بيت / 로맨스 / 소문난 강제 결혼 / Chapter 71 -الفصل 80

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80

117 فصول

69화 착한 아이

   비가 그친 뒤라 공기에는 축축한 냄새가 남아 있었고, 물가를 따라 불어오는 바람이 낮 동안 남은 더운 기운을 조금 식혀줬다. 맞잡은 손가락 사이도 자연스럽게 얽혔다. 산책로 가장자리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드문드문 이어졌고, 맞은편 고층 빌딩의 유리벽에는 금빛 조명이 반사됐다.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지나가는 사이 두 사람은 여유로운 속도로 물가를 걸었다. “근데 안 피곤해요?” “응.” 지안이 옆을 힐끗 바라봤다. 누가 봐도 거짓말이었다. 눈 밑에는 옅은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고 걸음도 평소보다 조금 무거웠다. “얼른 들어가요, 이제. 내일도 일정 있는 거 아니에요?” “있긴 한데.” 태호가 맞잡은 손을 제 쪽으로 조금 끌어당겼다. “네가 왔는데 어떻게 들어가.” 그 말에 지안의 걸음이 느려졌다. 괜히 찾아와 더 피곤하게 만든 건 아닌가 싶어 입술을 꾹 다물자, 태호가 바로 눈치를 챘다. “또 무슨 생각해.” “아니요. 그냥 제가 괜히 와서 더 힘들게 한 것 같아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술 위로 짧은 감촉이 닿았다. “진짜 좋아.” “…….” 지안의 눈빛이 일렁였다. 처음에는 마냥 무섭기만 했던 그였는데, 이리 다정한 면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 낯선 공간에 있어서 그런 건지, 오늘따라 제 앞에 있는 남자가 또 다르게 느껴졌다. 가슴께가 이상하게 간질거리자 지안은 괜히 시선을 피하며 한 발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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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입고 해

지안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무래도 이 놀림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았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사람을 약 올리는 모습이 더 얄미웠다. “나 갈래요.” 지안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애초에 태호와는 숙소도 따로 잡혀 있었다. 친구들이 묵고 있는 호텔로 돌아가면 그만이니, 민망함이 더 커지기 전에 얼른 자리를 뜨고 싶었다. 그러나 몇 걸음 채 가지 못해 손이 붙잡혔다. “어디 가.” “저요? 이제 제 숙소로 가야죠. 늦었고 부회장님도 얼른 가셔야죠.” 태호는 손을 놓아주는 대신 손가락 사이를 깊게 얽었다. “부부가 각방을 쓰면 되나.” 지안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집에서도 각자 방이 따로 있었다. 가끔 서로의 방에서 잠드는 날이 있을 뿐, 지금까지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 빤히 쳐다보자 태호가 그 표정을 읽기라도 한 듯 맞잡은 손을 끌었다. “가자. 내 호텔로.” “아니…… 그래도 저 옷도 거기 있고.” “짐은 도윤이 보고 챙기라고 하면 돼.” “…….” 지안이 못마땅한 눈으로 보는데 태호가 몸을 조금 숙였다. “애기야, 나 외로워. 안아줘야지.” 지안의 눈썹이 삐딱하게 올라갔다. 언제까지 써먹을 건지. 내가 다시는 이런 자리를 만드나 봐라. “그거 다신 안 놀리겠다고 하면 갈게요.” 그러자 태호는 이제 놀릴 만큼 다 놀렸다는 듯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마저 얄미웠지만, 어느새 지안의 발걸음은 태호의 보폭에 맞춰 나란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둘은 함께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도착하고 나니 가장 먼저 씻고 싶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옷과 머리카락에 고기 냄새가 잔뜩 밴 것 같아 찝찝했다. 지안은 객실에 들어서자마자 재킷부터 벗어두고 곧장 욕실로 향했다. 문제는 샤워를 마친 뒤였다. 갈아입을 옷이 하나도 없었다. 짐이 도착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린다는 말에 급한 대로 태호의 흰 셔츠를 빌려 입었다. 한결 개운해진 지안이 욕실 밖으로 나오자 태호와 눈이 마주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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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화 강태호 약점

며칠 뒤. 지안은 강남의 한 프라이빗 한식 다이닝에서 서한백화점 이사진들과 늦은 점심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한동안 꼬여 있던 신규 지점 사업이 다시 정상 궤도에 오른 걸 두고 가볍게 식사하는 자리였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메인 요리가 거의 치워진 뒤였고, 따뜻한 차와 후식만 남아 있었다. “윤 이사님, 이번 일은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이사 한 명이 먼저 입을 열자 여기저기서 맞장구가 이어졌다. “맞습니다. 솔직히 저희도 이번에는 일정이 꽤 밀릴 줄 알았습니다.” “매도인 쪽하고도 다시 협의가 끝났다면서요. 자금 문제도 정리됐고요.” 준표는 기다렸다는 듯 등을 의자에 느슨하게 기대며 입꼬리를 올렸다. “뭐, 큰일은 아니었습니다.” 지안은 찻잔을 들다 말고 준표를 슬쩍 바라봤다. 큰일이 아니긴. 며칠 전까지만 해도 호텔 쪽 돈을 잠깐 빌려달라며 죽는소리를 하던 인간이었다. 그런데 불과 며칠 사이 꼬였던 일이 전부 정리됐다. 자금은 물론이고 부지 계약이며 심의 문제까지 한꺼번에 풀렸다. 누군가 뒤에서 손을 쓴 건 분명했지만, 준표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애초에 윤준표 혼자서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수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역시 추진력이 있으시네요.” “그러니까 이사님처럼 과감하게 움직여야 하는 겁니다. 괜히 겁먹고 재다가 기회 놓치는 것보다 낫죠.” 다들 윤준표를 보며 아부하기 바빴다. 이 정도 성과라면 서 회장도 준표를 믿고 회사를 맡길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사진들은 서로 뒤질세라 그의 판단과 추진력을 치켜세우며 비위를 맞췄다. “하하, 제가 처음부터 말씀드렸잖습니까. 결국 될 사업이라고.” 뻔히 속이 보이는 아부였지만 준표는 제법 기분이 좋은지 호탕하게 웃었다. 그의 어깨가 눈에 띄게 올라가는 걸 보자 지안은 작게 헛웃음을 흘렸다. 처음에는 일이 해결됐다는 말을 듣고 당연히 제 엄마이자 준표의 누나인 윤서정에게 손을 벌려 급한 돈부터 메운 줄 알았다. 그런데 바로 그날, 서한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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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이딴 짓을 했을까

 “형님, 나옵니다.” 요 며칠 세광파 쪽 사람들은 지안의 뒤를 끈질기게 따라붙고 있었다. 지금도 서한 지하주차장 한쪽에 차를 세워둔 채 몇 시간째 죽치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턱으로 건너편 출입구를 가리켰다. 뒷좌석 한가운데를 널찍하게 차지하고 있던 우두머리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입가에는 언제부터 물고 있었는지 모를 이쑤시개 하나가 걸려 있었다. “어디.” 그는 방금 전까지 이 사이를 쑤시던 이쑤시개를 다시 입가에 문 채 창밖을 내다봤다. 짙은 회색 코트를 입은 지안이 출입구 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휴대전화를 확인하며 걷던 그녀가 검은 세단 앞에 멈추자 뒤따르던 민준이 먼저 뒷문을 열었다. 우두머리의 눈길이 천천히 지안을 훑었다. 얼굴에서 시작한 시선이 코트 아래로 드러난 실루엣을 따라 내려갔다가 다시 위로 올라왔다. 숨길 생각조차 없는 노골적인 눈빛이었다. “저게?” “예. 맞습니다.” 우두머리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야. 실물파시네.” 지안이 차에 올라타는 모습까지 끝까지 지켜보던 그가 혀를 한번 찼다. “저런 걸 집에다 두니까 강태호도 꼬박꼬박 집에 들어가시는 거 아니냐.” 쩝. 우두머리가 노골적으로 입맛을 다셨다. 돈도 많고, 어리기까지 했다. 얼굴이며 몸매며 어디 하나 빠지는 데가 없었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괜히 아랫도리가 묵직해질 만큼 취향에 딱 맞았다. 누구는 낡아빠진 차 안에서 남의 뒤나 밟고 있는데, 누구는 저런 여자를 마누라랍시고 집에 앉혀두고 산다. 생각할수록 배알이 꼴렸다. 강태호 그 새끼만 아니었으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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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대가 없는 호의

 같은 날 오후. 윤준표는 태강그룹 본사 부회장실 소파에 앉아 괜히 넥타이 매듭을 한 번 만졌다. 강태호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잠깐 보자는 짧은 말뿐이었지만, 굳이 자신을 따로 부른 이유가 뭔지 몰라 오는 내내 신경이 쓰였다. 신규 지점 사업은 예정대로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고, 이사진들은 그 성과를 전부 자신의 공으로 알고 있었다. 며칠 전 식사 자리에서는 서 회장의 신임까지 운운하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였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맞은편에 앉아 있는 태호의 태연한 얼굴을 보고 있자, 괜히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맞은편에 앉아 서류를 넘기던 태호가 시선을 들었다. “이번 일은 잘 정리됐습니까.” “아, 예. 덕분에 부지 쪽도 그렇고 자금도 그렇고 전부 잘 마무리됐습니다.” “그렇습니까.” 태호의 반응은 덤덤했다. 준표는 슬쩍 그의 눈치를 살폈다. 아까부터 가장 신경 쓰이던 건 따로 있었다. 혹시라도 지안에게 이번 일의 내막을 말한 건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혹시…… 지안이한테는 따로 말씀 안 하셨죠?” 태호는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안 했습니다.” “아, 다행이네요.” 저도 모르게 안도의 말이 튀어나온 뒤에야 준표는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태호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잠시 준표의 얼굴을 마주하던 태호가 본론을 꺼냈다. “그런데 앞으로 진행은 지안이가 했으면 좋겠는데.” “네?”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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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잘못 잡은 사람

   차에서 내려 몇 번이나 방향을 틀고, 좁은 계단까지 올라간 뒤에야 준표를 붙잡고 있던 손이 멈췄다. 머리에 씌워져 있던 천이 거칠게 벗겨졌다. 갑작스럽게 쏟아진 빛에 준표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한동안 눈앞이 희뿌옇게 번졌다가 서서히 초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을 뜬 순간, 절로 얼굴이 구겨졌다. 낡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사무실이었다. 벽지는 군데군데 누렇게 들떠 있었고, 천장에 달린 형광등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 희미하게 깜빡거렸다. 오래 묵은 담배 냄새와 눅눅한 먼지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고, 한쪽 테이블 위에는 먹다 남은 컵라면과 재떨이, 빈 소주병이며 배달 용기까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준표가 저도 모르게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우욱, 속에서 헛구역질이 치밀었다. 원래도 비위가 약한 데다 더러운 걸 혐오하는데, 이딴 곳에 무릎을 꿇고 있다니 참을 수가 없었다. “뭐야, 쟤.” 앞에 서 있던 남자가 눈물까지 고인 채 구역질하는 준표를 보더니 당황한 듯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억지로 진정한 준표는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낡은 소파에는 험상궂게 생긴 남자들이 아무렇게나 퍼져 앉아 있었다. 팔뚝에는 시커먼 문신이 빼곡했고, 몇몇은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하나같이 눈빛부터 험악해 괜히 목이 움츠러들었다. “이야, 너 시계 뭐냐. 강태호는 따까리한테도 돈을 후하게 주나 봐?” 조직원 하나가 다가와 준표의 손목을 덥석 잡아 올렸다. 한눈에 봐도 값나가 보이는 시계를 이리저리 훑어보던 남자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우리는 씨발, 컵라면이나 먹고 자빠졌는데. 팔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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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소중한 사람

 아무리 태강이 예전부터 깡패 회사니 뭐니 험한 소문이 따라다녔다고 해도, 아직까지 저 회사를 건드리려 드는 간 큰 잔챙이들이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 웬만한 기업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태강인데. 얘네가 대체 뭘 어떻게 하겠다고. “근데 네가 알다시피 강태호 그 새끼 건드는 게 그리 쉬워?” “……그렇죠.” “그러니까 걔한테 제일 소중한 사람을 조지면 쉽지 않겠어?” “…….” 그러니까 지금 강태호는 건드리기 무서우니까 그나마 만만한 서지안을 노리겠다? 얌생이 새끼들. 준표가 빠르게 머리를 굴리는 사이, 우두머리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사진 몇 장을 집어 그의 앞으로 툭 던졌다. 사진은 무릎을 꿇고 있던 준표의 앞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졌다. 서한 본사로 들어가는 지안, 차에서 내리는 모습, 외부 미팅을 마치고 걸어가는 장면까지. 그중에는 태호와 함께 있는 사진도 섞여 있었다. “굳이 우리가 저 여자 뒤꽁무니 따라다니면서 기회 볼 필요도 없겠네. 가족이 이렇게 직접 들어왔는데.” 우두머리가 망치 손잡이를 손끝으로 툭툭 두드렸다. “넌 보내줄게.” 사진을 내려다보던 준표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대신 네 동생 좀 우리한테 넘겨.” 순간 준표의 입이 벌어졌다. 지안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었다. 만나기만 하면 부딪혔고, 서한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가장 거슬리는 상대였다. 없어지면 오히려 제게 좋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이건 달랐다. 눈앞에 있는 놈들이 어떤 인간들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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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보호와 간섭 사이

    “어.” “그거 윤준표가 따온 건데, 처음에는 진짜 큰일 날 뻔했어요. 재개발 확정도 안 됐는데 자기 혼자 부지부터 계약하고 운영 예비비까지 끌어다 썼거든요.” 말을 시작하자 답답했던 게 생각난 듯 자연스럽게 설명이 길어졌다. “그런데 심의가 갑자기 보류돼서 자금도 묶이고 계약도 꼬였어요. 처음에는 저한테 호텔 쪽 돈 좀 빌려달라고 해서 제가 절대 안 된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며칠 지나니까 갑자기 다 해결됐다는 거예요.” “…….” “그래서 누가 도와준 건가 싶긴 했는데 절대 말을 안 하더라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걔가 혼자 해결했을 리는 없는데.” 지안은 아직도 그게 못내 궁금한지 눈을 가늘게 뜨며 꼭 알아내고 말겠다는 듯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래도 사업 자체는 다시 돌아가게 됐으니까 다행이죠. 서한 쪽에서도 꽤 크게 들어간 사업이라 여기서 엎어졌으면 손해가 컸을 거예요.” “그거 이제 네가 맡아서 해.” “네?” 지안의 눈이 크게 뜨이자 태호는 물잔을 손끝으로 훑으며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신규 지점. 앞으로 네가 진행해.” 지안은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로 태호를 봤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지.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내내 마음에 걸리던 조각들이 하나씩 맞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며칠 만에 풀린 자금, 다시 협상된 부지 계약, 빠르게 정리된 심의 문제. 이걸 그렇게 짧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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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화 화난 애기 달래는 법

 다음 날 아침. 태호는 회사로 출근하지 않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이른 새벽부터 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있는 그의 옆에는 도윤도 함께였다. 요즘 잠잠하시더니 왜 또. 도윤은 옆에서 속도를 맞추며 태호의 상태를 슬쩍 살폈다. 태호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면 이렇게 헬스장에 나와 미친 듯이 뛰곤 했다. 문제는 그때마다 굳이 자신까지 불러 옆에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시킨다는 거였다. 이미 속도는 도윤이 대화를 나누기엔 벅찰 정도까지 올라가 있었지만, 태호는 여전히 호흡 하나 크게 흐트러지지 않은 채 앞만 보고 달리고 있었다. 검은 티셔츠는 등과 가슴께에 땀으로 달라붙었고, 관자놀이를 타고 흐른 땀방울이 턱 끝에 맺혔다가 떨어졌다. 도윤은 결국 먼저 속도를 한 단계 낮췄다. 이 인간 체력은 진짜 어디서 나오는 거야. 몇 분을 더 달린 뒤에야 태호가 러닝머신 속도를 줄였다. 수건으로 얼굴과 목덜미를 대충 훑어낸 그는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옆을 돌아봤다. “도윤아.” “예.” “형제 관계가 어떻게 되지?” 태호를 모신 지도 벌써 5년이 넘었지만 이런 질문은 처음이었다. 도윤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그대로 드러났다. “……저는 외동입니다.” 태호는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정면만 응시했다. 도윤은 괜히 제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싶어 눈치를 보다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애기가 화난 것 같아.” 도윤이 눈을 깜빡였다. 사모님이 화나신 거랑 내 형제 관계가 무슨 상관이지. “도통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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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가족 취급

   지안이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은 순간, 집무실 문이 두 번 가볍게 두드려졌다. “이사님.” 민준이 안으로 들어왔다. 양손에는 제법 큰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흰 장미와 연분홍 꽃 사이로 작은 꽃들이 촘촘하게 섞여 있었고, 포장도 과하지 않게 깔끔했다. 꽃을 본 지안의 눈이 순간 흔들렸다. 꽃다발은 왜……? 어제 일이 떠오르자 이번엔 그 안에 뭐라도 들어 있는 건 아닐까 싶어 괜히 긴장됐다. “그게 뭐예요?” “방금 1층에서 올라왔습니다.” 민준은 바로 책상 위에 내려놓지 않고 덧붙였다. “보낸 분은 강태호 부회장님으로 되어 있습니다.” “부회장님이요?” 지안의 표정이 잠깐 풀렸다가 다시 미묘해졌다. 민준 역시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품에 안은 꽃을 한번 내려다봤다. 어제 그런 물건을 받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이름이 적혀 있다고 무조건 믿기도 애매했다. “……또 안에 뭐 있는 거 아닐까요?” 보기에는 멀쩡했지만, 어제 일이 있었던 만큼 그냥 넘기기도 찜찜했다. “한번 확인해보겠습니다.” 민준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마스크와 장갑까지 챙겨 꼈다.  지안은 그런 모습을 보며 입술을 다물었다. 꽃 하나 확인하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어제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걸 떠올리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민준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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