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대피로를 폐쇄하자는 안건은 아침 첫 회의에서 바로 부결되지도, 그대로 통과되지도 않았다. 베른하르트가 평의회 탁자 위에 세 개의 지도를 겹쳐놓자 의견이 갈린 이유가 분명해졌다. 북쪽 위험이 커질 경우 로스테 주민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남문대로, 서쪽 산길, 오래된 강변 수송로 세 곳이었는데, 겨울철에 마차까지 안정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은 남문대로가 유일했다. 전날 발견한 왕핵 잔류점이 그 길과 겹친다는 이유만으로 전면 폐쇄하면 주민을 보호하기는커녕 대피 능력을 먼저 잃을 수 있었다.하겐은 평의회 벽에 기대지 않고 탁자 끝에 서서 밤새 받은 경비 보고를 설명했다. 남쪽 반응점은 자정 이후 세 차례 열이 올랐지만 위치가 이동하지 않았으며, 살아 있는 마물의 접근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북쪽 세 번째 먹이점을 멈춘 직후 반응이 시작됐다는 시간적 연관성은 분명했으나, 그것이 자동 전환인지 외부 조작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그러니까 오늘 당장 길을 닫는 건, 위험을 막는 게 아니라 우리가 먼저 대피로 하나를 버리는 일이 됩니다.대신 남문대로를 계속 쓰려면 저 반응점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오늘 안에 확인해야 합니다.”한 평의원이 의자를 앞으로 당기며 물었다. “확인하다가 켜지면 어떻게 합니까? 북쪽 장치 하나 멈췄다가 남쪽 것이 반응했다면서요.”“그래서 회수부터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들여보내기 전에 외부에서 구조를 확인하고, 실제 작동부가 있으면 그걸 어떻게 끊을지 결정합니다.”엘리시아는 하겐의 설명이 끝날 때까지 끼어들지 않았다. 그녀 앞에는 별도의 서류가 놓여 있었다. 제목은 ‘현 성녀의 로스테 체류 여부’였고, 북부 위험대응 문서와는 다른 사건번호가 찍혀 있었다.어젯밤부터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미 말이 퍼지고 있었다. 성녀가 로스테에 머무는 동안 흰 뿔의 왕이 주변을 맴돌게 만들 수 있다는 소문, 성녀가 떠나면 북부의 먹이길도 멈출 수 있다는 소문,반대로 성녀를 쫓아내려는 세력이 일부러
Last Updated : 2026-08-27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