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의 계약, 당신을 모른채 사랑에 빠지다.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11 - チャプター 20

32 チャプター

11화. 검은 뿔테 안경의 신부

집을 뛰쳐나온 주연은 곧장 김지혜의 원룸으로 향했다.비좁은 방이었지만, 그곳은 지금 그녀가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아버지의 서재에서 들었던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3년만 결혼해라.'그 말은 부탁이 아니라 통보였다.억울했다.잘못한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다.그런데 왜 자신의 꿈과 인생까지 담보로 잡혀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지혜는 아무 말 없이 따뜻한 차를 건네며 그녀의 곁을 지켰다.주연은 며칠 동안 친구의 작은 원룸에서 지내며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다.그사이 어머니 고미혜의 전화는 하루에도 몇 번씩 걸려왔다."주연아... 엄마야.""한 번만 집으로 돌아오면 안 되겠니?"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지만, 주연은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그렇게 시간이 흘렀다.그녀가 세상을 피해 숨어 있는 동안에도 결혼식 준비는 멈추지 않았다.마치 그녀의 의사와는 상관없다는 듯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됐다.---예식은 예상보다 훨씬 조용했다.재혁 쪽은 가족이 없었다.하객이라곤 대학 시절부터 함께 회사를 일군 친구이자 공동창업자인 강민성이 전부였다.주연 쪽도 가까운 친척들과 가족만 참석하는 작은 결혼식이었다.주연은 웨딩드레스 피팅조차 거부했다.계약이 끝난 뒤 미국으로 떠날 유학 준비만 묵묵히 했다.결혼은...그녀에게 인생이 아니라 지나가는 절차일 뿐이었다.---결혼식 당일.새벽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찾아왔지만 주연은 손을 내저었다."제가 할게요."모두가 방을 나가자 그녀는 천천히 거울 앞에 섰다.새하얀 웨딩드레스.평생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신부의 모습.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거래의 증표처럼 보였다.'돈 때문에...''내 인생을 계약서 한 장으로 바꿔 버렸어.'눈가가 뜨거워졌다.그러나 울고 싶지는 않았다.적어도 오늘만큼은.신랑이 될 남자에게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그 역시 이 결혼을 거래로 받아들였을 것이다.그렇다면 자신도 굳이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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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혼인신고

성당의 종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지며 형식적인 결혼식의 끝을 알렸다.성직자의 축복도, 하객들의 박수도 두 사람의 마음에는 닿지 않았다.그들에게 오늘은 사랑의 시작이 아니라, 계약의 시작이었다.예식이 끝난 뒤 두 사람은 사진작가의 안내에 따라 나란히 섰다."신랑, 신부님 조금만 더 가까이 서 주세요."사진작가의 부탁에 주연은 잠시 망설이다 한 걸음 다가갔다.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손 하나 들어갈 만큼의 어색한 거리가 끝내 남아 있었다.찰칵.찰칵.몇 장의 사진이 찍히고 촬영은 금세 끝났다.사진작가가 자리를 비우자 성당 안에는 어색한 침묵만 흘렀다.재혁은 잠시 망설이다가 처음으로 주연을 바라보았다.커다란 검은 뿔테 안경.일부러 망쳐 놓은 듯한 화장.그녀가 이 결혼을 얼마나 원하지 않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유학 잘 다녀오십시오."주연도 그를 바라봤다.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남자는 생각보다 훨씬 차분했고, 예상보다 훨씬 잘생겼다.하지만 그녀는 애써 감정을 숨겼다."3년 뒤에 뵙겠습니다."재혁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때까지 서로에게 피해만 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주연도 담담하게 대답했다."저도 같은 생각입니다."그것이 두 사람의 첫 대화이자, 그날의 마지막 대화였다.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아무런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법적으로는 부부였지만,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먼 타인이었다.---성당을 나오자 민성이 재혁의 어깨를 툭 쳤다."야, 최재혁.""결혼한 사람이 회사부터 가는 게 말이 되냐?"재혁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담담하게 말했다."오후에 투자 미팅이 있다.""늦을 수 없어."민성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그래도 신혼여행은 가야 하는 거 아니냐?"재혁은 차 문을 열며 짧게 말했다."계약이다.""...3년 뒤 끝난다."그 한마디에 민성은 더 이상 농담을 이어가지 못했다.재혁에게 이 결혼은 사랑도, 미래도 아닌 단 하나의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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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미국으로 떠난 아내

인천국제공항.이른 아침의 차가운 공기가 출국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고미혜는 마지막까지 딸의 옷깃을 매만졌다."거긴 한국보다 겨울이 더 춥다더라.""감기 걸리지 말고... 밥도 꼭 챙겨 먹어."애써 웃으려 했지만 끝내 눈물이 먼저 흘러내렸다.주연은 그런 어머니를 말없이 꼭 안았다."엄마.""...다녀올게."고미혜는 딸의 등을 토닥이며 울먹였다."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참지 말고 엄마한테 전화해야 한다.""알겠지?"주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이번 유학은 단순한 공부가 아니었다.건축을 배우기 위한 새로운 출발이기도 했지만,동시에 자신을 짓눌렀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망이기도 했다.최진태.계약결혼.그리고 이름뿐인 남편.한국에 남겨 둔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그 옆에서 김지혜가 일부러 밝게 웃었다."야, 이주연.""가서 세계적인 건축가가 돼.""그리고 나중에 내가 운영하는 복지관은 네가 설계해."주연도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약속.""넌 최고의 사회복지사가 되고.""난 최고의 건축가가 될게."두 사람은 손가락을 걸며 어린 시절처럼 약속했다."3년 뒤.""우리 둘 다 지금보다 훨씬 멋진 사람이 되어 만나자."탑승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주연은 마지막으로 어머니와 지혜를 바라봤다.그리고 뒤돌아보지 않은 채 출국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같은 시각.공항에서 조금 떨어진 곳.검은 세단 한 대가 조용히 서 있었다.차 안에는 이창수가 혼자 앉아 있었다.그는 차창 너머로 활주로를 바라보고 있었다.비행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그 순간.이창수는 작게 중얼거렸다."...미안하다.""...주연아."옆자리에 앉아 있던 비서가 조용히 말했다."회장님.""끝까지 공항에 함께 가시는 게 좋지 않았겠습니까?"이창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기자들이 있었다.""괜한 소문이 나면...""...또다시 저 아이가 상처를 받는다."그는 끝내 차에서 내리지 못했다.멀어지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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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2년 만의 비밀 귀국

2년 후.띠리릭―현관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따뜻한 카레 향이 좁은 원룸 안을 가득 메웠다."주연아! 아직도 안 일어났어?"김지혜가 장을 봐 온 봉지를 식탁 위에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너 한국 온 지 이틀째야.""이틀 동안 한 게 잠자는 것밖에 없잖아."침대 위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주연이 천천히 몸을 뒤척였다."...조금만."잠긴 목소리와 함께 이불 밖으로 흰 손이 불쑥 나왔다.지혜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조금만이 벌써 이틀이다.""그러다 진짜 사람 죽겠다."카레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우자 주연은 그제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대충 묶으며 하품을 한 그녀가 비몽사몽한 얼굴로 중얼거렸다."...두 주 동안 하루에 두 시간도 못 잤단 말이야."미국에서의 마지막 기말 프로젝트는 전쟁이었다.눈을 감으면 설계도가 떠올랐고,눈을 뜨면 수정해야 할 도면이 기다리고 있었다.마지막 발표를 마치자마자 캐리어 하나만 챙겨 공항으로 달려갔고,열네 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한국에 도착했다.긴장이 풀리자 그동안 참아 왔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왔다.그래서 이틀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잠만 잤다.지혜는 그런 주연을 바라보다가 문득 미소를 지었다.2년이라는 시간은 그녀를 많이 바꿔 놓았다.스물셋의 앳된 소녀는 어느새 스물다섯의 여인이 되어 있었다.맑고 투명한 눈동자는 여전했지만,그 안에는 낯선 타국에서 홀로 버텨 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함이 자리하고 있었다.차분하면서도 지적인 분위기는 그녀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있었다.주연은 카레를 한 숟갈 떠먹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역시...""네 카레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지혜는 피식 웃었다."맛있으면 많이 먹어.""미국 음식만 먹다가 고생했잖아."잠시 따뜻한 식사가 이어졌다.하지만 이내 지혜의 표정이 조심스러워졌다."...그래도 괜찮겠어?"주연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부모님께도 말씀 안 드리고 몰래 들어왔잖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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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다시 찾은 행복나무 보육원

다음 날 오후.주연은 지혜가 알려준 주소를 따라 익숙한 골목길로 들어섰다.매서운 겨울바람이 좁은 골목 사이를 휘돌며 코트 자락을 사납게 흔들었다. 주연은 베이지색 코트의 허리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손을 주머니 깊숙이 넣었다. 무릎 아래까지 올라오는 갈색 부츠가 얼어붙은 바닥을 밟을 때마다 또각또각 맑은 소리가 났다.오랜만에 걷는 길인데도 이상하리만큼 모든 것이 익숙했다.오른쪽으로 꺾으면 작은 문구점이 있었고, 그 옆 골목 끝에는 낡은 놀이터가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놀던 곳이었다.하지만 2년이라는 시간은 그 익숙한 풍경에도 조금씩 흔적을 남겨두고 있었다.문구점 간판은 색이 바래 있었고, 놀이터의 미끄럼틀에는 녹이 슬어 있었다.주연은 걸음을 늦추었다.골목 끝.낡은 철문 위로 오래된 나무 간판 하나가 보였다.행복나무 보육원.두 글자씩 정성스럽게 새겨진 이름은 그대로였지만, 간판의 페인트는 곳곳이 벗겨져 있었다.주연은 정문 앞에 멈춰 섰다.차가운 바람에 긴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얼굴에는 2년 전의 앳된 기운 대신 차분하고 세련된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낯선 나라에서 홀로 공부하며 수많은 밤을 견뎌낸 시간은 그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그러나 철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는 순간, 주연의 단단했던 표정이 순식간에 무너졌다.'그대로구나.'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주연이 조심스럽게 철문을 밀었다.끼이익―낡은 경첩이 긴 소리를 냈다.마당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 몇 명이 고개를 돌렸다.처음에는 낯선 사람을 바라보듯 눈을 깜빡이던 아이 중 한 명이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주연 이모?"그 외침에 아이들이 일제히 그녀를 바라봤다."이모다!""주연 이모 왔다!"아이들이 한꺼번에 달려왔다.주연은 미처 가방을 내려놓을 틈도 없이 아이들에게 둘러싸였다."이모, 진짜 미국 갔다 왔어요?""왜 이렇게 오래 안 왔어요?""선물 가져왔어요?"쉴 새 없이 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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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아이들과의 약속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주연은 행복나무 보육원 정문 앞에 잠시 멈춰 섰다.낡은 철문 너머로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모습이 보였다.조금 전까지 자신을 붙잡고 손을 흔들던 아이들이었다."주연 이모! 또 와야 돼요!""약속이에요!"아이들의 맑은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를 맴돌았다.주연은 조용히 손을 흔들어 보였다."약속할게."그 한마디를 남긴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하지만 골목을 빠져나가는 그녀의 표정은 무거웠다.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행복나무 보육원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갈라진 외벽.비가 새는 지붕.찬바람이 스며드는 창문.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의 방.'이대로 겨울을 보내게 둘 수는 없어.'주연은 휴대전화를 꺼내 보육원에서 찍어 온 사진을 다시 확인했다.사진을 넘길 때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건축 도면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창호를 교체하면 열 손실을 줄일 수 있다.외벽 단열을 보강하면 난방비도 절약된다.지붕 방수 공사도 반드시 필요하다.그녀의 눈빛은 어느새 건축학도의 눈빛으로 바뀌어 있었다.저녁.지혜의 원룸.식탁 위에는 보육원에서 가져온 오래된 도면과 사진들이 빼곡하게 펼쳐져 있었다.노트북 화면에는 보육원의 외벽과 창문 사진이 차례대로 나타났다.지혜는 따뜻한 유자차를 주연 앞에 내려놓으며 물었다."직접 보고 오니까 어때?"주연은 사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조용히 말했다."생각보다 더 심각해.""단순히 후원금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그녀는 마우스로 창틀 사진을 확대했다."여기 봐.""창문 틈이 너무 벌어져 있어.""보일러를 아무리 틀어도 열이 계속 빠져나가."이번에는 천장 사진을 띄웠다."누수도 오래된 것 같아.""겉만 고치면 몇 년 안 가 또 문제가 생길 거야."지혜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주연은 빈 종이를 꺼내 연필을 들었다.사각사각.연필 끝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낡은 보육원의 평면도 위로 새로운 공간이 그려졌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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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방학 동안만

다음 날 아침.겨울 햇살이 유리창 너머로 부드럽게 스며들었다.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한 주연은 단정한 크림색 니트와 검은 슬랙스 위에 베이지 코트를 걸쳤다. 긴 생머리를 자연스럽게 묶은 그녀는 안경을 고쳐 쓰며 현관 앞에 섰다."준비됐어?"신발을 신던 지혜가 웃으며 물었다.주연도 가볍게 미소 지었다."응.""오늘부터 열심히 일해야지."두 사람은 함께 복지지원센터로 향했다.한국에 돌아온 지 사흘째.하지만 아직 부모님도, 재혁도 그녀가 귀국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그 사실이 오히려 주연을 조금은 편안하게 만들었다.복지지원센터는 아침부터 분주했다.전화벨이 끊임없이 울렸고,직원들은 상담 일정과 방문 계획을 확인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복도에는 아이들이 그려 준 그림들이 붙어 있었고,대기실에서는 도움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주연은 그 풍경을 천천히 둘러보았다.'이곳도 보육원만큼 많은 사람들이 애쓰고 있구나.'지혜는 그녀를 사무실 안으로 데려갔다."여러분.""오늘부터 겨울방학 동안 봉사활동을 함께하게 된 분이에요.""이주연 씨입니다."직원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주연에게 향했다.주연은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안녕하세요.""잘 부탁드립니다."한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지혜 씨 친구라면서요?""방학인데 쉬지 않고 봉사까지 하다니 대단하네요."주연은 수줍게 웃었다."제가 도움을 더 많이 받을 것 같아요."사무실에는 금세 부드러운 웃음이 퍼졌다.잠시 후.한 여성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단정한 숏커트.깔끔한 정장.차분하지만 강단 있는 눈빛.그녀가 들어서자 사무실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정돈되었다."회의 시작하겠습니다."그녀는 성주하였다.복지지원센터에서 기업 후원과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팀장이자, 누구보다 현장을 잘 아는 베테랑 사회복지사였다.회의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빔프로젝터 화면에는 여러 복지시설의 현황이 차례대로 나타났다.행복나무 보육원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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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아내를 기억하지 못하는 남편

뉴럴링크 방문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성주하와 주연은 그 후로도 며칠 동안 수십 개의 기업을 찾아다녔다.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죄송합니다.""올해 사회공헌 예산은 이미 모두 집행되었습니다.""좋은 취지인 것은 알지만 검토가 어렵겠습니다."정중한 미소 뒤에는 단호한 거절이 기다리고 있었다.어떤 곳은 제안서조차 받아 주지 않았고,어떤 곳은 담당자를 만나지도 못한 채 돌아서야 했다.하루 종일 걸어 다닌 두 사람의 발은 퉁퉁 부어 있었다.복지센터로 돌아오는 버스 안.창밖을 바라보던 주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생각보다 어렵네요."성주하는 피곤한 미소를 지었다."후원 하나 받는 게 원래 그래요.""그래도 포기하면 안 되죠."그리고 마지막 일정표를 펼쳤다.맨 마지막 줄.뉴럴링크"이제 여기가 남았네요."다음 날.뉴럴링크 사회공헌팀.담당자는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다."제안서는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특히 공간 개선 계획은 기존 제안들과 차별성이 있었어요."주연은 긴장했던 어깨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하지만 담당자의 다음 말은 예상 밖이었다."다만...""저희 회사는 최종 후원 여부를 대표님께서 직접 결정하십니다.""...대표님이요?""네.""대표님은 사회공헌 사업만큼은 반드시 직접 제안자를 만나십니다."순간.주연의 표정이 굳었다.성주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웃으며 말했다."그럼 저희는 대표님 일정에 맞추겠습니다."담당자가 일정을 확인했다."대표님이 해외 출장을 가셔서...""모레 오전 열 시가 가능합니다."주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결국.만나야 했다.모레.뉴럴링크 본사.최상층 비서실.예정보다 삼십 분 일찍 도착한 두 사람은 접견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긴장한 주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차가운 물로 손을 씻으며 거울을 바라보았다.'괜찮아.''그 사람은 날 기억하지 못할 거야.''아니... 기억하면 안 돼.'그때.안쪽에서 두 여직원의 목소리가 들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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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행복나무 자원봉사자

넓고 세련된 집무실.천장까지 이어진 통유리 너머로 겨울 햇살이 도심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차분한 공기 속에서 주연은 긴장한 손으로 명함을 꺼내 재혁에게 내밀었다.재혁은 자연스럽게 명함을 받아 들었다.그리고 시선이 한곳에서 멈췄다.이주연명함 위에 새겨진 세 글자.이름을 바라보던 그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이주연...'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다.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오래전 누군가가 건네준 서류 속에서 본 것 같기도 했다.하지만 그 기억은 짙은 안개 속에 묻혀 있었다.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지낸 수많은 이름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그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그 모습을 본 주연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설마...''기억난 건 아니겠지?'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왜 그러시나요?"재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아닙니다.""이름이 어디선가 익숙한 것 같아서요."잠시 생각하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착각이었군요."주연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속으로는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다행이다.''기억하지 못해.'아니,기억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그들의 결혼은 서로를 알기 위해 시작된 결혼이 아니었으니까.주연은 마음을 가다듬고 준비해 온 제안서를 펼쳤다."행복나무 보육원의 리모델링은 단순한 시설 보수가 아닙니다."빔 화면에 건물 단면도가 나타났다."외벽 단열재를 교체하고 고효율 창호를 적용하면 겨울철 난방비를 약 40% 절감할 수 있습니다."다음 장으로 화면이 넘어갔다."절감된 운영비는 아이들의 교육 프로그램과 급식 예산으로 재투자할 수 있습니다."성주하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주연은 계속 설명했다."또한 지역 주민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작은 북카페와 학습 공간을 조성하면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도 일회성 후원이 아닌 지속 가능한 지역 프로젝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그녀는 감성에 호소하지 않았다.숫자로 설명했고,자료로 증명했으며,공간이 사람의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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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다시 걸려온 전화

뉴럴링크 본사를 빠져나온 두 사람은 말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닫히는 문과 함께 팽팽하게 조여 있던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성주하가 길게 숨을 내쉬며 주연을 바라봤다."주연 씨.""네?""오늘 정말 잘했어요."주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성주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최 대표가 그렇게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인 줄은 몰랐네요.""그렇게 꼬치꼬치 묻는데도 하나도 당황하지 않고 다 대답하더라고요.""덕분에 오늘 인상은 확실히 남았을 거예요."주연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감사합니다.""팀장님께서 미리 준비를 많이 시켜주신 덕분이에요."겉으로는 담담했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역시…. 알아보지 못했어.'예상했던 일이었다.결혼식 날의 그녀는 지금과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촌스러운 검은 뿔테 안경.일부러 짙게 칠한 화장.평생 다시는 만나지 않을 사람처럼 자신을 숨겼다.게다가 그들에게 결혼은 사랑이 아니라 계약이었다.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그런데도….가슴 한쪽이 이상하게 저려왔다.'법적으로는 부부인데.''그 사람에게 나는 그냥 처음 보는 여자일 뿐이구나.'지하주차장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두 사람은 차를 향해 걸어갔다.운전석에 앉은 주연은 시동을 걸기 전, 오늘의 미팅을 다시 떠올렸다.결혼식에서 봤던 최재혁은 차갑고 가까이하기 어려운 남자였다.하지만 오늘 마주한 그는 조금 달랐다.질문은 날카로웠다.때로는 사람을 압박할 정도였다.하지만 단 한 번도 상대를 무시하지 않았다.그의 질문은 모두 프로젝트의 본질을 향하고 있었다.'감정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구나.''모든 걸 숫자와 논리로 판단하는 사람이야.'그 생각과 함께 또 다른 사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괜히 뉴럴링크를 여기까지 키운 사람이 아니네.'복지지원센터.오후 회의실.각 팀이 오늘 기업 방문 결과를 보고하고 있었다."태명유통은 올해 사회공헌 예산이 이미 끝났답니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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