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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화. 가장자리가 지나간 자리

Auteur: 에이르
last update Date de publication: 2026-09-09 10:18:16

도현이 오늘 꺼내온 건 처음엔 플레이 도구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흰색에 가까운 매끈한 도자기 조각.

손바닥보다 조금 작고.

한쪽은 둥글게.

다른 쪽은 완만하게 굴곡져 있었다.

나는 침대 위에 놓인 물건을 집어 들었다.

“이거 괄사 아니에요?”

“맞습니다.”

“얼굴 마사지하는 거?”

“이건 바디용.”

나는 바로 그를 봤다.

“주인님 이제 마사지샵까지 차리려고?”

도현은 내 손에서 괄사를 가져갔다.

“오늘 써보고 판단하겠습니다.”

“뭘 판단해.”

“당신이 좋아하는지.”

“본인이 쓰고 싶어서 샀으면서.”

“그것도 맞습니다.”

대답이 빨랐다.

나는 웃었다.

요즘 도현은 이런 걸 굳이 숨기지 않았다.

내가 원할 것 같아서.

좋아할 것 같아서.

그런 이유보다.

자기가 해보고 싶다는 말을 먼저 할 때가 늘었다.

도현은 괄사의 넓은 면을 자기 팔 위에 댔다.

천천히.

쓸어 올렸다.

스윽.

“아파요?”

“아닙니다.”

이번에는 가장자리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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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384화. 차가운 선이 따뜻해질 때

    도현은 서랍을 열지 않았다. 대신. 협탁 위 작은 천 주머니 하나를 올려놨다. 나는 침대 끝에 앉은 채 그걸 바라봤다. “오늘은 뭐예요?” “꺼내보십시오.” “내가?” “네.” 주머니를 열었다. 손끝에 먼저 닿은 건. 차갑고 매끄러운 금속이었다. 나는 안에 든 걸 천천히 꺼냈다. 얇은 스테인리스 체인. 목에 거는 액세서리도 아니었고. 잠금장치도 없었다. 그냥 길게 이어진. 매끈한 금속선이었다. “이걸 어디에 써요?” 도현이 내 손에서 체인을 받아 들었다. 찰랑. 작은 금속음. “묶는 데는 쓰지 않습니다.” “그럼?” “피부 위를 지나가게.” 나는 눈썹을 올렸다. “차갑겠다.” “그래서 골랐습니다.” 도현이 먼저 자기 손목 위에 체인을 올렸다. 금속이 피부에 닿으며 작게 움직였다. 찰락. “차갑습니까?” “처음에는.” 그는 손목 위에서 천천히 끌어내렸다. “하지만 오래 잡고 있으면 금방 따뜻해집니다.” “그 차이를 보려고?” “네.” 나는 웃었다. “주인님 진짜 이제 감각 차이 수집하는 사람 같다.” 도현이 나를 봤다. “싫습니까.” “아니.” “그럼 손.” 나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도현이 체인을 손등 위에 올렸다. 순간. “아….” 생각보다 차가웠다.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찔했다. 도현이 바로 물었다. “괜찮습니까.” “응.” “차가운 정도.” “놀란 정도?” “싫지는 않고.” “초록?” “네.” “좋습니다.” 그가 체인 끝을 잡고. 손등 위를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찰랑. 차가운 점들이 연속해서 지나갔다. “하….” 이번에는 숨이 조금 길게 나왔다. 도현의 시선이 바로 얼굴로 올라왔다. “벌써.” “뭐가.” “숨.” “차가워서.” “정말?” 나는 그를 보다가 웃었다. “반쯤.” “나머지는.” “주인님이 보고 있으니까.” 도현의 눈빛이 아주 조금 짙어졌다. “그렇군요.” “일어나십시오.” 나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도현은 체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383화.향이 먼저 기억한 밤

    도현의 손은 아직 내 허리에 있었다. 나는 그의 허리를 잡은 채 조금 더 가까이 붙었다. “주인님.” “네.” “아직도 끝난 것 같지 않은데.” 도현이 나를 내려다봤다. “무엇이.” “표정.” “제 표정이 왜.” 나는 그의 허리를 한 번 더 당겼다. “계속 뭔가 생각하는 얼굴.” 몇 초. 도현이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을 천천히 풀었다. “맞습니다.” “뭐 생각했어요?” “새로 해보고 싶은 것.” 나는 바로 눈썹을 올렸다. “지금?” “오늘은 아닙니다.” “그럼 언제.” 도현이 잠깐 생각했다. “내일.” 다음 날 저녁. 침실에는 평소와 다른 향이 아주 희미하게 나고 있었다. 강한 향수 냄새는 아니었다. 깨끗한 나무 냄새에. 조금 달고 따뜻한 향. 나는 문 앞에서 바로 멈췄다. “뭐 뿌렸어요?” 도현은 침대 옆에 서 있었다. “알아챘습니까.” “응.” “싫습니까.” “아니. 근데 평소 향 아니잖아.” 도현이 협탁 위 작은 병을 들었다. 피부에 직접 뿌리는 향수가 아니라. 패브릭용 향이었다. 그 옆에는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남색의 긴 새틴 리본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는 바로 그걸 봤다. “오늘은 리본?” “네.” “묶으려고?” “아닙니다.” “그럼?” 도현이 리본을 집어 들었다. “오늘은 향을 입혔습니다.” 나는 웃었다. “리본에 향을?” “네.” 그가 리본 끝을 아주 가볍게 흔들었다. 향이 조금 더 가까워졌다. “왜.” “당신이 눈으로 보기 전에.” 도현이 내 앞으로 왔다. “향부터 기억하는지 궁금해서.” 나는 잠깐 그를 봤다. “오늘은 후각?” “그것만은 아닙니다.” “또 뭐 있어.” “촉감.” 도현이 리본 끝으로 내 손등을 아주 가볍게 쓸었다. 사락. “아….” 얇고 미끄러운 천이 피부를 지나갔다. 붓이나 깃털과도 달랐다. 부드럽긴 한데. 완전히 가볍지는 않았다. “어떻습니까.” “생각보다 느낌 있어.” “간지럽습니까.” “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382화. 가장자리가 지나간 자리

    도현이 오늘 꺼내온 건 처음엔 플레이 도구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흰색에 가까운 매끈한 도자기 조각. 손바닥보다 조금 작고. 한쪽은 둥글게. 다른 쪽은 완만하게 굴곡져 있었다. 나는 침대 위에 놓인 물건을 집어 들었다. “이거 괄사 아니에요?” “맞습니다.” “얼굴 마사지하는 거?” “이건 바디용.” 나는 바로 그를 봤다. “주인님 이제 마사지샵까지 차리려고?” 도현은 내 손에서 괄사를 가져갔다. “오늘 써보고 판단하겠습니다.” “뭘 판단해.” “당신이 좋아하는지.” “본인이 쓰고 싶어서 샀으면서.” “그것도 맞습니다.” 대답이 빨랐다. 나는 웃었다. 요즘 도현은 이런 걸 굳이 숨기지 않았다. 내가 원할 것 같아서. 좋아할 것 같아서. 그런 이유보다. 자기가 해보고 싶다는 말을 먼저 할 때가 늘었다. 도현은 괄사의 넓은 면을 자기 팔 위에 댔다. 천천히. 쓸어 올렸다. 스윽. “아파요?” “아닙니다.” 이번에는 가장자리 쪽. 압력은 훨씬 약하게. 짧게 지나갔다. “느낌이 달라요?” “네.” “나도.” 나는 손을 내밀었다. 도현이 손목 안쪽에 넓은 면을 먼저 댔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매끈한 표면. 그리고. 천천히. 스윽. “아….” 생각보다 숨이 먼저 나왔다. 도현의 시선이 바로 올라왔다. “벌써?” “생각보다 느낌 있어.” “아픕니까.” “아니.” “그럼.” 이번에는 손목에서 팔 중간까지. 조금 더 길게. “하….”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오므라들었다. “손 펴십시오.” 나는 다시 폈다. “간지러운 건 아니고?” “응.” “어떻게 느껴집니까.” 나는 잠깐 생각했다. “눌리면서 지나가는 느낌.” “좋습니까.” “응.” “색깔.” “초록.” 도현의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좋아.” 오늘은 침대에 눕히지 않았다. 도현은 나를 침대 앞에 세워두고. 자기는 뒤로 갔다. “등 돌린 채로?” “네.” “또 얼굴 주인님만 보네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381화. 숨기지 말라고 했으니까

    도현이 붓을 씻고 돌아왔을 때. 나는 아직도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팔 안쪽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일도 닦였고. 붓으로 지나간 흔적도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무슨 글자를 썼는지는 계속 신경 쓰였다. “진짜 안 알려줄 거예요?” 도현이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말했다. “네.” “왜.” “다음에 다시 쓰려고.” “그때도 안 알려주면?” “그건 그때.”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주인님 진짜.” 도현은 대답 대신. 씻은 붓을 완전히 말릴 수 있게 세워두고 침실로 들어왔다. “이제 자십시오.” “아직 안 졸린데.” “저는 조금 피곤합니다.” “그럼 자요.” 도현이 침대에 눕자. 나도 옆으로 돌아누웠다. 몇 분 정도. 정말 조용했다. 그런데.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도현 씨.” “네.” “안 자죠.” “아직.” “아까.” “무엇이.” 나는 잠시 망설였다. “숨기지 않겠다고 했잖아요.” 도현이 천천히 눈을 떴다. “무엇을.” “소리.” 잠깐. 도현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괜히 이불 끝을 만졌다. “그냥.” “네.” “그 말이 계속 생각나서.” 도현이 몸을 옆으로 돌렸다. 나를 보는 자세. “왜.” “좋았어요.” “무엇이.” 나는 그를 봤다. “주인님도 흥분한 게 티 나는 거.” 도현의 눈빛이 아주 조금 달라졌다. “그게 그렇게 좋습니까.” “응.” “제가 평소엔 많이 숨겼습니까.” “조금.”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호흡도.” 나는 손가락으로 그의 셔츠 앞을 아주 가볍게 잡았다. “표정도.” “그리고?” “소리도.” 도현이 몇 초 나를 가만히 봤다. “그럼.” “응.” “오늘부터 매번 일부러 보여달라는 뜻입니까.”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럼.” “참지만 말라는 거.” 그의 시선이 내 손으로 내려갔다. 셔츠를 잡은 손. “참지 말라.” “응.” “제가 하고 싶어서 나오는 건.” “응.”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380화. 읽지 못한 글자

    도현이 침실로 들어왔을 때. 손에 들린 건 검은 상자도. 기계도 아니었다. 길쭉한 붓 하나였다. 나는 침대에 기대앉은 채 그대로 쳐다봤다. “설마 그림 그리려고요?” 도현이 붓을 손가락 사이에서 한번 돌렸다. “아닙니다.” “그럼 왜 붓을 들고 와.” “오늘 써보려고.” 나는 바로 몸을 일으켰다. “나한테?” “네.” 도현이 협탁 위에 작은 유리병 하나까지 올려놨다. 투명한 마사지 오일이었다. “이건 또 뭐예요.” “붓이 마른 상태보다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지 보려고.” “주인님 진짜 별걸 다 생각한다.” “싫습니까.” “아니.” 나는 붓끝을 손가락으로 한번 건드렸다. 털이 생각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이걸로 뭘 하는데요?” 도현은 바로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 손목에 붓을 한번 그었다. 사악. 마른 붓이 지나가는 작은 소리. 이번에는 오일을 손등에 아주 조금 덜어. 붓끝에 묻혔다. 다시. 스윽. 소리도. 촉감도 확실히 달랐다. “어때요?” “마른 건 가볍고.” 도현이 자기 손목을 내려다봤다. “젖으면 조금 더 선명합니다.” “나도.” 나는 손을 내밀었다. 도현은 내 손바닥을 위로 돌렸다. “먼저 마른 것부터.” 사악. 붓끝이 손바닥 가운데를 지나갔다. “으….” 나는 손가락을 바로 접었다. 도현의 시선이 올라왔다. “간지럽습니까.” “조금.” “싫습니까.” “아니.” “손 펴십시오.” 다시 폈다. 이번에는 손바닥 한가운데가 아니라. 손가락 아래를 아주 천천히 스쳤다. “하….” 나도 모르게 숨이 길어졌다. “여기가 더?” “응.” 도현의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알겠습니다.” “또 기억해두려고?” “네.” “무서워.” “표정은 전혀 아닙니다.” 나는 웃었다. “그건 맞아.” 도현이 오일을 아주 조금 붓끝에 묻혔다. “이번에는.” 젖은 붓이 손목 안쪽에 닿았다. 스윽. “아….” 마른 붓보다. 확실히 흔적이 오래 남는 느낌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379화. 떨림이 멈춘 뒤에도

    도현이 꺼낸 건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작은 검은 물건이었다. 나는 침대에 기대앉아 그걸 한참 바라봤다. “그건 또 뭐예요?” “진동 마사지 볼.” “마사지?” “네.” 도현이 버튼을 한번 눌렀다. 우웅. 낮은 진동음이 방 안에 퍼졌다. 나는 바로 눈썹을 올렸다. “이걸 플레이에 쓴다고?” “오늘은.” “어디에?” “처음에는 손.” 그는 먼저 자기 손바닥 위에 올렸다. 약한 단계. 우웅. 몇 초. 조금 더 강한 단계. 진동이 눈으로도 아주 미세하게 보였다. 도현은 다시 약하게 낮췄다. “아프지는 않습니다.” “간지러워?” “조금.” “나도 해봐요.” 나는 손을 내밀었다. 도현이 바로 기기를 주지 않았다. 대신. 내 손바닥을 위로 펼치게 했다. “제가 합니다.” “또 직접?” “네.” 기기가 손바닥 중앙에 닿았다. 우웅. “아….” 생각보다 바로 반응이 나왔다. 아픈 건 전혀 아닌데. 손바닥 전체가 간질거리듯 울렸다. 나는 손가락을 접으려 했다. “펴십시오.” “간지러워.” “싫습니까.” “아니.” “그럼 조금.” 나는 다시 손을 폈다. 도현은 같은 자리에 오래 두지 않았다. 손바닥에서. 손가락 아래쪽. 다시 손목 가까이. “으….” 진동이 위치를 바꿀 때마다 느낌도 달랐다. 도현은 내 얼굴만 보고 있었다. “여기가 더 큽니까.” “손목 쪽.” “왜.” “몰라… 그냥 더 이상해.” 도현이 기기를 잠깐 뗐다. 나는 바로 손을 흔들었다. “와.” “저립니까?” “아니. 남아 있는 느낌.” “진동이?” “응.” 그가 아주 작게 웃었다. “저도 그게 궁금했습니다.” “뭐가.” “떼고 난 다음.” 도현이 기기를 침대 위에 놓았다. 그리고. 방금 진동이 닿았던 손목을 맨손으로 잡았다. 순간. “하….” 내가 숨을 내쉬었다. 도현의 시선이 바로 달라졌다. “이게 더 좋습니까.” “응.” “기계보다?” “기계 쓰고 나서 손 닿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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