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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도공의 유일한 구원자: Chapter 131 - Chapter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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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화. 연애상담은......

131화. 연애상담은......루나가 은랑의 정강이를 다시 툭 찼다. “서연 조상 흉보지 말고 적당히 해.” 서연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은랑을 바라봤다. “은랑 씨, 죄송하네요. 저희 조상님들 때문에 연애도 못 하시고.” “아니, 아니! 주인님, 그게 아니라! 내가 말을 하다 보니까…… 진짜 그런 뜻 아니야!” “아니라고 해주셔서 감사하네요.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모태솔로예요?” “주인님도 그렇잖아.” 은랑의 대답에 서연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저는 젊은 나이에 빚더미에 앉아서 그런거죠.” “내가 한눈 팔아서 미안해. 주인님.” 은랑이 다시 진땀을 빼기 시작한 그때, 차를 더 가져오던 김 실장이 조용히 끼어들었다. “저는 결혼도 해봤습니다. 지금도 가끔 만나는 여사님이 계시고요.” 네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김 실장에게 향했다. “네? 김 실장님, 지금 만나시는 분이 계세요?” “예. 함께 식사도 하고, 좋은 공연이 있으면 보러 가기도 합니다. 다만 서로의 생활이 있으니 자주 만나지는 않습니다.” 은랑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잠깐만요. 김 실장님, 우리 몰래 연애하고 계셨던 거예요?” “몰래 한 적은 없습니다. 은랑 님께서 물어보신 적이 없으셨지요.” “아니, 그런 건 먼저 말씀해주셔야죠! 이 집에서 제일 연애랑 거리가 멀어 보이는 분이!” “그건 은랑 님의 생각이시고요.” 김 실장은 아무렇지 않게 단의 앞에 커피를 내려놓았다. 서연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김 실장님은 결혼도 하셨다고요?” “예. 오래전 일입니다. 그 뒤로는 제가 나이를 먹는 속도가 남들과 달라져 다시 가정을 꾸리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렇다고 사람을 만나지 않고 지내는 건 아닙니다.” “와…… 김 실장님, 멋있으세요.” “과찬이십니다. 주인님, 커피 더 드시겠습니까?” 단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그런데 김 실장, 그분과는 언제부터 만나고 있었지?” “주인님께서도 그런 것까지 보고드리라고 하신 적은 없으셨습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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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화. 벼루

132화. 벼루 “일단 서단이랑 통화부터 더 해볼게요. 소장자가 벼루를 어디서 구했는지도 알아야 하잖아요.” 단은 서연의 창백한 안색을 살피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대신 네 몸 상태부터 확인하고 움직인다.” “저 진짜 괜찮아요. 어제 신선의 파편을 정화하고 나서 오히려 감각도 전보다 또렷해졌어요. 잠을 좀 설친 것뿐이에요.” “그럼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이라도 앉아 있어.” 어느덧 아침 식사는 뒷전이 되어 있었고, 시선은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전화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단 씨는 꼭 제가 어린애인 것처럼 챙기세요.” “어린애라서가 아니라 소중해서 챙기는 거야.” 서연의 손끝이 멈췄다. 단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 찻잔을 들어 올렸지만, 서연은 그가 방금 한 말을 쉽게 흘려보낼 수 없어 작게 웅얼거렸다. “무슨 그런 말을 예고도 없이…….” “뭐라고?” ‘제 심장 준비 운동 좀 시키려고요!’ 서연의 속마음까지 알 수는 없었지만, 작게 웅얼거린 말은 달랐다. 감각이 예민한 단이 못 들었을 리 없었다. 단의 입가에 느릿한 미소가 번졌다. “그럼 다음부터는 미리 말하지. 연, 지금부터 소중하다는 말을 할 거다.” “아, 진짜! 그렇게 하시라는 뜻이 아니잖아요!” 서연은 붉어진 얼굴을 양손으로 가리고, 소파에 깊숙이 앉았다. 커피가 반쯤 식었을 무렵, 테이블 위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서연은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받았다. “서단아! 어떻게 됐어?” [누나, 아이 찾았어! 학원가 CCTV를 뒤지다가 옥상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잡혔어. 지금 15층 난간 끝에 앉아 있어. 경찰이랑 구조대에는 내가 바로 신고했는데 아직 도착 전이야!] 서연이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옥상이라고? 혼자 있어?” [응. 그런데 누나…… 녀석 품에 검은 벼루가 안겨 있어. 사진에서 봤던 그 벼루가 맞는 것 같아.] 단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은랑을 돌아봤다. “은랑, 가자. 네가 먼저 올라가서 아이부터 확보해야겠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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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화. 차라리

133화. 차라리 서연의 호소는 루나가 운전석에 안착하면서 이어지지 못했다. 차가 대문을 빠져나가자마자 서연은 안전벨트를 움켜쥐었다. 은랑은 조수석 손잡이를 붙들고 연신 중얼거렸다. “괜찮아. 나는 늑대야. 이 정도 속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으악! 루나, 앞에 차!” “봤어!” “봤으면 속도를 줄여!” 서연의 몸이 급격히 기울자 단이 한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다른 손으로 안전벨트가 제대로 채워져 있는지 확인한 뒤, 서연의 머리가 창문에 부딪치지 않도록 제 어깨 쪽으로 끌어당겼다. “연, 눈 감아.” “단 씨는…… 우욱, 괜찮아요?” “……아니. 나도 눈 감고 싶어.” 서연은 이런 상황에서도 웃음이 터질 뻔했다. 하지만 휴대전화 화면에 떠 있는 서단의 메시지를 보는 순간, 입가의 웃음이 사라졌다. [누나, 아이 아직 난간에 있어. 별다른 움직임은 없는데 계속 혼자 뭐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 서연은 휴대전화를 꼭 쥐었다. ‘제발 조금만 기다려 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단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단은 아무 말 없이 손가락을 얽어 주었다. 그 짧은 온기가 서연의 떨리는 마음을 붙잡아 주었다. 대치동 학원가의 건물 앞에 도착하자 루나가 차를 세웠다. 건물 아래에는 구조대가 아직 도착하기 전이었고, 옥상을 올려다보는 사람들 사이로 불안한 웅성거림이 번지고 있었다. 은랑이 먼저 차에서 뛰어내렸다. “내가 먼저 올라갈게. 아이가 움직이면 바로 잡을 수 있도록 할 테니까, 너희는 뒤따라와!” 은랑의 모습이 계단 쪽으로 사라졌다. 단은 서연의 손을 잡고 그 뒤를 따랐다. 옥상 문을 열자 한여름인데도 서늘한 기운이 몸을 훑었다. 벼루를 중심으로 번진 음기가 주변의 온도까지 떨어뜨리고 있었다. 소년은 시커먼 벼루를 가슴에 품은 채 난간 끝에 서 있었다. 물건에 손을 대지 않았음에도 서연의 눈에 소년의 팔과 목을 휘감고 있는 먹물 같은 탁기가 선명하게 들어왔다. 월하에게서 신선의 파편을 더 흡수한 뒤로 감각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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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화. 아들의 말을

134화. 아들의 말을 그때 옥상 문이 벌컥 열렸다. “수석아!” 한 여자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왔다. 소년의 어머니이자 10만 팔로워를 거느린 대치동 교육 인플루언서, 박미영이었다. 단정했을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스타킹은 무릎까지 찢어져 있었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은 아들을 발견하자 곧장 달려갔다. “수석아! 엄마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전화도 안 받고 학원에도 없어서 얼마나 놀랐는데!” 수석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박미영은 아이의 몸을 훑어보며 다급하게 물었다. “다친 데는 없어? 어디 아픈 거야? 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한 거니? 내일이 전국 모의고사인데 이렇게 갑자기 사라지면 어떡해!” 수석의 어깨가 굳었다. “……엄마.” “왜? 어디가 아파? 말 좀 해봐.” “엄마는 내가 죽을 뻔했는데도…… 시험부터 물어보네.” 박미영의 입술이 멈췄다.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그러니까요. 엄마는 내가 시험을 못 볼까 봐 걱정하잖아요.” “수석아!” 은랑이 참지 못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아줌마, 애가 방금 난간에서 떨어질 뻔했어요. 시험이 아니라 아이가 왜 거기까지 올라갔는지부터 물어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박미영이 그제야 은랑을 돌아봤다. “당신은 누군데 남의 집 일에 참견해요? 우리 애가 얼마나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는지 알기나 해요?” “시험이 아무리 중요해도……!” “은랑 씨.” 서연이 그를 조용히 불렀다. 은랑은 이를 악물었지만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서연이 박미영에게 다가가자, 절대안에 검은 기운이 어른거렸다. 수석의 목을 휘감고 있던 것과 같은 탁기가 박미영의 가슴에도 엉겨 붙어 있었다. 남편과의 별거, 사람들의 수군거림, 오직 ‘전교 1등 의대 지망생 아들’이라는 타이틀 하나로 버텨온 한 여자의 고독과 결핍이 탁기에 뒤엉켜 있었다. 박미영은 아들이 실패하면 자신도 실패한 사람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 불안은 오래전부터 그녀의 것이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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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화. 듣고 싶어요.

135화. 듣고 싶어요. “엄마가 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어.” 수석은 바닥에 흩어진 콘티를 바라봤다. “이것도 엄마한테 들킬까 봐 숨어서 그렸어.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데 왜 죄지은 것 같아야 해?” 박미영은 아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투명한 결계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낯설었다. 아이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조금 더 밀어주고, 조금 더 좋은 길을 알려주는 것이 엄마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무얼 하고 싶은지, 지금 얼마나 힘든지는 묻지 않았다. 아들이 힘들다고 말할 때마다 조금만 더 참으라고 했고, 쉬고 싶다고 할 때마다 이번 시험만 끝나면 쉬라고 했다. 그렇게 미뤄둔 쉼이 아이에게는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엄마가…… 네가 그렇게 힘든 줄은 몰랐어.” 수석은 대답하지 않았고, 박미영도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엄마가 안 들은 거야.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 거야.” 그녀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수석아…… 지금이라도 괜찮다면, 네 말을 들을게. 엄마 욕심 말고, 너의 말을, 너의 마음을 들을게. 들려주겠니?” “……정말?” “미안해, 아들. 엄마가 눈에 뭐가 씌었나 봐. 우리 아들이 죽을 뻔했는데도, 엄마는 또 시험 이야기부터 했어.” 박미영의 목소리가 울음에 잠겼다. “네가 얼마나 무서웠을지,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생각도 못 하고……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수석은 한참 동안 어머니를 바라봤다. 믿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중에라는 말로 돌아갈까 봐 아직은 두려웠다. 그때 투명한 벽에 가느다란 금이 생겼지만, 결계는 아직 단단하게 수석을 가둬두고 있었다. [거짓말이다.] 벼루에서 낮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지금은 저리 말해도 다시 네가 기대에 못 미치면 책망할 것이다. 사람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수석이 다시 어깨를 움츠렸다. 서연은 벼루를 향해 돌아섰다. “그만하세요.” 검은 먹물이 꿈틀거렸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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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화. 아버지의 진심

136화. 아버지의 진심 겨울바람이 매섭게 부는 마당에서 아버지가 장작을 패고 있었다. 기침할 때마다 수건에 피가 묻어났지만, 그는 다시 도끼를 들었다. 밤에는 남의 편지를 대신 써 주었고, 낮에는 몸을 이끌고 일을 나갔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아들에게 종이와 먹을 사 주었다. “여보, 약부터 지으셔야지요. 기침이 이리 심하신데 언제까지 버티시려고 그러세요.” 아내가 걱정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윤재가 이번에 시험을 치르려면 책이 더 필요하오. 내가 조금만 더 버티면 되는 일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아내가 남편의 거칠어진 손을 조심스레 잡았다. “당신도 보살피셔야 합니다. 아이도 아비의 마음을 알아야 하고요.” 아버지의 손이 멈췄다. “……내가 그 아이를 얼마나 믿는데. 내가 이러는 걸 알면 윤재에게 짐이 될 게요.” “전하지 않으면 모를 수도 있습니다. 상처가 될 수도 있어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 기억은 과거 시험에서 낙방한 날이었다. 아버지는 윤재 앞에 앉아 입술을 달싹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서 사랑채를 나갔다. 그것이 전부였다. 윤재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실망했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윤재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남긴 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벼루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방으로 뛰어들어 왔다. “윤재야…….” 아버지는 아들을 품에 끌어안았다. “아비가 잘못했다. 네가 얼마나 애썼는지 안다. 내가 너를 얼마나 믿고 자랑스러워하는지, 진작 말해 줬어야 했는데…….” 늙은 아비의 울음이 텅 빈 사랑방에 울려 퍼졌다. “내가 고생하는 걸 알면 네게 짐이 될까 봐, 그저 더 많은 것을 해 주고 싶어서…… 정작 네가 듣고 싶었던 말은 하나도 못 해 줬구나.” 아버지는 아들을 더욱 힘껏 끌어안았다. “네가 있어 아비가 살 수 있었다. 시험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 윤재야, 사랑한다. 미안하다…… 아들아, 윤재야!”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은 윤재가 떠난 뒤에야 사랑방을 채웠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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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화. 과부하

137화. 과부하 서연은 여전히 윤재를 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어느새 검붉은 눈물이 사라져 있었다. [낭자.] “네, 도련님.” [고맙소. 내 이야기를 들어 줘서…… 아버님의 이야기를 전해 줘서. 남은 이야기는 아버님을 뵙고 해야겠구려.] 윤재가 희미하게 웃으며 빛으로 흩어졌다. 우우우우웅! 바닥에 떨어진 벼루가 요란하게 진동했다. “연, 물러서!” 단이 서연의 어깨를 감싸며 뒤로 물렸다. 윤재의 원혼이 사라진 자리에서 검은 먹물이 다시 솟구쳤다. 조금 전까지 윤재를 감싸고 있던 기운과는 달랐다. 훨씬 섬뜩하고 불길한 기운이었다. “최민준…….” 벼루에 담겨 있던 오염된 파편이 옥상의 기운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도련님이 성불했는데도 저게 남아 있었어요.” 단이 벼루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이 벼루는 너무 오랫동안 많은 고통을 목도한 모양이군. 오염된 파편이 많이 들러붙었거나 아니면, 최민준이 억지로 집어넣었거나.” 검은 먹물이 서연을 향해 뻗어 왔다. 단이 결계를 펼쳐 막아섰지만, 벼루는 갈라진 틈 사이로 더 많은 기운을 쏟아냈다. 서연은 단의 팔을 붙잡았다. “단 씨, 제가 정화할게요.” “연, 한꺼번에 흡수하려고 하지 마. 네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받아들여야 해.” “알아요. 오염부터 걷어낼게요.” 단이 그녀의 손을 단단히 잡았다. “무리하지 마. 힘들면 뒤로 물러서도록 해!” 서연이 벼루 위로 손을 뻗었다. 황금빛이 손끝에서 퍼져 나가며 검은 먹물을 감쌌다. 탁한 기운이 걷히자 그 안에 갇혀 있던 신선의 파편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의 예상대로 파편은 하나가 아니었다. “……이게 다 뭐야?” 벼루 안쪽에서 크고 작은 빛의 조각들이 연달아 떠올랐다. 오랜 세월 쌓인 원망과 뒤엉켜 있던 파편들이었다. 서연은 이를 악물고 남은 탁기를 걷어 냈다. 마지막 검은 기운이 걷히는 순간, 벼루가 산산이 부서졌다. 파아아앗! 정화된 파편들이 서연의 기운에 이끌리듯 한꺼번에 쏟아졌다. “서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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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화. 입맞춤

138화. 입맞춤단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밀어내야 할지, 그대로 있어야 할지 판단하기도 전에 단이 천천히 입술을 뗐다.“연, 괜찮아?”서연은 대답 대신 눈만 깜빡였다.“……네.”“어지럽지는 않고?”“네. 이제 좀…….”단의 얼굴이 너무 가까웠다. 서연은 저절로 말끝을 흐리며 황급히 시선을 내렸다.방금 전까지는 기운이 폭주해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는데, 정신이 돌아오자 조금 전의 감촉이 지나치게 선명해졌다.물론 입을 통한 접촉이 붕괴기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단이 자신의 손바닥에 입을 맞춘 적도 있었다.하지만 손바닥에 입을 맞추는 것과 서로의 입술이 닿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아니, 치료였잖아. 치료. 그런데 왜…….’서연은 저도 모르게 입술로 향하던 손을 멈추고 괜히 단의 옷깃을 매만졌다.“단 씨는요? 괜찮아요?”“응. 네가 진정됐으니 됐어.”단의 대답에 힘이 없었다. 서연이 고개를 들어 그를 살피는 순간, 단의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서연을 감싸고 있던 팔에서도 서서히 힘이 빠졌다.“잠깐…… 쉬면…….”그 말을 끝으로 단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단 씨!”서연이 급히 그를 끌어안고 몇 번이고 이름을 불렀지만, 단은 대답하지 않았다.“단 씨? 저 좀 봐요. 장난치지 말고요! 은랑 씨! 루나 언니!”두 사람이 곧장 달려왔다.“단!”은랑이 단의 어깨를 받쳐 들었다. 루나는 단의 손목을 잡고 기운을 살피더니 표정을 굳혔다.“의식이 없어. 서연에게서 받아들인 기운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어.”“제가…… 제가 멈추라고 했어야 했는데…….”서연의 자책 섞인 말에 루나가 고개를 저었다.“네가 멈출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잖아.”은랑은 단의 몸을 조심스럽게 고쳐 안았다.“일단 내려가자. 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게 우선이야.”성북동으로 돌아가는 차 안은 올 때와 달리 조용했다.루나는 속도를 높이면서도 차가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운전했다. 은랑은 뒷좌석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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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화. 효과가 좋으니까

139화. 효과가 좋으니까 “글쎄. 기운이 더 거칠어지지는 않고 있으니까. 일단 모두 나가자. 이제 옆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저는 조금만 더 이렇게 있을게요. 제 기운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거예요.” “그래, 그건 맞는 말이긴 하겠다. 그럼 서연이는 여기 있고, 은랑, 너는 나 좀 따라와.” “나는 왜? 여우, 네가 그렇게 친절하게 부르니까 좀 무서운데?” 은랑이 루나의 부름에 몸을 움츠리자 루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너도 어깨 다쳤잖아. 따라와. 봐 줄 테니.” “여우, 너는 왜 다정하게 말해도 무섭냐?” 은랑은 기어이 루나의 매서운 눈초리를 받고 조용히 그녀를 따라나섰다. 김 실장도 단에게 필요한 것이 생기면 바로 부르라는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갔다. 방 안에 단둘이 남자 서연은 단의 이불을 고쳐 덮어 주었다. “단 씨, 어서 기운 좀 차려 봐요.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줘요. 나는 하나도 모르겠단 말이에요.” 단의 손을 잡은 채 한참을 앉아 있던 서연은 문득 옥상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맞닿았던 입술과 자신을 바라보던 단의 눈빛이 떠오르자 서연의 귓불이 서서히 붉어졌다. “……치료였으니까.”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혼자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단이 눈을 뜬 것은 한참 뒤였다. 익숙한 천장이 흐릿하게 보였다. 몸 안에서는 낯선 기운이 여전히 묵직하게 맴돌았지만, 조금 전처럼 서로 충돌하지는 않았다. 그가 손을 움직이자 곁에서 작은 인기척이 났다. “……단 씨?”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던 서연이 손을 놓고 일어나 단의 이마에 손을 얹어 보고, 안색을 이리저리 살폈다. “이제 괜찮아요? 아니, 어디 아파요? 어지러워요? 물 드릴까요?” 단은 쏟아지는 질문에 잠시 눈을 깜빡였다. “연.” “네!” “하나씩 물어봐.” 서연은 입술을 꾹 다물고 자리에 앉았다. 단이 희미하게 웃었다. “많이 놀랐어?” “그걸 말이라고 해요? 쓰러져서 의식을 잃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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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화. 여행준비

140화. 여행 준비은랑도 여행을 반겼다.“이번 기회에 서연 부모님도 모시고 가자. 여기 남아 계시면 우리도 마음이 편치 않을 테니까.”“엄마 아빠도요?”“응. 쉬러 간다고 하면 좋아하시지 않겠어? 물론 안전 문제는 우리가 먼저 확인해야겠지만.”서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단과 맞잡은 손을 보았다.“그곳에 가면 단 씨가 더 빨리 나을 수 있을까요?”루나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표정은 이미 다 나은 것 같은데? 아까부터 서연이 입술만 보고 있잖아.”서연의 얼굴이 붉어졌다.“언니, 또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단의 안정은 장소보다 너에게 달렸고, 최초의 각성자이니 결과는 우리도 모르지. 일단 움직이는 걸로 하고 해산!”서단이 가장 신이 나서 뛰어나가며 부모님께 소식을 알리겠다고 했고, 은랑과 루나도 웃으며 방을 나섰다.김 실장은 챙길 것이 많다며 뒤를 따랐고, 방에 남은 서연은 단의 이불을 고쳐 덮어 주었다.“제주도 가면 정말 푹 쉬는 거예요. 참지 말고, 아프면 바로바로 말하고요.”단이 그녀의 손을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그럼 또 키스해도 되나? 그게 효과가 가장 좋은 것 같은데.”서연은 얼굴을 붉히며 당황했지만, 답을 피하지는 않았다.“급한 상황이면…… 효과가 가장 좋으니까요…….”다음 날, 성북동 저택. 특히 거실은 아침부터 심상치 않았다.창밖의 푸른 하늘은 평화롭기만 한데, 저택 안의 풍경은 피난길을 방불케 했다.거실에는 여행용 가방이 줄지어 서 있었고, 서단은 노트북을 펼쳐 놓고 제주도 안가의 보안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으며, 루나는 드레스룸과 거실을 오가느라 아침부터 분주했다.그 소란 속에서 서연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안 돼요. 절대 안 돼요. 내려놓으세요!”단은 한 손에 트렁크를 든 채 계단 아래에 멈춰 서 있었다.“연, 이 정도는 가볍다니까.”“어제 쓰러지셨던 분은 누구신가요?”“아마도…… 나겠지.”“그럼 내려놓으세요. 단 씨 짐은 김 실장님께서 챙기기로 했잖아요. 옮기는 건 서단이랑 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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