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늦은 밤.
재혁이 타고 온 차가 대문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고미혜는 현관 앞에 서서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세단의 붉은 후미등이 담장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그녀는 천천히 집 안으로 들어왔다. 거실에는 아직 저녁 식사의 온기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재혁이 앉아 있던 자리에는 마시다 남은 찻잔이 놓여 있었고, 식탁 한편에는 고미혜가 내놓았던 과일도 절반쯤 남아 있었다. 미혜는 빈자리를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게 작게 웃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은 사람이네요." 소파에 앉아조금 전 저녁 식사 중 걸려왔던 전화가 떠올랐다. 재혁과 미혜에게는 회사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고만 했던 전화. 하지만 실제 내용은 단순한 업무 보고가 아니었다. 최 실장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다시 들려왔다. "회장님, 이진성 전무와 관련된 자금 집행 내역에서 이상 정황이 추가로 확인됐습니다." 이창수의 얼굴에서 조금 전까지의 온기가 서서히 사라졌다. "아직 최종 확인 전이지만 회사 자금 일부가 정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처리된 흔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 증빙자료도 실제 거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창수는 그 자리에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오직 한마디만 했다. "확실한 증거가 나올 때까지 진성이 귀에 들어가지 않게 해." "네, 회장님." "그리고 모든 자료는 나한테 직접 가져오게." 통화는 그렇게 끝났지만 그의 마음은 끝나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이었다. 아무리 못마땅한 행동을 많이 했어도 언젠가는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회사의 돈에까지 손을 댄 것이 사실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것은 아버지가 아들을 감싸줄 수 있는 선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여보?" 미혜의 목소리에 이창수가 생각에서 깨어났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아니오." 이창수는 표정을 감
늦은 밤. 재혁이 타고 온 차가 대문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고미혜는 현관 앞에 서서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세단의 붉은 후미등이 담장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그녀는 천천히 집 안으로 들어왔다. 거실에는 아직 저녁 식사의 온기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재혁이 앉아 있던 자리에는 마시다 남은 찻잔이 놓여 있었고, 식탁 한편에는 고미혜가 내놓았던 과일도 절반쯤 남아 있었다. 미혜는 빈자리를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게 작게 웃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은 사람이네요." 소파에 앉아 있던 이창수가 안경 너머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누구 말이오?" "누구긴요. 우리 사위 말이에요." 미혜가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당신도 참." "왜?" "딸을 시집보내면서 사위가 어떤 사람인지 나한테 제대로 이야기해 준 적도 없잖아요." 이창수가 피식 웃었다. "이제 와서 그게 섭섭하오?" "섭섭하다기보다..." 미혜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오늘 처음 제
재혁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첫 번째 앨범을 펼쳤다. 첫 장에는 아주 어린 주연이 있었다. 머리를 양쪽으로 묶고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 재혁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다음 장. 조그만 가방을 메고 유치원 앞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 케이크 앞에서 볼이 터질 듯 웃고 있는 모습. 아버지의 손을 잡고 놀이공원에서 솜사탕을 들고 있는 모습. 사진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주연의 시간이 나타났다. 재혁의 손길이 점점 느려졌다. 어느 사진 앞에서는 한참을 멈춰 있기도 했다. 초등학생이 된 주연. 교복을 입은 중학생 주연. 조금씩 지금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는 고등학생 주연. 그리고 대학에 입학한 뒤의 모습까지. 시간이 흐를수록— 사진 속의 아이가 자신이 알고 있는 이주연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재혁은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마치 누군가의 소중한 비밀을 몰래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동시에 너무 늦게 도착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자신은 이 여자의 남편이었다. 그런데 정작 아내가 어떤 아이였는
현관 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왔습니다." 진성이었다. 고미혜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진성아, 저녁은?" "먹었어요." 무심한 대답과 함께 진성이 식당 쪽으로 걸어왔다. 그러다 식탁에 앉아 있는 재혁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어?" 진성의 시선이 재혁과 아버지 사이를 오갔다. "최재혁 대표가 여기 웬일이야?" 이창수가 미간을 좁혔다. "말버릇이 그게 뭐냐." 진성은 아버지의 말을 대충 흘려들으며 재혁을 바라봤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설마..." 그가 의자를 뒤로 빼며 물었다. "주연이 그 말썽쟁이 찾았나?" 순간 식탁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고미혜의 얼굴부터 굳었다. "진성아." 그러나 그보다 먼저 이창수의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네 동생이다." 진성이 아버지를 바라봤다. "그리고 사위 앞에서 말조심해." 재혁 역시 순간 미간이 좁아졌다. 자신도 모르게 불쾌감이 먼저 올라왔다. 주연을 말썽쟁이라고 부르는 진성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연의 마음의 상처가 무엇인지 보이는듯 했
넓은 원목 식탁 위에는 고미혜가 준비한 음식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화려한 만찬이라기보다는 평소 가족들이 먹는 음식에 가까웠다. 따뜻한 갈비찜과 구운 생선, 김이 피어오르는 된장찌개와 몇 가지 나물 반찬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하지만 고미혜에게 오늘 저녁 식탁은 평소와 달랐다. 결혼한 지 2년. 사위가 된 남자와 처음으로 마주 앉아 먹는 저녁이었다. 고미혜는 재혁의 앞에 국그릇을 놓아주다가 잠시 머뭇거렸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난감했다. 결혼식 이후 제대로 얼굴을 마주한 적조차 없었으니 갑자기 '최 서방'이라고 부르기에는 어색했고, 그렇다고 사위를 계속 회사에서 부르듯 대하는 것도 이상했다. 결국 입에서 나온 말은 조금 전과 같았다. "최 대표님, 많이 드세요." 그러고는 스스로도 어색했는지 작게 웃었다.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그냥 평소에 우리 식구들 먹는 대로 차렸어요." 재혁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저는 뭐든 잘 먹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어머님"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십시요” “네~ 차차 그렇게 해요.” "그리고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알려 주면, 다음에는 좋아하는 음식으로 만들어 줄게요." 다음이라는 말에 재혁의 손이 잠시 멈췄다. 다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이 집 사이에 '다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사진 한 장이 그의 시선을 붙잡았다. 발걸음이 멈췄다. "..." 재혁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사진 속에는 이창수와 고미혜, 진성.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젊은 여자가 있었다. 재혁은 움직이지 못했다. 심장이 한 번 크게 내려앉았다. '아니야.' 눈앞에 있는 얼굴을 보고도 머리가 먼저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었다. 하지만 사진 속 여자는 너무나 익숙했다. 행복나무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안고 웃던 여자.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던 여자. 엘리베이터 앞에서 자신의 뺨에 손을 대었던 여자. 영화관에서 먼저 자신의 손을 잡았던 여자. 그리고 불과 며칠 전— 자신과 같이 했던 여자. 이주연. 재혁은 천천히 액자 앞으로 다가갔다.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사진 속 주연은 지금보다 조금 어려 보였다. 하지만 틀릴 수가 없었다. 눈매도. 웃을 때 살짝 올라가는 입꼬리도. 그가 알고 있는 이주연이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수많은 장면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저 미국에서 건축 공부하고 있어요." 같은 이름. 이주연. 공공임대아파트. 그리고— 목걸이에 걸려 있던 반지. 재혁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결혼식 날 자신이 아내에게 끼워주었던 어머니의 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