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3화

Penulis: 누몽
봉 어멈은 송청아가 화리를 결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켜봐 온 송청아가 안쓰럽고 가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두 사람의 오랜 인연이 이대로 끝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송청아가 고요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봉 어멈도 보지 않았나. 서방님의 마음속에서는 송채리가 나보다 훨씬 중요하네.”

“헌데 두 분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이지 않습니까. 큰부인께서 큰도련님을 얼마나 마음에 두셨는지 소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봉 어멈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큰도련님께서 직접 송씨 가문으로 청혼하러 오셨던 날, 나리와 마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 생에는 오직 송씨 가문의 여식만을 부인으로 맞아 평생 아끼겠다고 맹세하셨지요. 그 말씀을 소인도 두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그날의 일을 떠올린 봉 어멈의 눈빛에 희미한 기대가 어렸다.

“큰도련님의 마음속에도 분명 큰부인이 계실 겁니다. 그저 잠시 그 아가씨에게 눈이 먼 것뿐이지요. 그러니 때를 보아 큰도련님과 마주 앉아 속에 있는 이야기를 나눠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분명 마음을 돌리실 겁니다.”

마음을 돌린다고?

송청아의 입가에 자조 어린 웃음이 스쳤다.

그럴 리가.

그에게 천 번, 만 번의 기회를 더 준다 한들 배윤호는 결코 마음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

송청아가 배윤호를 처음 만난 것은 열세 살 때였다.

배윤호는 말수가 적고 성정도 냉정했지만, 사람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빈틈없이 반듯했다. 적어도 그녀의 체면을 헤아려 주었고, 다른 이들 앞에서 난처하게 만드는 일은 없었다.

열네 살 무렵, 송청아는 어느 후작 부인이 주최한 봄 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화창한 봄볕 아래 화원의 꽃향기가 짙게 번지던 날이었다. 그러나 명문가의 귀녀들과 관가의 규수들이 내뱉는 말은 봄바람과 달리 매섭고 차가웠다.

그들은 상인 집안이라는 천한 신분으로 감히 고관대작의 연회에 얼굴을 내밀었다며 송청아를 조롱했다. 귀한 공자에게 빌붙어 신분을 높여 보려는 모양인데 꿈도 야무지다며, 명문가의 첩실로 들어갈 자격조차 없다고 비웃었다.

수많은 눈길과 비웃음이 날카로운 바늘처럼 쏟아졌다. 송청아가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난처해하던 바로 그때, 배윤호가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나섰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던 찻잔을 대신 막아 냈다. 옷자락에 따뜻한 찻물이 번졌지만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 송청아의 앞을 가로막아 섰고, 그녀를 대신해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끝내 송청아를 괴롭히던 명문가의 아가씨들을 모두 물러나게 했다.

그 순간 배윤호는 마치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위기에 빠진 그녀를 구해 준 영웅처럼 보였다.

그날 이후 송청아의 마음은 온통 그에게 매여 버렸다.

그가 한결같이 냉담한 태도를 보이고 말끝마다 그녀의 흠을 잡아도, 송청아는 그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어쩌다 한 번 내비치는 희미한 온정이라도 얻고 싶어 한사코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비위를 맞췄다.

이제 와 돌이켜 보니 그때의 자신은 참으로 비굴했다.

진작 그의 마음속에 자신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가 자신을 부인으로 맞은 것도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저 배씨 가문과 송씨 가문 어른들이 정해 놓은 혼사를 따랐을 뿐이었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늦지는 않았다.

송청아는 이미 화리서를 손에 넣었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배윤호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사람을 산 채로 집어삼키는 듯한 소용장군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순순히 물러나 저들을 편하게 해 줄 생각은 없었다.

화리하기에 앞서 지난 수년 동안 장군부의 안살림에 보태느라 쏟아부은 지참금을 모조리 되찾고,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향료점의 수익금도 받아 낼 작정이었다.

그리고 배씨 가문에서 자신을 괴롭힌 자들에게도 하나하나 고통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려 줄 것이다.

마음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송청아는 봉 어멈을 지그시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어멈, 사내의 마음은 한번 떠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법이라네.”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조금의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다.

봉 어멈은 크게 놀랐다. 그제야 자신이 모시는 큰부인이 큰도련님에게 완전히 마음을 접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송청아를 품에 안고 키웠고, 송씨 가문에서 소용장군부까지 따라온 사람이었다. 그러니 송청아의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자신의 큰부인은 온화하고 조용한 성품이었다. 비록 속내를 쉽게 입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 자기 생각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더구나 한번 마음먹은 일은 좀처럼 뜻을 굽히지 않았다.

봉 어멈은 아쉬운 마음을 삼키며 길고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끝내 송청아의 결심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송청아는 봉 어멈의 어깨를 가만히 어루만지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

“어멈, 너무 속상해하지 말게. 내가 평소 쓰는 옷가지와 침구, 그릇 따위를 별채로 옮겨 주게. 앞으로는 그곳에서 지낼 생각이네.”

그러다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눈빛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그리고 서방님께서 군을 이끌고 개선하여 도성으로 돌아올 때, 그 송채리도 군을 따라 함께 온 것이 맞는가?”

봉 어멈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런 듯합니다. 헌데 큰부인, 여인을 진중에 데리고 다니는 것은 군율을 어기는 일이 아닙니까? 큰도련님께서 어찌…….”

“봉 어멈.”

송청아가 조용히 말을 끊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봉 어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일렀다.

“앞으로 며칠 동안 다른 처소의 어멈이나 시녀들과 한담을 나눌 때 이 이야기를 슬쩍 흘려 두게. 특히 행춘당의 설 소실 처소 사람들 귀에 반드시 들어가게 해야 하네. 내 말 알아들었나?”

봉 어멈은 송청아가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큰부인의 분부라면 무엇이든 따를 생각이었다.

“예, 소인 명심하겠습니다.”

송청아는 흡족한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복수는 바로 이 순간부터 시작이었다.

*

그날 밤, 배윤호는 예상대로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송청아는 제향방에서 갓 보내온 향분과 향로 견본을 하나하나 살펴 정리했다. 은은한 향이 방 안에 옅게 머물렀다. 일을 마친 뒤에는 시어머니 고씨에게 문안을 올리기 위해 안순당으로 향했다.

입춘은 이미 지났지만, 전날 내린 큰눈으로 도성에는 다시 매서운 추위가 내려앉았다. 처마 끝에는 녹다 만 눈이 얼어붙어 있었고, 뺨을 스치는 바람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이 배어 있었다.

정원을 지나던 송청아는 문득 걸음을 늦추었다.

몇몇 하인이 화원 동남쪽에 허리를 굽힌 채 그곳에 심어 놓은 두약을 뿌리째 뽑고 있었다.

분홍빛과 자줏빛이 어우러진 자그마한 꽃송이들은 아무렇게나 한쪽에 내던져져 있었다. 꽃잎은 희끗한 눈과 축축한 흙 위에 어지럽게 흩어졌고, 가느다란 줄기와 뿌리에는 검붉은 흙이 잔뜩 엉겨 붙어 있었다. 한때 싱그럽게 피어 있던 꽃들은 이미 생기를 잃고 처참하게 짓밟혀 있었다.

송청아의 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지자 봉 어멈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하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린 순간, 봉 어멈은 안색이 변해 다급히 소리쳤다.

“당장 멈추거라! 누가 이것들을 뽑으라고 했느냐? 큰부인께서 날마다 약재로 쓰시는 두약이라는 것을 모르느냐?”

송청아는 어려서부터 향을 배합하는 일에 깊이 빠져 있었다. 한번 향을 만드는 데 몰두하면 시간 가는 줄 몰라 끼니를 놓치기 일쑤였고, 때로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기도 했다.

그런 생활이 오래 이어지면서 비위가 상하고 말았다. 부득이 날마다 두약을 넣어 달인 약으로 비위를 따뜻하게 보해야 했기에, 송청아는 필요할 때마다 바로 약재로 쓸 수 있도록 화원 한쪽에 두약을 심어 두었다.

봉 어멈의 외침을 들은 하인들은 일제히 손을 멈췄다. 서로 눈치를 살피던 그들은 흙 묻은 손을 옷자락에 닦으며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봉 어멈, 저희라고 큰부인의 사정을 모르겠습니까. 헌데 이는 큰도련님의 분부입니다. 오늘 정오까지 이 두약을 모조리 치우라고 명하셨습니다. 저희는 그저 분부대로 일을 하는 것뿐이니, 부디 큰부인께서도 저희를 곤란하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

봉 어멈이 자세히 캐묻고 나서야 사정을 알게 되었다.

송채리가 타고난 체질 탓에 두약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배윤호는 앞으로 그녀가 장군부를 드나들 때 과민 증세가 재발할까 염려하여, 미리 화원의 두약을 모조리 뽑아 버리라고 명했다.

자초지종을 들은 봉 어멈은 분노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너무도 기가 막힌 나머지 목소리까지 가늘게 떨렸다.

“너희는 큰도련님께 이 두약이 큰부인의 약재라고 말씀드리지도…….”

그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송청아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봉 어멈, 서방님의 분부이니 우리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네. 그대로 뽑게 두게.”

“헌데…….”

봉 어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고작 송채리가 두약에 과민하다는 이유로 큰도련님은 자신의 부인에게 한마디 묻지도 않은 채 두약을 모조리 뽑으라고 했다.

정작 송청아가 날마다 약재로 써야 한다는 사실은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다.

송채리의 몸은 그토록 귀하면서, 자신의 부인은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말인가?

봉 어멈의 얼굴에 떠오른 분노와 근심을 읽은 송청아는 따뜻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달랬다.

“나는 괜찮네. 앞으로는 어멈의 말을 잘 듣고 제때 끼니를 챙겨 먹을 테니 걱정하지 말게. 아무렴 무엇보다 제 몸이 가장 소중하지 않겠나.”

사실 송청아는 두약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다만 혼례 첫날밤, 배윤호가 방 안에 은은하게 번지는 향을 맡고 무심코 한마디 내뱉었을 뿐이었다.

“이 두약 향은 제법 괜찮군.”

그저 스치듯 흘린 짧은 한마디였다.

하지만 송청아는 그 말을 마음 깊이 새겼다.

그 뒤로 방 안에는 늘 두약 향을 피웠고, 화원을 꾸밀 때도 무의식중에 두약을 한 무더기 심었다. 곁에 없는 그를 기다리며 향으로나마 그리움을 달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배윤호라는 사람조차 버리기로 했는데, 그가 좋아한다던 두약을 남겨 둘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뽑으라면 뽑으라지.

시든 마음을 붙잡고 있듯 저 꽃들을 계속 바라보는 것보다, 차라리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편이 나았다.

송청아는 천천히 눈을 내리깔았다. 더는 진흙 속에 나뒹구는 두약을 돌아보지 않은 채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났다. 차가운 바람이 그녀의 소맷자락을 스치며 지나갔다.

안순당의 안채에 도착하니, 시어머니 고씨는 연탑에 단정히 앉아 손가락으로 염주를 굴리며 눈을 감고 불경을 외고 있었다. 방 안에는 향불 냄새가 은은하게 감돌았고, 염주알이 맞부딪치는 작은 소리만이 고요한 실내에 잔잔히 울렸다.

사람이 들어오는 기척을 들은 고씨가 천천히 눈을 떴다. 염주를 내려놓은 그녀는 송청아를 향해 더없이 다정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청아가 왔구나. 어서 이리 와 앉거라.”

송청아는 가볍게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린 뒤, 연탑 곁에 놓인 의자에 조용히 앉았다.

고씨는 손을 뻗어 송청아가 소매 속에 감추고 있던 차가운 손을 끌어다 잡았다. 마치 마음 깊이 염려하기라도 하는 듯 손을 감싸 쥔 채 한동안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그러고는 가엾다는 듯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많이 서러웠겠구나.”

고씨는 자애롭고 선량한 인상을 지닌 여인이었다. 평소 별다른 일이 없으면 불경을 외고 부처에게 예를 올렸으며, 말투 또한 온화하고 부드러워 마치 봄바람을 맞는 듯한 편안함을 주었다.

하지만 그 따스한 겉모습에 속아 넘어간다면, 끝내 뼈도 남기지 못한 채 모조리 뜯어 먹히고 말 것이다.

송청아는 긴 속눈썹을 드리운 채 고개를 살짝 숙였다. 마음속으로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으나, 겉으로는 예전과 다름없이 공손하고 얌전했다.

“어머님, 과한 말씀이십니다. 저는 조금도 서럽지 않습니다.”

고씨는 얼굴 가득 애처로운 기색을 띤 채 송청아의 손등을 다독였다. 손길만 놓고 보면 세상없이 다정한 시어머니였으나, 정작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그 온기와는 전혀 달랐다.

“네 동생은 어려서부터 객지를 떠돌며 자랐으니 예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간 고생이 많았을 테니 참으로 가엾은 아이이기도 하고.”

고씨는 송청아의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타이르듯 말을 이었다.

“윤호도 그 아이가 불쌍해 조금 더 마음을 써 주었을 뿐이란다. 너는 정실부인인 데다 그 아이의 언니이기도 하니, 조금 더 너그럽게 양보해 주거라. 괜히 윤호를 곤란하게 만들지는 말고.”

Lanjutkan membaca buku ini secara gratis
Pindai kode untuk mengunduh Aplikasi

Bab terbaru

  • 장군님이나 잘하세요   제30화

    송청아는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숨을 꾹 삼켰다.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여 예를 갖춘 뒤 조용히 몸을 일으켜 안순당 안채를 나섰다.송청아가 떠난 뒤에도 고씨는 배진성의 곁에서 불평을 늘어놓았다.“저 아이가 갈수록 기고만장해져 이제는 어른 무서운 줄도 모르는군요. 윤호야, 앞으로는 네가 단단히 가르쳐서…….”그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배진성이 다시 한번 탁자를 내리치며 고함을 질렀다.“당신이 지금 윤호를 나무랄 처지오! 오늘 여인들의 연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추월이에게 모두 들었소. 며느리 하나 제대로 단속하지 못해 그런 빈틈을 내주더니, 기어이 창국공부와 연줄까지 맺게 하지 않았소! 이제는 그 아이를 우리 뜻대로 휘두르기가 더 어려워졌단 말이오!”고씨는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지만, 속으로는 맞은편에 앉은 설추월을 수백 번도 더 저주했다. 설 소실 역시 오늘 낙영원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했는데, 연회가 끝나자마자 그곳에서 보고 들은 일을 제 입맛에 맞게 부풀려 배진성에게 고해바쳤고, 그 내용이 하나같이 고씨에게 불리한 것들이었기에 배진성의 불만이 그녀에게까지 향한 것이었다.한동안 분노를 쏟아 낸 배진성은 차츰 숨을 고르더니,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눈썹을 찌푸린 채 다시 입을 열었다.“안 되겠소. 역시 송씨 가문의 그 아가씨를 하루빨리 우리 장군부에 들여야겠소. 며칠 안으로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송 아가씨를 이곳에 머물게 하시오. 그래야 그 아이를 앞세워 저 가짜 송씨를 눌러 놓을 수 있을 테니.”고씨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배윤호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아버님, 너무 서두르시는 것 아닙니까? 제가 도성으로 돌아온 지도 이제 겨우 열흘밖에…….”“무엇이 너무 이르다는 말이냐!”배진성이 사납게 호통치며 그의 말을 끊었다.“어차피 너는 조만간 송채리를 부인으로 맞아들여야 한다. 그 아이를 하루라도 빨리 들여 송청아를 단속하게 하지 않으면, 이대로 제멋대로 날뛰게 두자는

  • 장군님이나 잘하세요   제29화

    송씨 가문에서 내놓은 혼수가 넉넉한 데다, 혼인한 뒤에도 송청아가 배씨 가문의 향을 만들고 향료점을 돌보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면 배진성은 자신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는 적장자가 상인 집안의 여식을 부인으로 맞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종삼품 소용장군인 그는 송씨 가문의 큰도련님이 무관의 길에 오를 수 있도록 무예를 가르치고 앞날까지 이끌어 줘야 했으니, 송청아는 두 가문이 남몰래 또 다른 조건을 주고받았기에 배진성이 이 혼인을 받아들였으리라 짐작했다.그러나 무슨 약속이 오갔든 배진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송청아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전생에도 그녀를 별채로 내쫓고 배윤호에게 송채리를 새 부인으로 맞으라고 한 사람이 바로 그였으며, 사소한 일만 생겨도 걸핏하면 가법을 들먹이며 매질했으니 송청아를 사람으로조차 여기지 않은 셈이었다.그렇다면 이번 생에는 배진성의 약점을 한번 찾아봐야겠구나.그 치명적인 약점 하나만 손에 넣는다면, 배씨 가문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도 있을 터였다.배진성은 한참을 기다려도 송청아가 입을 열지 않자 다시금 노기가 치밀어 탁자 위를 거칠게 내리쳤다.“왜 갑자기 벙어리라도 된 것이냐? 아직도 말하지 않겠다는 것이냐? 가법으로 다스려야 그제야 입을 열겠느냐!”배진성이 말한 가법은 채찍으로 다스리는 형벌이었다. 배씨 가문의 채찍은 질긴 코뿔소 가죽으로 만든 데다 채찍 곳곳에 살을 파고드는 가시까지 돋아 있어, 단 한 번만 내리쳐도 피부와 살점이 통째로 뜯겨 나갈 만큼 무시무시했다. 그런 채찍을 한 번 벌할 때마다 열 대씩 맞아야 했으니, 형벌을 모두 받고 나면 온몸에 성한 살이 남지 않아 적어도 한 달은 꼼짝없이 누워 지내야 했다.송청아는 그 열 대를 고스란히 맞아 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머릿속으로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그녀는 차분히 숨을 가다듬은 뒤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아버님, 새 향의 효능을 미리 어머님께 상세히 말씀드리지 않은 것은 분명 제 잘못입니다. 헌데 다행히 이번 일로 큰 화가 빚어지지

  • 장군님이나 잘하세요   제28화

    “네 잘못이 아니면 대체 누구의 잘못이란 말이냐!”침상 곁에 서 있던 배윤호가 허리를 숙여 송청아의 옷깃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두 사람의 숨결이 맞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그는 평온함 속에 희미한 조소가 어린 그녀의 눈을 한 치도 놓치지 않고 노려보았다.“채리는 그저 잠시 그릇된 생각을 했을 뿐이다. 결국 네 공을 빼앗지도 못했는데, 굳이 사람들 앞에서 그 일을 들춰내야 했느냐? 그 아이의 체면은 생각지도 않고 귀부인과 귀족 규수들에게 온갖 모욕과 조롱을 받게 만들다니, 어쩌면 그리도 심보가 고약하단 말이냐!”송청아의 입가에 쓰고 허탈한 웃음이 번졌다.“서방님 말씀대로라면, 저는 밤낮없이 공들여 만든 향을 송채리가 빼앗아 가는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아야 했겠군요. 제가 받아야 할 칭찬과 선망을 그 아이가 대신 누리는 동안 불당에 틀어박혀 연회가 끝날 때까지 경전이나 베끼고, 앞으로 제가 만드는 모든 향에도 송채리의 이름을 붙여 내놓아야 옳다는 말씀이시지요?”“그게 뭐가 안 된다는 것이냐?”배윤호는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는 듯 당연하게 내뱉었다.“너는 그 아이의 언니다. 공을 조금 나누어 준다고 해서 네게 무슨 손해가 있겠느냐?”“그렇군요.”송청아가 천천히 긴 속눈썹을 들어 올려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창백한 얼굴에는 여전히 옅은 웃음이 걸려 있었으나, 그 눈빛만큼은 서늘할 정도로 맑았다.“그럼 저도 서방님께 하나 여쭙겠습니다. 서방님께서는 자신의 군공을 도련님과 나눌 수 있으십니까? 아니, 아예 전부 넘겨주고 도련님이 대신 효기장군이 되게 하실 수 있습니까?”배윤호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그건 당연히 안 되지! 그 군공은 내가 목숨을 걸고 전장에서 세운 것이다. 어찌 명천에게 넘겨줄 수 있겠느냐? 더구나 명천은 전장에 나가 본 적조차 없고 군사를 이끄는 법도 전혀 모르는데, 무슨 자격으로 효기장군의 자리에 오른단 말이냐?”그 대답을 들은 송청아는 끝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서방님도 싫으신 모양이군요. 헌데 무슨 자격으

  • 장군님이나 잘하세요   제27화

    한 차례 맞절을 마치고 나서야 심설화는 송청아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두 사람은 서로를 부축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던 심설화는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송청아를 바라보았다.“혹시 내 의동생이 되어 주겠느냐?”심설화는 송청아의 손을 더욱 단단히 잡으며 진심을 담아 말을 이었다.“오늘 네게 입은 큰 은혜를 나와 내 부군이 평생 갚아 나가고 싶구나.”뜻밖의 제안에 사방이 고요해졌다.고씨와 그 자리에 있던 여인들뿐 아니라, 송청아 자신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심설화를 바라보았다.고귀한 신분을 지닌 창국공부의 합의현주가 출신조차 분명하지 않은 고아를 의동생으로 삼겠다고 나선 것이다. 언제 어디에서 벌어졌더라도 모두를 놀라게 할 만한 일이었다.그러나 오늘 송청아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을 해냈다. 더러운 토사물을 조금도 꺼리지 않고 직접 입으로 빨아내 어린 공자의 목숨을 구했으니, 그녀가 합의현주의 의동생이 된다 한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여인들은 앞다투어 송청아를 칭찬하며 감탄과 부러움이 담긴 시선을 보냈다.오직 고씨만이 어두운 곳에서 독을 머금은 듯한 눈으로 송청아를 노려보았다. 그 시선은 당장이라도 그녀의 몸을 꿰뚫을 듯 흉흉했다.심설화의 진실하고 간절한 눈빛을 마주한 송청아의 마음에도 커다란 파문이 일었다.잠시 침묵하던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맑은 눈동자 안에서 햇빛을 머금은 듯 잘게 부서진 빛이 반짝였다.“언니와 자매의 연을 맺을 수 있다면 저야 더 바랄 것이 없지요.”그 대답이 떨어지는 순간, 송청아가 오늘 치른 싸움은 마침내 완전한 승리로 끝났다.문득 전생의 오늘이 떠올랐다.전생의 오늘, 배씨 가문은 온갖 핑계를 대며 송청아가 귀환 연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그녀가 밤낮없이 공들여 만든 화신 향 일습마저 송채리의 이름으로 내놓았다. 게다가 송채리는 연회 도중 우연히 심설화의 아들을 구한 덕분에 그녀의 의동생으로까지 받아들여졌다.그날 이

  • 장군님이나 잘하세요   제26화

    춘행은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질렀음을 깨닫고 황급히 바닥에 엎드렸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빌었다.“현주, 부디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오늘 부저를 나설 때 너무 서두른 나머지 약을 채워 넣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지금 당장 돌아가 가져오겠습니다!”“이미 늦었습니다.”송청아의 단호한 한마디에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도일이에게로 쏠렸다.아이의 경련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입술은 검푸르게 질렸고, 입에서는 토사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누가 보아도 조금 전보다 상태가 급격히 악화된 모습이었다.이를 본 심설화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장군부에는 뇌전증에 쓰는 약이 없는가?”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약을 지닌 사람은 없습니까?”심설화는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며 닥치는 대로 약을 구했다. 고씨도 얼굴이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린 채 식은땀만 연신 흘렸다.장군부에는 뇌전증을 앓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관련된 약을 비치해 두었을 리 없었다.고씨는 애써 당황한 기색을 억누르며 심설화를 달랬다.“현주, 부디 진정하십시오. 지금 당장 사람을 의원으로 보내 공자께 필요한 약을 사 오게 하겠습니다!”그때 한 여인이 도일이를 가리키며 겁에 질려 외쳤다.“어머나, 공자께서 기침을 하기 시작했어요! 토사물이 기도로 들어간 것 아닙니까?”사람들이 놀라 도일이를 바라보았다.아이의 얼굴은 이미 파랗게 질려 있었고, 목구멍에서는 숨이 막힌 듯 거친 소리가 새어 나왔다. 토사물이 기도를 막은 것이 분명했다.이대로 기도에 걸린 것을 제때 빼내지 못하고 폐까지 흘러 들어간다면, 아이는 숨을 쉬지 못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이…… 이를 어찌해야…….”심설화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몸은 돌처럼 굳어 버렸고, 가늘게 떨리는 손끝조차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주위의 여인들도 이런 광경은 난생처음이었다.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발만 동동 구를 뿐, 누구 하나

  • 장군님이나 잘하세요   제25화

    “청아야, 조금 전에는 내가 하마터면 너를 오해할 뻔했구나. 부디 마음에 담아 두지 말거라.”심설화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송청아의 눈이 순간 환하게 빛났다.합의현주가 먼저 자매로 지내자고 손을 내민 것은 더없이 큰 영광이었다. 송청아도 심설화의 손등 위로 제 손을 포개며,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태도로 온화하게 웃었다.“언니,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오히려 조금 전 제 누명을 벗겨 주셨으니, 제가 언니께 감사드려야지요.”고씨는 송청아 때문에 장군부와 송씨 가문의 계책이 어그러진 것이 못내 분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도 없는 데다, 송청아가 심설화의 눈에 든 이상 계속 미워하는 기색을 드러낼 수도 없었다.행여 심설화의 분노가 소용장군부에까지 미칠까 두려웠던 고씨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두 사람 곁으로 바짝 다가섰다.“오늘 일은 모두 제가 제대로 살피지 못한 탓입니다. 이 향을 송씨 가문의 아가씨가 만들었다는 말만 듣고, 당연히 조금 전 그 송 아가씨가 만든 줄 알았습니다. 청아가 조향한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요. 그 때문에 이처럼 큰 오해가 생겼으니, 현주께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그 말을 들은 송청아는 당장이라도 냉소를 터뜨리고 싶었다.화신 향 일습을 누가 만들었는지 고씨가 모를 리 있는가. 설마 심설화를 바보로 아는 것인가?아니나 다를까, 심설화는 놀랍고도 한심하다는 눈으로 고씨를 바라보았다. 듣는 순간부터 앞뒤가 맞지 않는 변명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게 분명했다.다만 지금은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연회 자리였다. 심설화는 장군부의 체면을 생각해 고씨의 거짓말을 대놓고 들추지 않고, 최소한의 낯만 세워 주기로 했다.“그런 사정이었군. 그렇다면 배씨 부인은 앞으로 더욱 주의해야겠네.”심설화는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말끝에는 은근한 가시가 서려 있었다.“조금 전 그 송 아가씨는 품성도 재주도 청아에게 한참 미치지 못하더군. 다시는 가짜를 진주로 착각하는 일이 없도록 하게.”고씨는 속으로 송청아가

Bab Lainnya
Jelajahi dan baca novel bagus secara gratis
Akses gratis ke berbagai novel bagus di aplikasi GoodNovel. Unduh buku yang kamu suka dan baca di mana saja & kapan saja.
Baca buku gratis di Aplikasi
Pindai kode untuk membaca di Aplikasi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