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다시 말해.”
내 목소리가 이상할 만큼 차분했다.
“나 낳은 여자가 누구라고?”
이록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한미라에게 걸어갔다.
“당신이에요?”
“사율아.”
“내 엄마냐고.”
한미라 입술이 벌어졌다 닫혔다.
그 꼴을 보는 순간 속에서 뭔가 끊어졌다.
“대답해, 이 미친 인간아!”
내가 식탁을 걷어찼다.
의자가 넘어지고 유리 조각이 발밑에서 튀었다.
권태겸이 욕설을 뱉었다.
“이 집구석이 아주 개판이군.”
나는 그를 돌아봤다.
“당신은 닥쳐. 씨도 제대로 못 가리면서 아버지 노릇한 새끼가.”
“뭐?”
“문예라는 당신 딸. 이록은 당신 아들 아니고. 나는 딸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고.”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번식도 병신같이 해놓고 가주는 존나 챙기네.”
“온사율!”
권태겸이 달려들자 이록이 또 막았다.
“비키라고, 이 개자식아!”
“싫다고 몇 번 말씀드립니까.”
“네놈부터 이 집에서 내쫓을 거다!”
이록이 차갑게 웃었다.
“회장님 지분부터 확인하시죠. 오늘 아침 이사회에서 해임안 올라갔으니까.”
권태겸 얼굴이 굳었다.
“뭐?”
“집안 족보 까지는 동안 회사도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 후레새끼가!”
그때 한미라가 소리쳤다.
“사율이 내 딸 맞아!”
모든 소리가 멎었다.
나는 천천히 그녀를 봤다.
한미라가 울면서 말했다.
“내가 낳았어.”
속이 울렁거렸다.
“그럼 내가 평생 엄마라고 부른 사람은.”
“내 언니였어.”
“뭐?”
“한미선.”
나는 뒷걸음질 쳤다.
“내 엄마가… 이모였다고?”
“언니가 널 키웠어.”
“왜.”
한미라는 입을 막고 울었다.
“왜 남의 애를 자기 딸처럼 키웠냐고!”
권태겸이 비웃었다.
“말 못 하지. 더러운 짓을 했으니까.”
한미라가 그를 노려봤다.
“당신 입으로 말하면 죽여버릴 거야.”
“죽여?”
권태겸이 웃었다.
“네가 아직도 사람 죽이는 걸 무서워하나?”
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슨 말이에요.”
한미라가 고개를 저었다.
“듣지 마.”
“뭘 듣지 말라는 건데!”
이록이 내 팔을 잡았다.
“사율아.”
“놓아요.”
“지금 알면—”
“당신도 닥쳐.”
나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다 알고도 나랑 잔 새끼가 이제 와서 보호자인 척하지 마.”
이록 얼굴이 굳었다.
“그래. 그건 내가 욕먹어.”
“욕만 먹고 끝날 것 같아?”
“아니.”
그가 낮게 말했다.
“나도 끝까지 갈 거야.”
예라가 전화기 너머에서 휘파람을 불었다.
“와, 사랑꾼 납셨네.”
“문예라.”
“왜요. 이 집안에서 제일 멀쩡한 게 바람 피운 척한 형부라 웃겨서.”
“형부라고 하지 마.”
“언니 남편인데 뭐라고 불러.”
“네 친아빠 딸인 거 확정됐으면 입 좀 처닫아.”
예라가 웃음을 거뒀다.
“언니도 곧 나 욕 못 할 텐데.”
“무슨 소리야.”
“아빠가 금고에 친자검사 하나 더 숨겼거든.”
권태겸이 버럭 소리쳤다.
“문예라!”
“왜. 이것도 가족끼리 공유해야지.”
“무슨 검사?”
예라가 종이 넘기는 소리를 냈다.
“한미라하고 언니.”
한미라가 창백해졌다.
“예라야, 그거 읽지 마.”
“친자관계 성립.”
나는 눈을 감았다.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그런데 예라가 다음 장을 읽었다.
“그리고 한미라하고 권이록.”
이록이 굳었다.
“뭐?”
예라가 천천히 말했다.
“친자관계 성립.”
나는 이록을 봤다.
그도 처음 듣는 얼굴이었다.
“잠깐.”
내 입안이 바짝 말랐다.
“그럼 이록 씨 엄마도 한미라고.”
예라가 답했다.
“네.”
“나도 한미라 딸이고?”
“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이록을 보며 겨우 말했다.
“그러면 우리…”
한미라가 비명을 질렀다.
“아니야!”
나는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뭐가 아니야!”
“둘이 남매 아니야!”
“방금 친자검사에서 둘 다 당신 자식이라잖아!”
“이록이는 내가 낳은 게 아니야!”
예라가 코웃음을 쳤다.
“아줌마, DNA가 출산 후기까지 써줘야 믿어요?”
한미라가 울부짖었다.
“그 검사는 난자 제공자 검사야!”
나는 눈을 깜빡였다.
“뭐?”
“이록이는 내 난자로 태어났어.”
권태겸이 이를 갈았다.
“그 입 닥쳐.”
“하지만 내가 낳은 애는 아니야.”
한미라가 이록을 바라봤다.
“널 낳은 여자는 따로 있어.”
이록의 얼굴이 처음으로 무너졌다.
“누굽니까.”
한미라가 대답하지 못했다.
권태겸이 대신 웃었다.
“말해줘?”
“아버지.”
“네가 그렇게 찾던 친엄마.”
그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사율이가 평생 엄마라고 불렀던 한미선이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나는 한미라의 딸이고.
이록은 한미라의 난자로 만들어져 한미선이 낳았다.
내 엄마였던 여자가 내 남편을 낳았다.
그 순간 바닥의 휴대폰에서 온정호가 소리쳤다.
—전부 틀렸어!
나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뭐가.”
—이록이는 한미라 난자로 태어난 게 아니야.
한미라가 얼어붙었다.
“정호 씨.”
—그 검사도 조작됐어.
이록이 낮게 물었다.
“누가 조작했습니까.”
온정호가 숨을 몰아쉬었다.
—네 친모가.
“누군데요.”
잠깐의 침묵 뒤.
온정호가 말했다.
—문예라 엄마다.
예라가 처음으로 말을 잃었다.
그리고 온정호가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그러니까 문예라하고 권이록.
숨이 멎을 듯한 정적 대신, 누군가 떨어뜨린 숟가락이 바닥을 긁었다.
—친남매 맞아.
“연희야.”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연희의 몸이 굳었다.화면은 이미 꺼져 있었다.하지만 분명히 들었다.자신의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십 년 동안 믿었던 목소리.“설마…”연희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현관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정애도, 세아도, 권태겸도 아무 말이 없었다.연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당신이 왜 여기 있어?”남자가 웃었다.“내 집이기도 하잖아.”연희가 한 걸음 물러났다.“내 아들 어디 있어?”“아들?”“모르는 척하지 마.”“연희야.”“내 아들 내놓으라고!”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그 아이는 네 아들이 아니야.”연희가 그의 뺨을 후려쳤다.짝.“다시는 그 말 하지 마.”남자는 뺨을 만지며 웃었다.“성질은 여전하네.”“아이 어디 있어?”“안전한 곳.”“어디.”“네가 절대 찾지 못하는 곳.”연희의 눈빛이 서늘해졌다.“내가 찾아내면?”“그 전에 네가 기억해야 할 게 있어.”남자가 휴대폰을 내밀었다.화면에는 오래된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병원 복도.십 년 전.연희가 울면서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었다.그리고 그 옆에는 갓난아기가 있었다.연희의 목소리가 들렸다.—제발 이 아이만은 살려줘.남자가 말했다.—그러려면 네가 모든 걸 잊어야 해.연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잊을게.현재의 연희는 숨을 삼켰다.“이게 언제야?”“네가 아이를 낳은 날.”“그럼 왜 난 기억을 못 해?”“네가 직접 잊기로 했으니까.”“누가 시켰어?”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연희가 화면을 다시 봤다.영상 속 자신의 모습이 이상했다.울고 있었지만 무서워하지 않았다.마치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처럼.그때 영상 속 연희가 말했다.—내가 기억을 잃으면, 아이를 숨겨줘.남자가 물었다.—어디에?—나한테서.연희의 얼굴이 굳었다.“내가?”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네가 부탁했어.”“왜?”“네가 아이를 죽일까 봐.”연희가 숨을 멈췄다.“내가 내 아들을?”“그때 넌 그렇게 믿고 있었어.”“뭘?
“내 친동생?”연희는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또 그 소리야?”여자는 웃지 않았다.“이번엔 진짜야.”“네 이름.”“한세아.”연희의 시선이 현재의 세아에게 향했다.세아도 굳어 있었다.“그럼 나는?”여자가 말했다.“네가 알고 있던 세아는 가짜야.”현재의 세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개소리하지 마.”“네가 진짜라고 믿고 싶겠지.”“당신 누구야!”“네가 훔친 이름의 원래 주인.”세아의 얼굴이 굳었다.연희가 여자를 향해 물었다.“그럼 왜 내 아들을 데리고 있어?”“내 아들이기도 하니까.”“무슨 말이야.”“그 아이는 네가 혼자 낳은 게 아니잖아.”여자의 말에 연희의 표정이 굳었다.“아이 아버지가 누군데.”여자는 잠시 침묵했다.그리고 화면 밖을 바라봤다.“들어와.”문이 열렸다.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연희는 그대로 얼어붙었다.“권이록…”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었다.하지만 그는 아이를 안고 있지 않았다.아이를 안고 있던 남자는 그의 옆으로 비켜섰다.“오랜만이야, 연희.”연희는 입술을 깨물었다.“당신이 진짜 권이록이야?”“그래.”“그럼 저 사람은?”“내 쌍둥이 동생.”권이현이 굳었다.“형.”“네가 내 이름으로 살았던 거.”권이록이 차갑게 웃었다.“이제 끝내자.”연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내 아들은?”“내가 데리고 있었어.”“왜?”“네가 나를 죽였다고 믿게 만들려고.”“내가 당신을 죽였다고?”“그래.”권이록이 휴대폰 화면에 영상을 띄웠다.영상 속 연희가 칼을 들고 있었다.그리고 맞은편에는 권이록이 서 있었다.연희의 얼굴이 굳었다.“이건…”“네가 날 죽이려고 한 날.”“아니야.”“왜 아니라고 해?”“난 기억이 없으니까.”권이록이 웃었다.“기억이 없어진 게 아니라 지워진 거야.”“누가?”“나.”연희의 눈이 커졌다.“왜?”“네가 진실을 알아버렸으니까.”“무슨 진실?”권이록이 아이를 바라봤다.“저 아이가 네 아들이 아니라는 것.”연희는 숨을 삼켰다.“뭐
“권이록?”연희의 목소리가 떨렸다.전화기 너머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그 숨소리만큼은 잊을 수 없었다.“당신 맞아?”잠시 뒤 대답이 돌아왔다.—그래.연희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죽었다면서.”—죽은 사람은 내가 아니야.“그럼 지금까지 내가 남편이라고 믿었던 사람은 누구야?”전화기 너머에서 짧은 웃음이 흘러나왔다.—권이현.연희가 뒤를 돌아봤다.자신과 똑같이 얼어붙어 있는 남자.“그럼 당신은 어디 있어?”—네가 오면 알려줄게.“내 아들은?”—여기 있어.“살아 있어?”—그래.연희는 눈을 감았다.“혼자 오라고 했지.”—그래.“그런데 한 가지 약속해.”—뭐지?“아이한테 손끝 하나 대지 마.”남자가 낮게 웃었다.—내 아들한테 내가 왜 손을 대?통화가 끊겼다.연희는 휴대폰을 움켜쥐었다.“미친 새끼.”권이현이 다가왔다.“혼자 가지 마.”“안 돼.”“함정일 가능성이 높아.”“알아.”“그런데도 갈 거야?”연희가 그를 바라봤다.“내 아들이 살아 있대.”권이현은 더 이상 말리지 못했다.그때 정애가 앞으로 나왔다.“연희야.”“엄마.”“가지 마.”“왜?”정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그 사람을 만나면 네가 알아서는 안 되는 걸 알게 돼.”연희가 웃었다.“난 이미 알아서는 안 되는 걸 너무 많이 알아버렸어.”“이번엔 달라.”“뭐가?”정애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네 아들 아버지는 권이록이 아니야.”연희가 멈췄다.“그럼 누구야?”정애는 입을 다물었다.권태겸이 대신 말했다.“내 아들이다.”모두가 그를 바라봤다.“뭐?”“네 아들의 아버지는 권이현도, 권이록도 아니다.”권태겸이 말했다.“내 장남 권도혁.”연희의 얼굴이 굳었다.“그런 사람 없다고 했잖아.”“죽었다고 했지.”권태겸이 씁쓸하게 웃었다.“하지만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제대로 죽은 적이 없잖아.”그 순간 연희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영상통화였다.화면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연희는 숨을 멈췄다.
“내가 네 아이를 낳았다고?”연희는 남자를 바라봤다.“말도 안 돼.”남자가 웃었다.“기억이 없으니까 그렇지.”“당신 누구야.”“권이록의 형.”연희의 얼굴이 굳었다.“그런데 왜 내가 당신 아이를 낳아?”“그날 밤 네가 나한테 왔으니까.”이록이 앞으로 나섰다.“거짓말하지 마.”“동생은 빠져.”“그 여자는 당신한테 간 적 없어.”“그래?”남자가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냈다.사진 속에는 연희가 있었다.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고, 품에는 갓난아기가 안겨 있었다.연희의 손이 떨렸다.“이게…”“네가 낳은 아이.”“언제?”“십 년 전.”연희는 사진을 빼앗아 들었다.“그런데 왜 나는 이 아이를 기억하지 못해?”남자가 웃었다.“네 남편이 지웠으니까.”연희가 이록을 돌아봤다.“당신이 또?”이록은 대답하지 않았다.“말해.”“그 아이는…”“내 아이야?”이록이 눈을 감았다.“그래.”연희의 얼굴이 무너졌다.“그럼 어디 있어?”“죽었다고 했어.”“누가?”“권태겸.”권태겸이 욕설을 내뱉었다.“그 새끼 말 믿지 마!”남자가 웃었다.“회장님, 아직도 뻔뻔하시네.”“닥쳐!”“당신이 아이를 없애라고 했잖아.”연희가 권태겸을 바라봤다.“내 아이를?”“아니다.”“그럼 왜 이 사람이 그렇게 말해?”권태겸은 입을 다물었다.연희가 그에게 다가갔다.“내 아이 어디 있어.”“죽었어.”“거짓말.”“살아 있어도 네가 키울 수 없었다.”“왜?”권태겸이 이를 악물었다.“그 아이가 내 손자니까.”연희의 눈이 커졌다.“뭐?”“네가 낳은 아이의 아버지가…”권태겸이 이록을 바라봤다.“권이록이 아니니까.”이록이 고개를 들었다.“무슨 소리야.”권태겸이 말했다.“그 아이 아버지는 네 형이다.”연희는 움직이지 못했다.“그럼…”남자가 웃었다.“이제 이해하겠지.”연희가 그를 바라봤다.“내가 당신 아이를 낳았다고?”“그래.”“그런데 왜 당신이 내 동생을 찾았어?”남자의 표정이 굳었다.“동생?”“정미.”
“네 남편이 숨겨온 여자?”연희의 목소리가 떨렸다.“누구야.”한미선은 대답하지 않았다.시선만 이록에게 향했다.연희도 천천히 그를 바라봤다.“당신이 알고 있지?”이록은 침묵했다.“이번엔 모른다고 하지 마.”“……알아.”“누구야.”“연희야.”“누구냐고!”이록이 눈을 감았다.“네가 찾던 세아.”연희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어디 있어?”“우리 집에.”“뭐?”“지금도 있어.”연희는 웃음이 나왔다.“내 집에 있다고?”“그래.”“그럼 왜 나한테 말 안 했어?”“네가 보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어.”“또 그놈의 이유.”연희가 이록의 멱살을 잡았다.“대체 나한테 몇 명을 숨겨놓은 거야?”“한 명.”“누구.”이록이 대답했다.“네 가사도우미.”연희의 얼굴이 굳었다.“정미?”“그래.”그 순간 세아가 휴대폰을 확인했다.“언니.”“왜?”“정미 씨한테 연락했는데 안 받아.”연희가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신호음만 길게 울렸다.받지 않았다.“집으로 가.”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한미선이 말했다.“늦었어.”“뭐가.”“이미 눈치챘을 거야.”“누가?”한미선이 연희를 바라봤다.“정미가.”연희는 그대로 뛰어나갔다.집에 도착하자 현관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거실은 엉망이었다.서랍이 모두 열려 있고, 바닥에는 서류가 흩어져 있었다.“정미 씨!”대답이 없었다.연희가 2층으로 올라갔다.침실 문이 열려 있었다.옷장 안쪽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들렸다.연희가 옷을 헤치자 휴대폰 하나가 떨어졌다.화면에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정미의 모습이었다.그리고 그 옆에 한미선이 서 있었다.“연희 씨.”영상 속 정미가 울고 있었다.“이걸 보고 있다면 저는 이미 떠났을 겁니다.”연희가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제가 숨긴 게 있어요.”정미가 입술을 떨었다.“제가 진짜 세아예요.”세아가 굳었다.“뭐?”영상 속 정미가 계속 말했다.“한세아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연희는 옆에
“엄마가 세아한테 무슨 짓 했어?”연희의 목소리가 떨렸다.정애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말해.”“연희야.”“이번에도 나 살리려고 숨길 거야?”정애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세아를 만나러 갔어.”“왜?”“네가 그 애를 찾고 있었으니까.”“그래서?”“돌아오라고 했어.”연희가 헛웃음을 쳤다.“세아한테?”“그래.”“왜?”정애는 입술을 깨물었다.“그 애가 네 동생인 걸 알게 되면 안 됐으니까.”“누가?”“권태겸이.”연희의 표정이 굳었다.“그 사람이 세아를 왜 찾는데?”“세아가 가지고 있던 게 있었어.”“뭔데.”정애는 대답하지 않았다.연희가 소리쳤다.“뭐였냐고!”“출생기록.”정애의 목소리가 갈라졌다.“너희 둘이 바뀌었다는 기록.”연희가 얼어붙었다.“바뀌었다고?”“태어나자마자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었어.”“누구랑?”정애가 눈을 감았다.“너랑 세아.”세아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그럼 내가 언니가 될 수도 있었다는 거예요?”“그래.”“미친…”세아가 헛웃음을 쳤다.“그럼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이름도 다 가짜였네.”연희는 정애를 바라봤다.“그래서 세아가 그 기록을 가지고 있었고.”“응.”“엄마가 빼앗으러 갔어?”정애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세아가 안 줬어.”“그래서?”“내가 화를 냈어.”“때렸어?”정애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연희의 얼굴이 굳었다.“죽였어?”“아니!”정애가 울부짖었다.“죽이지 않았어!”그때 창고 안쪽에서 권태식이 낮게 말했다.“그건 맞아.”모두가 그를 바라봤다.“정애는 세아를 죽이지 않았어.”연희가 물었다.“그럼 누가 죽였어요?”권태식이 고개를 숙였다.“나.”정애가 비명을 질렀다.“태식아!”연희의 눈이 커졌다.“당신이?”“세아가 도망치려고 했어.”“왜?”“진실을 네게 말하겠다고 했으니까.”“그래서 죽였어요?”“죽이려고 한 건 아니었다.”“결과적으로 죽였잖아.”권태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세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