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31 - Chapitre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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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강민재의 얼굴에 찰나의 일그러짐이 스쳤다.하지만 그는 곧, 부드러운 미소로 덮어 버렸다.“그래. 네 고집을 누가 꺾겠어. 대신,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알았지?”지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는 평화롭게 마무리되는 듯했다.지안은 가지고 있는 USB를 안전한 곳에 숨겼다.그리고, 그에게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그렇게 한 주가 지나고, 두 번째 주로 접어들었을 무렵.강민재는 피가 마르는 초조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그동안 지안을 수없이 어르고 달래보았지만, 그녀는 끝내 USB를 내놓지 않았다.그때, 어르신의 ‘수석 비서관’이 강민재를 은밀히 찾아왔다.“의원님께서 전에 맡기신 물건, 이제 가져오라고 하십니다.”수석비서관의 서늘한 요구에, 강민재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결국, 그는 이실직고 할 수 밖에 없었다.“그게…… 지안이가 가지고 있습니다.”말 끝이 떨렸다.“달라고 했는데,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자기가 보관하겠다고 해서…….”수석비서관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계집 하나 통제를 못 해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듭니까?”그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전화를 걸며 밖으로 나갔다.10분쯤 뒤 돌아온 그의 손에는, 평범한 USB 하나가 들려 있었다.그는 그것을 강민재의 가슴팍에 툭, 밀어 넣었다.“오늘 중으로 만나서 받아오십시오. 안 그러면, 제가 직접 처리하겠습니다.”그 말이 무섭게 떨어졌다.강민재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USB를 받아 들자, 수석비서관이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드라이브하시면서 듣기 좋은 노래 몇 곡을 넣어두었습니다. 차 안에서 들으시면 좋을 겁니다.”그리고, 강민재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마지막 노래가 끝나기 전에, 물건을 회수했다는 연락을 제게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강 의원님의 목숨도 장담 못 합니다. 이 일은, 우리 모두의 목이 걸린 일이니까요.”그것은 최후통첩이었다.강민재는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손으로 USB를 움켜쥐었다.그날 저녁.강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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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콰아앙—!거대한 파열음과 함께, 차는 가드레일을 뚫고 허공으로 튕겨 올랐다.마치 세상의 시간이 멈춘 것처럼—허공에 떠오른 찰나의 순간이 영원처럼 길게 늘어졌다.무중력의 공포가 전신을 휘감았다.그리고 이내, 차는 칠흑 같은 겨울 바다를 향해 곧장 곤두박질쳤다.퐈아아—!!검은 수면이 순식간에 시야를 집어삼켰다.자동차가 얼음장 같은 바닷속으로 처박히는 순간, 맹렬한 수압이 차체를 짓눌렀다.펑—!지안의 시야가 하얗게 터졌다. 터진 에어백이 얼굴을 세게 받아냈다.“…컥—”숨이 막혔다.귀 안쪽에서 삐— 하는 이명이 길게 울렸다.지안은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제대로 인식조차 되지 않았다.그때—쏴아아—!살짝 열려 있던 창문 틈으로 차가운 바닷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왔다.“아악……!”얼음 같은 물이 피부를 파고들었다.뼛속까지 내려꽂히는 냉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순식간이었다.물이 발목을 삼키고, 무릎을 넘어, 허리까지 차올랐다.차가—가라앉고 있었다.“오빠……!”지안은 두려움 속에서 조수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차량 내부의 희미한 비상등 아래, 피를 흘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강민재의 얼굴이 보였다.살아있다.그 짧은 안도감도 잠시였다.“이 미친…… 젠장! 젠장!!”거친 욕설이 터져 나왔다.그의 얼굴은 공포를 넘어, 일그러진 분노로 뒤덮여 있었다.쾅—! 쾅. 쾅.그가 조수석 문을 발로 걷어찼다.하지만 수압에 눌린 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너 때문이야! 네가 고집만 안 피웠어도—!”쏴아아—!열린 창문 틈으로 바닷물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들어왔다.물이 가슴팍까지 차올랐다.그 와중에도, 강민재의 눈은 지안을 향해 있었다.핏발 선 눈으로.“이게 다 너 때문이야! 그깟 증거가 뭐라고, 나까지 죽일 셈이야? 어?!”“오… 오빠…….”지안의 입술이 하얗게 떨렸다.숨을 들이쉴 때마다 짠물이 함께 들어왔다.“비켜! 비키라고!”물이 턱밑까지 차오르자, 강민재의 눈이 완전히 뒤집혔다.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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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그 순간—지안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며 움직였다.생각보다 먼저, 몸이 반응했다.여기저기를 더듬었다.안전벨트 버튼이 손에 닿자 힘껏 눌렀다.딸깍.하지만, 손이 미끄러졌다.힘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딸깍. 딸깍.아무 반응이 없었다.손 끝에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다.‘살아야 해’“으읍—!”지안이 손가락 끝에 온 힘을 모았다.손톱이 뒤틀렸다.피가 번졌다.그래도 멈추지 않았다.다시— 힘껏 눌렀다.딸깍.버클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지안은 놓치지 않았다.버클을 잡아 쥐고, 비틀고, 잡아 당겼다.철칵—버클의 핀이 어긋나며 마침내 풀렸다.그 순간, 지안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중력도 방향도 없는 물속에서 그녀는 몸을 밀어냈다.운전석을 넘어, 조수석으로물이 뒤엉킨 공간 속을 헤집으며, 열린 창문을 향해.손을 뻗었다.창틀에 손이 닿았다.지안은 이를 악물었다.몸을 비틀었다.어깨가 걸렸지만, 다시 힘을 주었다.몸이 차 밖으로 빠져나왔다. 차가운 물이 온몸을 감쌌다.그리고— 위를 올려다 봤다.아득하게 먼 곳.희미한 빛이 보였다.그 곳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하지만, 움직이는 만큼 가라앉은 것 같았다.지안은 코트 단추를 뜯어냈다.구두를 발버둥 치며 벗어 던졌다.발끝이 자유로워졌다.다시— 몸을 밀어 올렸다.지안은 수면에서 아른거리는 희미한 빛을 향해 필사적으로 팔을 내저었다.위로.위로.팔을 뻗었다.물을 가르며 끌어당겼다.하지만, 몸이 따라오지 않았다.마치 아래에서 무언가가 붙잡아 당기는 것 같았다.그래도 멈출수 없었다.지안의 몸이 조금씩 위로 올라갔다.아주 조금씩.그 느린 상승이 끝없이 길게 느껴졌다.팔다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다.근육이 비명을 질렀다.힘이 빠지고 있었다.꽉 다문 입에서 공기가 새어나갔다.뽀글— 작은 기포가 터져 올랐다.‘조금만... 조금만 더...’빛이 가까워졌다.그리고 마침내—“푸하앗—!”수면을 뚫고 올라온 순간, 지안은 터져 나오듯 숨을 내뱉었다.공기가 폐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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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얼마나 지났을까.시간의 감각이 완전히 끊겨 있었다.코끝에 훅 끼치는 짠내와, 군불이 타들어 가는 매캐한 장작 냄새.지안은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밀어 올렸다.낮고 허름한 천장. 따뜻한 온기가 감도는 구들장.“... 으...”지안의 입술 사이로 희미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그 소리를 들은 듯, 벌컥. 방문이 열렸다.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아이고, 이제야 눈을 뜨네...!”할머니는 곧장 지안의 곁으로 다가왔다.주름진 손으로 그녀의 손을 꼭 붙잡았다.“천지신명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가슴을 쓸어내리며 연신 중얼거렸다.지안은 멍하니 그 얼굴을 바라봤다.말을 하려고 했지만, 목이 말라붙은 것처럼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할머니의 말은 느릿하게, 끊어지듯 귀에 들어왔다.지안은 의식을 잃은채, 닷새를 버텼다고 했다.“주머니를 다 뒤져봤는디... 아무것도 없더라고.”몸에도 큰 외상이 없어서 그냥 방에 눕혀 두었다고 했다.“파도가 저 난리여서 배도 못 떴어...”경찰에 신고조차 할 수 없었다고.창밖에서 바람이 세게 울었다. 지붕이 덜컹, 흔들렸다.그날은... 남편의 기일이었다고 했다.할머니는 제사상에 올릴 것을 구하려고 궂은 바다에 들어갔다가—지안을 발견하셨단다.물 위에 떠 있는 것을.죽은 줄 알았는데... 숨이 붙어 있었다고.지안은 그 말을, 먼 이야기처럼 들었다.현실감이 없었다.그저... 살아 있다는 사실만이, 낯설었다.며칠이 더 흘렀다.지안은 미음을 받아 먹으며 조금씩 기력을 되찾았다.하지만,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입을 열면, 그 순간이 떠오를 것 같아서.눈을 감으면 항상 물 속이었다.손을 뻗으면 닿지 않았다.지안은 방문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그 작은 방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밤마다 숨이 막혔다.“허억—!”젖은 숨이 터져 나왔다.그 꿈에서는 언제나 물 속에서 몸부림을 쳤다.누군가의 옷자락을 붙으려다 놓쳤다.허공에서 허우적대는 손을 외면 당했다.그때마다 할머니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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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 알았어. 어디로 가면 돼?지안은 철저히 보안을 당부하며 약속 장소를 정했다.전화를 끊고 부스문을 열고 나갔다.할머니의 두 손을 꼭 잡았다.“할머니. 저, 엄마랑 연락 닿았어요.”“아이고,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엄마와 만나기로 했어요.”“그래? 잘됐다 잘됐어. 하루라도 빠르면 좋지.”급하게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데도 오히려 좋아하셨다.“그리고 이거 가져가.”작은 보따리 하나를 지안의 손에 쥐어 주셨다.“제 목숨 살려주신 은혜, 평생 잊지 않을게요. 부디 건강하세요.”“연초에 액땜했다 쳐.”할머니가 손을 휘이- 저으며 걸어가셨다.지안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할머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정말, 감사합니다.”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그리고, 지안은 돌아섰다.몇 시간 뒤.읍내의 한 모텔 방문이 열리고, 모자 푹 눌러쓴 윤정희 여사가 뛰어 들어왔다.“지안아! 내 새끼!”으흐흑-“엄마아- 엉엉”지안은 엄마의 품에서 아이처럼 울었다.윤정희는 핼쑥해진 지안을 부서질 듯 껴안고 통곡했다.그녀의 손이 지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래 그래, 이제 괜찮아. 엄마가 있어.”“엄-”콜록.“엄마.”“말해. 무슨 일이야.”지안이 엄마를 자리에 앉히고 두 손을 마주 잡았다.“엄마, 나 사망신고 했어?”“흐흑, 그래 이것아. 했어.”윤정희가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그거, 그대로 둬요.”“뭐야? 네가 살아 있는데 왜?”지안은 벌벌 떨며 애원했다.“엄마, 나 다른 사람으로 살게 해 주세요.”“안 돼!”윤정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게 무슨 말이야! 살아 돌아온 애를 내가 다시 죽이라고?”“엄마...”지안의 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나... 그날 죽었어.”눈물이 흘렀다.“살아 돌아온 게 아니라... 그냥, 안 죽었을 뿐이야.”윤정희가 지안의 어깨를 붙잡았다.“너... 너 대체 무슨 일인지 빨리 말 안해?”“저 이제, 공지안으로 못 살아요. 바다만 봐도 숨이 막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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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창밖으로 희미하게 동이 터오고 있었다.서린은 빈 와인병을 곁에 둔 채, 차가운 거실 바닥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끝나지 않을 것 같던 밤이었다.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던 그날.그리고, ‘공서린’으로 태어나 도망치듯 떠났던 시간들.그 모든 기억이 핏빛처럼 되살아났다.서린은 굳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어제 호텔 로비에서 강민재의 그림자만 보고도 숨이 막혀 무너져 내렸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다시는… 다시는, 도망치지 않아.”서린은 욕실로 들어가 거울 앞에 섰다.찬물을 틀어 얼굴에 끼얹었다.얼음장 같은 물이 피부에 닿자 몽롱했던 정신이 서늘하게 날을 세웠다.물기를 닦아내고 고개를 든 거울 속에는, 두려움에 떨며 애원하던 과거의 공지안은 없었다.눈동자에는 흔들림이 없었다.감정을 완벽하게 지워낸 차갑고 단단한 공서린만이 자신을 마주 보고 있었다.‘어제의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해. 나는 공서린이야.’공지안이라면 또 도망쳤을 것이다.사람을 믿고,상처를 숨기고,혼자 무너졌을 것이다.하지만 공서린은 달랐다.두려움은 숨기고,감정은 지우고,상대가 칼을 겨누면 더 가까이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강민재도.차수혁도.누구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서린은 가장 단정한 정장을 꺼내 입고, 흐트러짐 없이 머리를 묶었다.완벽하게 무장한 갑옷이었다.어제 호텔에서 자신을 꿰뚫어 보려던 수혁의 날카로운 눈빛이 떠올랐다.그는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어설픈 변명이나 회피로는 그의 의심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그의 변호사인 민우가 자신을 캐고 있다는 것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피할 수 없다면, 정면으로 부딪쳐야지.’필요하다면, 내 패를 전부 까고서라도,차수혁, 그와 손을 잡는다.서린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오피스텔 문을 나섰다.구두 굽 소리가 복도에 단단하게 울렸다.회사에 도착한 뒤, 서린은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았다.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점심시간이 되어 직원들이 모두 식당으로 빠져나가고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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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단순한 경영권 싸움이 아니에요. 그리고… 이번 일에 새로 온 공서린 과장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것 같더군요.”“공 과장님이요?”“네. 그 여자가 가져온 폭탄을 수혁이가 덥석 물었어요. 한 실장님이 정신 똑바로 차리셔야 할 겁니다.”민우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복도를 걸어갔다.지우는 멀어지는 민우의 뒷모습과 닫힌 대표실 문을 번갈아 보았다.그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역시, 그 여자가 문제였다.민우가 돌아간 뒤, 수혁은 한참 동안 책상 앞에 홀로 앉아 있었다.민우의 경고가 귓가에 맴돌았다.폭탄.어제 호텔에서 보았던 서린의 공포와, 그녀가 찾아낸 치명적인 증거들.그 두 가지가 하나의 점으로 연결되고 있었다.수혁은 인터폰을 눌렀다.“공 과장, 들어와.”잠시 후, 서린이 들어왔다.하루 사이에 그녀는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흐트러짐 없는 정장,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무표정.하지만 수혁은 알 수 있었다.저 단단한 껍질 속에 무엇이 꿈틀거리고 있는지.“앉아.”서린이 맞은편에 앉았다.수혁은 한동안 서린을 바라보기만 했다.어제 호텔에서 그녀가 보였던 공포.강민재가 가까워질수록 무너져 내리던 얼굴.그리고 오늘 아침,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갑옷을 입고 나타난 여자.둘 중 하나였다.정말로 강한 사람이거나,아니면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거나.어느 쪽이든 평범한 직원은 아니었다.수혁은 빙빙 돌리지 않고 돌직구를 던졌다.“어제 호텔에서, 왜 도망쳤지?”서린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말씀드렸다시피, 컨디션 난조였습니다. 갑자기 현기증이 나서-”“거짓말.”수혁은 민우가 두고 간 법률 검토 보고서를 서린의 앞으로 던졌다.툭, 하는 소리가 정적을 갈랐다.“내 변호사가 그러더군. 넌 위험한 폭탄이라고. 이 정도 정보를 가져왔다는 건, 단순히 일을 잘하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다는 뜻이라고.”수혁은 상체를 앞으로 숙여 서린과 눈을 맞췄다.“강민재 의원. 아는 사이야?”서린은 숨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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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서린은 모니터 오른쪽 하단의 시간을 힐끔 확인했다.오전 11시 42분.마우스를 움직여 마지막 셀 하나를 정리한 뒤, 결재창을 띄웠다.사유란에 짧게 입력했다.[반차(오후) 사용 — 개인 일정]불필요한 설명은 없었다. 설명이 길어질수록 의심은 깊어진다.전송 버튼을 누르자, 거의 동시에 메시지가 떴다.[확인.]차수혁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대답.서린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사무실 안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돌아가고 있었다.전화벨, 키보드 소리, 프린터 돌아가는 소음.아무도 그녀의 이탈에 주목하지 않았다.그 무심함이 오히려 다행스러웠다.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서린은 손목시계를 다시 한번 보았다.초침 소리가 심장 박동처럼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 주차된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지만, 곧바로 출발하지는 못했다.엄마를 만난다는 반가움이나 설렘 때문이 아니었다.‘엄마가 무슨 말을 하든, 다 괜찮아야 해. 이건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거울을 보며 표정을 지웠다.엄마를 만나도 언제나 괜찮은 ‘서린’으로 만나야 했다.무너지거나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됐다.그녀는 더 이상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과거의 공지안이 아니었으니까.“그래, 가자 이제.”심호흡을 한 번 하고 핸들을 꺾었다.구청까지 가는 길은 길지 않았다.구청 앞 광장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불우이웃 돕기 자선 바자회.현수막이 펄럭이고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지만, 곳곳에 배치된 검은 정장의 경호원들 때문에 분위기는 묘하게 삼엄했다.서린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인파 가장 뒤편, 펜스 쪽에 자리를 잡았다.이미 단상에는 사회자가 행사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그리고 잠시 후, 우아한 차림의 한 여인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엄마였다.윤정희 여사.‘우리 엄마... 여전히 멋있으시네.’서린의 눈시울이 순간 뜨거워졌지만, 꾹 눌러 참았다.윤정희 여사는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미소 지었다.단상 위의 마이크를 통해 인사말을 하는 동안에도, 그녀의 눈은 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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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윤정희 여사가 먼저 움직였다.서린에게 다가가서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았다.“어쩜, 손도 이렇게 따뜻하고….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지요?”— 아픈 데는 없고? 혼자서 너무 버티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돼...엄마...엄마가 잡아주는 손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서린은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엄마를 부를 뻔했다.그녀는 숨을 한 번 삼키며 호흡을 가다듬은 후에, 잡은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미소를 짓는 것도 잊지 않았다.“그럼요. 어머니도 건강하시고, 저도 잘 있습니다. 지금은 회사를 다니고 있어요. 회사 사람들도 잘 대해주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서 아주 좋습니다.”말을 하면서 고개를 들어 엄마 윤정희 여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윤정희 여사는 딸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지금 자기는 처음부터 계획했던 일을 차근차근 하고 있으며, 아직까지는 순탄하게 하나씩 쌓아가고 있으니 걱정말라는 뜻임을.“다행이네요.”윤정희가 옆에 놓인 쇼핑백을 내밀었다.“이건 내 선물이에요. 안쪽에 따로 넣어 둔 게 있으니, 나중에 천천히 보세요. 어머니께도 잘 전해 주고요.”쇼핑백의 묵직한 무게가 손끝으로 전해졌다.그 안에는 말하지 못한 말들이 들어 있을 것이다.“예, 선물 감사합니다. 제가 잘 전하도록 하겠습니다.”“그럼, 이만 가 볼게요. 시간을 더 내고 싶지만 다음 일정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나중에 어머니를 통해 연락을 드리면 또 만날 수 있겠지요?”“예, 여사님. 물론입니다. 불러만 주시면 언제든지 오겠습니다.”짧은 만남은 그렇게 끝났다.윤정희 여사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대기실을 나갔다.닫히는 문틈으로 젖은 눈시울이 스쳤다.서린은 문이 완전히 닫힌 후에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아, 이럴 때가 아니지. 나도 집에 가야지.’서린은 정신을 차리고 대기실을 빠져나왔다.차에 올라 타고도 바로 시동을 걸지 못했다.조수석에 놓인 쇼핑백을 열자, 작은 보석함과 함께 익숙한 간식들이 나왔다.초콜릿, 말린 과일, 홍삼 스틱.“엄마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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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손을 거둔 수혁은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이 이상은 선을 넘는 일이다.그는 그렇게 생각했다.그런데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깨워.…말아.신경쓰이게 하네 진짜.잠시 망설이던 끝에, 수혁은 그녀를 불렀다.“공서린 씨.”차분하고 단정한 목소리였다.서린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천천히 떠졌다.초점 없는 시선이 허공을 헤매다, 차 문 앞에 서 있는 수혁을 겨우 담아냈다.“…대표님.”목소리가 잠겨 갈라졌다.몸을 일으키려다 실패하자, 서린은 무의식적으로 안전벨트를 더 꽉 움켜쥐었다.수혁은 차 문 앞에 서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무심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야근하다가 차에서 자는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네.”담담한 농담이었다. 그러나 웃음기는 없었다.수혁은 턱으로 건물 쪽을 가리켰다.“들어가자. 입 돌아간다.”명령도, 위로도 아닌 말.서린은 그제야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네.”차에서 내리는 순간, 다리가 살짝 휘청였다.수혁은 여전히 손을 뻗지 않았다.대신 속도를 맞춰, 반 발짝 앞에서 걸었다.‘…나… 왜 울고 있었지.’수혁을 뒤따라가며 서린은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렀다.이미 말라붙은 눈물 자국이 거칠게 느껴졌다.‘꿈을… 꾼 건가…’뭔가—아주 축축하고,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는데.기억을 더듬어봐도, 내용은 끝내 떠오르지 않았다.두 사람은 텅 빈 사무실로 올라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수혁은 말없이 커피를 내렸다.서린은 가방을 열어 엄마가 챙겨준 꾸러미를 꺼냈다.그중 초콜릿 하나를 집어 수혁에게 내밀었다.“드세요. 당 떨어지셨을 것 같아서요.”“이게 뭔데.”“뇌물입니다.”서린이 담담하게 말했다.“차에서 잔 거, 없던 일로 해 달라는.”그는 초콜릿을 받아 껍질을 까서 입에 넣으며 말했다.“어디 학부모 면담이라도 다녀왔나. 구성이 딱 고3 수험생 간식이네.”“비슷합니다.”서린은 짧게 웃었다.“잘 챙겨 먹으라고 쥐여 주신 거라서요.”말끝이 조금 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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