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3년의 계약, 당신을 모른채 사랑에 빠지다.: Chapter 31 - Chapter 40

126 Chapters

31화. 집으로 가는 길

레스토랑의 묵직한 문이 천천히 열렸다.두 사람은 나란히 밤거리로 걸어 나왔다.화려한 가로등 불빛이 젖은 아스팔트 위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고, 12월 중순의 차가운 겨울바람이 두 사람의 옷깃을 스쳐 지나갔다.분명 날씨는 차가웠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에는 식지 않는 온기가 남아 있었다.재혁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세단이 주차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걸음을 멈췄다.그리고 주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모셔다드리겠습니다."주연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가볍게 저었다."괜찮습니다, 대표님. 여기서 택시 타면 금방이에요.""시간이 늦었습니다.""이 동네는 익숙해서 정말 괜찮아요."재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눈빛만큼은 달랐다."...걱정돼서 그렇습니다."짧은 한마디였다.하지만 그 말에는 억지로 권하는 사람의 강압도, 대표의 명령도 담겨 있지 않았다.그저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주연은 잠시 망설였다.회사 대표가 직접 데려다주겠다고 하는데 계속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무엇보다...그의 걱정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럼."그녀가 작은 미소를 지었다."근처까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재혁도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나란히 차에 올랐다.문이 닫히는 순간, 도심의 소음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재혁은 시동을 걸었고, 세단은 부드럽게 도로 위를 미끄러지기 시작했다.라디오에서는 잔잔한 재즈가 흘러나왔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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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넌 유부녀야

아파트 단지 앞 골목.희미한 가로등 아래로 두 사람의 그림자가 나란히 길게 늘어졌다.지혜는 하얀 비닐봉지에서 군고구마 하나를 꺼냈다. 뜨거운 껍질을 조심스럽게 벗기자 노란 속살 위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군고구마를 호호 불던 지혜가 주연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슬쩍 찔렀다.“그래서?”주연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돌아보았다.“뭐가?”“모르는 척하기는.”지혜가 눈을 반짝이며 주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최재혁 대표랑 단둘이 저녁까지 먹었다며. 그것도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단둘이 먹으려고 한 건 아니야. 성 팀장님에게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신 거라고 했잖아.”“결과적으로는 둘이 먹었잖아.”지혜가 군고구마를 한입 베어 물며 짓궂게 웃었다.“어땠어?”“뭐가 어때.”“분위기 말이야, 분위기.”“그냥 회의의 연장이었어. 낮에 다 끝내지 못한 보육원 설계 변경안도 이야기하고, 공사 일정도 다시 확인하고.”“정말 그게 전부야?”“그게 전부지. 그럼 뭐가 더 있어?”주연은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말끝이 조금 흐려졌다.오늘 밤 재혁과 나누었던 대화들이 차례로 떠올랐기 때문이다.왜 건축가가 되었느냐고 묻던 진지한 목소리.누군가에게 받은 빚을 갚는 것이라고 말하던 의미심장한 눈빛.그리고 늦은 밤, 자신을 집까지 데려다주며 했던 말.걱정돼서 그렇습니다.그 한마디를 떠올리는 순간, 주연의 심장이 다시 작게 흔들렸다.지혜는 주연의 얼굴에 스쳐 지나간 미묘한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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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말하지 못하는 이유

하지만 지혜에게까지 계속 숨기고 싶지는 않았다.행복나무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뒤, 누구보다 오랫동안 자신의 곁을 지켜 준 친구였다.지혜라면 적어도 자신의 선택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지혜야.”주연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응?”“나…… 너한테 할 말이 있어.”지혜는 주연의 달라진 표정을 알아차리고 자세를 바로 했다.“뭔데?”주연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잠시 후, 결심한 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최재혁 대표가…….”“대표가 왜?”“내 남편이야.”지혜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군고구마를 집으려던 손도 허공에서 그대로 멈췄다.“뭐?”주연은 지혜의 눈을 피하지 않고 다시 말했다.“최재혁 대표가 내 법적인 남편이라고.”몇 초 동안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지혜는 주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처럼 눈만 깜빡였다.그러다 갑자기 골목이 울릴 만큼 큰 목소리로 외쳤다.“뭐라고?”“지혜야, 목소리 낮춰.”“지금 목소리가 문제야?”지혜가 황급히 주연에게 가까이 다가왔다.“잠깐만. 내가 잘못 들은 거지? 뉴럴링크 대표 최재혁이 네 남편이라고?”주연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응.”“그 최재혁?”“응.”“방금 너를 차로 데려다준 그 남자가?”“맞아.”지혜는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세상에…….”충격을 받은 지혜가 골목을 몇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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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사람 없는 집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펜트하우스 층에는 층마다 단 두 세대만 자리하고 있었다. 호텔 로비를 연상시키는 대리석 바닥과 은은한 조명, 24시간 상주하는 컨시어지와 철저한 보안 시스템.누구나 한 번쯤 살아보고 싶어 하는 성공의 상징.최재혁이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마련한 집이었다.엘리베이터가 조용히 멈추고 문이 열렸다.재혁은 익숙한 걸음으로 복도를 지나 현관문 앞에 섰다.지문을 인식하는 순간, 묵직한 전자음과 함께 문이 천천히 열렸다.현관 센서등이 노란빛을 잠시 비추더니 곧 다시 꺼졌다.집 안은 어둠과 함께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재혁은 굳이 거실 조명을 켜지 않았다.어둠 속이 오히려 익숙했다.넓은 거실에는 흔한 TV조차 없었다.벽에는 가족사진은 물론 액자 하나 걸려 있지 않았고, 사람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장식품도 없었다.깔끔하게 정돈된 공간.필요한 가구만 놓여 있을 뿐, 생활의 흔적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주방으로 시선을 돌리자 대리석 식탁 위에는 생수 한 병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냉장고를 열어도 다르지 않았다.차가운 생수와 캔커피 몇 개.그것이 전부였다.누군가 처음 이 집을 본다면,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라기보다,잘 관리된 호텔 스위트룸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랐다.재혁은 코트 단추를 풀어 소파 위에 걸쳐 두고 천천히 몸을 기대었다.길게 숨을 내쉬자 적막만이 집 안을 가득 메웠다.문득 오래전 기억들이 떠올랐다.겨울이면 창틀 사이로 찬바람이 스며들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양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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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대표가 아닌 최재혁

아침 햇살이 복지사무실 창문 너머로 조용히 스며들었다.창가를 따라 늘어선 화분 위로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았지만, 사무실 안 공기는 조금 무거웠다.주연과 지혜는 책상 위에 펼쳐진 설계도와 견적서를 번갈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행복나무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되기까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하지만 공사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더 큰 문제가 있었다.공사 기간 동안 아이들과 김미숙 원장, 그리고 직원들이 생활할 임시 거처를 마련하는 일이었다.지혜가 계산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주연아, 이거 생각보다 비용이 훨씬 많이 들어가.""아이들 열다섯 명에 선생님들까지 몇 달 동안 생활하려면 숙소 하나만 구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잖아.""공부할 공간도 필요하고, 식사도 해야 하고…."주연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설계는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었다.하지만 아이들이 머물 공간은 현실이었다.그때 김미숙 원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괜히 우리 때문에 뉴럴링크에 너무 큰 부담을 드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네요.""임시 거처 비용까지 부탁드리는 게 자꾸 마음에 걸려요."주연은 미소를 지으며 원장의 손을 가볍게 감싸 쥐었다."원장님.""아이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이번 프로젝트의 일부예요.""공사가 아무리 잘 끝나도 아이들이 불편하면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걱정하지 마세요."그녀는 곧바로 노트북을 열었다.추가 예산안.임시 거처 계획.공사 일정.필요한 자료를 하나씩 정리한 뒤 뉴럴링크 사회공헌팀 앞으로 메일을 보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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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그의 또 다른 얼굴

토요일 아침.행복나무 보육원은 평소보다 조금 더 분주했다.아이들은 주말이라 들뜬 얼굴로 마당을 뛰어다녔고, 복지사들은 공사 전 정리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주연과 지혜도 이른 아침부터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자, 받아쓰기 끝난 사람은 독서실로 가요.""와아!"아이들이 우르르 달려가자 지혜가 웃으며 말했다."오늘은 애들이 공부가 왜 이렇게 잘 되는지 모르겠다."주연도 미소를 지었다."오늘 특별한 손님이 오시잖아."그 말을 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시계를 바라보는 자신을 발견했다.오전 열 시.최재혁이 오기로 한 시간이었다.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김 비서였다."이주연 씨, 죄송합니다.""대표님께서 급하게 해외 투자사와 화상회의가 잡혀 오전 방문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오후 세 시쯤 방문 가능하실 것 같습니다."주연은 잠시 침묵하다가 담담하게 대답했다."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그녀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대표님도 바쁜 사람이니까.''괜히 내가 기대했던 거야.'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조금 허전했다.---오후 세 시.보육원 앞에 검은 SUV 한 대가 천천히 멈춰 섰다.아이들이 동시에 외쳤다."대표 아저씨 왔다!"차 문이 열렸다.그 모습을 본 주연은 순간 눈을 깜빡였다.평소처럼 검은 정장 차림일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오늘의 최재혁은 전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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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둘만의 귀갓길

저녁 식사가 끝나자 행복나무 보육원은 다시 조용한 일상을 되찾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하나둘 목욕을 준비하며 생활관으로 들어갔고, 마당에는 겨울 저녁의 차가운 공기만이 잔잔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재혁은 차 키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돌리며 주연을 바라보았다. "늦었습니다." "집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주연은 손사래를 쳤다. "괜찮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 "이 시간에는 버스 배차 간격도 길어집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재혁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가는 길이니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더 이상 거절하는 것이 오히려 어색했다. 주연은 작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차 안은 따뜻했다. 히터에서 흘러나오는 온기가 겨울밤의 차가운 공기를 천천히 밀어냈다. 지난번과는 달리 어색한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재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아이들이 생각보다 축구를 잘하더군요." 주연이 웃었다. "대표님이 일부러 져주셨잖아요." 재혁도 작게 웃었다. "티가 났습니까?" "조금요." "막을 수 있는 공이었는데 일부러 늦게 뛰셨어요." 재혁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들은 이기는 기억을 오래 간직하니까요." 주연은 그 말을 들으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이 사람은 아이들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어.' 잠시 후. 대화는 자연스럽게 공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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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다시 보게 된 남자

낡은 엘리베이터가 덜컹거리며 천천히 멈춰 섰다.문이 열리자 주연은 천천히 복도를 걸어 집 앞에 섰다. 도어락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지만, 가슴속을 울리던 심장의 고동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조금 전.아파트 복도에서 미끄러질 뻔한 자신을 붙잡아 주던 재혁의 두 팔.순간적으로 자신을 감싸 안았던 단단한 품.그리고 너무도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했던 그의 눈빛이 자꾸만 떠올랐다.'왜 이렇게 계속 생각나는 거지...'주연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신발을 벗었다."왔어?"거실 소파에 기대어 TV를 보고 있던 지혜가 몸을 일으켰다.그녀는 주연의 얼굴을 보자마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어머?""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밖에 그렇게 추웠어?"주연은 깜짝 놀라 양손으로 볼을 감쌌다."아, 아니야.""그냥... 바람이 좀 차가워서."지혜는 피식 웃으며 팔짱을 꼈다."바람 때문이라고?""네 얼굴에는 지금 '오늘 무슨 일 있었어요.'라고 써 있는데?"주연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가방을 내려놓았다."너 정말 눈치는 빠르다."지혜는 기다렸다는 듯 소파를 두드렸다."자.""앉아.""인생 선배가 상담해 줄 테니까."주연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네가 왜 인생 선배야?""연애 경험은 내가 훨씬 많잖아.""그러니까."지혜가 능청스럽게 웃었다."경험 많은 선배 말씀 좀 들어보시지."두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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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멀어져야 하는 사람

뉴럴링크 본사 대표실.거대한 통유리창 너머로 새벽의 푸른 여명이 도시를 천천히 물들이고 있었다.그러나 집무실 안은 차가운 정적만이 감돌았다.최재혁은 책상 앞에 앉아 결재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평소라면 몇 분이면 끝났을 업무였다.하지만 오늘은 달랐다.펜을 든 손이 어느 순간 멈췄다.눈앞의 숫자는 보이지 않았다.대신 머릿속에는 전혀 다른 장면이 떠오르고 있었다.행복나무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아이들과 함께 웃던 이주연.회의실에서 설계 도면을 설명하던 차분한 목소리.그리고...그날 밤.아파트 앞에서 미끄러지던 그녀를 붙잡았던 순간.자신의 품 안으로 스며들던 따뜻한 체온.차가운 겨울바람을 머금은 머리카락에서 은은하게 스쳐 지나가던 향기까지.재혁은 눈을 감았다."..."그 짧은 순간이 왜 이렇게 선명한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결국 그는 펜을 내려놓고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하..."낮은 한숨이 흘러나왔다.'왜 자꾸 생각나는 거지.'회의를 해도.보고서를 읽어도.커피를 마시는 순간에도.문득문득 그녀가 떠올랐다.그 사실이 오히려 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재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차가운 유리창에 손을 짚은 채 낮게 중얼거렸다."잊어.""더 이상 생각하지 마."잠시 침묵이 흘렀다.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못을 박듯 말했다."나는 유부남이다."그 한마디는 누구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자신을 향한 경고였다.책상 서랍을 열자 오래전 형식적으로 작성했던 혼인 계약서 사본이 눈에 들어왔다.그 위에는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이주연.그가 알고 있는 아내는 지금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다.두꺼운 뿔테안경.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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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가까워지려는 그녀, 멀어지려는 그

뉴럴링크 본사 3층 대회의실.통유리 너머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회의실 안의 공기는 유난히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최재혁은 회의실 한가운데 앉아 도면을 바라보고 있었다.오늘만큼은 반드시 선을 그어야 했다.지난 며칠 동안 그는 깨달았다.이주연이라는 여자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숙이 마음속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그 사실이 두려웠다.'업무만 끝낸다.''그 이상은 없다.'그것이 자신과 그녀를 모두 지키는 길이라고 믿었다.그래서 일부러 대표실이 아닌 대회의실을 선택했다.대표실은 너무 가까웠다.단둘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지나치게 사적인 공간이었다.잠시 후 문이 열렸다.주연이 도면 가방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안녕하세요, 대표님."평소처럼 밝게 인사하는 그녀를 보면서도 재혁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앉으시죠."짧고 건조한 한마디.비서는 커피를 준비하지 않았다.환영 인사도 없었다.회의실에는 서류를 넘기는 소리만 조용히 울렸다.주연은 작은 위화감을 느꼈다.'무슨 일 있나...?'며칠 전 보육원에서 보았던 따뜻한 재혁의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하지만 애써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도면을 펼쳤다.회의는 시작됐다."이 부분은 공사 기간이 이틀 정도 늘어납니다.""예산은?""추가 자재 때문에 약 3퍼센트 정도 증가합니다.""절감 방안을 다시 검토해 주십시오."모든 대화가 숫자와 일정뿐이었다.재혁은 단 한 번도 그녀의 눈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주연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왜 이렇게까지...''일만 하려고 하지?'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표님."재혁은 펜 끝을 멈췄지만 고개는 들지 않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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