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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길이 있다는 사실만 알려주듯

Auteur: 데이지
last update Date de publication: 2026-07-22 18:55:16

“조금만 왼쪽으로요.”

라울이 칼끝을 멈췄다.

“이쪽입니까?”

“아니요. 반대입니다. 혈관을 피해야 합니다.”

라울은 세레나가 가리킨 방향으로 절개를 넓혔다. 

집게 끝이 유리를 물었고, 길게 박혀 있던 조각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컸다. 손가락 한 마디에 가까운 길이였고, 한쪽 끝은 낚싯바늘처럼 휘어 있었다.

조각이 빠지는 순간 눌려 있던 혈관에서 피가 솟았다.

에마가 짧게 신음하며 몸을 움츠렸다.

“움직이지 마세요.”

세레나는 상처를 압박하면서 라울에게 깨끗한 천을 요구했다. 

피가 한 겹을 적시면 곧바로 새 천으로 바꾸되, 이미 엉긴 피를 닦아 내지는 않았다. 

라울이 지혈용 약초 가루를 꺼내려 하자 세레나는 냄새를 맡고 손을 막았다.

“그 약초는 쓰지 않는 편이 낫겠습니다.”

“혈관을 수축시키는 약입니다.”

“상처가 깊습니다. 가루가 안쪽에 남으면 힘줄 주변이 굳을 수 있어요. 

압박으로 피를 줄인 뒤 봉합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라울은 다시 세레나를 보았다.

이번에는 질문하지 않았다. 약초병을 닫고 봉합용 실을 꺼냈다.

에마의 안색은 점점 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세레나는 하녀 한 명에게 따뜻한 설탕물을 준비하라고 시킨 뒤, 

에마의 어깨가 뒤로 넘어가지 않도록 벽과 등 사이에 접은 천을 넣었다.

“아가씨, 손이…….”

에마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손을 못 쓰게 될까요?”

라울이 대답하려 했지만 세레나가 먼저 에마의 시선을 붙잡았다.

“지금 손가락이 완전히 마비된 상태는 아닙니다. 유리도 뽑았고 출혈도 줄고 있어요.

힘줄을 연결한 뒤 움직이지 않게 고정하면 회복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다시 바느질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도록 치료할 겁니다.”

기대만 심어 주는 확답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능성을 숨기지도 않았다. 

전생의 환자들은 거짓된 희망과 지나치게 차가운 진단 사이에서 자주 무너졌다. 

세레나는 둘 중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으려 했다.

라울이 힘줄을 봉합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때 에마의 피부 아래에서 흐르던 빛이 갑자기 흔들렸다.

출혈로 흐름이 약해진 탓인지 끊어진 양쪽 성맥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지금 봉합만 해도 조직은 붙겠지만, 

손가락의 세밀한 움직임이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세레나는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아직 어떤 방식으로 힘을 써야 하는지는 몸이 알고 있었다. 

성력을 손끝으로 모아 환자의 성맥에 닿게 한 뒤, 

끊어진 흐름이 스스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는 것. 

전생에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력이 함께 빠져나갔다.

무리하면 체온이 떨어지고 시야가 흐려졌으며, 심한 경우 며칠 동안 손의 감각을 잃었다.

이번에도 같은 대가가 따를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무작정 쏟아부을 필요는 없었다.

세레나는 전생의 습관을 따라 힘을 밀어 넣는 대신, 끊어진 곳만 정확히 짚었다.

“라울 의원님.”

“말씀하십시오.”

“힘줄을 봉합하기 전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라울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출혈이 멈춘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세레나는 에마의 손가락 아래에 자신의 손을 넣었다.

“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라울은 마땅치 않은 표정이었지만 도구를 내려놓았다. 

그가 보고 있는 앞에서 큰 힘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세레나는 에마의 손을 감싸 쥔 채 눈을 감지 않았다.

보이는 흐름만 따라갔다.

손목에서 손바닥으로 들어온 빛이 끊어진 지점 앞에서 흩어졌다. 

세레나는 자신의 성력을 아주 가늘게 뽑아 그 사이에 놓았다. 

강제로 두 흐름을 밀어 붙이는 대신, 길이 있다는 사실만 알려 주듯 미세하게 연결했다.

따뜻한 기운이 손끝을 빠져나갔다.

전생처럼 온몸이 비어 가는 느낌은 없었다. 

한 컵의 물을 거대한 강에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막힌 수로의 돌 하나를 옆으로 밀어 주는 감각에 가까웠다.

흩어지던 빛이 세레나의 성력을 따라 움직였다.

한쪽 끝이 먼저 반응했고, 다른 쪽이 천천히 당겨졌다. 

끊어진 성맥이 닿는 순간 에마의 약지가 아주 작게 떨렸다.

라울이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방금 무엇을 하셨습니까?”

세레나는 곧바로 손을 뗐다.

“성력으로 출혈 부위만 안정시켰습니다.”

“정식 서약도 하지 않은 분이 그렇게 세밀하게 성력을 조절할 수 있다고요?”

“저도 방금 처음 알았습니다.”

그것만큼은 사실이었다.

라울은 그녀의 얼굴을 살피다가 에마의 손으로 시선을 돌렸다. 

의문을 풀기보다 환자를 먼저 보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세레나는 그를 조금 다르게 평가했다.

“봉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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