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Chapter 61 - Chapter 70

163 Chapters

61화: 진정한 주인 2

얼음으로 불을 끈다? 안 된다. 화력 차이가 너무 심하다. 물을 부어봤자 증발할 뿐이다. 그렇다면. ​'불을 끄는 게 아니라... 불이 탈 수 없게 만들면?' ​연소의 3요소. 연료, 산소, 그리고 발화점. 놈의 불꽃은 마력을 연료로 쓴다. 그렇다면 그 마력 자체를 [동결]시켜버리면 된다. ​"레비. 네 심장, 나한테 다 줘." ​"뭐? 미쳤어? 그러다 형님 몸 터져!" "안 터져. 내가 누구냐. 하숙집 가장이다." ​나는 크게 마른세수를 한번 하고, 콕핏의 안전장치를 해제했다. 내 뱃속의 빙정, 그리고 레비아탄의 뇌정. 두 개의 엔진을 하나로 합친다. [직렬연결]. ​"간다." ​우우우웅-!!! ​레비아탄의 심장에서 뽑아낸 막대한 전기에너지가 내 몸으로 흘러들어왔다. 혈관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에너지를 그대로 방출하지 않고, 내 단전의 빙정으로 쑤셔 넣었다. ​[초전도 냉각 (Superconducting Cooling)] ​전기와 냉기가 융합하며, 물리학의 법칙을 거스르는 새로운 에너지가 탄생했다. ​레비아탄의 기체 색깔이 변했다. 보라색 아우라가 사라지고, [창백한 백색(Pale White)]이 기체를 감쌌다. 죽음의 색이자, 절대적인 정지의 색. ​[심해의 권능: 영구 동토 (Permafrost)] ​"꺼져라." ​나는 이그니스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닿는 공간의 시간마저 얼려버리는 절대영도의 파동. ​콰아앙-! ​백색 파동이 붉은 태양 불꽃과 충돌했다. ​치이이익-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났다. 이그니스의 프로미넌스가, 타오르던 형상 그대로 '얼어붙은 불꽃'이 되어 바스러졌다. 열기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서늘한 냉기가 들어찼다. ​"호오?" ​이그니스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어졌다. 그의 불꽃이 먹히지 않은 건 처음인 듯했다. ​"잡았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레비아탄을 가속했다. 백색으로 빛나는 주먹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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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신살자의 유산 1

​전투가 끝난 바다는 고요했다. 이그니스가 사라진 자리에는 시커멓게 타버린 구름만이 남아 있었고, 펄펄 끓던 바닷물은 이제 식어서 짙은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후우..." ​나는 레비아탄의 조종석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긴장이 풀리자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빙정과 뇌정을 동시에 돌려 '영구 동토'를 만드는 짓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혈관에 몬스터 에너지 드링크를 원액으로 주사한 기분이랄까. ​[형님. 나 얼굴 흘러내린다. 성형 좀 해야겠는데.] ​레비아탄이 울상인 목소리로 말했다. 외부 카메라로 기체 상태를 확인해보니 가관이었다. 이그니스의 태양 불꽃에 노출되었던 장갑판이 촛농처럼 녹아내려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 멋지던 흑기사의 폼은 어디 가고, 다 녹은 초콜릿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야, 멋있는데 왜. 빈티지하고 좋네. 역전의 용사 같잖아." [놀리지 마. 나 지금 심각해.] ​레비아탄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가라앉아 있었다. 단순히 외관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까 그 빨간 놈(이그니스)이 한 말... 진짜일까?" ​-'신살창을 든 그 인간 놈에게 목이 따이더니, 껍데기만 남아서 노예가 되었느냐?'- ​이그니스의 조소. 그것은 레비아탄, 아니 '뇌전의 군주'의 잃어버린 기억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나 진짜 걔한테 죽어서 노예 된 거야? 기억이 안 나는데... 기분이 더러워. 왠지 내가 대장이었던 것 같은데... 억울해." "노예는 무슨." 분명 뇌전의 군주는 '천상의 징벌'에 의해 제압되었다고 알고 있었다. 또 다른 진실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이내 복잡한 생각을 떨쳐내듯 머리를 흔들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계기판을 톡톡 두드렸다. ​"대장이면 뭐 하냐? 다 지난 일이다. 넌 지금 내 파트너고, 오늘 밥값 제대로 했다. 그거면 된 거야." [......] "그리고 생각해 봐. 네가 그때 안 죽고 계속 괴수로 남았으면, 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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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신살자의 유산 2

뇌전의 군주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거다. 두 힘이 합쳐지면 [무한 동력]이 발생한다는 것을. 놈은 그걸 이용해 지구를 정복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놈은 한국에 상륙하자마자 예상치 못한 벽을 만났소. 바로 주지헌과 그의 아내였지. 그 두 사람은 SSS급 듀오였으니까." ​리 웨이가 말을 이었다. ​"'천상의 징벌'까지 동원해 심각한 타격을 받은 그놈은 궁지에 몰려, 품고 있던 빙결의 핵을 꺼내 강제로 폭주시켰소. 자폭에 가까운 에너지가 터져 나오려 했지. 그때 주지헌이 결단을 내렸소." ​"......희생(Sacrifice)인가요." ​"그렇소. 아내를 매개체로 삼고, 자신의 생명력까지 모두 쏟아부어 금기의 기술을 발동 가능케 했던 것... 바로 그것이 [신살창(神殺槍) - 브류나크]." ​신살창. 이그니스가 말했던 그 무기. ​"그 창이 뇌전의 군주의 머리를 꿰뚫었소. 군주는 쓰러졌고, 그 여파로 주지헌 부부도..." ​리 웨이가 씁쓸한 표정으로 잔을 비웠다. ​"하지만 문제가 남았소. 뇌전은 잡았지만, 폭주하기 시작한 [빙결의 핵]은 파괴되지 않았던 거요. 그대로 두면 남은 에너지가 폭발해 부산을 얼려버릴 상황이었지." "그래서요? 어떻게 됐습니까?"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주지헌은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선택을 했소. 당시 폐허 속에... 기적적으로 숨이 붙어있던 어린아이가 하나 있었지. 고아로 보이는 소년이었소." ​"......!" ​"그는 그 아이의 단전에 빙결의 핵을 봉인했소. 아이의 향후 각성자로서 생체 시간을 동결시켜 목숨을 부지하게 하는 동시에, 핵의 폭발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었지. 그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오." ​역시...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10년 전, 내가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이유.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내가 능력을 쓰지 못하는 '빙신' 취급을 받으며 살아야 했던 이유. 그게 다 봉인 때문이었다. ​주지헌. 그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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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인과율을 뚫는 창 1

​[남중국해 산둥함 갑판] ​"벌써 가시게요? 뒤풀이도 안 하고?" ​갑판 위에는 전운이 가시고, 붉은 석양이 바다를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짐을 챙겨 레비아탄 앞에 섰다. 저 멀리서 수송 헬기 두 대가 착륙하고, 그 안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내렸다. 이번 작전에서 산둥함이 아닌, 외곽의 제2, 제3 함대를 지키느라 따로 떨어져 있었던 스티브와 소피아였다. ​"고생들 하셨습니다. 덕분에 후방 걱정 없이 날뛰었습니다." "무슨 말씀을. 당신이 본대(쌍둥이 군주)를 잡아준 덕분에 우리는 잔챙이들만 상대했는걸요." ​소피아가 웃으며 다가왔다. 그녀의 하얀 사제복에는 검은 그을음과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외곽 방어도 쉽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예. 야근 수당도 챙겼고, 밥값도 했으니 퇴근해야죠. 집에 중요한 볼일도 있고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몸조심해라, 꼬마야." ​스티브가 곰 같은 손으로 내 어깨를 툭 쳤다. 레비아탄의 통역이 귓가에 울렸다. ​"네가 보여준 그 얼음... 다른 함대에서도 보일 정도였어. 다음에 만나면 내 고향 텍사스 바비큐를 대접하지. 스팸 부대찌개 말고 진짜 고기로." "기대하겠습니다. 올 때 메로ㄴ... 아니, 빈손으로 오지 마시고요." ​"흥. 건방지긴." ​리 웨이의 옆에 서 있던 카미키 류지가 팔짱을 낀 채 피식 웃었다. 낡은 도복, 허리춤에 찬 일본도. 그는 굳이 구구절절한 작별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저 검자루를 툭 치며 말했다. ​"난 중국에 계속 있을 거다. 여기가 내 구역이니까."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한 번 잃어봤기에, 두 번은 잃지 않겠다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 ​"언제든지 놀러 와라. 그때는 베이징 덕, 내가 쏘지." ​"오, 진짜요? 비싼 걸로 얻어먹으러 오겠습니다."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까칠해 보여도 챙겨줄 건 다 챙겨주는 아저씨다. ​그리고 마지막, 소피아. 그녀는 여전히 묘한 눈빛으로 나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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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인과율을 뚫는 창 2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기묘한 감촉. ​우우웅-! ​그 순간, 내 단전의 빙정이 미친 듯이 진동했다. 동시에 손목의 스마트워치(레비아탄)가 뜨거워졌다. 펜던트 속에 잠들어 있던 [잔류 사념]이 내 빙정과 공명하며 깨어났다. ​"어? 형님! 파장이... 나랑 똑같아! 이거 빨려 들어가는데?!" "어...?" ​시야가 하얗게 점멸했다. 미혜 누나의 놀란 얼굴이 슬로우 모션처럼 멀어졌다. 내 의식이 육체를 떠나, 어딘가 깊고 아득한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 ​쿠구구궁!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더 이상 미혜 누나의 방에 있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한 회색 공간. 하늘도 땅도 없는, 오직 잿빛 안개만이 가득한 [심상 세계]. ​그리고 그 한복판에. 피투성이가 된 채, 거대한 창을 지팡이 삼아 서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SSS급 헌터: 주지헌] ​그의 손에 들린 창, [신살창]. 비록 빛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창신(槍身)은 흠집 하나 없이 매끄러웠고 그 위압감은 여전히 공간을 베어낼 듯 날카로웠다. 그의 주변에는 쓰러진 거대한 괴수, 뇌전의 군주(레비아탄의 원형)가 있었고, 그 앞에는 폭주하려는 푸른 빛의 구체가 떠 있었다. 이곳은... 10년 전, 그날의 기억이다. ​"헉... 헉..." ​주지헌의 기억 속 영상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옆에는 이미 숨을 거둔 아내의 시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빙결의 핵]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위태롭게 빛나고 있었다. ​"안 돼... 이대로면... 부산이... 내 딸이..." ​주지헌이 피를 토하며 기어갔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 깔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한 소년이 있었다. 13살의 나. 하태수였다. ​"아이가... 살아있어?" ​주지헌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선택해야 했다. 이대로 빙결의 핵이 폭주하게 둘 것인가, 아니면 희박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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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인과율을 뚫는 창 3

내 의지가 형상화되어, 내 뒤로 거대한 [강철의 거인]이 솟아올랐다. 푸른 뇌전과 절대영도의 냉기를 동시에 두른, 심해의 흑기사. 레비아탄. 나의 분신이자, 나의 탐욕스러운 파트너. ​[맞아, 형님! 우린 욕심쟁이야! 다 가질 거라고!] ​레비아탄의 환영이 포효했다. 주지헌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하지만 그 눈빛 깊은 곳에는 묘한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그 욕심... 감당할 수 있겠느냐!" ​슈아아악-! ​주지헌이 신살창을 투척했다. 단순한 물리 공격이 아니었다. [인과율] 그 자체를 고정시키는 공격. '너는 여기서 희생해야 한다'는 운명을 강요하는 일격이었다. 피할 수 없다. 막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뚫어버리면 그만이야!!" ​나는 오른팔을 뻗었다. 레비아탄의 오른팔이 내 동작을 따라 했다. 빙정의 냉기와 뇌정의 전기가 미친 듯이 회전하며 융합되기 시작했다. ​[시스템 오버로드(Overload): 플렉소 일렉트릭 100% 개방.] ​"내 앞길 막지 마라!!" ​위이이이잉-!!!! ​내 손끝에서 시작된 회전이 거대한 폭풍으로 변했다. 단순한 에너지의 방출이 아니다. ​1단계: 진동(Vibration). 레비아탄의 뇌전이 분당 수억 회의 초고주파 진동을 일으켜 내 뱃속의 빙정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2단계: 변형(Strain). 압력을 받은 빙정의 나노 결정 구조가 비틀리며 비명을 질렀다. 절대 영도의 얼음이 강제로 휘어지며(Bending), 그 반발력으로 막대한 전기적 분극(Polarization)을 일으켰다. ​3단계: 상전이(Phase Transition). 발생한 테라와트(TW)급 전기가 냉기와 충돌하며, 물질이 기체 상태를 넘어 [양자 유체] 상태로 승화했다. 고전 물리학의 법칙이 붕괴되는 순간. ​[에너지 임계점 돌파.] [형태 재구성: 소용돌이(Vortex).] ​이것은 훗날 내가 쥐게 될 창의 원형이자, 맨손으로 낼 수 있는 최강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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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이방인들의 겨울 1

​[오전 10시] ​"오빠! 빨리빨리!" "햄! 굼벵이가! 차 시동 안 걸고 뭐 하노!" ​아침부터 하숙집이 시끄러웠다. 현관 앞에는 꽃단장을 마친 타치바나 자매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히나는 귀마개에 털장갑까지 낀 완전 무장 상태였고, 하루 씨는 단정한 베이지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아, 간다 가. 누가 보면 피난 가는 줄 알겠네." ​나는 하품을 하며 차 키를 챙겼다. 오늘은 주말.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자매가 하숙집 식구들 선물을 사러 간다길래 내가 운전기사 겸 짐꾼을 자처했다. 차는 부대에서 빌려온 검은색 SUV. ​"근데 니들 돈은 있나?" "무시하지 마소! 내 알바비 차곡차곡 모았다!" "나도 협회에서 나온 용돈 안 쓰고 모았어! 오늘은 우리가 쏜다!" ​히나가 지갑을 흔들어 보였다. 기특한 녀석들. 일본이 침몰하고 한국으로 넘어와서 마음고생 심했을 텐데, 이 하숙집 식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겠다고 나서는 게 참 예뻤다. ​"그래, 그래. 가자. 기장 아울렛으로 모십니다." ​부웅- ​차가 해안 도로를 달렸다. 차 안에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캐롤송이 울려 퍼졌다. ​"창밖을 보라~ 창밖을 보라~" ​희선과 히나가 신나서 노래를 따라불렀다. 하루 씨도 뒷좌석에서 창밖을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10년 전 대격변 이후, 크리스마스는 더 이상 축제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가족을 잃은 날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이 차 안은 따뜻했다. ​"오빠, 나 이번에 패딩 사고 싶어! 하얀색 롱패딩!" "히나, 돈 아껴야지. 이모님이랑 할머니 선물부터 사고." "알아, 언니. 그냥 보고 싶다고..." ​히나가 입을 삐죽거렸다. ​'귀엽네.' ​나는 룸미러로 자매를 보며 생각했다. S급 헌터니 뭐니 해도, 결국엔 꾸미고 싶은 나이의 여고생이고 아가씨다. 나는 주머니 속의 지갑을 만지작거렸다. 그 안에 든 블랙 카드(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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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이방인들의 겨울 2

S급 헌터인 히나가 마음만 먹으면 이따위 양아치들은 손가락 하나로 제압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힘을 쓰면 신분이 노출되고, 그러면 평범한 여고생으로 언니와 함께하는 오늘의 평화가 깨진다. 히나는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어쭈? 눈깔 뜬 거 봐라? 야, 얘 헌터냐?" "꼬맹이가 눈빛이 살아있네. 교육 좀 시켜줘야겠는데." ​남자가 히나의 어깨를 잡으려 했다. 하루가 급하게 막아섰다. ​"하지 마세요! 저희 갈게요!" ​하루가 짐을 챙겨 일어나려 했다. 그때, 남자가 하루가 들고 있던 음료수 컵을 쳐버렸다. ​퍽! 촤아악- ​차가운 콜라가 하루의 베이지색 코트 위로 쏟아졌다. 얼룩덜룩해진 코트. 하루가 당황해서 멈칫했다. ​"아이고, 미안해서 어쩌냐. 손이 미끄러졌네." ​남자들이 킬킬거렸다. ​"언니!!" ​히나의 이성이 끊어졌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푸른 마력이 일렁였다. S급의 위압감이 뿜어져 나오려던 찰나였다. ​턱. ​누군가의 손이 남자의 어깨를 잡았다. 아주 부드럽게, 하지만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악력으로. ​"재밌냐?" ​지옥 밑바닥에서 올라온 듯한 낮고 차가운 목소리. 나였다. ​"아악! 뭐야, 이거 안 놔?!" ​남자가 어깨를 잡힌 채 비명을 질렀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남자를 쓰레기통 옆으로 집어 던지듯 밀쳐냈다. ​"오빠!" ​하루와 히나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내 외투를 벗어 콜라에 젖은 하루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괜찮아?" "네... 네..." "옷 버렸네. 예쁜 건데." ​나는 혀를 차며 양아치들을 노려봤다. 내 눈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갔다.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푸드코트의 소음이 일순간에 멈췄다. ​"너... 너 뭐야! 우리가 누군지 알아? 해운대파..." "알 게 뭐야." ​나는 천천히 그들에게 걸어갔다. ​"니들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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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루돌프 레비아탄 1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부산의 겨울바람은 매서웠다. 거리는 캐롤송으로 시끌벅적했지만, 사람들의 표정 한구석엔 여전히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특히 10년 전 대격변으로 부모를 잃거나, 마나 중독증으로 병원 신세를 지는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는 그저 춥고 외로운 날일 뿐이었다. ​"하 준위. 부탁하네." ​아크 부대 격납고. 사령관님이 쭈뼛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손에는 붉은색 뭉치가 들려 있었다. ​"부산 아동병원에서 연락이 왔어. 아이들이... 웃음을 잃어가고 있다더군. Z급 영웅이 한번 방문해 준다면 큰 힘이 될 텐데... 바쁜 사람한테 이런 걸 부탁해서 미안하네." ​사령관님은 거절당할까 봐 조마조마한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붉은 뭉치를 받아 들었다. ​"가죠. 까짓거." "저... 정말인가?" "저도 고아원 출신이라 압니다. 산타 할아버지 기다리는 그 기분. 근데 그 양반, 죽어도 안 오더라고요. 굴뚝이 없어서 그런가. 파하하하!" ​나는 붉은색 산타 재킷을 걸쳤다. ​"그래서 제가 가려고요. 굴뚝 없어도 들어가는 산타로." ​* ​1시간 뒤. 격납고. 정비병들이 레비아탄의 얼굴... 아니, 모노아이 주변에 달라붙어 붓질을 하고 있었다. ​[야! 야! 살살 해! 내 센서 건드리지 마!] "가만히 좀 있어 봐라, 인마. 삐져나간다." ​레비아탄이 기겁하며 소리쳤지만, 정비병들은 묵묵히 붉은색 수성 페인트를 칠했다. 모노아이 주변이 빨갛게 물들었다. 영락없는 루돌프 코였다. 머리 위에는 트럭 범퍼를 개조해 만든 거대한 [사슴뿔 장식]이 용접... 아니, 강력 자석으로 붙어 있었다. ​[형님... 이건 아니지 않아? 나 명색이 뇌전의 군주였는데... 코가 빨개. 가오 안 살게 이게 뭐야!] ​레비아탄이 울먹였다. 거울 좀 보여달라는데 내가 일부러 안 보여줬다. 보여주면 자폭할까 봐. ​"조용히 해. 오늘 넌 레비아탄이 아니라 루돌프야. 알았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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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루돌프 레비아탄 2

적을 얼려 죽이는 살인적인 냉기가 아니다. 대기 중의 수분을 아주 부드럽게, 그리고 아름답게 얼려내는 섬세한 컨트롤. ​"잘 봐라. 이게 Z급 마술이다." ​[기술: 스노우 메이커 (Snow Maker)] ​파아아앙-! ​레비아탄이 하늘을 향해 양팔을 뻗었다. 푸른색 냉기 입자가 빔처럼 쏘아 올려졌다.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에 냉기가 퍼져나가며, 대기 중의 수증기를 급속도로 응결시켰다. ​화아아아- ​하늘이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어...?" ​지은이의 뺨에 차가운 것이 내려앉았다. 하얀 눈송이였다. 그것도 아주 크고 탐스러운 함박눈. ​"눈이다!! 눈이 와!!"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병원 위로, 아니 부산 전역에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인공 눈이었지만, 그 차가움과 아름다움은 진짜였다. ​"와아..." ​지은이가 휠체어에서 손을 뻗어 눈을 받았다. 소녀의 창백한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고통스러워하던 표정이 사라지고, 천사 같은 미소가 번졌다. ​"고마워요... 산타 오빠."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가슴 한구석이 찌릿해짐을 느꼈다. ​'괴물 죽이는 힘으로... 누군가를 웃게 만들 수도 있구나.' ​이 힘, 꽤 쓸만하네. 나는 헬멧 너머로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며 남몰래 눈시울을 붉혔다. 코, 스윽. ​* ​저녁 7시. 하숙집. 골목길은 이미 하얗게 눈으로 덮여 있었다. 대문 앞에는 루돌프 코를 한 레비아탄이 얌전히(?) 주차되어 있었고, 그 위로 눈이 소복이 쌓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마당에는 대형 트리가 반짝이고 있었고, 숯불 그릴 위에서는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었다. ​"아이고! 눈 온다! 이거 태수 니가 한 짓이가!" ​최 여사님이 눈을 맞으며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예. 선물입니다. 부산 사람들은 눈 구경하기 힘들잖아요." "잘했다! 내 평생 이런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처음이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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