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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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가 손을 들었다.셔츠 자락 아래로 손끝을 넣었다.손바닥에 맨살이 닿았다.따뜻했다.손을 조금 더 넣자 단단한 배 위로 손바닥이 완전히 붙었다.은유가 천천히 위로 쓸었다.강혁의 숨이 한 번 길어졌다.아주 작았다.그래도 손바닥을 통해 느껴졌다.은유의 손이 멈추지 않았다.조금 더 위로.강혁의 시선은 계속 은유의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몇 초가 지났다.“그만.”조금 늦게 떨어진 말이었다.은유가 바로 손을 뺐다.“네.”손바닥에 열이 남았다.강혁이 그 빈손을 한번 내려다봤다.그러더니 은유의 턱을 잡아 당겼다.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입술이 맞닿았다.짧게 끝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강혁이 다시 깊게 들어왔다.은유의 숨이 흐트러졌다.손이 저절로 올라갔다.강혁의 셔츠에 닿기 직전,손목이 잡혔다.입술은 떨어지지 않았다.강혁은 키스하면서 은유의 손을 다시 아래로 내렸다.닿지 못하게 했다.은유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한번 움켜쥐어졌다.답답했다.강혁은 그걸 아는 것처럼 조금 더 오래 입을 맞췄다.은유의 목에서 작은 숨이 새었다.그제야 강혁이 떨어졌다.은유가 숨을 들이켰다.강혁의 얼굴은 여전히 가까웠다.“손.”은유가 그를 봤다.강혁이 잡고 있던 손목을 끌어왔다.이번에는 묻지 않았다.은유의 손바닥을 자기 허벅지 위에 직접 올려놓았다.“여기까지만.”“네, 주인님.”은유의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였다.허락된 곳을 쓸었다.아까처럼 무엇을 더 해도 되는지 계산하지 않았다.지금 닿을 수 있는 곳을 만졌다.강혁의 손도 움직였다.은유의 목에서 어깨로.허리를 따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은유의 손에는 선이 있었고,강혁의 손에는 없었다.그 차이가 몸을 더 뜨겁게 만들었다.은유의 손이 허벅지 안쪽으로 조금 움직였다.손목에 힘이 들어왔다.멈췄다.강혁이 아무 말 없이 은유를 봤다.은유도 그를 봤다.더 가지 않았다.그러자 손목을 잡고 있던 힘이 풀렸다.강혁이 다시 입을 맞췄다.이번에는 은유의 손을 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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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화

강혁이 휴대폰을 내려놓았다.은유는 맞은편에서 컵을 정리하고 있었다.“주말에 태준이 보기로 했어.”은유가 고개를 들었다.“네.”“너도 가.”손이 잠깐 멈췄다.“저도요?”“응.”은유는 더 묻지 않았다.“알겠습니다.”강혁은 이미 다른 화면을 보고 있었다.은유가 컵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았다.이전과는 조금 달랐다.그때는 강혁의 친구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어디까지 움직여도 되는지.자기 역할이 뭔지.그런 걸 계속 생각했었다.이번에는 별로 그렇지 않았다.태준도 알고.지현도 안다.강혁과 함께 가는게 이제는 처음이 아니었다.며칠 뒤.은유가 외출 준비를 마치고 나왔다.강혁은 현관 앞에서 시계를 차고 있었다.은유가 가방을 들었다.강혁이 한번 봤다.시선이 은유의 옷에서 멈췄다.“그거 말고.”은유가 자기 옷을 내려다봤다.“왜요?”“저번에 산 거 있잖아.”“어떤 것 말씀이십니까?”“검은색.”은유가 잠깐 생각했다.“그 원피스요?”“응.”은유가 강혁을 봤다.“그게 더 낫습니까?”“응.”“왜요?”강혁은 잠깐 은유를 봤다.“그게 더 어울려.”너무 쉽게 나온 대답이었다.은유는 몇 초 그대로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방으로 다시 들어갔다.옷을 갈아입었다.거울 앞에서 한번 봤다.검은색 원피스.자기가 골랐던 옷은 아니었다.강혁이 전에 보고 사라고 했던 것이었다.은유는 머리만 조금 정리하고 다시 나왔다.강혁이 현관에 서 있었다.이번에는 위아래로 한번 보고 바로 차 키를 들었다.“가자.”“네.”둘이 엘리베이터를 탔다.은유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한번 봤다.강혁이 물었다.“왜.”“아닙니다.”문이 열렸다.강혁이 먼저 나갔다.은유도 따라갔다.차에 올라탄 뒤 강혁이 시동을 걸었다.은유가 안전벨트를 맸다.“오늘도 지난번처럼 여러 분 오십니까?”“아니.”“태준 씨하고 지현 씨만요?”“응.”은유는 고개를 끄덕였다.그 정도면 편했다.강혁이 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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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은유가 앞에 놓인 음식을 한번 훑어봤다.처음 보는 게 몇 개 있었다.한쪽에 놓인 것을 집으려는데 강혁이 말했다.“그거 매워.”은유의 손이 멈췄다.“많이요?”“너 못 먹어.”강혁은 은유를 보지도 않았다.자기 앞의 접시를 정리하면서 한 말이었다.은유가 순순히 손을 거뒀다.“그럼 안 먹겠습니다.”채원이 그 모습을 한번 봤다.“매운 거 못 먹어요?”“잘 못 먹습니다.”“그럼 이건 괜찮을 거예요.”채원이 자기 앞에 있던 접시 하나를 은유 쪽으로 조금 밀었다.“저도 매운 거 잘 못 먹어서 이건 확인했어요.”은유가 한입 먹어봤다.“맛있습니다.”“그렇죠?”“네.”채원이 웃었다.“그럼 이건 성공.”은유도 웃었다.태준이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둘이 벌써 친해졌냐?”채원이 바로 물었다.“왜요?”“만난 지 십 분도 안 됐잖아.”“십 분이면 같이 밥 먹기엔 충분하죠.”“그 얘기가 아닌데.”“그럼 무슨 얘기인데요?”태준이 입을 다물었다.지현이 웃었다.은유도 웃었다.강혁은 잔을 들었다.시선이 잠깐 채원에게 갔다.처음 보는 자리인데도 불편해하지 않았다.필요 이상으로 분위기를 맞추려고 하지도 않았다.말할 때는 말하고.아니면 자기 음식을 먹었다.강혁은 잔을 내려놓았다.채원은 이미 은유에게 다른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이것도 먹어봐요. 이건 진짜 안 매워.”“채원 씨 기준 아닙니까?”“못 믿겠어요?”“조금요.”“아까 하나 성공했잖아요.”은유가 웃으며 하나를 집었다.채원도 웃었다.아직은 정말,한 사람이 더 생긴 자리일 뿐이었다.식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자 대화도 자연스럽게 흩어졌다.태준이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그러고 보니 채원 씨는 요즘도 플레이 해?”채원이 먹던 것을 삼켰다.“가끔요.”“파트너는?”“지금은 없어요.”“아직도?”“아직도가 뭐예요.”채원이 웃었다.“없을 수도 있죠.”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하긴.”지현이 물었다.“언니 지난번에 만난 사람은?”“두 번 보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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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화

강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채원이 그 시선을 따라갔다가 다시 은유를 봤다.“싫은 것도?”“싫은 건…….”은유가 생각했다.“그것보다는 좋은 걸 말하는 게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채원은 잠깐 은유를 보았다.그러다 고개를 끄덕였다.“그럴 수도 있죠.”그게 전부였다.고치라고 하지 않았다.자기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도 하지 않았다.은유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태준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대화가 자연스럽게 넘어갔다.은유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옆에서는 채원이 지현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다.싫은 것도 정확했다.상대에게 어디까지 맡길지도 이미 정해져 있었다.그걸 말하는 데 망설이지도 않았다.은유는 채원을 잠깐 바라봤다.잘하는 사람이었다.그 정도로 생각했다.잠시 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다른 쪽으로 넘어갔다.태준이 채원에게 물었다.“근데 요즘 일은 어때요?”“바빠요.”“여전히?”“이번 달까지만 좀요. 다음 달부터는 괜찮을 것 같아요.”“출장도 계속 다니고?”“이번 주에 하나 끝났어요.”“그럼 좀 살겠네.”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오늘도 나온 거예요. 지난주였으면 못 왔어요.”강혁이 물었다.“무슨 일 하세요?”채원이 강혁을 봤다.“브랜드 쪽에서 일해요.”“기획?”“네. 지금은 팀 맡고 있고요.”“몇 년 됐어요?”“일한 건 8년 정도요.”강혁이 고개를 끄덕였다.“오래 했네요.”“생각보다요.”채원은 필요한 만큼만 대답했다.말이 길지 않았다.강혁이 하나를 물으면 바로 핵심으로 돌아왔다.태준이 둘을 번갈아 보다가 말했다.“둘이 말하는 거 왜 이렇게 재미없냐.”채원이 태준을 봤다.“물어보셔서 대답한 건데요.”“그게 문제야. 둘 다 너무 딱딱해.”강혁이 말했다.“네가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 거지.”“지현아. 얘네 둘 말투 좀 비슷하지 않냐?”지현이 한번 둘을 봤다.“조금.”채원이 웃었다.“저까지 욕먹는 기분인데요.”“칭찬이야.”“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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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태준이 빈 병을 한쪽으로 밀었다.“그러고 보니까.”지현이 쳐다봤다.“또 뭐.”“지난번에 얘기했던 거 있잖아. 플레이 중간에 계속 확인하는 사람.”채원이 바로 알아들었다.“아, 그분.”“응. 결국 그것 때문에 끝났다더라.”은유가 물었다.“계속 확인한다는 게 어떤 거에요?”태준이 손가락으로 잔을 두드렸다.“이미 합의 다 했는데도 계속 묻는 거지. 이거 해도 돼? 괜찮아? 계속해도 돼?”“그게 문제입니까?”“문제라기보다는.”지현이 대신 말했다.“사람마다 다르지. 확인받는 게 좋은 사람도 있으니까.”“근데 매번 그러면 흐름 끊긴다는 사람도 있고.”태준이 말을 받았다.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저도 싫어요.”대답이 빨랐다.은유가 채원을 봤다.“확인하는 게요?”“계속 확인하는 게요.”채원이 말했다.“처음에 어디까지 괜찮은지 얘기했으면 그 안에서는 맡기고 싶어요.”“상대가 잘못 판단할 수도 있잖아.”태준이 물었다.“그건 그렇죠.”채원이 잔을 내려놓았다.“그래도 매번 저한테 답을 달라고 하면, 제가 통제권을 넘긴 의미가 없어지잖아요.”강혁이 채원을 봤다.“합의한 범위 안이면 매번 확인할 필요는 없죠.”“네.”“대신 반응이 달라지면?”채원의 시선이 강혁에게 갔다.“다시 봐야죠.”“말로 안 해도?”“말로 안 하니까 더 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강혁이 잔을 내려놓았다.“어떻게.”“평소랑 달라졌는지요.”채원은 잠깐 생각했다.“호흡이 달라지거나, 몸에 힘이 들어가거나. 원래 하던 반응이 없어질 수도 있고요.”“그걸 상대가 잘못 읽으면?”“멈추고 확인해야죠.”“그 전에는?”“계속하고요.”대답에 망설임이 없었다.강혁이 물었다.“상대가 그 정도로 못 읽는 사람이면?”채원이 조금 웃었다.“그 정도도 못 읽는 사람한테는 안 맡겨요.”잠깐 조용해졌다.태준이 피식 웃었다.“기준 높네.”“높아야죠.”“그러다 계속 혼자 있는 거 아냐?”“그럼 혼자 있죠.”채원은 아무렇지 않았다.“안 맞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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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화

태준이 장난스럽게 물었다.“그럼 상대가 ‘거기 있어’ 하면?”채원이 어깨를 으쓱했다.“있죠.”“얼마나?”“끝내라고 할 때까지.”은유의 시선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태준은 몰랐지만.그 말은 은유에게 익숙했다.강혁이 물었다.“힘들어도?”“힘든 정도에 따라 다르죠.”“움직이고 싶으면.”“그래도 안 움직이는 게 플레이면 안 움직이고요.”강혁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그걸 좋아해요?”채원이 잠깐 생각했다.“상대가 왜 기다리게 하는지 알면요.”“모르면?”“싫어요.”강혁이 짧게 웃었다.“확실하네요.”채원도 웃었다.“그런 편이에요.”잠깐 정적이 흘렀다.강혁이 말했다.“경험이 많긴 하네요.”은유가 들고 있던 잔을 입가까지 가져갔다.한 박자 늦게 물을 마셨다.채원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좀 오래 하긴 했어요.”“얼마나.”“제대로 시작한 건 스물셋쯤이니까.”채원이 손가락으로 대충 셌다.“육 년 정도?”태준이 말했다.“은근 오래됐네.”“그러게요.”채원은 웃었다.자랑하는 기색도 없었다.그냥 사실이었다.은유는 물잔을 내려놓았다.육 년.자기는 이제야 하나씩 배우고 있었다.좋다고 말하는 것.싫다고 말하는 것.기다리는 것.느끼는 것.원하는 걸 먼저 하는 것까지.채원은 그걸 이미 여러 번 지나온 사람이었다.그때 채원이 은유를 봤다.“은유 씨는?”“네?”“시작한 지 얼마나 됐어요?”은유가 잠깐 멈췄다.“아직 오래되지는 않았어요.““근데 잘 맞는 것 같던데.”은유의 눈이 조금 커졌다.“제가요?”“네.”채원은 별 의미 없이 말했다.“아까 얘기 들으면서.”은유가 강혁을 한번 봤다.강혁은 말없이 잔을 들고 있었다.“아직 배우는 중이에요.”은유가 말했다.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그게 더 재밌을 수도 있겠다.”“왜요?”“계속 처음이 나오잖아요.”은유는 잠깐 생각했다.그리고 조금 웃었다.“그건 그래요.”채원도 웃었다.태준이 다른 이야기를 꺼내려던 순간이었다.강혁이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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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화

잠시 뒤 태준이 채원에게 물었다.“근데 오늘 얘기해보니까 강혁이랑은 좀 통하지 않아요?”강혁이 바로 태준을 봤다.“뭐가.”태준이 손을 들었다.“아니, 말이. 말.”“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왜. 둘이 아까부터 얘기는 잘했잖아.”채원이 웃었다.“얘기는 잘 통하던데요.”대답은 담백했다.강혁도 부정하지 않았다.“그런 편이네요.”그걸로 끝이었다.누구도 그 이상 의미를 붙이지 않았다.은유도 포크를 내려놓았다.이상하지 않았다.사실이니까.둘은 말이 잘 통했다.채원이 말했다.“저는 강혁 씨 같은 타입이 편해요.”이번에는 태준이 먼저 반응했다.“어떤 타입?”“말 돌리지 않는 사람.”채원이 강혁을 한번 봤다.“궁금하면 바로 물어보잖아요.”강혁이 말했다.“돌려서 물어볼 이유가 없으니까요.”“그러니까요.”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그게 편해요.”은유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채원은 강혁이 편하다고 했다.강혁도 채원과 말이 통한다고 했다.둘 다 사실이었다.그런데 조금 전 강혁은 은유에게 묻지도 않고 접시를 바꿨다.두 가지가 머릿속에 나란히 놓였다.어느 쪽이 더 좋은지는 알 수 없었다.비교할 수 있는 건지도 몰랐다.은유가 남은 케이크를 한입 먹었다.강혁이 옆에서 물었다.“맛있어?”“네.”“얼마나.”은유가 그를 봤다.강혁도 은유를 보고 있었다.은유가 조금 웃었다.“다음에도 이걸 고를 정도로요.”강혁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그 한마디로 끝났다.다음에도.은유는 포크 끝에 남은 크림을 천천히 먹었다.자리에서 일어난 건 채원이 먼저였다.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가방을 들었다.“저 먼저 갈게요.”지현이 시계를 봤다.“벌써?”“내일 아침에 운동 있다고 했잖아.”태준이 말했다.“아까 그거 진짜였어?”채원이 태준을 봤다.“그럼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주말 아침 운동은 항상 의심해봐야지.”“태준 씨 기준으로 살면 안 돼요.”“맞는 말이네.”지현이 웃으며 같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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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화

초인종이 울린 건 오전 열 시가 되기 조금 전이었다.강혁이 현관으로 나갔다.문을 열자 은유가 서 있었다.“왔습니다.”강혁이 시간을 한번 확인했다.“일찍 왔네.”“조금요.”“들어와.”은유가 신발을 벗었다.지난번에는 들어오자마자 집 안을 한번 둘러봤었다.오늘은 그러지 않았다.가방을 벗어 익숙한 쪽에 내려놓고 그대로 거실로 들어갔다.강혁이 뒤따라왔다.“밥은.”“먹었습니다.”“커피?”“네.”은유는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았다.강혁은 주방으로 갔다.잠시 뒤 커피 두 잔을 들고 돌아왔다.은유 앞에 하나를 내려놓았다.“감사합니다.”강혁도 맞은편에 앉았다.노트북을 열었다.“조금만 기다려.”“네.”은유는 컵을 들었다.집 안은 조용했다.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은유는 휴대폰을 꺼냈다가 몇 번 화면을 넘기고 다시 내려놓았다.특별히 할 일은 없었다.그렇다고 어색하지도 않았다.한참 뒤 강혁이 노트북을 덮었다.은유가 고개를 들었다.“끝나셨습니까?”“응.”강혁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그리고 은유를 봤다.시선이 조금 오래 머물렀다.은유도 그를 봤다.“왜 그러십니까?”강혁은 대답하지 않았다.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은유야.”“네.”강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들어가.”은유의 시선이 침실 쪽으로 향했다.다시 강혁에게 돌아왔다.“네, 주인님.”가방은 그대로 두고 일어났다.강혁이 먼저 걸었다.은유가 그 뒤를 따라갔다.지난번에는 처음 들어가 본 방이었다.오늘은 문이 열리자,어디에 서야 하는지부터 알았다.침실로 들어간 은유가 침대 앞에 섰다.강혁은 바로 시작하지 않았다.문을 닫고 천천히 다가왔다.은유가 그를 기다렸다.강혁의 시선이 얼굴에서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옷 벗어.”“네, 주인님.”은유가 옷깃을 잡았다.상의부터 벗었다.서두르지 않았다.옷을 하나씩 벗어 옆에 내려놓았다.강혁은 재촉하지 않았다.마지막 속옷까지 벗자 은유가 다시 그를 봤다.강혁이 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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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화

은유가 입술을 깨물었다.진동이 한 단계 올라갔다.은유의 무릎이 살짝 굽혀지고, 다리가 모였다. “자세.”다시 펴졌다.강혁이 바이브레이터를 잠깐 뗐다가 다시 갖다 댔다.리듬이 일정하지 않았다.어둠 속에서, 은유는 언제 올지 모르는 강혁의 움직임에 몸이 긴장했다.몇 번을 반복한 뒤 강혁이 물었다.“가고 싶어?”“……네. 주인님.”“안 돼.”“아….읏.”진동이 다시 약해졌다.은유의 숨이 거칠게 새어 나왔다.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강혁이 바이브레이터를 은유의 입구에 대고 천천히 밀어 넣었다.완전히 들어갈 때까지.은유의 안이 조여드는 게 느껴졌다.강혁이 위치를 고정시켰다.진동이 안에서 울렸다.은유의 허리가 작게 떨렸다.“이 상태로 유지해.”“빠지지 않게. 힘 줘.”“……네, 주인님.”은유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시간이 조금 흘렀다.안대가 땀에 축축해졌다.허벅지 안쪽으로 투명한 액이 흘러내렸다.방 안에 옅은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은유의 것과 진동기에서 나는 열이 섞인 냄새였다.강혁이 그 냄새를 맡으며 은유 앞에 섰다.바지를 내렸다.“입 벌려.”은유가 입을 열었다.강혁이 앞으로 나갔다.끝이 입술에 닿았다.은유가 혀를 내밀어 아래쪽을 한번 쓸었다.강혁의 숨이 짧게 멈췄다.“깊이.”은유가 고개를 숙이며 받아들였다.입안이 가득 찼다.진동이 안에서 계속 울리고 있어서허리가 미세하게 떨릴 때마다목이 반사적으로 조여들었다.강혁이 그 조임을 느꼈다.은유의 혀가 아래쪽에서 천천히 움직였다.피하려는 움직임이 아니라어떻게든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었다.침이 입가에서 흘러내려턱을 타고 떨어졌다.안대 때문에 은유는 강혁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대신 숨이 거칠어지는 소리만 들렸다.강혁이 은유의 머리채를 가볍게 쥐었다.빼지 않았다.더 깊이 밀어 넣었다.은유의 목이 한번 크게 울렸다.눈가에 물기가 찼지만안대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강혁은 그 저항과 수축을그대로 받으며 허리를 조금씩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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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화

강혁이 욕실로 들어갔다.잠시 뒤 물소리가 났다.은유는 천장을 보며 숨을 골랐다.흐트러진 시트가 맨살 아래에서 축축했다.조금 전까지 귀를 가득 채우던 소리가 사라지고 나니 방이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강혁이 젖은 수건을 들고 돌아왔다.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다리 좀 벌려봐.”은유가 움직이려다가 얼굴을 찡그렸다.강혁이 봤다.“왜.”“힘이 잘 안 들어갑니다.”“그럴 만하지.”강혁이 한쪽 다리를 직접 잡아 옮겼다.은유가 그를 내려다봤다.강혁은 별말 없이 몸에 남은 흔적을 닦아냈다.젖은 수건이 피부를 지날 때마다 은유가 작게 움찔했다.“차가워?”“좀.”“참아.”은유가 작게 웃었다.“끝났는데도요?”강혁의 손이 멈췄다.은유도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강혁이 올려다봤다.“뭐.”“아닙니다.”“웃었잖아.”“조금 웃겼습니다.”“뭐가.”은유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끝난 뒤에도 참으라고 하셔서요.”강혁이 은유를 쳐다봤다.그러더니 다시 수건을 움직였다.“그럼 추워.”“그건 그렇습니다.”“말은.”은유가 또 웃었다.이번에는 강혁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정리를 마친 강혁이 수건을 내려놓았다.“일어나 봐.”은유가 팔꿈치로 몸을 받쳤다.절반쯤 일어났다가 다시 주저앉았다.강혁이 한숨을 쉬었다.“됐어.”“일어날 수 있습니다.”“지금 하는 꼴 보니까 아닌데.”강혁이 은유의 등을 받쳐 앉혔다.베개를 세워 등에 대주었다.“기다려.”이번에는 물을 가져왔다.은유가 컵을 받아 들었다.한 모금 마셨다.두 번째로 마시다가 물이 입가로 조금 흘렀다.강혁이 바로 말했다.“천천히.”은유가 컵을 내렸다.“천천히 마셨습니다.”“그게?”은유가 자기 손을 봤다.컵 안의 물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아닌 것 같습니다.”강혁이 컵을 가져갔다.“제가 마실 수 있습니다.”“알아.”강혁이 컵을 은유의 입가에 가져갔다.“마셔.”은유가 잠깐 그를 보다가 입을 댔다.강혁이 컵을 조금씩 기울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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