, 시선은 오래 머물렀다.“반갑습니다. 공서린입니다.”서린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심장이 귓가까지 울렸다.“공 부장님은 실무 능력뿐만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진정성이 남다릅니다. 제가 아주 아끼는 파트너죠.”강민재는 보란 듯이 덧붙였다.말끝에 힘이 실려 있었다.수혁은 몇 걸음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샴페인 잔이 다시 부딪쳤다.웃음소리가 겹쳤다.누군가 플래시를 터뜨렸다.그 속에서 수혁의 손이 천천히 말려 들어갔다.주먹이 단단히 쥐어졌다.‘교활한 새끼.’수혁이 이를 갈며 다가가려던 찰나였다.“수혁아!”익숙하고도 불청객 같은 목소리.차윤호 회장이었다.“회장님.”“여기 있었구나. 안 그래도 찾고 있었다.”차윤호는 수혁의 팔을 낚아채듯 붙잡았다.“인사해라. 이쪽은 혁신위원장님 따님인 성유정 양이다. 이번에 프랑스에
의원실의 창밖으로 국회의사당의 둥근 지붕이 내려다보였다.강민재는 창가에 기대어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입가에는 느슨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회장님, 저 강민재입니다.”— 오, 강 의원. 무슨 일인가?차윤호 한도전자 회장의 목소리는 반가움과 경계가 반씩 섞여 있었다.“차 대표 혼사가 조금 시끄럽다 들었습니다. 유통 쪽과는 정리가 된겁니까?”— 허허. 그 녀석이 워낙 고집이 세서. 제멋대로 파토를 냈지 뭡니까.“아쉽군요.”강민재는 창밖을 바라본 채 말을 이었다.“한도오토링크를 그룹의 핵심으로 키우시려면, 든든한 외부 연대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잠시 뜸을 들였다.“혹시 다른 쪽은 생각 없으십니까?”— 다른 쪽이라니?“저희 당 혁신위원장님 따님이 이번에 귀국했습니다. 미술 전공이고요. 집안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죠. 위원장님께서 사윗감을 찾고 계신다고 해서… 차 대표가 떠올랐습니다.”전화기 너머의 숨이 달라졌다.— 거기는… 우리 수혁이를 좋게 본답니까?“제가 자리를 한번 만들어보겠습니다.”그리고, 목소리를 한 톤 낮췄다.“다만 한 가지가 눈에 밟혀서요.”— 뭔가?“차 대표가 요즘 눈에 띄게 챙기는 분이 있더군요. 몇 번 마주쳤습니다.”— 누구 말인가?“전략기획실 공서린 부장입니다.”“... ...”“능력도 좋고, 존재감도 있더군요. 차 대표가 꽤 신뢰하는 듯 보였습니다.”— 직원 하나 때문에 틀어질 일은 없네.“물론입니다.”강민재의 미소가 조금 깊어졌다.“다만, 위원장님 귀에 괜한 말이 들어가면 번거로워질 수 있어서요.”전화기 너머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그놈 자식이… 지 애비 닮아서, 여자 문제로 속을 썩이는군. 내가 단속하겠네.“막으려 들면 더 버틸 겁니다. 차 대표 성격, 회장님이 더 잘 아시잖습니까.”민재가 부드럽게 덧붙였다.“공 부장은 저희 재단에서도 관심 있게 보고 있는 인재입니다. 자립 사업 확장에 실무 책임자가 필요했거든요.”— 강 의원이 데려가겠다는 건가?“그럴 수만 있다면요.”민
한참 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이제 괜찮습니다.”잠시 숨을 고른 뒤 덧붙였다.“... 감사합니다, 대표님”서린의 대답이 수혁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말없이 바람 부는 옥상에 서 있었다.수혁은 서린의 등이 조금 진정되는 것을 느끼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하지만 뼈가 있는 목소리였다.“민우를 만나고 왔어.”“변호사님을요?”“어. 한도전자 때문에.”서린이 고개를 들어 수혁을 바라보았다.“상우 녀석, 내 사촌 동생 말이야. 이번에 반도체 소재 사업부까지 욕심내고 있어. 아버지인 차 회장 믿고 무리하게 확장을 시도하는 중이지.”“……위험한 도박이네요. 지금 한도전자 현금 흐름이 좋지 않을 텐데요.”서린은 이제 평소의 얼굴로 돌아와 수혁의 말을 듣고 있었다.“맞아. 그래서 계열사 자금을 끌어다 쓰고 있어. 나는 이사회에서 그 자금 이동을 막을 생각이야. 배임 이슈를 걸고 넘어지면 제동은 걸 수 있으니까.”회사가 더 망가지기 전에 방어하고, 그 틈을 타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 최선이야.이게 수혁이 생각하는 최선이었다.하지만 서린의 생각은 달랐다.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아니요, 대표님. 막지 마세요.”“뭐?”“오히려 길을 터주세요. 자금이 필요하다고 하면, 더 쉽게 빌릴 수 있게 놔두셔야 합니다.”서린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지금 제동을 걸면, 차 회장은 어떻게든 다른 구멍을 찾아서 메울 겁니다. 그러면 상우 씨의 실패는 ‘경영 실수’가 아니라 ‘반대파의 방해’ 때문이라는 핑계가 생겨요. 명분이 약해집니다.”“그럼…… 회사가 망가지는 걸 보고만 있으라는 거야?”“지금 터뜨리면 작은 사고입니다. 더 부풀게 두세요. 풍선이 터지기 직전까지요.그래야 소리가 커지고 그땐 아무도 덮을 수 없습니다.”서린이 난간 너머, 멀리 보이는 한도전자의 사옥을 응시하며 말했다.“무리한 확장은 독이 든 성배예요. 지금 상우 씨는 능력을 증명하고 싶어서 안
쿵—서린의 심장이 순간 아래로 꺼져 내렸다.- 당신이랑 있으면 내가 제대로 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지금 강민재가 하는 말이 오래전의 강민재가 하는 말로 겹쳐 들렸다.‘미친.’하지만 서린은 내색하지 않았다.지금 여기서 흔들리면 끝이다.그녀는 떨리는 손끝을 책상 아래로 숨기며 입을 열었다.“의원님.”서린의 목소리는 차분했다.지나치게 차분해서 오히려 차갑게 들렸다.“그 감정, 저랑은 상관없습니다.”강민재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상관이 없다니요.”“의원님이 느끼는 결핍도, 채워진다는 감각도, 전부 의원님 개인의 문제입니다.”서린은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저는 누구의 결핍을 메우는 사람으로 살 생각 없습니다. 그게 의원님이든, 누구든.”강민재는 웃지 않았다.어깨를 으쓱하며 두 손을 한 번 들어 올렸을 뿐이다.그리고 흥미롭다는 듯 한층 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차수혁이어서 괜찮은 겁니까?”서린의 시선이 잠깐 흔들렸다.그 찰나를 강민재는 놓치지 않았다.“내 앞을 막아서며 자기 여자라고 하는 남자는 괜찮고요?”“적어도 대표님은 제 의사를 무시하고 다가오지는 않으니까요.”“그렇게까지 하는 남자는 이유가 있죠. 그런데 묻고 싶군요.”강민재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그가 다가오자 위압적인 공기가 서린을 짓눌렀다.“공 부장님은… 그 사람을 사랑합니까?”서린은 한 박자 늦게 숨을 들이마셨다.“…그건 제 개인적인 문제입니다.”“사랑, 안 하잖아요.”강민재가 확신하듯 말했다.서린은 반박하지 못했다.사랑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그렇다고 사랑이라고 인정할 수도 없는 자신의 모순된 상태를 들킨 것 같았다.강민재의 눈빛이 서서히 집요해졌다.“그러니까 기회를 달라는 겁니다.”“당신이 날 완전히 거부하기 전까지는, 난 포기 안 합니다.”강민재가 한 걸음 더 다가오려 했다.그 순간, 서린이 먼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포기하게 되실 겁니다.”서린은 강민재를 지나쳐 문 쪽으로 걸어갔다.“아니, 시작도 못
그때 서린의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차수혁 대표]- 나는 괜찮아.- 마음 놓고 올 수 있을 때 와.- 밥 잘 챙겨 먹고.서린의 손이 멈췄다.고개를 들자, 저 멀리 임원 식당에서 나오던 수혁이 보였다.그는 서린과 눈이 마주치자, 아주 희미하게,남들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만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그리고는 다시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섰다.서린은 휴대폰을 꽉 쥐었다.다행이라는 말과, 왜인지 모를 서운함이 동시에 밀려왔다.오후 근무가 시작되고도 수혁은 조용했다.부르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면서도,불러주기를 바라는 마음.두 마음이 하루종일 서린을 괴롭혔다.무슨 말을 하려고.아니, 무슨 말을 할 수 있다고.사무실의 불이 하나둘 꺼지고, 서린은 홀로 남아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아직 있네.”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드니, 수혁이 서 있었다.그의 손에는 포장된 초밥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먹으면서 해.”‘언제 이런 걸...’수혁이 도시락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자연스럽게 옆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퇴근 안 하셨어요?”“보고받을 게 남아서.”그 보고, 꼭 알 것 같았다.서린은 모른 척 도시락을 열었고, 두 사람은 늦은 저녁을 함께 먹었다.수혁이 업무 이야기를 시작했다.서린도 그런 수혁의 뜻을 알아차렸다.수혁은 어젯밤의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류를 펼쳐 놓고,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서린의 말을 들었다.그 배려가 고마우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간질거렸다.기다리겠다는 말을 정말 지키려는 모양이었다.그래서 더 미안했고, 더 흔들렸다.“그래서, 강민재를 지금 당장 공격하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입니다.”서린이 차트를 가리키며 설명했다.“정치적인 입지도 단단한 데다가, 최근 ‘하품’과 진행한 청년 자립 사업이 크게 호응을 얻으면서 지지율이 더 올랐습니다. 여론이 그쪽 편이에요.”서린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하지만 도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영이 같은 아이들
붉은 후미등이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텅 빈 도로 위에 홀로 남겨진 강민재는 그 잔상을 쫓듯 시선을 떼지 않았다.“남자친구라...”강민재의 입꼬리가 천천히 비틀려 올라갔다.“그럼 이제 재미있어지겠네.”그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중얼거렸다.“내가 탐낸 건, 결국 다 내 손에 들어왔거든.”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손에 넣었다.그것이 물건이든, 자리든, 사람이든.“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거고.”공서린.그 여자가 가진 묘한 기시감과 차수혁의 도발이 합쳐지자,강민재는 꼭 공서린을 옆에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한편, 서린을 집 앞에서 내려주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수혁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다른 한 손으로는 뻐근한 뒷목을 주물렀다.“내 생일인데, 거 참…….”말은 씁쓸하게 내뱉었지만, 오늘 같이 케이크를 먹으려던 사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미소가 지어졌다.‘내가 그랬구나.’수혁은 액셀을 밟으며 확신했다.자신이 이렇게까지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사람인 줄은 몰랐다.계산하고, 재고, 선을 긋던 차수혁은 이제 없다.‘네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지금은 몰라도 괜찮아.’그녀가 떨고 있었다는 걸 안다.무언가 거대한 비밀을 품고,그 무게에 짓눌려 자신을 밀어내려 했다는 것도.하지만 괜찮다.너는 너 그 자체로도 충분하니까.뭘 하든 상관없다.다만, 딴 생각하지 말고 내 앞에서 했으면 한다.그리고.자신이 공서린을 택했다는 걸 차 회장이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그 전에, 내가 먼저 움직여야겠지.’수혁은 이 선택으로 인해 벌어질 일들을 머릿속에서 하나씩 정리했다.집에 도착해 휴대폰을 확인하니,지인들과 비서실에서 보낸 ‘생일 축하합니다’ 메시지가 수십 통 쌓여 있었다.수혁은 스크롤을 내리며 ‘공서린’이라는 이름을 찾았지만,역시나 없었다.“하긴. 알 리가 없지.”수혁은 휴대폰을 침대 옆에 던져두고 침대에 누웠다.아쉬움은 없었다.대신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을 곱씹었다.‘기다릴 테니까.’“잘 자고 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