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 안은 언제나처럼 조용했다.아침의 첫 종이 울리고, 내관들이 뿔뿔이 흩어져각 전각에 불을 밝히고, 찬장 문을 열고, 하루를 준비하는 발소리를 남겼다.그러나 그날만큼은, 수라간으로 향하는 걸음들이 유난히 빠르고 조심스러웠다.“그 아이가… 반역 가문의 피라고?”소희는 하얀 치마를 입은 채 찬란한 정원의 정자 위에서 하녀의 보고를 들었다.“정확하진 않으나, 강화도 정씨 문중. 15년 전 정태선 대감의 역모 사건으로 일가가 몰살된 그 가문이옵니다. 아이만 살아남았고, 이후 행방이 묘연하였는데… 이름과 나이, 행적이 일치한단 말이 돌고 있습니다.”“정채향… 정태선의 손녀란 말이지.”소희는 찻잔을 들고 있던 손을 천천히 내려놓았다.평소처럼 입꼬리를 올리진 않았다.대신 그녀의 눈동자는 창백하게 빛나고 있었다.이제야 확신이 들었다.그 아이는 결코 내 곁에 두어선 안 될 사람.그 시각, 세자 이현은 침전 서편에 놓인 작은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그의 앞엔 수라 대신, 두루마리 하나가 펼쳐져 있었다.“정채향… 강화 정씨 문중, 맞느냐.”그는 중얼이다시피 말했다.그의 눈동자는 흔들렸지만, 손끝은 여전히 고요했다.“하필… 왜 그런 이름으로 돌아온 것인가.”그녀를 탓하는 말이 아니었다.그저,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조용히, 그러나 정확하게 얽혀버린 현실이 원망스러웠다.‘나는 이제야 누군가의 숨결을 따뜻하다고 느끼는데, 세상은 그 숨을 멈추라 말한다.’그는 종이를 다시 말아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말없이 일어났다.그날 저녁, 수라는 오지 않았다.정채향은 자신의 손으로 쑥국과 연근조림을 차렸지만,내관으로부터 전해 들은 말은 단 하나.“오늘은 수라를 드시지 않겠다는 전교이옵니다.”채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고개를 숙이고, 그대로 조용히 상을 들었다.그러나 손끝이, 분명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밤이 깊어가고, 달이 떠올랐다. 그녀는 수라간을 나서 뒤뜰에 섰다.뒷마당의 감초 잎은 바람에 흔들리며 마른 소리를
最後更新 : 2026-08-10 閱讀更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