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듣고 싶어요. “엄마가 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어.” 수석은 바닥에 흩어진 콘티를 바라봤다. “이것도 엄마한테 들킬까 봐 숨어서 그렸어.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데 왜 죄지은 것 같아야 해?” 박미영은 아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투명한 결계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낯설었다. 아이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조금 더 밀어주고, 조금 더 좋은 길을 알려주는 것이 엄마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무얼 하고 싶은지, 지금 얼마나 힘든지는 묻지 않았다. 아들이 힘들다고 말할 때마다 조금만 더 참으라고 했고, 쉬고 싶다고 할 때마다 이번 시험만 끝나면 쉬라고 했다. 그렇게 미뤄둔 쉼이 아이에게는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엄마가…… 네가 그렇게 힘든 줄은 몰랐어.” 수석은 대답하지 않았고, 박미영도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엄마가 안 들은 거야.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 거야.” 그녀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수석아…… 지금이라도 괜찮다면, 네 말을 들을게. 엄마 욕심 말고, 너의 말을, 너의 마음을 들을게. 들려주겠니?” “……정말?” “미안해, 아들. 엄마가 눈에 뭐가 씌었나 봐. 우리 아들이 죽을 뻔했는데도, 엄마는 또 시험 이야기부터 했어.” 박미영의 목소리가 울음에 잠겼다. “네가 얼마나 무서웠을지,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생각도 못 하고……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수석은 한참 동안 어머니를 바라봤다. 믿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중에라는 말로 돌아갈까 봐 아직은 두려웠다. 그때 투명한 벽에 가느다란 금이 생겼지만, 결계는 아직 단단하게 수석을 가둬두고 있었다. [거짓말이다.] 벼루에서 낮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지금은 저리 말해도 다시 네가 기대에 못 미치면 책망할 것이다. 사람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수석이 다시 어깨를 움츠렸다. 서연은 벼루를 향해 돌아섰다. “그만하세요.” 검은 먹물이 꿈틀거렸다.
Last Updated : 2026-10-0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