บททั้งหมดของ 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บทที่ 191 - บทที่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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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화 스물셋

아침에 중문 안쪽으로 서리 하나가 들어와 섰다.어제 온 사람들과 달리 궤도 수레도 없이 붓과 접은 종이만 들고 왔다."이 댁에 궁에서 나온 사람이 있다 하였소."류가가 행랑 앞에서 종이를 안고 나왔다.마당 가운데까지 와서 종이를 툇마루에 내려놓고 두 손을 앞으로 모았다."소인입니다.""이름.""류가입니다."서리가 두 자를 적고 붓을 뗐다."나온 날짜와 사유.""작년 십일월 열이레에 나왔습니다.사유는 적힌 것이 없습니다.그날 아침에 나가라 하셔서 나갔습니다."한경이 마루 끝으로 나와 섰다."이 사람이 이 댁에 있는 것을 알고 두셨소?""빈방이 있길래 쓰라고 했어요.""…부인께서 두라 하셨다고 적겠습니다.""그러세요."서리가 접은 종이를 소매에 넣고 중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나가면서 툇마루 위의 종이 뭉치를 한 번 보고 지나갔다.* * *서재 뒤꼍에서 연기가 한 줄 올랐다.장복이 화덕 앞에 쭈그려 앉아 종이 뭉치를 무릎에 놓고 있었다.육정이 뒤꼍으로 들어서면서 그 손목을 잡았다."태우면 그게 죄가 되오.""…나리. 이 안에 별당 장부가 있습니다.이게 나가면 아씨한테까지 갑니다.아씨는 지금 그 담 안에 계시고요.""알고 있소. 알고 있으니 내가 내겠소.자네 손으로 태우면 자네가 태운 사람이 되고, 태운 사람은 관에서 먼저 부르오."장복이 종이를 도로 안았다.안으면서 화덕 앞 재를 밟아 신코가 하얘졌다.* * *안채 쪽에서 박씨가 보퉁이를 안고 나왔다.마당을 반쯤 건너다가 마루 위를 보고 걸음이 빨라졌고, 빨라지다가 보퉁이를 떨어뜨렸다.마른 대추가 섬돌 아래까지 굴러갔다."어머! 이건 제 친정에서 온 거예요.이 댁 것이 아니고요.아, 제가 말을 잘못 했지요.이 댁 것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이 댁에서 난 게 아니라는 말이지요.""동서. 어디 가세요.""…친정에 좀 다녀오려고요.어머님께는 아침에 여쭈었어요.오래는 아니고 열흘이나, 아니 스무날쯤이요."소하가 대추를 주우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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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화 제 발로

새벽에 행랑 앞 툇마루에 등이 하나 켜져 있었고, 류가가 그 아래에 앉아 종이를 궤에 넣고 있었다.궤가 작아서 두 벌이 다 안 들어갔다.한 벌을 넣어 뚜껑을 닫고, 남은 한 벌은 무명보에 싸서 무릎에 올려놓았다.한경이 마당을 건너와 마루 끝에 앉았다."류가.""…예. 부인.""신을 닦아 놓으셨네요.어제저녁에 툇마루 밑에 내놓고 마르는 걸 봤어요.""…예.""거기 가시면 물은 끓여서 식힌 걸 드세요.오어멈이 그러는데 새벽에 끓인 건 뜨거워서 못 마신대요."류가가 무릎 위의 보퉁이를 두 손으로 눌렀다."소인이 부인께 여쭙지 않고 정했습니다.""알아요.""…부인께서 물으실 줄 알고 밤새 대답을 골랐습니다.그런데 안 물으시니 고른 것이 다 쓸데없어졌습니다.""아. 그거 아까우면 나중에 편지로 쓰세요.편지는 길어도 되니까."류가가 웃어 버렸다.웃고 나서 얼른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그건 두고 가시지.""…가지고 갑니다.소인이 적은 것을 소인이 지고 있어야, 나중에 누가 물으면 소인한테 묻습니다.""그럼 무거우시겠네.""무겁습니다."* * *해가 뜨기 전에 궁 서문 앞에 사람이 스물쯤 줄을 서 있었다.물지게를 진 사내들과 빨래 광주리를 인 여자들이 섞여 있었고, 문지기가 하나씩 목패를 받아 보고 들여보냈다.류가가 줄 끝에 섰다.앞에 선 여자가 뒤를 돌아보다가 광주리를 놓쳤고, 젖은 빨래가 흙바닥으로 미끄러져 나왔다."아이고. 이걸 또."류가가 앉아서 그것을 주워 담았다.여자가 광주리를 고쳐 이면서 곁눈으로 류가의 소매를 봤다."댁은 어느 방이오.""완의국입니다.""거긴 물이 무거운데.""…예. 예. 무겁다 들었습니다."앞에 선 사내가 제 물지게를 한 번 추슬렀다."물은 앞을 낮추고 지시오.뒤를 낮추면 뒷물이 다 목으로 넘어오오."차례가 되자 문지기가 목패를 받아 들고 얼굴을 한 번 봤다가 도로 목패를 봤다."어. 류 상궁 아니시오.""류가입니다.""…""작년 십일월에 나갔습니다.오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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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화 같은 날

새벽 부엌에 불이 없었다.오어멈이 쌀독 뚜껑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고 도로 덮은 뒤, 시렁 아래에서 항아리를 하나 꺼내 안고 뒷문으로 나갔다.성 서쪽 쌀전은 아침에 문을 늦게 열었다.오어멈이 문턱에 항아리를 내려놓자 주인이 안에서 내다보고 문을 반만 밀었다."아이고. 어멈. 나는 요새 육가에는 안 파오.""육가에 파는 게 아니고 나한테 파는 거지.""…어멈 것이라 해도 그 집 솥에 들어가는 건 매한가지 아니오.그 집 밥 한 그릇 얻어먹은 지게꾼이 명치를 밟혔다는데, 쌀을 대는 놈은 뭘 밟히겠소."오어멈이 항아리 안에서 헝겊에 싼 것을 꺼내 문턱에 올려놓았다.헝겊을 푸는 동안 손등이 보였는데, 화덕 재와 찬물에 스무 해를 담근 자리가 트고 갈라져서 금이 여러 줄 나 있었다.주인이 헝겊 안을 들여다보고 문을 마저 밀었다."…이걸 여태 안 쓰고 뒀소?""쓸 데가 없어서 뒀지.오늘 생겼으니 오늘 쓰는 거고."오어멈이 쌀자루를 지고 골목을 나오다 한 번 놓쳤다.도로 지고 일어설 때 무릎을 두 번에 폈다.부엌에 자루를 부리고 나서, 빈 항아리를 씻어 화덕 옆에 엎어 놓았다.* * *낮에 형부 서리가 광 앞 멍석까지 들어왔다.노영감이 나무판을 무릎에 놓고 앉아 있었다."영감. 이 집에 드나든 사람을 적었다고 들었소.""…적었습니다."서리가 판을 받아 이리저리 돌려 보다가 도로 내밀었다."이건 금뿐이지 않소.""예. 금뿐입니다.짐은 작대기로 적고 사람은 금으로 적습니다.""이름은.""소인 눈이 어두워 글자를 못 씁니다."서리가 판을 멍석에 놓고 일어섰다.일어서면서 발끝으로 판을 한 번 밀었다."영감이 스무 해를 세도 이건 아무 데도 못 쓰오."서리가 나가고 나서 노영감이 판을 무릎에 올리고 칼을 댔다.금 그은 자리를 위에서부터 밀어 깎았는데, 엄지 밑동에 오래 앉은 굳은살이 칼자루에 눌려 하얗게 됐다.깎아 낸 부스러기가 멍석 밖으로 떨어졌다.노영감은 쓸지 않고 다음 판을 집었다.* * *낮에 행랑 앞 툇마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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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화 달인 것

안채에 이틀째 늦도록 등이 꺼지지 않았다.문안을 받는 자리에 어제도 그제도 아무도 앉히지 않았고, 낮에 삼월이 죽 그릇을 손도 안 댄 채로 물려 왔다.한경이 마당을 건너 동쪽 방 앞에 서자 안에서 무엇을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방에 등이 둘 켜져 있었고, 대부인이 아랫목에 이불을 무릎까지 덮고 등을 세워 앉아 있었다.오어멈이 죽상을 들고 들어와 내려놓다가 숟가락을 떨어뜨렸다."아이고. 이거 새로 가져오겠습니다.""두어라."오어멈이 숟가락을 주워 앞치마에 닦아 상 귀에 올려놓았다.한경이 문지방을 넘어 상 옆에 앉았다."어머님. 아침에도 죽을 반만 드셨다면서요."대부인이 오른손을 들어 문 쪽을 가리켰다."나가."오어멈이 상을 물려 안고 나갔다.문이 다 닫히지 않아서 마루 쪽 빛이 한 줄 들어왔다.대부인이 무릎 위의 염주를 오른손으로 한 알씩 넘겼다.세 알을 넘기다 손안에서 미끄러뜨렸고, 도로 잡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나."왼쪽 입술이 따라 올라오지 않아 소리가 그 틈으로 샜다."…나 아아.""…""…나 아아 사라."세 번째에도 같은 데서 걸리자 대부인이 오른손으로 무릎을 짚고 고개를 숙였다.한경이 머리맡의 물그릇을 들어 입에 대 주었다.반쪽만 오므려지는 입이라 물이 왼쪽으로 흘러 앞섶에 떨어졌고, 대부인이 그것을 보고 손등으로 제 턱을 한 번 눌렀다."어머님. 지금 그거 다시 한 번만요."대부인이 숨을 고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 *"그 사라 주근 해에 나는 그 야탕과늘 우더아.그 사라아테 야글 다여 어긴 거슨 나아.운주이 시킨 거시 아니고 내가 저내아.여리레를 다여꼬 여려드레째 아치에 가아.아우도 나아테 우찌 아나아."한경이 무릎으로 한 뼘 다가앉았다."…약."대부인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문중."대부인이 고개를 저었다.젓고 나서 오른손으로 무릎을 두 번 쳤다."…문중이 아니고."또 끄덕였다."이레."대부인이 다시 저었다.젓는 김에 오른손으로 허공에 획을 하나 더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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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화 혼서

밤에 서하당 문이 열리고 육정이 들어왔다.관을 벗어 손에 들고 왔고, 관복이 아니라 낮에 돌아와 갈아입은 무명 두루마기 차림이었다.깃이 한쪽으로 눌려 접혀 있었고 왼 소매 끝에 마르다 만 먹이 한 점 앉아 있었으며, 옷끈은 오른쪽으로 매여 있었다.상 앞에 앉으면서 소매에서 종이를 꺼내 폈다.접은 자국이 없는 새 종이였고, 위에서 넷째 줄까지 글씨가 있었다."부인. 오늘 문중에 단자를 넣었소."한경이 종이를 끌어다 봤다.첫 줄에 육가와 심가의 이름이 나란히 있었고, 그 아래에 열 해 전 혼인날의 날짜가 있었다."이거 언제 쓰셨어요?""…그저께 밤에 쓰고 어제 하루 두었소.오늘 아침에 작은아버님께 드렸고, 작은아버님이 문중 어른 셋에게 돌리셨소.셋 가운데 둘이 저녁에 답을 보내왔소."한경이 종이 아래쪽을 손끝으로 눌렀다.인을 찍을 자리가 아직 비어 있었다."어머님은요.""…아침에 여쭈었소.""뭐라세요.""…고개만 한 번 저으셨소."* * *"그러면 나는 어느 집 사람이 돼요?"육정이 벼루 쪽을 봤다."…""심가는 지난달에 손을 뗐고요.이 집에서 내 이름이 빠지면 나는 적이 없어요.적이 없는 사람은 관에서 함부로 해도 되고요.""…아오.""아시면서 하셨네요.""…죄는 집에 붙소.부인이 이 집 사람이 아니면 이 집 죄가 부인한테 안 붙소.""그럼 나한테는 뭐가 붙어요?"육정이 붓을 집었다가 상에 도로 놓았다.놓는 소리가 컸다."저. …전례를 찾았소.스물세 해 전에 형부에서 판 것이 하나 있소.안주인이 시집온 집에서 나간 뒤에 그 집 문서로 죄를 물으려다 못 물은 일인데, 그때 그 안주인은 친정으로 갔소.부인은 갈 친정이 없으니 나는 그 전례를 그대로 못 쓰오.그것을 알고 어제 하루를 두었소.""두고 나서 넣으셨고요.""…넣었소.""둘 것 같으면 왜 두셨어요.""…하루를 두면 내가 그만둘 줄 알았소."* * *"나리.""…""지난달에 나한테 물으셨잖아요.나는 무엇을 하면 되겠냐고요."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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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화 물그릇

새벽에 대문 열리는 소리가 안채까지 왔다.마당에 서리가 아직 앉아 있어서 든 사람들의 신 자국이 하나씩 검게 남았다.서재에 자리를 넷 폈다.노영감이 멍석을 나르다 문지방 앞에서 한쪽 끝을 떨어뜨렸고, 분이어멈이 뒤에서 받아 안았다.문 앞에서 어른들이 서로 먼저 들라고 손을 내밀었다.위쪽 두 분이 서로 아랫자리에 앉겠다고 하는 바람에 앉는 데만 한참 걸렸다."부인. 저 어른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서로 밑에 앉겠다고 그러시는 거야.""그럼 위에는 누가 앉아요?""아무도 안 앉지."소하가 웃음을 참다가 소리를 냈고, 분이어멈이 그 입을 손바닥으로 막았다.부엌에서 오어멈이 솥뚜껑을 열었다 덮으면서 혼잣말을 했다."아이고. 이 아침에 저 어른들이 다 오시면 상은 몇을 봐야 하나.""어멈. 상은 안 봐도 돼요.저분들 오래 안 계세요."부엌 문지방을 넘는데 발바닥으로 한기가 올라왔다.한경이 신을 신고 도로 마당으로 내려섰다.* * *중문 안쪽에서 육정이 관끈을 매고 있었다.한 번에 안 매여 풀었다가 두 번 만에 맸다."나리.""…부인. 오늘은 안에 계시는 게 좋겠소.""안 해요.""…""어젯밤에 대답을 안 했잖아요. 지금 할게요. 안 해요."육정이 왼 어깨를 뒤로 돌렸다가 놓았다."…어제 아침에 넣었소.""넣은 걸 물러요.""못 무르오.""그럼 사유 칸을 비워 두시든가요.비워 두면 다음에 내가 도로 채우면 되고요.""…""어른들이 그 칸에 병이라고 적으시면 나는 평생 앓는 여자예요.안 앓는데 앓는 걸로 적혀 있으면 나중에 누가 나를 부를 때마다 그 칸이 먼저 와요."육정이 대문 쪽을 봤다가 서재 쪽을 봤다.관끈을 도로 풀었다.* * *서재 문이 반쯤 열려 있었고 안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한경이 부엌에서 물그릇을 받아 들고 마당을 건넜다.분이어멈이 마루 아래까지 따라오다가 섰다."부인. 그건 소인이…"한경이 문지방을 넘어 어른들 앞에 물그릇을 내려놓았다."새벽부터 앉아 계셨으니 목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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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화 그은 자리

안채 마루에 아침 볕이 반쯤 들어와 있었다.대부인 방 문이 열려 있었고 그 앞에 분이어멈이 서 있었는데, 앞치마 아래에서 두 손을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회색 손톱이 무명천에 걸려 소리가 짧게 났다."부인. 마님께서 궤를 내라 하셨습니다.""어멈. 손 그렇게 넣었다 뺐다 하면 천만 상해요.그러다 오늘 안에 앞치마 하나 못 쓰게 돼요.오늘은 그거 벗어 놓고 다녀요.""…예. 예. 소인이 이 집에 들어와서 저 궤가 열리는 것을 두 번 봤습니다.한 번은 나리 혼인하실 때였고요.""두 번째가 오늘이고요."분이어멈이 문지방 앞에서 물러서다가 마루에 놓아 둔 놋대접을 발로 밀어 떨어뜨렸다.대접이 마당으로 굴러가서 섬돌에 닿고 멎었다."소, 소인은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아이고, 이걸 어쩌나."주우러 내려가는 분이어멈의 목덜미가 붉어져 있었다.* * *이틀 자리보전을 하던 사람이 오늘은 아랫목에 등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앞에 궤가 나와 있었고 뚜껑이 이미 열려 있었다.안에 두꺼운 책이 한 권 들었는데 겉장에 손때가 앉아 검었다."앉아라."한경이 앉았다."열어라."책이 무거워서 한경이 두 손으로 폈다.장을 넘길수록 이름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고, 어느 장에서 먹이 두 줄 그어진 자리가 나왔다.이름 두 자였다. 그은 사람이 자를 대지 않아서 두 줄이 끝에서 조금 벌어졌고, 벌어진 틈으로 아래 획이 반쯤 보였다.바로 윗줄에 육정의 이름이 있었다.거기에는 아무것도 안 그어져 있었다.한경이 그 위에 엄지를 대 봤다.떼자 엄지 안쪽에 먹이 묻어났다."…마님. 이거 언제 그었어요."대부인의 왼쪽 입가가 움직이지 않아서 말이 오른쪽으로만 나왔다."…아까.""…""…운주 어른들 가시고 나서.""…문중 어른들 가시고 나서요."대부인이 한 번 끄덕였다.* * *문 밖에서 분이어멈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가 방 안으로 대답을 밀어 넣었다."소인이 서재 문 밖에 있었습니다.부인 나가시고 나서 방이 한참 조용했습니다.조용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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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화 식힌 물

부엌에 솥이 둘 걸려 있었다.하나는 김이 오르고 하나는 내려서 뚜껑이 열린 채 식고 있었다.오어멈이 식는 솥에 손등을 대 보고 도로 뺐다.조금 있다가 한 번 더 댔다."어멈. 밤에 웬 물을 두 솥이나 끓여요.""이 물은 길에서 마시는 겁니다.""길이요.""…""아이고. 호리병에 넣으시면 이레는 갑니다.이레 지나거든 미련 없이 버리시고 얻어 드십시오.남의 집 물은 얻어 마셔도 흉이 아닙니다.""어멈은 그런 걸 어떻게 알아요.""…예. 예. 소인이 열여섯에 이 집에 들어왔는데요, 오기 전에 닷새를 걸었습니다.그때 물을 못 얻어 마셔서 혼이 났지요.그 뒤로 남의 집 문간에서 물 달라는 사람은 안 돌려보냅니다."오어멈이 시렁에서 호리병을 내려 아가리를 등불에 비춰 봤다.안이 마른 것을 보고 나서 마른 행주로 한 번 더 훑었다."…어멈.""소인은 아무것도 안 물었습니다."* * *광 문 앞 멍석에 노영감이 앉아 있었고 그 옆에 소하가 등을 들고 앉아 있었다.노영감이 손가락만 한 나무를 눈에서 멀찍이 떼어 들고 칼을 댔다."영감. 그거 뭐예요.""…소인 눈이 어두워서 오늘 안에 될지 모르겠습니다.""물어본 걸 안 물어본 걸로 만드시네.""소하야. 등을 이짝으로 조금.""이짝이 어느 짝이에요?""…칼 있는 짝."소하가 등을 옮기다가 저 혼자 웃음이 터졌고, 노영감이 영문을 모른 채 따라 웃었다.부엌문 안쪽에서 오어멈이 솥뚜껑을 소리 나게 덮었다."밤에 웃으면 개가 짖는다.""어멈은 아까 저보고 안 웃는다고 뭐라 했잖아요!"노영감이 깎던 것을 손바닥으로 덮었다.덮고 나서 등을 조금 더 당겨 달라고 했다.* * *행랑 앞 툇마루에 등이 하나도 안 켜져 있었다.마루 끝에 종이 궤가 하나 놓여 있고 그 위에 먹이 마른 벼루가 얹혀 있었다.분이어멈이 그 앞을 지나다 벼루를 안쪽으로 밀어 놓고 왔다."아이고, 부인. 마님께서 이걸 드리라 하셨습니다."무명 조각에 싼 것을 풀자 염주가 나왔다.알이 굵고 실이 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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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화 섬돌

서하당 창이 아직 검었다.등잔에 심지를 새로 갈아 끼웠는데도 방 안쪽까지는 안 밝았다.한경이 혼자 옷을 입었다.물들이지 않은 무명 적삼에 짙은 쪽빛 치마였고, 깃이 좁고 소매가 짧아 손목이 다 나왔다.옷끈이 한 번에 안 맞아 풀었다가 다시 맸다.치마 말기를 여미느라 뒤로 손을 넘겼는데, 넘긴 손이 잡을 것을 못 찾아 도로 앞으로 왔다.머리를 올려 쥐고 어젯밤 마루 끝에서 가져온 것을 꽂았다.기름을 안 먹인 나무라서 머리카락이 미끄러지지 않고 그대로 물렸다.혼인할 때 심가에서 온 은비녀는 경대 위에 그대로 두었다.곳간 열쇠 꾸러미도 그 옆에 놓았다.등잔을 끄자 심지에서 연기가 한 줄 올라왔다.* * *마루 아래 섬돌에 신이 나와 있었다.코가 아직 젖어 있었다.신 옆에 보퉁이가 하나 놓여 있었다.매듭이 넷이었고 넷 다 매는 손이 달랐다.하나는 두 번 감아 단단히 조였고, 하나는 고를 크게 내어 한 번에 풀리게 해 두었고, 하나는 매다 말고 그냥 눌러 놓았다.풀지 않고 들었는데 안에서 물소리가 났다.물소리 아래로 무엇이 무겁게 움직였고, 움직이고 나서 나무끼리 닿는 소리가 짧게 났다."어. 무겁네."한경이 보퉁이를 다른 손으로 옮겨 들면서 매듭을 하나씩 눌러 봤다."넷이면 하나는 내가 못 풀겠는데.근데 이거 누가 맸는지는 다 알겠어, 아주."부엌에 불이 있었다.오어멈이 화덕 쪽으로 등을 돌리고 앉아 부지깽이로 잿불을 헤집고 있었다.헤집을 것이 없는 잿불이었다.광 문이 열려 있고 안에서 자루 옮기는 소리가 났다.노영감은 벽 쪽을 보고 서 있었다.행랑 앞을 지날 때 분이어멈이 마루를 쓸고 있었다.어제도 쓸고 그저께도 쓴 자리였다.회색 손톱이 빗자루 대에 걸렸다가 떨어졌다.아무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 *중문을 지나는데 서재 쪽 기둥 옆에 갓 그림자가 하나 서 있었다.관끈 한쪽이 안 매여 어깨 아래로 늘어져 있었다.마당으로는 안 내려왔다.한경이 그 앞을 지나 대문 쪽으로 걸었다.걸으면서 걸음을 늦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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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화 담 안

궁문 앞에서 한경이 걸음을 멈췄다.가마도 없었고 뒤따라온 사람도 없었다.수문장이 문서를 받아 두 번 읽었다.옆에 선 군사에게 넘겼다가 도로 받아 한 번 더 읽고 나서 문서를 접었다."육 부인—"수문장이 거기서 멎었다.열 해를 그렇게 불러 온 입인데 오늘은 뒤가 안 붙었다."…드시오."문 안쪽 회랑으로 드는 볕이 낮아서 무명 적삼의 올이 하나씩 보였다.깃이 좁고 동정이 없었고, 소매가 팔꿈치 아래에서 한 번 접혀 손목뼈가 드러났다.물을 덜 먹인 쪽빛 치마는 걸음을 옮길 적마다 앞자락이 뻣뻣하게 들렸다가 내려앉았고, 도련이 발등에서 접히지 않고 그냥 떨어졌다.머리에 지른 나무 비녀는 깎은 지 하루가 안 되어 결이 희었고 여태 기름을 안 먹여서, 볕에 한 번씩 그 흰 자리가 검은 머리 위에서 났다.상궁이 층계 아래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다리고 있었다.한경이 층계를 오르자 상궁의 손이 반쯤 올라왔다가 도로 내려갔다."…이리로 드시지요."* * *회랑을 앞서 걷던 상궁이 두 번째 협문에서 걸음을 늦췄다."저, 이 담 안은 길이 다 비슷해서 오신 지 얼마 안 되면 헤매십니다.그래서 오늘 가시는 길만 외우시면 됩니다.소인도 처음 석 달은 뒷간을 못 찾아서 밤마다 울었습니다.""헤매면 어떻게 돼요?""…남의 처소 앞에 서 있게 되지요.서 있으면 적힙니다."회랑 저쪽 끝에 사람 여럿이 서 있었고 그중 하나가 두 걸음 내려오다가 돌아섰다.돌아서서 도로 올라가는 동안 나머지가 아무도 안 움직였다.작은 방에 상이 하나 놓여 있었고 서리가 그 앞에 앉아 있었다.상 위에 두꺼운 첩이 펴져 있었는데 마지막 장에 빈 줄이 하나 남아 있었다."이름을 무어라 올리리까.""…""예. 예. 성부터 적습니다.성이 무엇이십니까."서리가 붓을 대고 첫 획을 그었다.긋다 말고 붓끝을 종이에서 놓쳤다.먹이 한 점 번졌다."…붓이 손에 익은 대로 갔습니다."서리가 종이를 칼로 얇게 긁어내고 새로 먹을 찍었다."심명주요."붓이 두 자를 적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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