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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도공의 유일한 구원자: Chapter 121 - Chapter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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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화. 마음이 남아요

121화. 마음이 남아요서연의 질문에 최미자가 고개를 들었다.“말해야 알아요? 아니, 나한테 진실을 말해줄까?”“…….”“내가 이미 다 들었는데. 나한테는 거짓말을 하는걸.”그녀가 옥비녀를 가슴으로 끌어당겼다.“이게 알려줘요. 남편이 하는 거짓말을. 다른 여자들과 무슨 말을 하는지까지…….”“비녀가요?”“그래요. 그이가 화장실에서 다른 여자랑 통화하는 것도 들려주고, 회사에서 젊은 여자하고 웃는 것도 보여줘. 내가 없을 때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다 말해줘요.”최미자의 눈에 확신이 번졌다.“처음에는 나도 안 믿었어요. 삼십 년을 산 사람인데 설마 그럴까 싶었지. 그런데 한 번 듣고 나니까 모든 게 보이더라고. 늦게 들어오는 것도,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는 것도, 여자 직원이 전화하는 것도 전부 이유가 있었던 거야.”“예전에는 어떠셨는데요?”“그때는 내가 바보였으니까. 보고도 알지 못했었지.”“아니요, 사모님. 그때는 믿음이 더 강했던 거예요.”서연은 그녀를 바라보다 마음 한쪽이 서늘해졌다.의심은 원래 그런 것이었다.한 번 답을 정해 놓으면 세상의 모든 일이 그 답을 증명하기 시작한다.“사모님.”서연이 천천히 한 걸음 다가갔다.“그 비녀를 잠깐만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최미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왜요?”“제가 감정사니까요. 사모님이 들은 것이 정말 이 비녀에서 나온 것인지 확인해 보고 싶어요.”“싫어요.”그녀는 옥비녀를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이건 내 거예요. 아무도 못 가져가.”“가져가려는 게 아니에요.”“다들 그렇게 말해!”최미자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치솟았다.“남편도 그랬어요. 당신이 걱정돼서 그런다고, 병원에 한 번 가보자고. 그게 무슨 뜻인지 내가 모를 줄 알아? 나를 미친 사람으로 만들려는 거잖아. 그래야 자기가 바람피운 게 아니라 내가 의심이 많아서 이혼하는 게 되니까!”검은 기운이 한꺼번에 짙어졌다.단이 앞으로 움직이려 하자 서연이 손을 살짝 들었다.적어도 아직은 괜찮다는 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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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화. 월아의 비녀

122화. 월아의 비녀빛바랜 무명치마를 입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봄빛 같은 생기가 있었다.그때 담장 밖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월아 낭자.”여자의 손이 멈췄다.방금 전까지 조용하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도련님?”월아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담장 쪽으로 갔다.젊은 사내 하나가 숨을 몰아쉬며 들어왔다. 좋은 비단 도포를 입고 있었지만 신발 끝에는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월아가 걱정스럽게 주위를 살폈다.“또 이렇게 오시면 어떡합니까? 지난번에도 마님께서 저를 불러 경고하셨습니다. 혹시라도 도련님과 다시 만나는 날에는 이 집에서도 쫓아내겠다고…….”“그래서 그대는 나를 안 보고 살 수 있소?”“도련님.”“나는 안 되오. 그대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 참아보려고도 하였으나 다 소용이 없었소. 아니, 더 간절할 뿐이오.”민우가 숨을 고르며 웃었다.“과거 공부를 하다가도 낭자가 생각나고, 밥을 먹다가도 생각나고, 밤에 누우면 오늘은 또 하루를 못 봤구나 싶어서 잠도 안 와. 그러니 나보고 어쩌란 말이오.”월아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도련님은 과거시험을 준비하시는 분이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그게 다 낭자를 못 봐서 그렇다고 하지 않소. 낭자 때문에 과거에 떨어지면 책임질 거요?”“제가 왜 어떻게 책임을 집니까?”“그러니 나를 내치지 말란 말이오. 이리 잠깐이라도 보고 가면 더 열심히 공부를 할 터이니.”“……도련님.”월아의 얼굴이 붉어졌다.민우가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품에서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꺼냈다.비취색 옥 끝에 작은 붉은 산호가 박혀 있는 옥비녀였다.월아의 눈이 커졌다.“이렇게 귀한 걸 어디서…….”“어머니께 받은 옥을 가지고 따로 만들게 했소.”“그럼 더더욱 제가 받을 수 없습니다.”월아가 황급히 뒤로 물러났지만 민우가 고개를 저었다.“오직 낭자를 위해 만든 것이오. 낭자가 안 받으면 아무 의미도 없어.”“하지만 저는…….”“알고 있소.”민우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내 집안에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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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기다림

123화. 기다림사람의 심장이 이렇게 힘차게 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뜨겁고 선명했다.월아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 소리를 듣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기다리겠습니다.”민우의 입가에 그제야 웃음이 번졌다.“얼마나 기다려줄 것이오?”월아는 눈가에 남은 눈물을 닦고 잠시 고민하는 척했다. 그러더니 조금 전까지 울먹였던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글쎄요. 일 년쯤?”“뭐라고?”민우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월아는 입술을 꼭 다물고 웃음을 참으려 했지만, 눈앞의 사내가 정말로 당황한 얼굴을 하자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 내 웃었다.“농입니다. 도련님 표정 좀 보십시오.”“감히 나를 놀려?”월아가 시치미를 떼며 돌아서려는 순간 민우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겼다.“앗!”짧은 비명과 함께 월아가 그의 품에 안겼다.“낭자는 마음대로 하구려.”“…….”민우가 품 안의 월아를 내려다보며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십 년이고 백 년이고 기다릴 테니.”월아의 눈빛이 다시 부드러워졌다.“백 년이면 백발노인이 되실 텐데요?”“그래도 기다리겠소.”월아가 다시 웃었다.“제가 못 알아보면요?”민우는 이번에는 웃지 않았고, 월아의 얼굴을 눈에 새기기라도 하듯 오래 바라보다가 말했다.“나는 알아볼 테니 상관없소.”“함께하여도 채워지지 않으니, 보고 또 보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 내 몸과 마음을 온통 그대로 채우리.”월아의 입가에 번지던 장난스러운 웃음이 조금씩 잦아들고, 눈가가 다시 붉어졌다.봄바람이 스쳐 지나고, 복사꽃잎은 오래도록 비처럼 떨어졌다.기억은 잔인할 정도로 빠르게 겨울로 넘어갔다.차가운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월아는 마당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있었다.몇 달 전보다 얼굴은 야위었지만 두 손은 자신의 아랫배를 소중하게 감싸고 있었다.그 앞에는 민우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마님, 다른 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습니다. 도련님께서 과거에 급제하시면 저를 잊으셔도 좋습니다. 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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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화. 원망

124화. 원망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월아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떨리는 손을 자신의 배 위에 올렸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손을 올려놓으면 아주 희미하게나마 느껴지던 작은 생명의 기척이 어디에도 없었다.“아가야. 아가야, 엄마 여기 있어.”대답은 없었다.“조금만 기다리자. 아버지가 오실 거야. 아버지가 오시면…….”그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민우가 돌아오면 무엇을 하려고 했던가.월아는 한참 동안 울지도 못했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저 두 손으로 배를 감싸 안은 채 멍하니 있었다.겨우 흘러나온 목소리가 갈라졌다.“엄마가 지켜줬어야 했는데.”그 한마디에 참고 있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월아는 문득 품속으로 손을 넣어 옥비녀를 꺼내 감싸 쥐었다.차가운 옥을 만지는 순간 그날의 기억이 거짓말처럼 선명하게 되살아났다.낭자가 기다리는 한 반드시.그때의 목소리도, 자신의 손바닥 아래에서 뛰던 민우의 심장도 기억났다.나는 알아볼 테니 상관없소.월아의 입술이 떨렸다.“도련님…….”옥비녀를 가슴으로 끌어안았다.“저는 도련님 말씀을 믿었습니다.”숨이 자꾸만 끊어졌다. 월아는 비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조금, 아니 아주 많이 늦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마지막 말은 거의 소리가 되지 못했다.“우리 아가도 기다렸는데…….”손가락 사이로 핏물이 흘렀다. 월아가 얼마나 세게 비녀를 움켜쥐고 있는지 손바닥이 찢어진 것조차 알지 못했다.“그런데 왜 안 오십니까.”슬픔 속에 처음으로 다른 감정이 섞였다.“왜 아무런 소식도 없으십니까. 설마 정말 도련님의 어머님을 제게 보내신 겁니까?”월아의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졌다.“왜 저더러 기다리라 하셨습니까? 도련님도 기다리겠다고 하셨잖아요. 십 년이고 백 년이고 기다리겠다 하셨잖아요. 제가 짐이 되었습니까? 우리 아이까지 짐이 되었습니까? 우리와 함께할 앞날이 그리 막막하셨습니까?”눈물이 턱 끝에서 떨어졌다.맑았던 옥에 검은 기운이 한 줄기 스며들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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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화. 잊지만 마

125화. 잊지만 마서연은 이를 악물었다.절대안에 더 깊이 힘을 밀어 넣는 순간 머릿속을 날카로운 것이 파고드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그럼에도 서연은 물러서지 않았다.비녀의 기억이 월아만의 것이 아님이 느껴졌다. 민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했다.“조금만 더…….”서연이 비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그때 차갑게 식어가던 손끝으로 따뜻한 온기가 흘러들었다.단의 단단한 손가락이 서연의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어 빈틈없이 맞물렸다.힘을 보태는 것이 아니었다.그저 서연이 이 기억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단단히 붙잡아주고 있었다.“연, 무리하지 마라.”“멈출 수 없어요. 그러면 안 돼요. 그러면…….”끝내 말을 잇지 못한 서연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잠시 침묵하던 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너를 말려도 소용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니 기다리지. 힘들면 내 손을 잡아. 네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 있을 테니까.”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였지만 맞잡은 손의 온기만큼은 선명했다.“아직은 괜찮아요. 단 씨…… 고마워요.”“잊지만 마. 내가 여기 있다는 것.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믿고 있다는 것까지.”서연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가슴 한가운데가 따뜻해졌다.“단 씨. 지금 조금 멋있는 거 알아요?”“진실을 말하는 것을 보니 기운을 차린 것 같군.”서연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이제부터 다시 집중할 거니까 말 걸지 마세요.”단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맞잡은 손에 다시 한번 힘을 주었다.그것이면 충분했다.머리는 여전히 깨질 듯 아팠지만 조금 전까지 자신을 집어삼킬 것 같던 어둠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서연이 다시 절대안에 집중했다.황금빛이 어둠 속에서 번져나갔다. 가느다란 실금 하나가 어둠을 가르더니 점점 길어졌다.쩌적.갈라진 틈 사이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자 월아의 기억 뒤에 감춰져 있던 또 다른 시간이 모습을 드러냈다.넓은 과거장 안에 수많은 선비가 고개를 숙인 채 붓을 움직이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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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화. 다른 기다림

26화. 다른 기다림자신이 늦은 만큼 평생 갚으며 살면 된다.화를 내면 빌고, 원망하면 들으며 살면 된다. 보고 싶지 않다고 해도 괜찮았다.‘기다리는 것만 멈추지 말아다오. 내가 다 잘못했소.’비단 도포가 나뭇가지에 걸려 찢어지고 신발에 진흙이 들어와도 민우는 멈추지 않았다.마침내 산속의 낡은 집이 보였다.“월아 낭자!”거의 넘어지듯 달려가 문을 열었지만 아무도 없었다.“어디 있소! 내가 왔소. 장원급제라오!”대답은 없었다.그때 집 뒤편에서 무언가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풀조차 자라지 않은 작은 무덤 앞에 비석처럼 옥비녀가 꽂혀 있었다.민우는 숨조차 쉬지 못했다.복사꽃이 흐드러지던 날 그녀의 머리에 직접 꽂아주었던 바로 그 옥비녀가 그곳에 있었다.“……아니야.”민우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민우는 무덤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내가 왔소. 무려 장원이오. 기다린다 했잖소.”차가운 흙을 움켜쥐며 고개를 숙였다.“아니…… 아니오. 내가 기다리라고 해놓고…… 너무 늦게 왔어.”그날 민우는 해가 질 때까지 무덤 앞을 떠나지 못했다.뒤늦게 찾아온 마을 사람에게서 월아의 마지막 이야기도 들었다.윤씨 가문의 눈을 피해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월아를 묻어주었고, 그녀가 죽는 순간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던 옥비녀를 비석 대신 꽂아두었다고 했다.며칠 뒤 조정에서 관직이 내려왔지만 민우는 관복을 입지 않았다.“월아를 데리러 갈 힘이 필요했습니다. 벼슬을 원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지켜야 할 사람이 없는데…… 이걸 어디에 쓰겠습니까.”그날 민우는 관직을 마다하고 월아가 묻힌 산으로 들어갔다.가문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그를 끌고 가려 했지만, 민우는 스스로 상투를 자르고 붓을 꺾었다.“윤민우는 죽었습니다. 남은 것은 그저 죄인일 뿐입니다.”그날부터 민우는 세상과의 연을 끊었다.월아의 무덤 곁에서 낮에는 밭을 갈고, 밤이면 등잔 하나를 켜고 편지를 썼다.오직 월아에게 전하지 못한 말들이었다.오늘 복사꽃이 피었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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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화. 진실

127화. 진실서연의 손에서 황금빛이 흘러나왔다.빛이 월아의 팔을 타고 옥비녀까지 스며들자, 월아의 핏빛 눈동자에서 조금씩 붉은 기운이 걷히기 시작했다.“거짓말이 아니다.”단이 월아를 바라보며 시구 하나를 나직하게 읊었다.“함께하여도 채워지지 않으니, 보고 또 보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 내 몸과 마음을 온통 그대로 채우리.”월아의 눈동자와 입술이 흔들렸다.“그건……. 도련님이 제게 해주시던 말인데…….”“오래전 세상에 떠돌던 글이다. 누가 쓴 것인지는 전해지지 않았지.”단의 시선이 월아에게 머물렀다.“그 주인이 누구인지 오늘에서야 알았군."월아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아아…… 도련님.”수백 년 동안 쌓아 올린 오해가 무너져 내리자 월아는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원망도 저주도 아닌, 그리움과 미안함만 남은 울음이었다.“제가 도련님의 진심도 모르고…… 그렇게 미워하고 저주했습니다.”“이제 알았잖아요. 민우 도련님은 당신을 버린 적이 없어요.”서연의 손에서 황금빛이 다시 흘러나왔다.빛이 월아를 감싸자 검게 일그러졌던 모습이 조금씩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 순간 월아의 눈앞으로 복사꽃잎이 흩날렸다.그 아래 젊은 민우가 서 있었다.진짜 민우의 혼인지, 월아가 마지막으로 떠올린 기억인지 알 수 없었다.민우는 그저 복사꽃 아래에서 그랬던 것처럼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월아 낭자."“도련님…….”월아가 울면서 웃었다.“끝까지…… 사랑했습니다.”민우가 내민 손 위로 월아의 손이 겹쳐졌다.두 사람의 모습이 복사꽃잎 사이로 흐려지기 시작한 순간.월아의 원념과 뒤엉켜 악의를 키워온 오염된 신선의 파편이 본래의 맑은 빛을 되찾았고, 월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서연의 가슴으로 스며들었다.“……!”따뜻한 기운이 심장을 중심으로 퍼졌다. 절대안을 사용하며 빠져나갔던 생명력 보다 더 많은 기운이 채워지는 것이 느껴졌다.최 여사의 무릎이 힘없이 꺾였다. 루나가 재빨리 그녀를 받아 소파에 눕혔다.“기절했어. 너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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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화. 치료

128화. 치료사랑은 때로 오해로 길을 잃기도 하지만, 진심을 전할 기회가 남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최 여사의 집을 빠져나와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뒤에도 최 여사 부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많이 놀랐지?”단이 곁으로 다가와 서연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의 온기가 닿자 이제야 긴장이 풀리는지, 서연은 저도 모르게 길게 숨을 내쉬었다.“조금요. 아니, 많이요. 월아 씨가 갑자기 달려들었을 때는 정말 무서웠어요. 목이 조여오는데 숨은 안 쉬어지고…… 어떻게 버텼는지도 모르겠네요.”“그런 것치고는 끝까지 잘 버텼어.”“단 씨가 옆에 있었잖아요. 혼자였으면 그렇게 못 했죠.”무심코 대답한 서연이 고개를 들자 단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왜요? 제가 뭐 이상한 말 했어요?”“아니. 네가 나를 그렇게 믿고 있다는 걸 직접 들으니 생각보다 기분이 좋군.”“제가 언제는 단 씨를 안 믿었나요?”“알고 있어도, 네 입으로 들으니 더 좋군.”단이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끌어당겼다. 서연은 그의 팔에 조금 더 기대었다가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붉은 얼룩을 발견하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단 씨! 팔…… 피 나잖아요!”찢어진 슈트 소매 사이로 흰 셔츠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월아가 날린 도자기 파편에 베인 상처였다.“괜찮아. 스친 거야.”단이 팔을 뒤로 감추자 서연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뭐가 괜찮아요! 왜 결계를 안 쳤어요? 왜 다치냐고요, 사람 속상하게!”단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조금 늦어서 그랬다. 그리고 지금은 붕괴기라 신력 쓰면 더 아파.”“……많이 아파요? 신력을 못 쓸 정도로 아파요? 내가 어떻게 해야 해요?”“나는 이 정도 상처는 금방 나아. 그러니 너만 안 다치면 된다.”“그게 뭐예요. 금방 낫는다고 안 아픈 것도 아닌데.”서연은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의 팔을 꾹 눌렀다. 생각보다 피가 많이 묻어나자 가슴이 철렁했지만, 단은 오히려 제 팔을 붙잡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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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화. 호 해줄까?

129화. 호 해줄까?“왜 그렇게 봐요? 제가 뭐 잘못했어요?”“아니. 예뻐서.”단의 진심이 불쑥 튀어나와 버렸다. 그 순간 단의 몸이 굳었다.서연의 손도 뚝 멈췄다. 서연은 멈칫했던 손을 서둘러 움직이며 시선을 내리깔았다.“단 씨, 머리도 다친 거예요?”“……내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군. 머리를 다친 모양이야.”단이 다치지 않은 손을 들어 서연의 귀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제 의지보다 먼저 나간 자연스러운 행동에 단의 손이 다시 뚝 멎었다.손끝이 귓바퀴를 스치자 서연의 어깨가 움찔했고, 심장은 기다렸다는 듯 제멋대로 뛰기 시작했다.‘이 사람은 왜 다친 와중에도 이래?’서연은 황급히 거즈를 집어 들었다.“치, 치료나 마저 할게요. 환자가 자꾸 딴소리하면 제가 집중을 못 하잖아요.”“그러지.”팔이 다친 건지 머리가 다친 건지, 제어되지 않는 자신을 어찌할 바 몰라 단은 얌전히 입을 닫았다.그때 맞은편 소파에서 은랑의 목소리가 들렸다.“야, 이 여우야. 다리 이리 내. 너도 치료받아야지.”루나는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제 다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자기 파편에 긁힌 종아리에는 가느다란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됐어. 이 정도는 내가 알아서 해. 정신 사나우니까 시끄럽게 굴지 말고 가만히 있어.”“도둑놈은 주인님이 보살피니까 천 년 우정으로 너는 내가 해준다. 영광인 줄 알아.”은랑이 의기양양하게 구급상자를 끌어당기자 루나가 코웃음을 쳤다.“너보다 김 실장이 더 잘하거든? 괜히 잘난 척하다가 상처 덧나게 하지 말고 김 실장 불러줘.”“야! 김 실장도 이제 많이 늙었어. 좀 적당히 부려 먹어, 이 여우야.”“제가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만.”김 실장이 조용히 끼어들었지만 은랑은 못 들은 척 루나의 다리를 제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자, 가만히 있어. 나 진짜 이런 거 잘하니까 한 번만 믿어봐.”“손은 씻었냐?”“아우, 입을 다쳤어야 하는 건데.”입으로는 투덜거렸지만 은랑이 거즈를 잡은 손은 의외로 조심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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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화. 연애 경험

130화. 연애 경험 다음 날 아침, 성북동 저택의 식탁에는 평소보다 조금 늦게 서연이 나타났다. 밤새 월아의 일을 떠올리느라 잠을 설친 탓도 있었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손을 꼭 그렇게 오래 잡고 있어야 했나…….’ 어젯밤 치료를 마친 뒤에도 단이 손을 놓아주지 않던 순간을 떠올리자 서연은 괜히 제 손등을 문질렀다.귓가에 머물던 그의 목소리도 아직 생생했다. 놓으라고 하면 놓아주겠다던 사람이 정작 손을 놓을 생각은 없어 보였고, 더 큰 문제는 자신도 그 손을 빼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주인님, 아침부터 손에 뭐 묻었어?” 먼저 식탁에 앉아 있던 은랑이 빵을 베어 물며 물었다. 서연은 얼른 손을 내렸다. “아무것도 안 묻었는데요?” “그럼 왜 자꾸 손을 봐? 주인님도 어제 다친 거 아니야? 손 이리 줘봐. 내가 확인해볼게.” “은랑 씨, 저 정말 안 다쳤어요! 그냥 잠깐 손이 간지러워서 그런 거예요.” 은랑은 서연의 손을 한 번 더 살피고서야 안심한 듯 자리에 앉았다. “아, 진짜. 주인님 다친 줄 알고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맞은편에서 차를 마시던 루나가 그의 정강이를 툭 찼다. “아침부터 남의 연애에 참견하지 말고 네 빵이나 먹어.” “남의 연애라니? 둘이 연애한다고 했어?” 은랑이 빵을 내려놓고 서연을 돌아봤다. “주인님,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연애 시작한 거야?” “아니에요! 무슨 연애를 시작해요. 그냥 치료해준 거잖아요!” “그렇지? 도둑놈하고 연애하느니 나랑 하는 게 낫지. 외모로 보나 성품으로 보나 내가 훨씬 낫잖아.” “넌 눈도 없니? 네가 봐도 둘이 좋아하는 게 뻔하잖아.” 루나가 태연하게 커피를 마시자 서연은 빵 바구니를 은랑 쪽으로 밀어주며 화제를 돌리려 했다. 하지만 은랑은 빵을 집기는커녕 루나를 돌아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주인님이 아니라는데 뭐! 그러는 여우, 너도 연애 한 번 안 해봤잖아. 뭘 그렇게 잘 아는 척해?” 루나의 찻잔이 허공에서 멈췄다. “입 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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