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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화: 부부라는 걸 잊는 순간

“남편.”은소예가 부르자 신시안의 시선이 곧바로 돌아왔다.“왜.”“커피.”“직접 마셔.”“남편이 있잖아.”시안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소예를 바라보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결혼한 지 세 달.두 사람 사이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옆자리에 사람이 있다는 것.퇴근하면 같은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냉장고에 서로 좋아하는 음식이 함께 들어 있다는 것.그리고 소예가 점점 시안을 부려먹기 시작했다는 것.“여기.”시안이 커피잔을 내밀었다.소예가 만족스럽게 받아 들었다.“고마워.”“나 대표인데.”“집에서는 남편이지.”“회사에서도 남편인 건 맞아.”“그걸 직원들 앞에서 말해봐.”시안은 입을 다물었다.소예가 피식 웃었다.그날 오후.회사에서는 중요한 전략회의가 있었다.소예는 과장이 된 뒤 처음으로 팀의 일부 안건을 직접 책임지고 발표하게 됐다.회의실에 들어가자 시안은 이미 대표석에 앉아 있었다.집에서는 조금 전까지 소예가 먹다 남긴 토스트를 치우던 남자였지만, 회사에서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었다.“시작하시죠.”소예도 자연스럽게 자료를 띄웠다.“신규 캠페인 1차 제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발표는 순조로웠다.하지만 한 임원이 예상보다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이 방향은 위험성이 큰 것 같은데요.”소예가 대답하려는 순간 시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은 과장 의견부터 듣죠.”소예는 잠깐 그를 바라봤다.시안은 아무런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도와주지 않았다.대신 소예가 스스로 대답할 시간을 줬다.“위험성이 있는 건 맞습니다.”소예는 차분하게 자료를 넘겼다.“대신 실패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세 단계로 나눠서 진행할 계획입니다.”그녀는 준비해둔 보완안을 설명했다.회의가 끝나자 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그 정도면 한번 추진해볼 만하겠네요.”회의실을 나온 소예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잠시 뒤 휴대폰이 울렸다.[잘했어.]시안이었다.소예가 답했다.[왜 안 도와줬어?]곧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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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당신 없이 결정하지 않을게

토요일 오전.은소예는 식탁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신시안이 커피를 들고 와 맞은편에 앉았다.“뭘 그렇게 봐?”“제안서.”“주말인데?”“회사 거 아니야.”시안의 표정이 달라졌다.“뭔데.”소예는 잠시 망설이다 화면을 돌렸다.외부 강연 제안이었다.브랜드 전략 실무자를 대상으로 하는 짧은 강연.“나한테 이런 게 왔어.”시안이 내용을 천천히 읽었다.“좋은데?”“진짜?”“왜 나한테 허락받는 얼굴이야.”소예는 잠시 말이 없었다.“일정이 토요일이라.”“그래서?”“우리 요즘 주말마다 같이 있었잖아.”시안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은소예.”“왜.”“너 하고 싶은 거면 해.”“서운하지 않아?”“조금은.”솔직한 대답이었다.소예가 그를 바라봤다.시안이 이어 말했다.“근데 내가 서운한 거랑 네가 안 하는 건 다른 문제잖아.”소예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예전이었다면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서로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한쪽은 참았고.다른 쪽은 모른 채 지나갔다.“그럼 할까?”“응.”“진짜?”“대신.”시안이 커피잔을 내려놓았다.“끝나고 저녁은 나랑.”소예가 웃었다.“협상이야?”“응.”“좋아.”다음 주 토요일.소예는 예상보다 많은 사람 앞에 섰다.처음에는 조금 긴장했지만 자신이 해왔던 일을 설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강연이 끝난 뒤 한 참가자가 말했다.“과장님 이야기 들으니까 현업에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겠어요.”소예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한 만족감을 느꼈다.회사 직함을 떠나 자신이 가진 경험 자체가 누군가에게 가치가 있다는 사실.건물 밖으로 나오자 시안이 기다리고 있었다.“언제 왔어?”“십 분 전.”“안 들어왔어?”“너 신경 쓰일까 봐.”소예가 웃었다.“봤어도 됐는데.”“그럼 다음에는.”시안이 자연스럽게 소예의 가방을 받아 들었다.“어땠어?”“좋았어.”소예의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또 하고 싶어.”“그럼 해.”“그렇게 쉽게?”“왜.”“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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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부부 동반 행사

회사에서 연말 파트너 행사가 열렸다.원래라면 신시안은 대표 자격으로 혼자 참석했을 자리였다.하지만 올해 초대장에는 동반인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같이 갈래?”저녁을 먹던 시안이 물었다.은소예는 젓가락을 멈췄다.“회사 행사?”“응.”“나도 직원인데.”“그래서 애매하지.”“당신 배우자로 가야 해, 직원으로 가야 해?”시안도 그게 고민이라는 듯 웃었다.“둘 다?”“제일 싫어.”결국 소예는 자신의 직급으로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다.다만 공식 촬영 때만 시안 옆에 서기로 했다.행사 당일.소예가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몇몇 직원이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평소 회사에서 보던 모습과 달리 단정한 드레스를 입었기 때문이었다.“과장님, 오늘 진짜 예쁘세요.”동료의 말에 소예가 웃었다.“고마워요.”그때 멀리 있던 시안과 눈이 마주쳤다.그가 대화 중이던 사람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다가왔다.“은소예 과장님.”“대표님.”겉으로는 평범한 인사였다.그런데 시안의 시선이 소예에게 오래 머물렀다.소예가 작게 말했다.“그만 봐.”“왜.”“회사.”“행사인데.”“회사 행사.”시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잠시 뒤 공식 사진 촬영 시간이 됐다.“대표님 배우자분도 함께 서주시죠.”직원이 말했다.소예는 잠시 망설였다.처음이었다.회사 사람들 앞에서 대표의 배우자로 공식적으로 서는 것.시안은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었다.결정은 소예에게 맡기겠다는 듯.소예는 잠시 그 손을 바라보다 잡았다.플래시가 터졌다.“조금 가까이 서주세요.”소예가 시안 옆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갔다.시안이 작게 속삭였다.“괜찮아?”“응.”“진짜?”“응.”찰칵.사진이 찍혔다.예전 결혼 때는 사진 한 장조차 외부에 거의 남기지 않았다.이번에는 수십 명이 보는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있었다.행사가 끝난 뒤 차 안.소예는 행사 사진을 확인했다.“우리 좀 어색하다.”시안이 화면을 봤다.“난 좋은데.”“당신은 너무 좋아하는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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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당신 아내라서가 아니라

회사 행사 사진이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다음 날.은소예는 예상보다 많은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그중에는 조금 불편한 말도 있었다.“과장님은 좋으시겠어요.”다른 부서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대표님이 남편이면 든든하잖아요.”소예는 웃음을 유지했다.“회사에서는 별로 안 든든해요.”“에이, 그래도.”상대는 장난처럼 말했지만 소예의 마음에는 조금 남았다.오후에는 더 직접적인 일이 생겼다.새로운 프로젝트 책임자를 정하는 회의에서 한 직원이 말했다.“은 과장님이 맡으시면 대표님과 소통하기도 편하지 않을까요?”회의실이 순간 조용해졌다.소예는 바로 입을 열었다.“그 이유라면 저는 빠지겠습니다.”상대가 당황했다.“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프로젝트 책임자는 업무 역량으로 정해야죠.”소예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호했다.회의가 끝난 뒤 팀장이 소예를 불렀다.“기분 나빴지?”“조금요.”“앞으로도 그런 말 나올 수 있어.”“알아요.”소예는 한숨을 내쉬었다.“그래서 더 잘해야겠죠.”퇴근 후 시안이 소예의 표정을 보자마자 물었다.“무슨 일 있었어?”이번에는 소예가 숨기지 않았다.회의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이야기했다.시안의 표정이 점점 굳었다.“누가 그런 말을 했어?”“찾아가지 마.”“그냥 이름만.”“안 돼.”소예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이건 내가 해결해야 해.”“기분 나쁘잖아.”“나도 나빠.”“그런데?”“당신이 나서면 그 사람이 한 말이 맞는 것처럼 되잖아.”시안은 입을 다물었다.소예가 조금 부드럽게 말했다.“나 당신 아내라서 일 잘하는 거 아니잖아.”“당연하지.”“그러니까 나한테 맡겨.”시안은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대신.”“응.”소예가 그의 품에 기대었다.“오늘은 좀 안아줘.”시안의 표정이 바로 풀렸다.“그건 얼마든지.”그가 소예를 끌어안았다.“화났어?”“응.”“많이?”“조금 많이.”시안이 소예의 등을 천천히 쓸었다.“넌 내 아내라서 대단한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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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다시 찾아온 결혼기념일

달력을 확인하던 은소예의 손이 멈췄다.첫 번째 결혼의 결혼기념일.이미 두 번째 결혼을 했으니 이제 의미 없는 날짜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막상 숫자를 보니 기분이 묘했다.저녁 식탁에서 소예는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신시안 역시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내일 몇 시 출근해?”“평소처럼.”“저녁 일정은?”“없어.”“그래.”그게 끝이었다.소예는 괜히 서운했다.기억하지 못하는 걸까.자신은 아직도 떠오르는데.다음 날.시안은 평소처럼 먼저 출근했다.소예도 회사에서 하루를 보냈다.오후 여섯 시가 되자 메시지가 왔다.[바로 집에 와.]소예는 화면을 보다가 답했다.[왜?][와보면 알아.]집 문을 열자 거실 불이 꺼져 있었다.“신시안?”주방 쪽에서 불이 켜졌다.식탁에는 간단한 음식과 작은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소예가 멈춰 섰다.시안이 말했다.“기억했어.”“뭘.”알면서도 물었다.“첫 번째 결혼기념일.”소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왜 챙겼어?”“이 날짜가 없었으면 지금 우리도 없었을 것 같아서.”시안이 의자를 빼줬다.“좋은 기억만 있는 날은 아니지만.”소예가 천천히 앉았다.“나 오늘 좀 서운했어.”“왜.”“당신 모르는 줄 알고.”시안이 웃었다.“아침부터 말하면 네가 하루 종일 생각할까 봐.”“그래서 일부러?”“응.”소예가 케이크를 바라봤다.“이번 결혼기념일은 따로 있잖아.”“그것도 챙길 거야.”“두 번?”“응.”“귀찮지 않아?”“좋은데.”시안은 케이크에 초 하나를 꽂았다.“첫 번째 결혼이 실패였다고 없었던 걸로 하고 싶진 않아.”소예의 표정이 조용해졌다.“나도.”그때의 두 사람이 있었기에 지금의 두 사람이 있었다.소예가 촛불을 바라보다 말했다.“그럼 이건 무슨 기념일로 할까.”시안이 생각했다.“처음 사랑했던 날?”“결혼기념일인데?”“첫 번째 시작.”소예가 웃었다.“좋아.”촛불을 함께 불었다.첫 번째 결혼의 기념일은 더 이상 상처를 확인하는 날짜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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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당신이 아픈 날

신시안은 좀처럼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그래서 은소예는 아침 식탁에서 그가 커피에 손도 대지 않는 걸 보고 바로 이상함을 느꼈다.“왜 안 마셔?”“입맛 없어.”소예가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만졌다.뜨거웠다.“열 있잖아.”“괜찮아.”“어딜 봐서.”“오늘 회의 있어.”시안이 일어나려 하자 소예가 어깨를 눌렀다.“앉아.”“은소예.”“대표님.”소예가 차갑게 말했다.“오늘 출근 금지입니다.”“내가 대표인데.”“집에서는 환자.”결국 시안은 회사에 재택 지시를 내렸다.소예는 출근하려다 한참 고민했다.“나도 반차 쓸까?”시안이 고개를 저었다.“가지 마.”“혼자 괜찮겠어?”“응.”“진짜?”“회사 가.”소예는 몇 번이나 확인한 뒤 출근했다.그런데 오전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점심시간에 메시지를 보냈다.[약 먹었어?][응.][밥은?]답장이 없었다.소예는 결국 팀장에게 오후 반차를 신청했다.집으로 돌아오자 시안은 소파에서 잠들어 있었다.식탁 위 죽은 그대로였다.“신시안.”시안이 눈을 떴다.“왜 왔어.”“밥도 안 먹었잖아.”“입맛 없어서.”소예는 죽을 데웠다.시안이 몇 숟갈 먹는 동안 옆에 앉아 있었다.“이거 좀 이상하다.”시안이 말했다.“뭐가.”“네가 나 간호하는 거.”“왜.”“옛날 생각나.”소예도 잠시 멈췄다.결혼 초기에 시안이 독감에 걸렸던 적이 있었다.그때도 소예가 밤새 옆에 있었다.“그땐 당신 아픈 것도 좀 귀여웠는데.”“지금은?”“귀찮아.”시안이 웃었다가 기침했다.소예가 바로 등을 두드렸다.“웃지 마.”“귀찮다면서.”“그래도 남편이잖아.”시안은 잠시 소예를 바라봤다.“그 말 좋다.”“아프니까 감성적이네.”소예가 그의 이불을 고쳐줬다.시안은 소예의 손을 잡았다.“가지 마.”“안 가.”“회사.”“반차 썼어.”“나 때문에?”“응.”시안의 표정이 미안해졌다.소예가 손을 꽉 잡았다.“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야.”“고마워.”“빨리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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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화: 내가 먼저 기다릴게

신시안이 몸을 회복한 뒤 며칠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은소예의 일이 바빠졌다.신규 프로젝트 마감.외부 미팅.보고서 수정까지 겹쳤다.밤 열 시가 넘어도 소예는 회사에 남아 있었다.휴대폰에는 시안의 메시지가 쌓였다.[몇 시쯤 끝나?][저녁 먹었어?][데리러 갈까?]소예는 마지막 메시지에 답했다.[아직 몰라. 먼저 자.]잠시 뒤.[기다릴게.]소예는 화면을 보며 웃었다.자정을 조금 넘겨서야 집에 도착했다.현관문을 열자 거실 불이 켜져 있었다.시안이 소파에서 잠들어 있었다.“신시안.”그가 바로 눈을 떴다.“왔어?”“왜 여기서 자.”“기다리다가.”소예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먼저 자라고 했잖아.”“알아.”“내일 출근해야 하잖아.”“너도.”시안은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밥 먹었어?”“대충.”“그게 안 먹었다는 뜻이지.”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는 모습을 보며 소예는 가만히 서 있었다.과거에는 반대였다.소예가 늦게까지 시안을 기다렸다.언제 올지 모르는 사람을.이번에는 시안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왜 그렇게 봐.”시안이 물었다.“그냥.”“앉아.”간단한 밥상이 차려졌다.소예가 한 숟갈 먹다가 말했다.“예전에는 나만 기다렸는데.”시안의 손이 멈췄다.“미안해.”“사과하라는 말 아니야.”소예가 웃었다.“그냥 신기해서.”시안은 잠시 소예를 바라봤다.“이번에는 내가 기다릴게.”“매번?”“필요하면.”“나 늦게 다니는 거 싫지 않아?”“싫지.”솔직한 대답이었다.소예가 웃었다.“그런데?”“네 일이잖아.”시안이 물을 건넸다.“내가 싫다고 네 일을 줄이는 건 아니지.”소예는 컵을 받았다.“그래도 너무 늦으면 말해줘.”“왜.”“걱정되니까.”“알겠어.”밥을 다 먹고 침실로 들어가자 시안은 바로 소예를 끌어안았다.“보고 싶었어.”“몇 시간 못 봤다고.”“아침부터 못 봤잖아.”소예가 그의 품에서 웃었다.기다리는 건 여전히 힘든 일이었다.하지만 기다림의 끝에 상대가 반드시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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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은소예의 팀

몇 달 뒤.은소예에게 새로운 제안이 들어왔다.신규 브랜드 TF의 팀장을 맡아보라는 것이었다.소예는 회의실에서 말을 듣자마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제가요?”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실적도 좋고, 이번 프로젝트 운영 능력도 확인됐으니까.”“생각할 시간 조금만 주실 수 있을까요?”“물론이죠.”자리로 돌아온 소예는 기쁜 마음보다 부담감이 먼저 들었다.팀장이 된다.언젠가 원했던 일이었다.그런데 막상 기회가 오니 두려웠다.그날 저녁.시안에게 이야기를 하자 그는 바로 웃었다.“축하해.”“아직 한다고 안 했어.”“왜.”“내가 할 수 있을까?”시안의 표정이 진지해졌다.“왜 못 해.”“팀원도 관리해야 하고.”“응.”“지금보다 책임도 커지고.”“그래서?”소예가 한숨을 쉬었다.“무서워.”시안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하고 싶긴 해?”소예는 고개를 끄덕였다.“응.”“그럼 해.”“그렇게 간단해?”“아니.”시안이 소예의 손을 잡았다.“힘들겠지.”“봐.”“근데 힘든 거랑 못 하는 건 다르잖아.”소예는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실패하면?”“다시 하면 되고.”“팀원들이 나 싫어하면?”“왜 벌써 싫어한다고 생각해.”소예가 웃었다.“당신 되게 긍정적이다.”“내 아내 일에는.”“또 아내.”“그럼 은소예 과장님.”소예는 고개를 저었다.다음 날.소예는 제안을 받아들였다.몇 주 뒤 작은 TF가 꾸려졌다.소예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팀이 생겼다.첫 회의 날.팀원들 앞에 서자 긴장됐지만 동시에 설렜다.“잘 부탁드립니다.”회의가 끝난 뒤 휴대폰을 확인하자 시안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첫 회의 어땠어?][떨렸어.][그래도 했잖아.]소예는 웃으며 답했다.[응.]그리고 덧붙였다.[나 팀 생겼어.]시안의 답장은 바로 왔다.[알아. 자랑스럽다.]소예는 그 말을 한참 바라봤다.오래전 자신이 막연하게 원했던 미래가,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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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대표와 팀장의 충돌

은소예가 팀장을 맡은 뒤 처음으로 신시안과 업무 의견이 정면으로 충돌했다.신규 브랜드 출시 시점 때문이었다.“다음 달은 너무 빨라요.”소예가 회의에서 말했다.시안은 자료를 내려다봤다.“시장 상황 보면 늦출 이유가 없습니다.”“준비가 덜 됐습니다.”“보완하면 되죠.”소예의 눈빛이 단단해졌다.“한 달 안에 보완하기 어렵습니다.”회의실 안의 사람들은 둘 사이를 조심스럽게 바라봤다.부부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시안은 물러나지 않았다.“은 팀장.”“네, 대표님.”“구체적인 근거를 주세요.”소예는 준비한 자료를 열었다.“제품 테스트 결과가 목표치에 미달했고, 마케팅 소재도 추가 검증이 필요합니다.”그녀는 차분하게 설명했다.시안 역시 반박했다.회의는 예상보다 길어졌다.결국 다른 임원들의 의견까지 모은 끝에 출시를 2주만 늦추는 절충안이 나왔다.회의가 끝난 뒤 소예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집에 돌아와서도 대화가 없었다.시안이 먼저 물었다.“화났어?”“조금.”“왜.”“당신 내 의견 안 믿었잖아.”시안의 표정이 굳었다.“안 믿은 게 아니야.”“그럼.”“대표로서 반대 근거를 확인한 거야.”소예는 입을 다물었다.틀린 말은 아니었다.“당신도 나한테 화났어?”“조금.”“왜.”“회의에서 내가 남편이라서 더 세게 나온 것 같아서.”소예의 표정이 변했다.“그건 아니야.”“진짜?”“응.”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소예가 먼저 말했다.“우리 이거 어렵다.”“뭐가.”“회사에서는 대표랑 팀장인데.”그녀가 시안을 바라봤다.“집에서는 부부잖아.”시안도 한숨을 쉬었다.“그러게.”소예는 잠시 생각하다 손을 내밀었다.“그럼 오늘 회사 싸움은 여기까지.”시안이 그 손을 잡았다.“집에서는?”“남편한테는 아직 조금 화남.”“그건 어떻게 풀어.”소예가 그를 바라보다 웃었다.“생각해볼게.”시안도 결국 웃었다.업무에서 의견이 다를 수 있었다.중요한 건 그 차이를 집까지 끌고 와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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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싸우고 같은 침대에서 자는 법

그날 밤.은소예는 침대 한쪽 끝에 누워 있었다.신시안은 반대쪽에 누워 있었다.둘 사이에는 사람 한 명이 더 누울 수 있을 만큼 공간이 있었다.“소예야.”대답이 없었다.“자?”“아니.”“아직 화났어?”“조금.”시안이 한숨을 쉬었다.“나도.”소예가 바로 고개를 돌렸다.“당신도?”“응.”“왜.”“내가 대표인데 회의에서 너무 몰아붙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소예가 몸을 일으켰다.“그런 뜻 아니라고 했잖아.”“알아.”“그럼 왜 화나.”“감정이라는 게 말한다고 바로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소예는 잠시 그를 바라봤다.맞는 말이었다.그리고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뭐가 웃겨.”“당신이 그런 말을 해서.”“왜.”“예전에는 감정 같은 거 바로 정리하라고 했잖아.”시안도 잠시 생각하다 웃었다.“나 많이 변했네.”“응.”소예는 다시 누웠다.이번에는 조금 가운데로.“그래도 오늘 따로 자진 말자.”시안의 표정이 달라졌다.“왜.”“싸웠다고 등을 돌리고 자는 게 싫어.”시안도 조금 가까이 움직였다.“안아도 돼?”소예가 피식 웃었다.“부부인데 아직도 물어.”“화났잖아.”“조금만.”시안의 팔이 조심스럽게 소예의 허리를 감쌌다.소예도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내일 회사 가면.”“응.”“또 대표랑 팀장이야.”“알아.”“또 싸울 수도 있어.”“그럴 수도 있지.”“그래도 집에서는.”소예가 손끝으로 그의 셔츠를 잡았다.“오늘처럼 풀자.”시안이 소예의 머리에 입을 맞췄다.“응.”“그리고 오늘 건.”“뭐.”“내 의견 안 믿은 건 아니었다고 믿을게.”“나도 네가 남편이라서 공격한 거 아니라고 믿을게.”소예가 웃었다.“이상하다.”“뭐가.”“우리 싸움 진짜 평범해졌어.”시안도 웃었다.첫 번째 결혼에서는 한 번의 싸움이 며칠의 침묵으로 이어졌다.이번에는 같은 침대에서 서로 화났다고 말할 수 있었다.완벽하게 싸우지 않는 부부가 아니라,싸운 뒤 돌아오는 길을 아는 부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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