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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님이나 잘하세요
장군님이나 잘하세요
Author: 누몽

제1화

Author: 누몽
“다리를 조금 더 벌리십시오.”

“허리도 더 낮추시고요.”

“이렇게 해야 근육이 충분히 늘어나서 큰도련님과 합방하실 때 덜 아프십니다.”

허리와 다리가 찢어질 듯 팽팽하게 당기는 통증에 송청아는 번쩍 정신을 차렸다.

천천히 눈을 뜨자, 너무도 낯익은 방 안의 풍경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자신이 있는 곳은 소용장군부 큰도련님의 처소에 딸린 안채였다.

은은한 향내가 감도는 방 안에서 시어머니를 모시는 안 어멈이 송청아의 허리를 힘껏 누르고 있었다. 잠시 후 치를 배윤호와의 합방에 대비해, 굳은 골반과 근육을 미리 풀어 주는 중이었다.

그제야 송청아는 자신이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6년 전, 전쟁에서 승리한 배윤호가 도성으로 돌아오고 시어머니가 두 사람의 합방을 마련했던 바로 그날로 돌아온 것이다.

전생의 이날, 송청아는 배윤호와 하룻밤을 보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 잠에서 미처 깨어나기도 전에 배윤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를 이불 속에서 끌어내 차디찬 마당에 내던졌다. 그러고는 그녀가 처녀가 아니었다며 느닷없이 누명을 씌웠다.

자신이 출정해 있던 지난 2년 동안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부정을 저지른 것이 틀림없다는 주장이었다.

배윤호는 출정하기 전까지 송청아와 단 한 번도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었다.

몸을 웅크린 송청아는 차가운 바닥에 옆으로 쓰러진 채 억울하다며 울부짖었다.

지난밤 분명 배윤호가 자신의 처음을 가져갔는데, 어째서 날이 밝자마자 이토록 끔찍한 누명을 씌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3월의 새벽바람은 살을 에듯 매서웠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벽돌 바닥에 쓰러진 송청아의 가냘픈 몸은 추위에 벌겋게 얼어붙었고, 맞부딪치는 이 사이로 신음이 새어 나올 만큼 쉴 새 없이 떨렸다.

그런데도 배윤호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장군부의 수많은 하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는 송청아의 아랫배를 몇 번이고 걷어차 자궁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일이 양가 부모에게까지 알려졌지만, 그들은 일말의 의심조차 없이 배윤호의 말만 믿었다. 도리어 송청아를 향해 부녀자의 도리를 저버린 음탕하고 파렴치한 계집이라며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배씨 가문은 이를 빌미로 송청아를 정실의 자리에서 끌어내려 첩으로 전락시켰다. 거기에 억지로 약까지 먹여 이미 상처 입은 자궁을 완전히 망가뜨렸고, 송청아는 다시는 아이를 품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들은 그녀의 몸이 채 회복되기도 전에 안채에서 내쫓아 외진 별채로 보내 버렸다.

송청아는 지금도 그날의 광경을 생생히 기억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을 끌고 별채의 낡은 침상에 누워 간신히 숨만 붙이고 있던 그때, 배씨 가문의 본채에는 붉은 등이 내걸리고 요란한 징과 북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창밖의 어둠마저 온통 붉게 물들인 떠들썩한 잔치 소리는, 죽어 가는 그녀의 귓가를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배윤호는 십 리 길을 붉게 물들일 만큼 성대한 혼례를 올리며, 변방에서 찾아온 송씨 가문의 진짜 적녀 송채리를 정실부인으로 맞아들였다…….

그날의 기억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등 뒤에서는 안 어멈의 부러운 듯한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큰부인께서는 허리가 유연하고 다리도 긴 데다, 가슴과 엉덩이까지 풍만하셔서 아이를 아주 잘 낳으실 몸입니다. 3년에 둘은 거뜬히 보시겠어요. 2년 전 큰도련님과 혼례를 올리신 날 바로 합방하셨다면, 지금쯤 어린 도련님께서 온 집 안을 뛰어다니고 계셨을 겁니다.”

아이를 잘 낳을 몸이라니.

그 말을 들은 송청아의 입가에 희미한 조소가 번졌다. 그녀의 생각은 자연스레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당시 조향으로 이름난 송씨 가문의 여식이었던 송청아는 부모의 뜻에 따라 소용장군부의 큰도련님 배윤호와 혼인했다.

배윤호는 성정이 냉담하고 평소 말수가 적었으며, 전쟁터에 나가 있는 날도 많았다.

그럼에도 훤칠하고 준수한 외모와 냉오하면서도 강직한 성품은 소녀다운 연정을 품고 있던 송청아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 시절의 송청아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의 부인이 되기를 택했다.

하지만 혼례를 올린 바로 다음 날, 갑작스럽게 전쟁이 터졌다.

배윤호는 갓 혼인한 부인에게 단 한마디도 남기지 않은 채 아버지를 따라 전장으로 떠났다.

그가 전장에서 싸우던 2년 동안 송청아는 시어머니의 명을 받들어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빈틈없이 돌봤다. 자신의 혼수로 부족한 살림을 메우는 한편, 향내가 가시지 않는 조향실에 틀어박혀 밤낮없이 새로운 향을 만들어 냈다.

그뿐만 아니라 장군부 소유의 향료점 네 곳까지 도맡아 관리했다. 그녀의 손을 거치면서 늘 살림이 빠듯하던 장군부는 차츰 체면을 되찾았고, 곳간에도 여유가 생겼다.

송청아는 자신이 이토록 정성을 다했으니, 배윤호도 돌아오는 날에는 그동안의 노고를 알아주리라 믿었다.

그가 자신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겨 주기를, 그저 묵묵히 기다렸다.

그러나 2년이라는 긴 기다림 끝에 돌아온 배윤호의 곁에는 송씨 부인과 놀라울 정도로 닮은 여인이 서 있었다.

배윤호는 그 여인 송채리가 진짜 송씨 가문의 여식이라고 말했다.

반면 송청아는 18년 전 변방에서 아이가 뒤바뀌는 바람에 송씨 가문에서 자라게 된 목동 집안의 딸에 불과했다.

하룻밤 사이에 구름 위에서 진흙탕으로 추락한 송청아는 배씨 가문과 송씨 가문 모두에게 가장 쓸모없고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바로 그 무렵, 시어머니가 송청아와 배윤호의 합방을 마련했다.

그리고 이튿날,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그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정실의 자리에서 쫓겨나 첩으로 전락한 데다, 강제로 먹은 약 때문에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자 송청아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그러나 배씨 가문과 송씨 가문은 죽음으로 도망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두 집안은 송청아를 장군부에 가두고 엄중히 감시했다. 그러고는 향을 만들고 향료점을 관리하도록 강요하며, 그녀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 가혹하게 착취했다.

그러면서도 걸핏하면 복이 없어 자식을 해치는 여자라느니, 아이 하나 낳지 못해 대를 끊어 놓을 팔자라느니 욕설을 퍼붓고 매질했다.

그렇게 송청아는 장군부에 갇힌 채 6년을 보냈다.

모욕과 학대가 거듭될수록 마음은 조금씩 닳아 없어졌고, 쉴 새 없이 혹사당한 몸도 속부터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마침내 기력마저 완전히 소진된 그녀는 그 지긋지긋한 곳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저승에 이르러서도 눈을 감을 수 없었다.

가슴속에 사무친 원한을 끝내 떨치지 못한 송청아는 자신의 영혼을 대가로 악귀와 계약을 맺었다.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배씨 가문과 송씨 가문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반드시 피로 치르게 하리라!

그 간절한 원한이 하늘에라도 닿은 것일까.

다시 눈을 뜬 송청아는 과거 큰부인의 신분으로 머물렀던 안채에 돌아와 있었다.

“큰부인, 소인은 맡은 일을 모두 마쳤습니다. 잠시 후 봉 어멈이 오면 몸을 깨끗이 씻고 향고를 바르십시오. 그런 다음 큰도련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시면 됩니다.”

안 어멈의 목소리가 송청아를 끔찍한 기억 속에서 현실로 끌어냈다.

송청아는 깊은 생각을 감춘 채 담담하게 대답했다.

“알겠네. 수고 많았네, 안 어멈.”

그녀가 눈짓하자 방 안에 있던 봉 어멈이 안 어멈에게 금엽자 한 조각을 상으로 내렸다. 황금빛이 손바닥 위에서 반짝이자 안 어멈의 얼굴에 금세 환한 웃음이 번졌다.

안 어멈이 연신 감사 인사를 올리며 물러간 뒤, 봉 어멈이 다가와 송청아를 안쪽 방에 준비된 욕조까지 부축했다.

따뜻한 물에서는 희미한 향기가 피어올랐다. 봉 어멈은 송청아의 옷을 벗겨 주고 물 온도를 세심히 살피며 목욕을 도왔다.

그녀는 기쁨과 감격이 뒤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큰부인께서 이 집에서 2년이나 애태우셨는데, 오늘에야 드디어 큰도련님과 합방하시게 되었군요.”

봉 어멈은 송청아가 송씨 가문에서 데려온 사람으로, 어린 시절부터 줄곧 그녀의 곁을 지켜 왔다.

전생에 송청아가 첩으로 강등되었을 때, 봉 어멈은 그녀가 당한 부당한 처사에 분개해 배윤호를 찾아가 자비를 구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송채리는 약 한 사발로 봉 어멈을 독살했다.

봉 어멈이 죽은 뒤로 장군부에서는 아무도 감히 송청아를 위해 나서지 못했다. 그녀는 그 넓은 부저 안에서 철저히 홀로 남겨졌다.

새롭게 얻은 이번 생에서 봉 어멈은 송청아가 온전히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그녀를 소중히 여기고 지켜 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봉 어멈은 아직 배씨 가문이 품은 악독한 속셈을 알지 못했다. 그저 오랫동안 홀로 지낸 송청아가 마침내 큰도련님과 합방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쁠 뿐이었다.

그 순진한 기쁨을 바라보던 송청아의 입가에 서늘한 조소가 스쳤다.

전생의 자신은 배윤호와 합방한 직후 그들의 계략에 걸려들었다.

이번 생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새 창밖에는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배윤호가 이곳으로 올 터였다.

그가 오기 전에 오늘 밤의 합방을 어떻게든 무산시켜야 했다.

잠시 생각을 가다듬던 송청아는 고개를 살짝 돌려 봉 어멈에게 분부했다.

“봉 어멈, 지금 당장 송씨 가문에 다녀오게. 어머니께 오늘 밤 내가 서방님과 합방할 예정이니 함께 기뻐해 달라고 전하고.”

뜻밖의 명령에 봉 어멈의 손길이 멈췄다. 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송청아를 바라보았다.

“지금 당장 말씀이십니까? 헌데 소인은 큰부인의 목욕을 도와드려야 합니다. 조금 있으면 큰도련님께서 오실 텐데요…….”

“지금 당장 가보시게. 목욕은 화미에게 맡기면 되네. 더는 지체하지 말고 바로 출발해야 하네.”

송청아가 돌연 엄한 표정을 짓자 봉 어멈의 얼굴에도 긴장한 기색이 어렸다. 평소 온화한 주인이 이토록 단호하게 명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여긴 듯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봉 어멈이 서둘러 문을 나서려는 순간, 무언가를 떠올린 송청아가 다시 그녀를 불러 세웠다.

“참, 얼마 전에 막 돌아온 내 동생 송채리한테도 반드시 이 사실을 알려야 하네.”

오늘 밤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지는, 진짜 적녀인 그 동생이 배윤호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봉 어멈이 떠난 뒤에는 다른 시녀 화미가 송청아의 목욕을 마저 거들었다.

욕조 위로 피어오르던 따뜻한 김이 서서히 옅어질 무렵, 화미는 마른 수건으로 송청아의 검고 윤기 흐르는 머리카락을 정성스레 닦아 주었다.

이윽고 송청아가 물방울을 뚝뚝 흘리며 욕조에서 일어서자, 화미는 곧바로 부드러운 홑옷을 펼쳐 그녀의 어깨에 둘러 주었다.

배윤호가 방 밖에 도착해 창틈 너머로 본 것은 공교롭게도 바로 그 장면이었다.

맑고 고요한 달빛이 창을 타고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어디선가 불어온 밤바람이 공간을 나누는 얇은 비단 휘장을 간간이 들어 올릴 때마다, 휘장 너머에 선 여인의 모습이 아른거리듯 드러났다.

따뜻한 물에서 막 나온 송청아는 수면 위로 피어난 한 송이 연꽃처럼 청초했다.

가냘프면서도 굴곡이 선명한 몸에는 달빛처럼 희고 엷은 홑옷이 느슨하게 걸쳐져 있었다. 옷깃 사이로 드러난 어깨는 물기를 머금은 백옥처럼 매끄럽고 은은하게 빛났다.

먹물을 쏟아부은 듯 새까만 머리카락은 등 뒤로 길게 흘러내렸다. 촛불을 받은 머리카락 사이로 점점이 번지는 빛은 마치 은하수가 아득한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송청아가 무심코 얼굴을 살짝 옆으로 돌렸다.

봉긋하고 반듯한 이마 아래로 수려한 눈썹뼈가 이어지고, 가늘고 곧게 뻗은 콧날에는 옅은 굴곡이 더해져 있었다. 그 아래 자리한 두 입술은 갓 물든 앵두처럼 붉고 촉촉했다.

어느 한 곳도 빠짐없이 정성을 다해 빚어낸 듯 아름다웠다. 누구라도 단 한 번 바라보는 순간 마음을 빼앗길 만한 모습이었다.

창밖에 선 배윤호는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바람에 살랑이는 비단 휘장이 이따금 그의 시야를 가렸다. 모습이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할수록, 오히려 가슴속에서는 여태껏 느껴 보지 못한 낯선 감정이 희미하게 일렁였다.

그는 한동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그러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 손을 들어 조용히 문을 밀어 열었다.

배윤호는 몸 안에서 흐르는 내공을 거두어 기척을 완전히 감춘 뒤, 소리 한 점 내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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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은 왜 그래? 어쩌다 다쳤느냐?”서늘한 바람과 함께 누군가 들어온 기척에 송청아가 돌아보았다. 문간에 선 배윤호가 미간을 조금 찌푸린 채 그녀의 팔을 보고 있었다. 그 눈에는 은근한 책망까지 어려 있었다.송청아는 경계하며 몇 걸음 물러났다. 겉옷을 집어 어깨에 걸친 뒤 그를 흘겨보았다.“알면서 물으시는 건가요?”배윤호는 곧 한 가지 짐작에 이르렀다.처음 향낭의 약에 취했던 사람은 송청아였던 걸까. 제 몸을 지키려고 스스로 팔에 상처를 내고 달아난 것인가?하지만 송씨 집안은 그녀의 친정이었다. 어찌 그녀를 해친단 말인가.그는 위로하듯 한마디 건넸다.“걱정 말거라. 오늘 누가 이런 함정을 팠는지 반드시 밝혀낼 테니.”송청아는 우스웠다. 누가 벌인 일인지 굳이 조사할 필요가 있을까.속으로는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그러나 그와 다툴 기운조차 없었다. 배윤호는 인정하기 싫은 일이라면 아무리 많은 증거를 눈앞에 들이밀어도 외면할 사람이었다.송청아가 눈을 들어 그를 보았다. 담담한 목소리에 희미한 짜증이 묻어났다.“무슨 일로 오셨어요?”배윤호는 그녀가 여전히 강한 척 버티고 있다고 여겼다. 천천히 다가가며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말투에도 조금은 미안한 기색이 실렸다.“해명하러 왔다. 오늘 일은 내 뜻이 아니었다. 최음향에 취하는 바람에…….”“설명하지 않으셔도 돼요. 다 알아들었으니까요.”송청아가 무심히 말을 끊었다.“이제 나가 주시겠어요? 자고 싶어요.”그녀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몸을 돌려 침상으로 향했다.배윤호는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불쾌감이 치밀었다.“송청아, 나한테 무슨 내숭이냐? 채리까지 두고 일부러 돌아와 해명하는데, 네 태도가 고작 이것이냐?”송청아가 몸을 조금 틀어 그를 비스듬히 바라보았다.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리며 비웃듯 말했다.“그러세요? 그럼 돌아가서 그 소중한 채리 곁을 지켜 주시면 되겠네요.”배윤호가 성큼성큼 다가와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고는 손목을 움켜쥐어 제 앞으로 잡아당겼다.“이렇게 심통을 부

  • 장군님이나 잘하세요   제96화

    그러다 무슨 변고라도 당하면 그녀의 인생은 그대로 끝장이었다.송세안은 진심으로 송청아를 위한다고 믿었다.송청아는 그 말이 역겨워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모두에게 좋은 방안이라고요? 송채리는 첩이 될 수 없는데, 저는 왜 되어야 하죠? 송씨 집안의 피가 흐르지 않아서요?”송세안은 이미 수없이 되풀이했던 말을 또 꺼냈다.“네가 언니니 동생에게 양보해야지. 게다가 채리는 너 대신 십팔 년이나 고생하지 않았느냐. 네가 조금 참으면 어디가 덧나느냐?”송청아는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 웃는 사이 눈물과 콧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송씨 집안의 핏줄이 아니니, 이 모든 일을 감내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인가.송채리가 뒤바뀌어 변방에서 십팔 년을 고생한 것이 자신의 잘못인가. 제가 일부러 꾸민 일도 아니지 않은가.송관산 부부가 자신을 도성으로 데려올 때, 단 한 번이라도 좋으냐고 물었던가.그런 말을 전하라고 보낸 사람이 하필 송세안이었다. 한때 자신을 손안의 보물처럼 아끼던 오라버니의 입을 빌려, 기어이 가슴속까지 도려내려는 것이었다.생각할수록 서러웠다. 견딜 수 없이 억울했다.송청아의 울음이 거세지자 송세안은 다시 어찌할 줄을 몰랐다.그는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 했다. 어릴 때처럼 품에 안고 다정한 말로 달래 주고 싶었다.그러고 보니 그녀를 안아 본 지도 오래였다. 향긋하고 부드러운 몸과 한 팔로도 감싸 안을 수 있던 가느다란 허리가 문득 그리워졌다.그러나 손이 어깨에 닿기 무섭게 송청아가 소매를 휘둘러 떨쳐 냈다.“손대지 마세요! 나가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으니까, 나가라고요!”송세안의 가슴이 더욱 아파 왔다. 커다란 손에 심장을 꽉 붙들린 듯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하지만 송청아는 곁에 다가오는 것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별 위로도 되지 못할 말 몇 마디를 남긴 채, 쫓기듯 돌아섰다.송씨 부저로 돌아가는 내내 송청아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울어서 붉어진 눈, 가냘프게 떨리던 어깨, 희고 긴 손가락

  • 장군님이나 잘하세요   제95화

    송세안이 흠칫했다. 그제야 말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 모든 일이 송씨 집안의 잘못이라고 인정할 생각은 없었다.“인정하다니, 무슨 소리냐? 향낭에 문제가 있었으면 버리면 될 것 아니냐. 왜 하필 채리에게 준 것이냐? 네 동생이잖아. 어떻게 그런 악독한 수를 써서 그 애의 순결도 명성도 망가뜨릴 수 있어!”송청아가 코웃음을 흘렸다.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는 눈에 서늘한 조소가 어렸다.“큰오라버니 말씀대로라면, 부모님과 할머님이 저를 해치려 한다는 걸 알아도 얌전히 그 향낭을 차고 있어야 했겠네요. 약효가 돌면 준비해 둔 방에 들어가, 그분들이 골라 놓은 사내와 순순히 몸을 섞고요.”그녀의 목소리가 차츰 날을 세웠다.“그런 다음에는 부모님과 시부모님께서 손님들을 데리고 들이닥치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나요? 제 명절을 짓밟고 집 밖으로 내쫓으시기 좋게요. 송채리의 명예만 소중하고, 제 명예는 아무것도 아닌가요!”송세안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굳었다.눈물이 어린 송청아의 눈을 바라보자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안에 뒤엉킨 분노와 억울함, 상처와 고집이 가시 돋친 덩굴처럼 천천히 가슴을 휘감았다.가슴속으로 쓰라림과 미안함, 안쓰러움이 밀려들었다. 특히 붉어진 눈꼬리를 보니 심장 한구석이 뻐근해졌다. 손을 뻗어 맺힌 눈물을 닦아 주고 싶었다.“오라비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 울지 말거라.”송세안이 손을 내밀자 송청아가 홱 쳐 냈다. 그러나 그 바람에 팔의 상처가 당겼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숨을 들이켜고, 저도 모르게 다친 팔을 감쌌다.“왜 그러는 것이냐?”송세안이 걱정스레 다가왔다.송청아는 몸을 살짝 돌리며 무심히 답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그러나 송세안은 물러서지 않았다. 다시 그녀 앞으로 돌아와 손목을 붙들더니 소매를 걷어 올렸다.드러난 팔뚝은 온통 붕대로 감겨 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붉은 핏자국이 희미하게 배어 나왔다.“이건…….”그 광경이 송세안의 눈을 아프게 찔렀다. 가슴도 덩달아 움켜쥐듯 조여들었다.송청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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