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향, 오늘부로 세자빈 교육을 시작하시오.”그날 아침, 궁중 예법을 담당하는 장의녀가 또박또박 이름을 불렀을 때 순간, 전각 안 공기는 뜨겁게 데워졌다가 다시 싸늘하게 식었다.그곳엔 민소희도 있었다.예정된 세자빈. 조선의 첫째 미색.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을 ‘주인’이라 믿는 여인.그 눈빛은 이미 말하고 있었다.‘너는, 발을 잘못 들였다.’채향은 조용히 인사했다.반듯한 동작, 흔들림 없는 시선,그리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절.그 절을 본 민소희의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그것은… 궁녀가 아닌 사람의 태도였다.“저 아이, 이름이 뭐라고 했지?”소희가 묻자, 곁의 상궁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정채향이라 하옵니다, 마마.”“채향? 향기 하나 믿고 여기까지 왔단 말이야?”그녀는 웃었다.“이제는 얼굴도 곱대? 세자저하의 취향은 원래 이랬던가.”그 말은 누가 들어도 인신공격에 가까운 조롱이었지만, 채향은 눈길 하나 떨지 않고 말했다.“저는, 음식으로 배웠고 향으로 길들었으며, 이름은… 그저 저의 일부일 뿐입니다.”그 말에 장의녀가 고개를 들었다.“그렇다면 오늘부터는 그 이름 대신 ‘빈 후보’로 불러드리리다.”그 순간, 공기 속에서 민소희의 숨소리가 확실히 뻐근해졌다.수업은 엄격했다. 손끝 하나, 시선 하나, 발의 간격, 고개 숙이는 각도까지.“빈의 걸음은 남보다 반 보 늦어야 하되, 존재는 누구보다 먼저 도착해야 합니다.”“무릇 빈의 말은 부드러워야 하되, 그 안에 반드시 명확한 ‘뜻’이 있어야 하지요.”채향은 외웠다. 익혔다. 그리고 곱씹었다.수라간에서 배운 맛과 냄새처럼,이제는 ‘품위’라는 이름의 격식도 자신의 감각에 새기기 시작했다.그날 수업이 끝날 무렵, 소희가 일부러 채향에게 다가왔다.“하루 만에 꽤나 태가 잡혔군. 하지만 걱정 마,빈 자리라는 건, 빈틈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까.”그 말은 비수였다. 하지만 채향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그 빈틈을 메우는 것이 제가 오늘부터 배우는 일이겠지요,
最後更新 : 2026-08-11 閱讀更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