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단표에는 시간이 없었다.‘뿌리채소 수프, 흰 빵, 붉은 과실주.’ 무엇을 먹었는지는 남았지만 어느 종 사이에 무엇이 올랐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시식 기록도 세 항목 모두 ‘이상 없음’이었다.레아는 다음 날 첫 종부터 배식실 문 앞에 섰다. 왕실 식당의 기록을 잡역에게 보여 줄 수 없다는 서기의 말을 들은 뒤에도 물러나지 않았다.“어제 에델린 전하의 수프를 만든 조리인입니다. 작업 기록과 반출 시각을 맞춰야 합니다.”“전하께서 포상도 철회했다던데, 아직 조리인인 척을 하나?”“칭찬은 철회하지 않으셨습니다. 조리한 사실도 기록하라고 명하셨고요.”서기는 할 말을 잃고 시녀장이 남긴 한 줄을 확인했다. 결국 식단표 원본은 아니어도 배식 종 장부를 열어 주었다.첫 번째 식사 종 직전 수프 여섯 그릇. 첫 번째와 두 번째 종 사이 빵 두 바구니. 세 번째 종 직전 과실주 한 병. 레아는 숫자를 베껴 적지 않고 허락된 난에 자기 작업 시각을 나란히 썼다. 사본을 몰래 만들면 훗날 도난 문서가 된다. 공식 장부에 비교 기록을 남기는 편이 느려도 오래 버텼다.“음식이 다 따로 시식을 통과했어.” 서기가 말했다. “공주님이 피곤했던 일을 왜 식단 탓으로 돌려?”“아직 탓하지 않았습니다. 순서를 확인하는 중입니다.”“수프 다음에 빵, 빵 다음에 술. 어느 식탁이나 그렇지.”레아는 설거지장으로 내려갔다. 그릇은 이미 씻겼지만 반납 시각은 나무패에 남아 있었다. 수프 그릇은 첫 번째 종 뒤, 빵 바구니는 두 번째 종 뒤, 술잔은 에델린의 식사가 갑자기 끝난 뒤 한꺼번에 돌아왔다. 시녀장에게 묻자 공주는 수프를 먹을 때는 멀쩡했고, 빵 뒤에는 귀가 울린다고 했으며, 과실주를 마신 뒤 손을 감쌌다고 했다.“그걸 병이라고 적을 수는 없어.” 시녀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전하의 허락도 없고, 의원의 진단도 없으니까.”“병이라고 적어 달라는 게 아닙니다. 하신 말씀과 시각만 확인해 주십시오.”시녀장은 오래 망설이다 ‘두 번째 종 뒤 귀울림 호소’라는 문장만 종
Last Updated : 2026-09-1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