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국을 비운 후, 한참 동안 침묵했다.그 침묵은 긴 회랑을 타고, 조정 각처로 퍼졌고, 궁인들은 그 여운을 숨죽이며 기다렸다.그리고 이내, 왕의 입에서 짧은 명이 떨어졌다.“정채향, 그 손이 만든 맛으로 자격을 인정한다.”이현은 그제야 마른 숨을 내쉬었다.채향은 고개를 깊이 숙였고, 그 순간 왕은 단 한 마디를 덧붙였다.“그러나… 혼례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 내 뜻이 아닌 조정의 뜻이 먼저니라.”그 말은 곧, 승인되었으되 정해진 바는 없다는 것.그리고 그 틈을 중전은 놓치지 않았다.다음 날, 세자전으로 온 조선 최고의 재봉 상궁이채향이 아닌, 민소희의 처소로 향했다.수묵색 비단을 자르고, 은실로 봉황을 수놓기 시작한 그 자리엔누가 봐도 ‘예비 세자빈’을 향한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세자 저하께선 어릴 적부터 민소희 아씨와 정혼 이야기가 있었지요.”“그렇다 하더군요. 왕비 마마의 오라버니가 민 대감이지 않습니까. 혼례를 성사시키면… 왕비 권력도 견고해지지요.”그 소문은 이현의 귀에도 닿았다.“이제와 민소희 아씨를 다시 전면에…?”그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채향은 아무 말 없이, 손에 들고 있던 약탕을 가만히 저었다.“저하, 이 약은 속을 편히 해줍니다. 요 며칠... 속이 많이 상하셨을 테니.”그녀는 변명도, 투정도, 자신의 지위에 대한 불만도 말하지 않았다.다만 여전히, 그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사람처럼 굴었다.그러나 이현은 그저 바라보다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등을 덮었다.“그대는 어째서, 이리도 담담하오.”“담담하지 않으면, 속이 무너질 테니까요.”그녀의 눈동자는 맑았으나 그 안엔 깊은 내면의 흔들림이 숨어 있었다.같은 시각, 중전은 소희를 불러 단둘이 앉았다.“넌, 채향보다 예쁘다. 넌, 채향보다 고귀하다. 그리고 넌 그 아이보다 ‘정해진 운명’에 어울린다.”민소희는 조심스레 웃었다.“어머니, 저는 세자빈이 아니라 왕후가 되려 합니다.”그 말에, 중전의 입꼬리도 천천히 올라갔다.며칠
最後更新 : 2026-08-11 閱讀更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