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Chapter 331 - Chapter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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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화. 침묵을 깨는 사람

그날 밤.도현이 말했다.“오늘은 제가 말할 때만 대답하십시오.”나는 바로 눈썹을 올렸다.“진짜 말 금지?”“아닙니다.”그가 바로 수정했다.“필요한 말은 언제든 하십시오. 안전과 불편, 중단은 예외입니다.”“그럼?”“그 외에는.”도현의 눈빛이 짙어졌다.“제가 묻는 것에만 대답해 보십시오.”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색깔.”“초록.”시작부터 달랐다.나는 원래 생각이 많아지면 말을 했다.웃기도 하고.묻기도 하고.장난도 쳤다.오늘은 그걸 줄였다.도현이 이끌었다.“거기.”움직였다.“멈춰.”멈췄다.“나를 봐.”바라봤다.“지금 괜찮습니까?”“네.”그다음은 다시 침묵.내가 먼저 묻지 않으니.도현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더 선명했다.한 손이 허리에 닿았다.다른 손은 얼굴 가까이 오다 멈췄다.나는 그 손을 따라 시선만 움직였다.“왜 보고 있습니까?”“궁금해서.”“무엇이?”“다음.”도현의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그건 제가 정합니다.”나는 입을 다물었다.그는 손으로 내 턱을 가볍게 잡았다.강하지 않았다.하지만 시선은 피하지 못하게 했다.“지금 하고 싶은 말.”나는 망설였다.“주인님.”“그다음.”“더 가까이 와줬으면 좋겠어요.”도현이 바로 한 걸음 가까워졌다.“좋습니다.”그 뒤로도 말은 적었다.대신 필요한 순간에는 정확히 말했다.“강도.”“괜찮아요.”“색깔.”“초록.”“더?”“네.”도현은 내가 말하지 않는 걸 이용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았다.오히려 중요한 질문은 더 분명했다.그게 좋았다.침묵은 복종의 증명이 아니었다.그냥 오늘 선택한 방식.끝난 뒤에는 도현이 먼저 말했다.“이제 하고 싶은 말 다 하십시오.”나는 바로 말했다.“주인님 오늘 진짜 얄미웠어요.”도현이 웃었다.“왜?”“말시키고 싶은 순간에만 질문하잖아.”“제가 주도했으니까.”“근데 좋았어요.”“그럼 됐습니다.”그날은 말이 적어서 오히려.서로의 호흡을 더 많이 들었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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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화. 휴가 중인 부대표

카렐이 없는 첫날.회의는 평소보다 조용했다.나는 자료를 보다가 물었다.“반대 의견?”아무도 바로 손을 들지 않았다.순간 짜증이 났다.“카렐 없다고 반대도 없어?”한예린이 웃었다.“다들 카렐이 먼저 해주니까 편했던 거지.”그 말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나는 문서를 덮었다.“그럼 오늘은 카렐 없이 해요.”“뭘?”“내 의견에 반대할 사람 세 명 나올 때까지 결정 안 해.”한예린이 바로 말했다.“그것도 강제야.”나는 멈췄다.“…그러네.”또 방식이 틀렸다.반대를 만들겠다고.사람들에게 반대하라고 압박할 뻔했다.나는 바로 고쳤다.“그럼 질문 바꿀게요.”회의실을 둘러봤다.“이 안에서 가장 위험한 부분 하나씩만 말해줘요. 찬성이든 반대든.”그제야 의견이 나왔다.파리 담당.뮌헨 담당.프라하 담당.결론은 내 원안 그대로가 아니었다.그렇다고 완전히 뒤집히지도 않았다.조금 수정됐다.회의 후 한예린이 말했다.“카렐 효과 크네.”“뭐가?”“없어도 반대하게 만드는 거.”나는 웃었다.카렐이 휴가 중인데도.그가 만들어놓은 문화는 남아 있었다.좋은 부대표는.자기 없을 때 더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자기 없어도 시스템이 작동하게 만드는 사람일지도 몰랐다.그날 나는 카렐에게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다.한 번쯤 결과를 보내고 싶었다.하지만 휴가였다.보내지 않았다.저녁 도현에게 말하자 그가 웃었다.“많이 참았습니까?”“조금.”“거짓말.”“많이.”“잘했습니다.”익숙한 말.그런데 회사에서 듣는 것과 밤에 듣는 건.전혀 달랐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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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화. 바닥에 그은 선

도현은 침실 바닥에 테이프를 붙였다.나는 문 앞에서 멈췄다.“이건 또 뭐야.”바닥에 길게 선 하나.“오늘 경계입니다.”“넘으면?”“제가 말할 때만.”“내가 넘어가면?”“아무 일도 없습니다.”“벌 같은 거 없어?”“없습니다.”나는 웃었다.“그럼 왜 선을 그어요?”“넘을 수 있는데 안 넘는 걸 해보고 싶었습니다.”범위 확인 후.나는 선 한쪽에 섰다.도현은 반대쪽.거리는 한 걸음 반 정도.그가 말했다.“이 선을 제가 허락하기 전까지 넘지 마십시오.”“네.”도현은 바로 가까이 오지 않았다.오히려 자기 쪽에서 천천히 움직였다.나는 선을 사이에 두고 그를 봤다.그가 선 바로 앞까지 왔다.나는 반사적으로 한 걸음 가려다가 멈췄다.“잘했습니다.”목소리가 낮았다.도현은 손을 뻗었다.선은 넘지 않았다.손끝이 닿을 듯 말 듯.나는 괜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선.”짧은 경고.다시 제자리.“치사해.”“싫습니까?”“아니.”“그럼 그대로.”한참 동안.도현은 선을 넘지 않았다.나도.그런데 거리는 점점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주인님.”“네.”“언제 넘어가요?”“누가?”“나.”“제가 말할 때.”“주인님은?”도현의 눈빛이 짙어졌다.“저는.”그가 아주 천천히 발끝을 선 위에 올렸다.“이 선을 만든 사람입니다.”그리고 한 걸음.내 쪽으로 넘어왔다.순간 심장이 확 뛰었다.나는 움직이지 않았다.도현이 바로 앞까지 왔다.“저는 넘어갈 수 있습니다.”목소리가 낮았다.“하지만 당신에게 닿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한 손이 멈췄다.“닿아도 됩니까?”“네.”그제야 허리에 손이 왔다.확실하게.강하게.나는 숨을 들이마셨다.“색깔.”“초록.”도현은 선을 넘은 뒤에도.내가 넘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오히려 자기 쪽에서 계속 주도했다.한동안 그렇게 진행되다.마지막에야 말했다.“이제 넘어오십시오.”나는 선을 넘었다.딱 한 걸음.그 순간 도현이 나를 바로 끌어안았다.나는 웃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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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화. 차명희의 두 번째 전시

차명희가 작은 전시에 그림 세 점을 냈다.바다 그림은 아니었다.완전히 새로운 그림들.준호 씨도 왔다.도현은 그를 보자 아주 잠깐 표정이 굳었다.나는 옆에서 물었다.“괜찮아요?”“네.”“정말?”“조금 불편합니다.”“왜?”도현은 준호 씨와 어머니가 나란히 그림을 보는 모습을 봤다.“익숙하지 않아서.”“질투?”“아들로서의 질투도 질투라고 한다면.”나는 웃었다.“귀엽네.”도현이 바로 나를 봤다.“그 표현은 하지 마십시오.”“왜?”“마음에 안 듭니다.”차명희가 우리를 불렀다.“둘이 또 뭘 속닥거려.”나는 웃었다.“아드님이 질투해요.”도현의 표정이 굳었다.차명희가 피식 웃었다.“내가 누굴 만나든?”도현은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네.”차명희가 오히려 놀랐다.“솔직하네.”“그래도 어머니 선택입니다.”“알면 됐어.”그걸로 끝.준호 씨도 아무 설명을 하지 않았다.관계가 무엇인지.얼마나 자주 만나는지.앞으로 어떻게 될지.도현은 묻지 않았다.전시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내가 말했다.“진짜 많이 변했다.”“무엇이?”“예전이면 알아봤을 것 같아.”“네.”“지금은?”“궁금합니다.”“그래도?”“제 정보가 아닙니다.”도현은 창밖을 봤다.“어머니가 말하고 싶을 때 들으면 됩니다.”그 말이.이제 꽤 자연스럽게 들렸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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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화. 주인님의 속도

그날 밤.도현이 말했다.“오늘은 속도를 제가 정합니다.”나는 웃었다.“평소에도 정하잖아요.”“오늘은 더 분명하게.”“강도는?”“당신이 정하십시오.”“높음.”“좋습니다.”“통증은 약하게.”“네.”“결박 싫고.”“알겠습니다.”도현은 아무 도구도 꺼내지 않았다.대신 처음부터 빠르게 시작했다.“일어나.”“네.”“이쪽.”나는 따라갔다.“멈춰.”말과 움직임 사이 간격이 짧았다.평소보다 생각할 시간이 적었다.그런데 도현은 내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내가 한 번 늦게 움직이자 바로 멈췄다.“너무 빠릅니까?”“아니.”“확실해?”“네.”“그럼 계속.”다시 속도가 올라갔다.가까이.멈춤.돌아서기.다시 시선 맞추기.손이 허리를 잡고.곧바로 풀리고.내가 예상하기 전에 다음 지시가 왔다.“주인님.”“네.”“정신없어요.”도현이 바로 멈췄다.“싫습니까?”나는 숨을 골랐다.“아니.”“그럼?”“좋은 쪽.”그의 입가가 올라갔다.“그럼 따라오십시오.”다시 시작.이번에는 속도를 조금 더 높였다.하지만 중간에 갑자기 완전히 멈췄다.나는 그대로 기다렸다.십 초.이십 초.“왜 멈췄어요?”“제가 정합니다.”“아.”나는 웃었다.“속도는 빠른 것만 말하는 게 아니구나.”“맞습니다.”도현은 갑자기 아주 느리게 가까워졌다.한 손을 들어 내 턱 가까이 가져오면서도.닿기까지 오래 걸렸다.빠른 흐름 뒤의 느림.그게 훨씬 더 강하게 느껴졌다.“어떤 게 더 어렵습니까?”“지금.”“왜?”“기다리게 되니까.”도현이 낮게 말했다.“그럼 조금 더.”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주인님.”“네.”“즐기죠?”“많이.”나는 웃었다.마지막에는 다시 빠르게.그러다 완전히 멈춤.도현은 그 변화를 전부 자기가 정했다.끝난 뒤.나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오늘은 진짜 정신 없었어요.”“싫은 의미?”“아니.”“그럼 됐습니다.”그는 물을 건넸다.나는 받아 마셨다.“근데 다음에 똑같이 하면 알아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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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화. 사라진 승인란

한예린이 가져온 새 재무 결재 문서에는 내 이름이 없었다.나는 첫 페이지를 보다가 멈췄다.“내 승인란 어디 갔어요?”한예린이 아주 태연했다.“없앴어.”“진짜?”“네가 승인 안 해도 되는 항목이니까.”나는 문서를 다시 봤다.이상했다.불안했다.그런데 논리적으로는 맞았다.일정 규모 이하의 재무 조정.기존 정책 범위 안.거버넌스 책임자 승인만으로 충분.“사고 나면?”“내 책임.”한예린이 말했다.“정확히는 내 조직 책임.”“그래도 총괄 책임도 있죠.”“있지.”“그런데?”“총괄 책임이 모든 문서에 사인하는 건 아니잖아.”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결국 승인란은 돌려놓지 않았다.일주일.아무 사고도 없었다.둘째 주.작은 오류 하나가 났다.예전 같으면 나는 바로 말했다.‘봐. 내가 봤어야 했어.’그런데 한예린이 먼저 고쳤다.보고서도 올렸다.재발 방지 조치도 끝냈다.나한테 남은 건.결과 확인뿐이었다.도현에게 말하자 그가 말했다.“이상합니까?”“많이.”“다시 넣고 싶습니까?”“조금.”“넣을 겁니까?”나는 생각했다.“아니.”“왜?”“내가 보면 오류 하나는 막을 수 있겠지만.”“네.”“그럼 영원히 내가 봐야 하니까.”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그게 위임의 비용 같습니다.”“오류를 보는 거?”“네.”완벽한 위임은.실수까지 제거하는 게 아니었다.실수가 나도 다른 사람이 고칠 수 있도록 두는 것.회사에서도 나는.조금씩 손을 놓는 중이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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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화. 문 앞에서 멈춰

도현이 침실 문 앞에서 나를 멈춰 세웠다.“여기.”나는 안을 봤다.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왜요?”“들어오라고 할 때까지.”“기다려요?”“네.”“또 기다리기?”도현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예전처럼 시간을 끌려는 게 아닙니다.”“그럼?”“당신이 문턱을 넘는 순간부터 제가 주도한다는 걸 분명하게 하고 싶습니다.”나는 잠시 문턱을 내려다봤다.“지금은?”“아직은 그냥 우리.”그 말이 묘했다.침실 밖.도현 씨.남편.그리고 문 안에서는.내가 선택해서 맡기는 주인님.“들어오십시오.”목소리가 달라졌다.나는 문턱을 넘었다.그 즉시 도현이 문을 닫았다.잠그지는 않았다.“뒤돌아.”나는 돌아섰다.“가까이.”한 걸음.도현은 오늘 처음부터 강했다.목소리도.손의 압력도.다만 범위는 이미 확인했다.통증 약하게.손목 가능.결박 없음.시야 제한 없음.나는 도현이 손목을 잡는 순간 바로 숨을 들이마셨다.“색깔.”“초록.”“좋아.”이번에는 한 손목만.단단하게.도현은 그 상태로 자세를 바꾸게 했다.힘으로 끌지 않았다.말로 움직이게 했다.“이쪽.”“멈춰.”“나를 봐.”나는 그대로 따랐다.평소보다 목소리가 단호했다.“주인님.”“네.”“오늘 화난 거 아니죠?”그가 즉시 멈췄다.“아닙니다.”“확실해요?”“네.”“그럼 괜찮아요.”도현의 손이 조금 느슨해졌다.“왜 그렇게 느꼈습니까?”“조금 세서.”“강도 낮출까요?”나는 생각했다.“아니.”“확실합니까?”“네.”그제야 다시 이어졌다.그 차이가 중요했다.강한 목소리가 화로 느껴지면.바로 확인.감정이 섞였다면 중단.오늘은 아니었다.도현은 차분했다.욕망은 강했지만.화를 풀고 있는 게 아니었다.확인이 끝나자 오히려 내가 더 편하게 맡길 수 있었다.도현은 그 뒤로도 강하게 주도했다.하지만 선을 넘지 않았다.한참 뒤.그가 내 손목을 놓았다.“문 밖으로 나가면 끝입니다.”“지금 나가면?”“끝냅니다.”“진짜?”“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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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화. 돌아오지 않는 보고서

카렐이 휴가에서 돌아왔다.내 책상 위에는 보고서가 없었다.“휴가 보고서는?”내가 묻자 카렐이 나를 이상하게 봤다.“없습니다.”“어디 갔어요?”“휴가인데 무슨 보고서를 씁니까?”나는 멈췄다.“아.”카렐이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총괄님은 다른 사람 휴가 내용까지 보고받습니까?”“아니.”“그럼?”“예전에 그냥.”습관이었다.출장 뒤에는 보고서.프로젝트 뒤에는 결과.휴가 뒤에도 뭔가 공유해야 할 것 같은 느낌.카렐은 딱 잘라 말했다.“쉬었습니다.”“끝?”“네.”“좋았어요?”“그건 대답하겠습니다.”카렐이 아주 조금 웃었다.“좋았습니다.”나는 더 묻지 않았다.오후 회의.카렐은 바로 업무로 돌아왔다.“이 제안은 반대합니다.”나는 웃었다.“복귀 첫날부터?”“휴가는 휴가고.”“업무는 업무?”“네.”정말 그대로였다.저녁 도현에게 말하자 그가 웃었다.“당신이 조금 아쉬워 보입니다.”“뭐가?”“휴가 이야기를 더 못 들어서.”“궁금하긴 하죠.”“그럼 물어보지 그랬습니까?”“말하기 싫을 수도 있잖아요.”도현이 나를 봤다.“물어보는 것과 강요하는 건 다릅니다.”나는 멈췄다.맞았다.요즘 우리는 통제하지 않는 데 너무 집중하다가.가끔 관심까지 줄이려 했다.“그럼 내일 물어볼까?”“원하면.”다음 날.나는 카렐에게 단순하게 물었다.“신혼 휴가 좋았어요?”카렐은 대답했다.“네.”“끝?”“더 궁금합니까?”“말하고 싶으면.”카렐은 여행 중 길을 잘못 든 이야기 하나를 했다.그걸로 끝.관심은 가능했다.대답을 요구하지 않으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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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화. 오늘은 놓지 마

그날 밤.도현이 먼저 물었다.“오늘도 맡깁니까?”나는 잠시 생각했다.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네.”“강도.”“높음.”“싫은 것.”“눈 가리는 거 싫어요.”“네.”“묶는 것도 싫고.”“네.”“통증은 약하게.”“좋습니다.”“손목은.”나는 도현을 봤다.“오늘은 괜찮아요.”그의 시선이 깊어졌다.“양쪽?”“한쪽씩.”“알겠습니다.”도현은 더 묻지 않았다.“일어나.”나는 일어났다.이번에는 복잡한 장치도.선도.카드도 없었다.그가 원한 건 하나였다.확실한 접촉.도현은 내 손목을 잡았다.평소보다 단단했다.“이 정도.”“괜찮아요.”“색깔.”“초록.”그 상태로 내 눈을 봤다.“오늘은.”목소리가 낮았다.“제가 놓으라고 하기 전까지 먼저 빠져나오려 하지 마십시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네.”“대신.”손의 힘이 아주 조금 느슨해졌다.“나가고 싶으면 말하십시오.”“알아요.”“말하는 순간 바로 놓습니다.”“네.”도현은 다시 손을 단단히 했다.그 뒤의 흐름은 빠르지 않았다.하지만 강했다.손목을 잡은 상태에서.내가 어디로 움직일지 말했고.가까이 오게 했다.다시 멈추게 했다.그의 시선을 피하면.“봐.”짧은 말.나는 다시 눈을 맞췄다.“주인님.”“네.”“오늘은 왜 안 놔요?”“당신이.”그가 잠시 멈췄다.“오늘은 제가 놓지 않는 걸 원한다고 생각했습니다.”나는 바로 말했다.“맞아요.”도현의 눈빛이 조금 더 깊어졌다.“그래도 생각과 확인은 다릅니다.”“응.”“지금도?”“네.”그제야 다시 이어졌다.나는 도현의 손 안에서 일부러 손가락을 움직였다.잡힌 걸 확인하듯.도현이 바로 알아챘다.“너무 강합니까?”“아니.”“그럼?”나는 조금 망설였다.“그냥.”“말하십시오.”“진짜 안 놓는지 보고 싶어서.”도현은 한동안 내 눈을 봤다.“원할 때까지.”짧은 대답.“하지만.”“네.”“당신이 원하지 않는 순간보다 오래는 아닙니다.”그 말과 동시에 손목을 잡은 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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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화. 먼저 말하지 않는 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자 도현은 거실에 있었다. 셔츠 소매를 걷은 채 소파에 앉아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카드도. 도구도. 미리 준비된 물건도 없었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오늘은 아무것도 없어요?” 도현이 나를 봤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테이블이 비어 있잖아요.” “비어 있으면 아무것도 없는 겁니까?” 그 말에 웃음이 났다. “요즘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 좋아하네.”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일어났다. 그 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 아무것도 없던 거실이 갑자기 좁아진 느낌. 나는 자연스럽게 그를 봤다. “오늘도 주인님이 정해요?” “네.” “범위는?” “지금 확인합니다.” 도현은 내 앞까지 오지 않았다. 적당한 거리를 둔 채 물었다. “오늘 피곤합니까?” “조금.” “몸 상태는?” “괜찮아요.” “통증.” “약하게.” “결박.” “싫어요.” “시야 제한.” “싫어요.” “손목.” 나는 잠시 생각했다. “가능.” “강도.” 이번에는 조금 더 오래 고민했다. “중간보다 조금 높게.”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리고.” 나는 먼저 덧붙였다. “오늘은 뭘 할 건지 먼저 안 알려줘도 돼요.” 도현의 눈빛이 아주 조금 달라졌다. “그건 원래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알아요.” “그래도 다시 확인하고 싶은 겁니까?” “응.” “왜?” 나는 잠시 생각했다. “요즘 내가 자꾸 다음을 예상하려고 해서.” 도현은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오늘은.” 낮은 목소리. “예상하지 마십시오.” “그게 명령?” “네.” 나는 웃었다. “어려운데.” “알고 있습니다.” “실패하면?” “다시 하면 됩니다.” 도현은 거기까지 말하고 더 설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꺼내지 않았다. 그냥 내 앞을 지나 침실이 아니라 서재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의아해서 따라 보다가 멈췄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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