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3년의 계약, 당신을 모른채 사랑에 빠지다.: Chapter 21 - Chapter 30

32 Chapters

21화. 그녀의 설계, 그의 시선

뉴럴링크 본사 최상층 대회의실.유리문이 부드럽게 열리자 이주연과 성주하 팀장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지난번 대표 집무실에서 진행했던 미팅과는 분위기부터 달랐다.긴 타원형 테이블을 중심으로 사회공헌팀은 물론 재무팀, ESG경영팀, 시설관리팀까지 프로젝트와 관련된 핵심 실무진들이 이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회의실 가장 안쪽.긴 테이블 끝자리에 앉은 최재혁이 회의 자료를 넘기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잠깐.그의 시선이 주연에게 머물렀다.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뿐이었다.재혁은 다시 시선을 자료로 내리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회의실 안이 조용해졌다.직원들 사이에서는 작은 속삭임이 오갔다."보육원 리모델링 프로젝트 하나에 재무팀까지 참석했다고?""ESG팀도 전부 왔네.""대표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참석하는 회의는 정말 드문데…."누구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재혁 역시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주연은 노트북을 연결한 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긴장하지 말자.''오늘은 아이들을 대신해서 이야기하는 날이야.'프레젠테이션 첫 화면이 회의실 스크린에 떠올랐다.하지만 그곳에는 화려한 건축 조감도도,세련된 3D 모델링도 없었다.한겨울.낡은 보육원 방 안.두꺼운 패딩을 입은 채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의 뒷모습이었다.회의실 안이 조용해졌다.주연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이 아이들은 공부를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다."잠시 말을 멈춘 그녀는 다음 사진을 넘겼다.깨진 창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찬바람.곰팡이가 핀 벽.낡은 보일러."추워서 집중할 수 없는 것입니다."회의실 공기가 조금씩 무거워졌다.주연은 천천히 화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건물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합니다."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단단했다."하지만 지금 행복나무 보육원의 건물은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습니다."이번에는 건축 도면이 화면에 나타났다.난방 시스템 개선.창호 교체.단열 성능 향상.태양광 설비.그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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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보육원을 방문한 재혁

이른 아침.행복나무 보육원 앞에 검은 세단 여러 대가 차례로 멈춰 섰다.차문이 열리자 최재혁을 비롯해 ESG경영팀장, 사회공헌팀장, 시설관리팀장, 재무팀 직원, 그리고 김 비서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오늘 일정은 뉴럴링크 사회공헌 프로젝트의 공식 현장실사.누가 보아도 회사 차원의 공식 일정이었다.보육원 원장은 긴장된 얼굴로 직원들과 함께 입구에서 그들을 맞이했다."멀리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재혁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베이지색 코트를 입은 주연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안녕하세요. 설계를 맡은 이주연입니다."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마주쳤다.재혁은 담담하게 말했다."오늘 잘 부탁드립니다."업무적인 인사였다.하지만 주연은 지난 회의실에서보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는 것을 느꼈다.현장실사는 곧바로 시작됐다.주연은 가장 먼저 건물 북쪽 끝으로 재혁 일행을 안내했다."대표님, 이곳이 겨울마다 가장 먼저 얼어붙는 방입니다."그녀는 창틀을 손으로 짚었다.차가운 금속의 냉기가 손끝으로 전해졌다."보일러를 아무리 올려도 온기가 이 방까지는 전달되지 않습니다.""창문 단열도 거의 기능을 잃었습니다."재혁은 아무 말 없이 창틀을 직접 만져 보았다.차가웠다.보고서에서 수없이 읽었던 내용이었지만,손끝으로 느끼는 현실은 전혀 달랐다.다음은 독서실이었다.낡은 창문 틈으로 겨울바람이 스며들었다.책상 앞에는 두꺼운 털장갑을 낀 아이가 연필을 꼭 쥔 채 숙제를 하고 있었다.손등은 추위에 빨갛게 터 있었다.재혁은 말없이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난방 효율 저하.'보고서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하지만 눈앞에 있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추위를 견디며 공부하는 한 아이였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그의 시선은 오래도록 그 아이에게 머물렀다.그때 복도 끝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주연 선생님!"아이들이 우르르 달려왔다.실사단의 분위기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선생님이다!"주연은 웃으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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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기쁨과 설렘,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인연

나른한 오후.복지사무소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와 프린터가 종이를 뱉어내는 소리가 조용히 사무실을 채우고 있을 때였다."주연 씨!"갑자기 성주하 팀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사무실을 울렸다.모니터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져 있었고, 떨리는 손은 여전히 마우스를 붙잡고 있었다."후원 승인이에요!"성주하의 외침에 사무실 안의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뉴럴링크에서 행복나무 보육원 후원 최종 승인 메일이 왔어요!"순간 사무실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정말요?""드디어 됐어요!"지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연을 힘껏 끌어안았다."주연아! 해냈어!"직원들은 서로를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눴다.몇 주 동안 수십 개 기업의 문을 두드리며 거절당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그 모든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주연도 참아왔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긴장으로 굳어 있던 어깨가 그제야 조금 내려앉았다.아이들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다행이다….''이제 아이들이 올겨울만큼은 춥지 않겠구나.'주연은 곧바로 행복나무 보육원의 김미숙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원장님, 저 주연이에요.""응, 주연아.""좋은 소식이 있어서요."잠시 숨을 고른 주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뉴럴링크에서 후원이 최종 승인됐어요.""이제 보육원 공사를 시작할 수 있어요."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한동안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원장님?"잠시 후.떨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정말이니?"김미숙 원장의 목소리는 금세 울음으로 젖어 들었다."정말… 우리 아이들이 따뜻한 방에서 겨울을 보낼 수 있는 거니?"주연의 눈시울도 붉어졌다."네.""이제 괜찮아요."김미숙 원장은 창밖을 바라보았다.마당에서는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환하게 웃으며 뛰놀고 있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다."하나님… 감사합니다."며칠 뒤.김미숙 원장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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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말할 수 없는 관계

복지사무소의 작은 탕비실.달콤한 믹스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가운데 지혜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주연의 어깨를 툭 쳤다."주연아.""응?""내 촉인데... 이번에는 진짜 맞는 것 같아."주연은 머그잔을 헹구던 손을 멈추고 의아한 표정으로 지혜를 바라봤다."갑자기 무슨 촉?"지혜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최재혁 대표.""너한테 관심 있는 것 같아."순간.주연의 손끝이 움찔했다.하마터면 들고 있던 머그잔을 놓칠 뻔했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대기업 대표가 나 같은 사람한테 왜 관심을 가져?"지혜는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을 접으며 하나씩 세기 시작했다."첫째.""대표가 직접 너를 다시 만나자고 했고.""둘째.""현장실사까지 직접 나왔고.""셋째.""설계 수정이라는 이유로 또 너를 지목했잖아."지혜는 장난스럽게 웃었다."이 정도면 드라마에서는 이미 남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진 단계야."주연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다.""설계 수정 때문에 부르는 거겠지.""괜한 상상하지 마."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흔들렸다.'설마…'곧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니야.''그럴 리 없어.'잠시 커피를 마시던 지혜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아, 맞다.""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뭔데?""너 결혼한 거.""대표님한테 말할 거야?"주연의 표정이 굳었다."..."지혜는 아무것도 모른 채 말을 이었다."물론 계약결혼이고.""지금은 남처럼 지낸다지만.""그래도 법적으로는 유부녀잖아."주연은 대답 대신 시선을 커피잔으로 내렸다.'결혼했다고 말하면…''언젠가는.''남편이 최재혁이라는 사실도 드러나겠지.'그 순간.2년 전 차가운 예식장이 떠올랐다.두꺼운 검은 뿔테안경.촌스러운 화장.형식적인 인사.그리고 마지막으로 들었던 그의 목소리."3년 뒤에 뵙겠습니다."그는 지금도 자신의 얼굴을 모른다.자신을 기억하지도 못한다.그런 사람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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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다시 마주한 두 사람

오후의 햇살이 뉴럴링크 본사 로비의 거대한 통유리창을 통과해 대리석 바닥 위로 부드럽게 쏟아졌다.회전문 앞에 멈춰 선 주연은 코트의 허리끈을 다시 한번 단단히 조여 맸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가슴 안쪽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감이 잔잔하게 번지고 있었다.오늘은 행복나무 보육원 설계 변경안을 논의하기 위한 공식 미팅이었다.그뿐이었다.그렇게 생각하며 주연은 짧게 숨을 골랐다.그러나 전날 지혜가 했던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최재혁 대표, 너한테 관심 있는 것 같아.’“말도 안 돼.”주연은 자신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리며 로비 안으로 들어섰다.지난번 뉴럴링크를 처음 방문했을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당시에는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사회공헌 제안서를 들고 찾아온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하지만 오늘은 달랐다.안내데스크 직원은 주연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이주연 씨이시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네. 행복나무 보육원 설계 변경 미팅 때문에 왔습니다.”“알고 있습니다. 15층 대표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대표실?’주연은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눈을 깜빡였다.“회의실이 아니라 대표실인가요?”“네. 대표님께서 직접 미팅을 진행하실 예정입니다.”직원의 설명에도 주연의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보육원 한 곳의 리모델링을 위해 대기업 대표가 직접 현장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수정 설계 미팅까지 대표 집무실에서 직접 진행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엘리베이터가 15층에 도착하자 김 비서가 기다리고 있었다.“오셨습니까, 이주연 씨.”“안녕하세요, 비서님.”김 비서는 가볍게 목례한 뒤 복도 끝에 자리한 대표 집무실로 주연을 안내했다.“대표님께서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정말 직접 기다리고 있다고?’가슴이 이유 없이 한 번 크게 뛰었다.주연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려 애쓰며 김 비서가 열어 주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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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닮은 고집

주연은 도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재혁이 제시한 공간은 기존 창고와 오래된 세탁실 일부를 철거하고, 뒤편 공터까지 연결해야 확보할 수 있었다. 단순한 내부 공사가 아니라 구조 변경과 증축 허가까지 고려해야 하는 규모였다.마음만으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주연은 도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대표님이 말씀하신 공간이 아이들에게 필요하다는 점에는 저도 동의합니다.”재혁은 대답 없이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하지만 지금 이 구조에서 다목적 공간을 추가하려면 단순한 리모델링으로는 어렵습니다. 일부 벽체를 철거하고 뒤쪽 공간까지 증축해야 해요.”“그래서 변경안을 요청한 겁니다.”“문제는 공사 기간입니다.”주연은 수정 도면을 펼치며 설명을 이어 갔다.“현재 계획대로라면 겨울이 오기 전에 난방과 누수 공사를 끝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증축까지 시작하면 구조 안전진단과 허가 절차 때문에 일정이 최소 두 달 이상 늘어날 수 있어요.”재혁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기간이 늘어나더라도 제대로 만드는 편이 낫습니다.”“그동안 아이들은 어디에서 지내죠?”“인근에 임시 거주 공간을 마련하면 됩니다.”“말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주연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아이들에게 보육원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에요. 익숙한 선생님과 친구들이 함께 생활하는 집입니다. 공사가 길어진다는 이유로 낯선 장소를 계속 오가게 하면 아이들이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재혁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그렇다고 당장의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공간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포기하자는 게 아닙니다. 순서를 조정하자는 겁니다.”“어떻게 말입니까?”주연은 준비해 온 도면 위에 연필로 선을 그었다.“먼저 기존 건물의 누수와 난방, 생활실 보수 공사를 진행합니다. 아이들이 겨울을 안전하게 보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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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회의의 연장

두 사람이 설계를 수정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오후의 밝은 햇살로 가득했던 집무실은 어느새 어둠에 잠겨 있었다. 통유리창 너머로 빌딩의 불빛들이 하나둘 켜졌고, 서울의 야경이 검은 유리 위로 화려하게 펼쳐졌다.주연은 마지막 수정 사항을 확인한 뒤 노트북을 덮었다.“이 정도면 공사 기간을 크게 늘리지 않으면서도 다목적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재혁도 완성된 도면을 바라보았다.주연이 제안한 단계별 시공과 자신이 요구한 다목적 공간 확장안이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있었다.“예상보다 좋은 결과가 나왔군요.”“대표님 의견이 아니었다면 다목적 공간까지 추가할 생각은 못 했을 거예요.”주연은 솔직하게 인정했다.“현장을 보는 시선이…… 생각보다 세심하시네요.”재혁은 그녀의 표현을 놓치지 않았다.“생각보다라.”“…….”주연은 자신이 속마음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입술을 다물었다.재혁의 입가에 아주 옅은 미소가 스쳤다.“이주연 씨가 처음에 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조금 궁금해지는군요.”“그건…….”주연은 대답을 피하며 서류를 정리했다.“설계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그렇군요.”재혁은 더 묻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에는 전에 없던 흥미가 어려 있었다.그때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김 비서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와 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대표님, 예약해 두신 저녁 식사 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재혁은 그제야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시계는 이미 저녁 7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그의 얼굴에 보기 드문 미안한 기색이 스쳤다.재혁은 주연을 바라보았다.“회의가 길어져 이주연 씨의 저녁 시간까지 빼앗은 것 같습니다.”주연도 시간을 확인하고 놀란 표정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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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두 사람만 남겨진 시간

뉴럴링크 본사에서 차로 십여 분 남짓. 도심의 번잡함을 벗어난 곳에 자리한 프라이빗 레스토랑은 조용하면서도 품격 있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검은 대리석 바닥과 은은한 조명이 어우러진 복도를 지나자 외부의 시선을 완벽하게 차단한 독립된 룸이 모습을 드러냈다. 뉴럴링크가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이나 임원진 식사 장소로 자주 이용하는 곳답게, 과하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분위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재혁이 먼저 의자를 당겨 주었다. "앉으시죠." "...감사합니다." 주연은 잠시 망설이다 자리에 앉았다. 곧이어 성주하도 맞은편에 자리를 잡으며 미소를 지었다. "대표님, 오늘은 정말 감사합니다." "회의만으로 끝낼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요." 재혁은 담담하게 메뉴판을 펼쳤다. "오늘 회의에서 결론이 많이 나왔지만 아직 정리해야 할 부분이 남았습니다." "편하게 이야기하는 편이 더 좋은 결론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주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업무의 연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편안한 분위기에 긴장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성주하가 일부러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주연 씨." "오늘 대표님이 다목적 공간 이야기하셨을 때 솔직히 놀랐죠?" 주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요." "예산을 줄이자는 이야기일 줄 알았거든요." 성주하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우리 대표님은 오히려 예산을 늘리는 사람이세요." "그게 문제라면 문제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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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서로의 가치관

재혁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아주 천천히 미소 지었다.그 미소는 주연이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차갑지 않은 미소였다."사람이 행복해질 공간을 만드는 건축가가 되고 싶었습니다."그녀의 마지막 말이 룸 안에 조용히 머물렀다.재혁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사업을 하면서 수많은 건축가를 만나 봤다.누군가는 독창적인 디자인을 이야기했고,누군가는 랜드마크가 될 건물을 꿈꿨다.하지만 사람의 행복을 먼저 이야기하는 건축가는 처음이었다.잠시 후 재혁이 조용히 물었다."그래서 행복나무 보육원 설계도 그렇게 나온 거군요."주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아이들이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잖아요.""공간 하나가 아이들의 기억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재혁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회의 때도 느꼈지만...""행복나무 이야기가 나오면 이주연 씨는 다른 사람 같았습니다."잠시 말을 멈춘 그가 물었다."왜 그렇게까지 행복나무를 아끼시는 겁니까?"주연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하지만 그것은 당황이 아니라 오래된 추억을 떠올리는 눈빛이었다.그녀는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행복나무는...""제가 고등학생 때 처음 인연을 맺은 곳이에요."재혁은 말없이 귀를 기울였다."친한 친구가 그곳에서 자랐어요.""친구를 따라 봉사를 시작했는데..."그녀는 옅게 웃었다."처음에는 제가 아이들을 도와주러 간 줄 알았어요."잠시 숨을 고른 주연이 말을 이었다."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오히려 제가 더 많은 위로를 받고 있더라고요."재혁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주연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살다 보면...""누구에게나 마음이 힘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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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예정에 없던 둘만의 저녁

"...대표님은 왜 직접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챙기시는 건가요?"주연의 질문이 조용한 룸 안에 머물렀다.재혁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손에 들고 있던 물잔을 천천히 내려놓은 그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창 너머로 서울의 야경이 반짝이고 있었다.잠시 후.그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누군가에게..."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받은 빚을 갚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주연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그 한마디는 짧았지만 이상하게도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빚이요?"재혁은 희미하게 웃었다."돈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살다 보면...""도저히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던 순간이 있지 않습니까."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하지만 그 짧은 문장만으로도 주연은 알 수 있었다.그에게도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하는 과거가 있다는 것을.재혁은 화제를 돌리듯 잔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그래서 회사가 조금 더 성장하면...""그만큼 더 돌려주자는 것이 제 원칙입니다."주연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좋은 원칙이네요."재혁은 그녀를 바라보았다."이주연 씨를 만나기 전까지는.""...?""사회공헌도 결국 회사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잠시 시선을 내린 그가 다시 말했다."그런데 오늘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주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제가요?"재혁은 고개를 끄덕였다."회사는 돈으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하지만...""사람의 시간과 진심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주연은 잠시 말을 잃었다.그는 칭찬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오히려 필요한 말만 하는 사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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