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랑 모퉁이에서 소하가 먼저 멈춰 섰다.곳간에서 오는 길이었고, 아침에 들고 나간 종이가 아침 그대로 손에 있었다."어른. 저 사람 또 있어요."기둥 그늘 밑에 눈이 한 군데만 다져져 있었다.회랑 아래는 밤새 온 것이 그대로 얹힌 채인데 그 자리만 발바닥에 눌려 얼어 있었다.감색 겹옷을 입은 사내가 거기 서서 손을 겨드랑이에 넣었다 뺐다.뺀 손으로 소매에서 접은 종이를 꺼내 무릎에 대고 두 줄을 적었다."사흘째예요. 어제는 진찰방 앞에 있었고 그제는 뒤뜰 쪽에 있었고요.아니, 그제 말고 그끄제요.제가 세어 봤어요!""…""저 옷은 마마 처소 사람 옷도 아니에요.마마 처소는 남색에 자주 띠고, 태의원은 무색에 검은 띠고, 어공서는 그, 뭐더라, 어공소는—""어공서.""…어공서요."지나가던 궁녀 둘이 소리 내어 웃었다.소하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따라 웃었다.궁녀 하나가 가다 말고 소하에게 한마디 하고 갔다."태의원 의녀는 의녀님이라 하는 거야.어른은 아무한테나 붙이는 게 아니고.""…의녀님."소하가 그 말을 소리 없이 세 번 되뇌었다."소하야. 띠 말고 신을 봐.띠는 아침에 바꿔 매도 신은 안 갈아 신거든."소하가 목을 빼고 사내의 발을 봤다."…젖었는데요. 발등까지 젖었어요.""응. 여기서 자는 사람이면 신이 아직 말랐지.저 나리는 아침에 문 밖에서 걸어 들어왔네."발 얼겠네, 저러다."의녀님. 그거 오늘도 안 나왔죠.""응.""사흘째잖아요. 아니 나흘인가.곳간 나리가 어제는 없다고 했다가 오늘은 목록에 없다고 했어요.없는 거랑 목록에 없는 거랑 다른 거예요?""다르지. 없는 건 내일 오고, 목록에 없는 건 안 와."* * *한경이 회랑에서 내려섰다.눈이 발등을 덮었다가 버선에 스몄다.사내가 종이를 접어 소매에 넣고 일어섰다.두 손을 모으는데 손이 굳어서 한 번에 안 모였다."손이 그렇게 곱으면 오래 못 적어요.""…""이 모퉁이는 바람이 두 갈래로 들거든요.회랑 밑으로 한 갈래 오
Last Updated : 2026-09-2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