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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웰컴 투 소원리: Chapter 31 - Chapter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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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너랑은 올만 하겠다

“오! 여기다. 생각보다 가까웠네. 여기서 후딱 먹고 가면 되겠다.” “그래.”두 사람이 열심히 검색해 도착한 아귀찜 전문 식당. 두 사람은 옆 벽면에 붙은 메뉴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로 드려요?” “사장님, 여기 아귀찜 소자 하나요. 감사합니다.” “네~. 여기 아귀찜 소자 하나!”노년을 향해 달려가는 주름진 얼굴의 사장이 주문을 받아서 식당으로 외쳤다. 모든 게 오래된 식당이지만 내부는 깨끗했다.오후 한 시가 훌쩍 지난 시간이라 그런지, 식당 안에는 그들 외에는 6, 70대는 족히 되어 보이는 부부가 앉아 있는 두 테이블뿐이었다. “아주 좋아.” “뭐가?” “그냥, 식당 분위기가 아주 좋네. 마음에 쏙 들어.”인협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식당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며 말했다. “안 바글바글한 곳이라 다행이네. 내가 널 위해 친히 검색했지.” “아휴, 고마워.”에스더의 생색에 인협은 고마움을 표했다. “웬일로? 순순히?” “야, 나 그 정도는 아니야.” “그으래?”의아해하는 에스더를 얄밉다는 듯 쳐다보는 인협이었다. “그래서, 읍내에서 적당히 연습 끝나면 나랑 시내로 나가줄 거야? 아님, 내가 시내에 최악의 식당 하나 알아볼게. 거기부터 연습해 볼래?”“아직.” “알겠어. 으이그, 사연 많은 나인협.”에스더가 인협을 향해서 눈을 흘기던 순간, 식당 문이 열리며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 셋이서 우르르 들어왔다. 그들을 본 인협은 숨을 참으며 고개를 벽 쪽으로 돌렸다. 제발 이쪽으로는 오지 말아라. 제발. 간절한 기도가 통한 건지, 다행히도 사장은 그들을 식당 반대편 자리로 이끌었다. “후-.” “뭐야? 너 혹시….”그런 인협을 지켜보던 에스더가 목소리를 낮추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뭐?” “범죄자는 아니지? 뭐 사회에서 굉장히 비난받을 짓을 했다거나…” “…….”정곡을 찔린 인협은 아무 답도 하지 못한 채로 마른침을 삼켰다. “야, 케이비 요새 폼이 너무 떨어졌더라.”익숙한 단어에 인협은 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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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한번 멀어져 봐

에스더와 인협은 잔뜩 부른 배를 쥐고서 길을 걷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며 보이는 주변 풍경을 각자의 방식대로 둘러보는 두 사람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있었다. “아으, 배부르다!” “버스가 20분 후면 온다고 했지?” “응. 아, 이 코스에서 다이수까지 들려줬어야 완벽한 건데 말이야.” “거기까지 들리는 게 네 토요일 루틴이야?” “응. 다이수가 얼마나 귀한데-.” “미국에서는 구할 수도 없는 물건이 많이 있어서?”인협이 대신해서 문장을 마쳐주자, 에스더가 푸하하, 웃었다.“올, 제법인데? 독심술도 할 줄 알아, 너?” “그런가 봐.” “근데 하나가 빠졌지롱. 모든 물건들이 엄청 튼튼하고 엄청 저렴해.” “그나저나, 너 미국에서 어렸을 적부터 살았다면서 한국말은 왜 이렇게 잘해?” “왜? 2개 국어 하는 게 이상해? 생각보다 나 같은 사람 흔한데.”인협의 의심에 에스더가 대꾸했다.“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는 환경에 있어서 그래.” “그래? 미국에서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는 환경은 또 뭐지.” “한국인들만 있는 교회에 다녔거든. 내 이름에서부터 알겠지만 우리 부모님은 그중에 완전 신실하신 분이시고. 좁디좁은 이민 사회에서 그 사실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너는 모르지?”“치명적? 부모님의 종교 생활이 너한테 영향이 갈 일이 있어?”인협의 질문에 에스더는 과거의 어려움을 떠올린 듯이 깊은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그럼, 많지. 미국에서의 삶은 일종의 소원리의 확장판 같았달까?” “그게 뭔데?” “얼마 되지도 않는 한국 사람들끼리 모든 한국 사람의 모든 걸 다 알고 있고, 전혀 진실과 가깝지 않은 헛소문이 퍼지기도 하고, 약간의 진실이 섞였지만, 허무맹랑한 소문이 퍼져서 그게 나를 직접적으로는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기정사실이 되기도 하고.” “그렇구나.” “그리고 소원리 보다 더 어려운 점은 사람들이 더 많아서, 그걸 제대로 해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는 거? 내가 수십 명, 수백 명에게 직접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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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애들은 애들이지

우겸의 차 안. 주변에 들킬까 봐 어느 한적한 공원 주차장에서 만난 봉길과 우겸이었다. “레브님은 컨택해 보셨어요?” “네.” “어땠어요?” “많이 침울해 보였어요. 상처가 커서 앞으로 리그 오브 카오스 판으로 다시 돌아올 의향이 있는지도 의문이고요.”봉길의 말에 우겸은 탄식했다. 분명 좋은 팀을 만나고, 좋은 기회를 하나라도 잡을 수 있었더라면 어쩌면 인협은 우겸에 견줄만한 선수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참 어렵네요.” “우겸 씨는 이제 곧 원티드랑 계약 종료되죠?” “네. 그래서 때맞춰서 이적해서 제가 직접 팀을 꾸릴 예정이었어요. 엘비 그룹 아시죠? 거기서 신생팀을 하나 꾸리고 싶다면서 제게 컨택을 해오셨거든요.” “엘비 그룹이요?”엘비라면 가전제품부터 시작해, 몸집을 키워온 대기업이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절대로 모를 수 없는 거물이었다. “네, 그리고 그쪽에서 저를 중심으로 새로 출발하는 만큼 저만 제안을 승낙하면 제가 원하는 것을 모두 맞춰주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봉길 코치님께 직접 감독 제안을 할 수 있는 거고요.” “……”엘비 그룹이 서포트해주는 팀에다가 우겸이 수장인 조합이라면 훨훨 날 일만 있을 팀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인협이가 이 팀으로 복귀했으면 좋겠는데. 팀의 새로운 시작에 걸맞게, 인협도 새롭게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처음에는 저의를 의심했으나, 우겸은 지켜보면 볼수록 올곧은 심성의 사람이었다. 제 팀의 스폰서와 코치진이 손을 잡고서 일방적으로 승부조작을 해서 장장 2년여 간의 시간 동안 1위를 유지해 왔다는 사실을 밝혀내자마자 우겸은 그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인협의 복귀를 위해서 가장 먼저 힘을 쓰고 있었다. 비리와 조작으로 쓰게 된 왕관은 수치심을 일으킬 뿐이었다. 리그 오브 카오스에서 최고라고 여겨지는 우겸마저도 다 내던지고 도망가 버리고 싶어질 정도로. “월말쯤 이적해서 훈련에 들어갈 예정이에요. 그리고 두세 달 정도 집중 훈련 후, 실전에서 손발을 맞추는 연습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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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딱한 녀석

“여기네.”소원리라고 쓰인 표지판을 발견한 봉길이 차를 자연스럽게 마을 길 쪽으로 틀었다. “어휴, 차 한 대나 겨우 지나다니겠네.”그때 봉길의 눈에 최 씨의 가게가 눈에 띄었다. 일단 차를 가게 옆쪽에다가 세우고 인협을 수소문해 볼 예정이었다. 이 정도 규모의 마을이면, 비밀은 없을 테니까.차를 길가에 세운 봉길은 운전석에서 내려서 가게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이미 가게 문을 열고서 가게 안에 있는 주인에게 무언가를 묻는 할머니 두 사람이 서 있었다.“소주 없어? 고기 잡내 잡을 때 그것만 한 게 없는데.” “아이, 없다니까요 누님.” “그러게, 술 좀 작작 처먹지! 웬 소주를 팔 생각은 안 하고 맨날 무식한 술꾼들이랑 술판만 벌여서 처먹어대니까 없지!” “아이, 다짜고짜 와서 화만 낼 거면 집으로 가세요!”갑순의 야단에 최 씨가 덩달아 거친 목소리로 대꾸했다.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그들의 눈치만 살피며 기웃거리던 봉길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냥, 마을 안에서 한번 여쭤봐야 하나? 망설이던 봉길이 이내 발길을 돌리려 하자, 그런 그를 갑순 옆에 조용히 서 있던 복란이 발견했다.“어어? 청년, 뭐 사러 왔어요?”복란의 부드러운 음성에 갑순의 시선이 동시에 봉길에게로 향했다. 갑작스럽게 그들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번에 받게 된 봉길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아, 뭐 좀 여쭤보려고요.” “뭔데요?”갑순의 무뚝뚝한 말투에 봉길은 긴장한 채로 마른침을 한번 삼켰다. 조금 전 최 씨와 실랑이하던 그녀의 모습을 본 탓이었다. “저…. 혹시 나인협이라고 아세요? 지금 찾고 있는데….”봉길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갑순의 눈빛에 의심이 깃들었다. “왜요?” “아, 인협이!”가게 문 쪽으로 걸어온 최 씨의 목소리에 갑순이 그를 바로 째려보았다. 당장 입을 다물라는 경고였다. “가게 주인분은 인협이를 아시나 봐요?”봉길의 희망찬 눈빛을 본 갑순이 그를 꼼꼼히 훑어보았다. 안 그래도 최근에 부용의 방문으로 인해 심기가 불편한 그녀였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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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이곳이 멀어진 곳이네

“뭐야? 명함이라니….” “글쎄.”인협은 에스더에게 보이지 않도록 명함을 확인했다. 이름을 확인한 인협의 두 눈에 당황함이 깃들었다. 그는 황급히 그것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뭔데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구나.”에스더는 묻고 싶은 게 많은 표정이었으나, 이내 입을 다물어 버렸다. 두 사람은 생각에 잠긴 채로 길을 걸어서 가게에 다다랐다. “어어, 이 시간에 웬 애들이 이렇게 왔나 했더니 선생님들이 쏘는 거였어? 아, 안녕하세요 황 선생님.”웬일로 아이들로 복작거리는 가게에서 신이 난 최 씨가 에스더와 인협을 맞아주었다. “네, 축구 내기를 했는데 저희 팀이 져서요.” “인협이 네가 졌어?”최 씨의 당황한 시선이 에스더에게로 향했다. “네, 저희 팀이 이겼어요.” “네, 황 선생님이 보기보다 운동신경이 좋더라고요.” “나 참, 남자 체면이 있지 인마.”최 씨가 껄껄 웃으며 인협을 놀려댔다. 아이들은 벌써 아이스크림을 고르고는 인협만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인협은 이내 지갑을 꺼내 들었으나, 에스더가 더 빨랐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꺼낸 현금을 최 씨를 향해 내밀었다. “어째 인협이 네가 졌다더니.”최 씨는 선뜻 돈을 받지 못하고선 인협을 바라보았다. 당황한 건 인협도 마찬가지였다. “나 선생님이 저를 많이 도와주고 있어서 고마워서요. 나 선생님 없었으면 전 이미 과로로 쓰러지고도 남았을 거예요. 은혜 갚을 겸, 제가 사려고요.”에스더의 넉살 좋은 미소에 최 씨는 마지못해 그 돈을 받고는 거스름돈을 그녀에게 내어주었다. 최 씨는 두 사람의 손이 빈 것을 보고는 이내 워드콘을 두 개 꺼내서 두 사람에게 쥐여주었다.“서비스야. 가져가.” “감사합니다!”최 씨가 내민 아이스크림을 거절하려고 입을 떼던 인협을 가로막고선 에스더는 냉큼 그것을 받았다.“공짜 되게 좋아하시네요.” “그럼요. 게다가 다른 아이스크림도 아니고, 비싼 편인 워드콘이잖아요.”인협의 말에 에스더는 능청스럽게 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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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약해 보여도 괜찮아

“미혼모…..”봉길은 넋이 나간 채로 운전하다 말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유진의 충격선언 이후로 어떤 말을 하고 나온 지도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일단은 명함이라도 카운터에 두고 나왔다. 하도 횡설수설하다가 나온 탓에 제가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딱히 기억도 나지 않았다. “후-.”유진은 귀여운 외모와는 다르게 매우 강단이 있는 여자였다. 그리고 그 사실은 봉길을 더 설레게 만들어버렸다. 외유내강. 유진은 완벽한 그의 이상형이었다. “애기….”화목하게 사는 부모님을 보며 막연하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해왔었다. 하지만 내가 그 여자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아이까지 품을 그릇이 될까? “뭔 생각하는 거야. 정신 차려라, 조봉길.”봉길은 빨간불에 차가 정차한 틈을 타서 머리를 아주 세게 흔들어댔다. 카페에서 봤던 여자에 관한 생각을 떨쳐내기 위함이었다. “이제 떠나왔으니까 점점 더 잊힐 거야. 아주 잠깐 본 분이잖아. 잠깐 외모에만 혹한 거라고.”봉길은 핸들을 꽉 쥔 채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듯이 되뇌었다. ***영애가 모는 차가 소원 초등학교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이미 저녁 시간이 된 탓에 초등학교 교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평소에는 카페 마감까지 자리를 지키다가 오는 편인 그녀였으나, 오늘은 평소보다 더 일찍 퇴근했다. “아, 맞다. 그날 인협이한테 못 들렀네.”부용이 소원리를 찾았던 날. 인협에게 바로 땅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려던 차에 카페 일이 너무 바빠져서 그날은 그에게 말을 못 한 영애였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뭐 대단한 것도 없는 이야기인데.”무언가 결심한 듯, 영애는 차를 교문 앞에다가 붙였다. 차 안에서 닫힌 교문만 바라보던 영애는 핸드폰을 꺼내 인협에게 전화를 걸었다. 인협이도 이제 알만한 나이가 됐으니까. [여보세요?] “인협아, 나 영애 이모야.” [아, 네. 안녕하세요]소문으로 들리는 것보다는 훨씬 더 공손하네.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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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울보네, 나인협

춘천의 대학병원 앞 정원. “우리 유진이랑 주아는 잘 있으려나?”링거대를 끌며 철호와 천천히 정원을 거닐던 순옥이 무성한 나무들을 둘러보며 철호에게 물었다. 그녀의 팔짱을 끼고서 걷던 철호는 그녀가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온종일 옆에서 고생하는 나는 안 보여?” “아이, 당연히 알지.” “일단 눈앞의 나랑 당신만 생각해. 뭐 하러 잘 살고 있는 애들 걱정을 해?” “아니, 잠깐씩 집을 비운 적은 있어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유진이랑 주아만 있는 건 처음이잖아.” “으이그, 자식 걱정은 눈 감을 때에야 끝난다더니. 30이 넘은 딸아이를 뭘 그리 걱정해. 걱정하지 마, 당신이 유진이 아주 번듯하고 예쁜 어른으로 잘 키워냈고, 그렇게 잘 큰 유진이가 예쁜 주아를 잘 돌보고 있을 거야. 야무지게.”철호의 잔소리에도 완전히 걱정을 놓지 못한 순옥은 먼 곳을 바라보았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 같은 나라에 있어도 이리 오랫동안 볼 수가 없다니.“주아 데리고 병문안이라도 오라고 해? 왜, 당신이 주아랑 유진이가 먼 길 오는 건 또 싫다며.” “응.” “아휴, 어젯밤에도 영상 통화 해놓고 참 걱정도 많아요.” “몸이 아프니까 되려 더 걱정돼. 평소에는 괜찮겠거니, 했던 일들도 걱정거리가 되고.”순옥의 힘없는 음성에 철호는 그녀를 안쓰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예쁜 아주머니. 걱정 그만하세요. 오늘 회진 때 의사 선생님이 이 정도 속도면 다음 주에 퇴원하고 통원 치료만 받으면 된다고 하셨잖아.” “응.” “그러니까, 다음 주에 퇴원하는 거에만 집중해. 돌아가면 귀찮을 만큼 애들 볼 수 있으니까.” “응.” “당신도 참. 육아가 체질인 사람인가 봐. 누구는 황혼에 하는 손주 육아가 그렇게 힘에 부치고 귀찮다던데. 손주도 모자라서 소원 초등학교 아이들도 늘 마음에 품고 살고. 다 큰 딸내미도 마음속에 끌어안고 놓아주지를 않고.” “……”이어진 철호의 잔소리에 순옥은 그저 조용히 웃고 말았다.“그러게, 육아가 체질인가 봐. 세상 모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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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조용한 선함

“어때? 인협이랑은 잘 이야기해 봤어?”해가 진 늦은 저녁 시간. 갑순이 대뜸 영애의 집에 복란과 함께 쳐들어왔다. “어르신, 이러시면 저는 무섭습니다. 내일 아침에 물으셔도 될 텐데요.” “내일 새벽에 출근하고 해 떨어지고 퇴근할 거잖아. 오늘이나 내일이나 같은 시간에 찾아오게 생겼구먼.“막무가내로 구는 갑순의 말에 소리를 내어서 웃음을 터뜨린 영애는 순순히 갑순과 복란을 집안으로 인도했다. “어? 할머니,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기훈과 기정이 편한 내복 차림으로 놀다가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영애가 태욱에게 눈짓하자, 태욱이 거실 소파에서 일어났다.“얘들아, 고모부가 책 좀 읽어줄까?” “네!“ ”그럼 방안으로 같이 들어가자!“ ”와아아!!“태욱의 제안에 신이 난 어린이들은 단숨에 복도를 향해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방문을 닫자, 거실에는 정적이 흘렀다.”인협이 때문에 오신 거죠?“ ”말해 뭐 해. 뭐라든? 그 녀석, 아직 정신 못 차리고 있었어?”갑순의 퉁명스러운 어투에 묻어나오는 애정에 영애는 또다시 웃고 말았다.“참, 이렇게 애정이 많으신데 말투만 좀 부드럽게 해봐요 아주머니. 그래야 상대가 어떤 애정을 받는지 알지.”“됐어. 나이를 먹더니 잔소리가 늘었다, 영애야?” “그럼요, 저도 이제 인생 후반부에 다다랐는데요. 잔소리 좀 할 줄 알게 됐죠.“ “허이고, 참. 시간 없어. 빨리 본론부터 알려줘.”갑순의 재촉에 영애는 미소 띤 얼굴로 팔짱을 꼈다.“인협이, 저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똑 부러지고 야무진 아이예요. 상처가 많아서 그렇지, 요새 애들 같지 않게 속도 깊고요.” “그래서? 땅은 바로 받겠대?” “아뇨, 땅 명의는 아무나 열람할 수 있다고 하니까 나중에 돈이 필요해지면 현금화해서 천천히 받겠대요.” “그 야무진 녀석. 다행이다, 다행이야.” “지난번에 부용이가 찾아왔을 때, 인협이를 보고 갔다고 하셨죠?” “그래, 걔네가 학교로 갈 일이 그거 아니면 뭐가 있었겠어.” “…….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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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뭘 잘못하기는 한 거지?

“내일이면 드디어 퇴원을 하네.”청천벽력 같던 암 진단에 과연 이번 여름은 잘 넘길 수 있을까, 라고 고민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순옥이 미소 띤 얼굴로 말하자, 투박한 손을 열심히 움직여 사과껍질을 까던 철호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시간이 참 빨라, 그렇지?” “그러니까….”순옥은 아직도 완전히 아물지 않은 수술 부위 쪽에다가 손을 갖다 댔다. “이제 추적검사만 남았다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 집에 돌아가서 관리 잘하면서 살아보자.” “그래요.”철호의 응원에 순옥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6인실에 있느라 방을 같이 쓰는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살뜰히 챙겨주는 의료진과 정이 어느 정도 들었지만, 동시에 편안함을 누릴 수 있는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았다. “어서 돌아가자. 그리고 편하게 발 뻗고 우리 침대에서 자자고.” “그러게. 당신이 불편한 간이침대에서 자느라 고생 많았어.” “그간 고생은 당신이 더 했지. 원래 환자 본인이 제일 힘든 거야.”철호의 말에 순옥은 미안하고도 고마운 마음에 미소를 지었다. “소원리 사람들 소식 듣고는 모두 병문안 온다고 난리를 쳐댔었는데, 사실 내가 당신 몰래 다 막았어.” “그런 것 같았어.”“당신, 주변 사람들한테 워낙 약한 모습 보이는 거 안 좋아하니까.”철호의 배려에 감동한 순옥은 그의 허벅지 위에 손을 살짝 올렸다. 철호는 이내 다 깎은 사과 한 점을 이쑤시개로 집어서 순옥의 입에 쏙 넣어주었다. “눈앞에 안 보여도 이리 모두를 신경 쓰는데, 눈앞에 보이기라도 하면 또 그 사람들 배려하느라 당신은 못 챙겼겠지. 이런 상황에서만큼은 나 당신이 그러는 거 못 보겠더라고.” “그랬을 거야. 덕분에 회복 잘했네. 고마워.”순옥은 철호의 말을 순순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장장 30년이 넘는 결혼생활 끝에 그녀를 그녀보다 잘 아는 철호였다. “내가 당신의 예쁜 얼굴에 버금가는 예쁜 마음씨에 반해서 내가 쫓아다닌 거긴 하지만,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어.”철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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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스펙타클한 하루

소원 초등학교의 교실 안. 퉁퉁 부은 눈에다가 세상 모든 것을 미워하는 듯한 표정을 지은 재형은 맨 뒷자리에서 나름의 시위를 하는 중이었다. 본용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처음에는 상냥하게 타이르던 제환도 이내 포기해 버린 그였다. 어마어마한 똥고집으로 제환을 꺾은 재형은 더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걸어오는 아이들도 모두 무시한 채로 3교시가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다음 시간은 음악 시간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들뜬 목소리로 나 선생님이라는 사람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었다. 지난번 수업 때 기타를 치며 함께 노래를 불렀던 모양이었다. 시골 촌뜨기 아니랄까 봐. 촌스럽기는. 요즘 스마트 보드에다가 영상 틀어놓고 수업하지, 누가 노래 부르고 박수치면서 놀아. 재형은 팔짱을 낀 채로, 속으로 쉬는 시간에 들려오는 아이들의 대화를 마음껏 무시했다. 이내 종이 치고 앞문이 열렸다. “어?!”학교에 울고불며 하는 상태로 끌려온 뒤로는 계속 반항하는 상태로 버티던 재형이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재형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채로 넋이 나간 재형을 본 모든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뭐야?” “왜 저래?”누가 뭐래도 재형의 시선은 인협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언젠가는 재형의 최악의 얼굴보다 훨씬 더 어두웠던 그의 얼굴에. 인협은 무표정한 채로 눈썹만 올려서 그런 재형을 쳐다보았다.“고재형, 맞지? 나는 교장선생님 손자라고 안 봐줘. 수업 시작했어, 앉아.”인협의 단호한 말에도 재형은 그대로 굳은 채로, 집게손가락으로 인협을 가리켰다.“나…. 나인협이다.” “야, 고재형! 선생님 이름을 그렇게 막 부르면 어떡해!”바로 앞자리에 앉은 맏형 기훈은 재형을 매우 걱정하며 그에게 속삭였다. 인협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재밌는 선생님이었지만, 동시에 소원 초등학교에서 가장 엄한 선생님이기도 했다. “뭐야?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교장선생님 집에서 지내다 보니, 내 이름이라도 미리 들었던 건가.인협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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