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만 확보하면 계약은 제가 만들게요.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민유리가 직접 넘긴 것처럼 보이면 됩니다.녹음이 끝난 뒤에도 박소라의 목소리는 거실에 남아 있는 듯했다. 유리는 뒤집어 놓은 휴대전화를 바라봤다. 자신의 이름이 선명하게 발음됐는데도, 그 안의 민유리는 자신이 아니었다. 박소라가 범죄를 숨기기 위해 만든 가짜 인물이었다. 남의 사생활을 찍고, 사진을 팔고, 계약서까지 조작하는 사람. 실제 유리와는 아무 관련도 없으면서 이름과 신분만 같은 허수아비였다.“나머지도 들을래?”현석이 전화 너머에서 물었다.“음성 파일이 네 개라고 했죠?”—응. 방금 들은 건 첫 번째 파일의 일부야. 두 번째는 최민규와 판매 가격을 조율하는 내용이고, 세 번째는 독일 유통업체에 보낼 파일의 정보값을 바꾸는 방법에 관한 대화야. 마지막 파일은 박소라 혼자 녹음한 메모로 보여. 위조 계약서에 넣을 항목을 읽어 놓았어.태준이 유리를 살폈다. 지금은 변호사가 아니라 남편으로 곁에 있겠다고 했지만, 그의 눈에는 이미 증거의 구조가 정리되고 있었다. 음성 원본의 생성 시각, 녹음 장치, 편집 여부, 계약서와의 일치점. 묻고 싶은 것이 많을 텐데도 그는 먼저 유리의 선택을 기다렸다.“전부 한 번만 들을게요.”유리가 말했다.태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지금?”“응. 나중으로 미루면 계속 상상할 것 같아요. 실제보다 더 나쁜 말이 들어 있을까 봐.”—그럼 파일을 보내지는 않을게. 내가 필요한 구간만 순서대로 재생하고, 중간에 멈추고 싶으면 바로 말해.“그렇게 해 주세요.”현석은 두 번째 파일부터 재생했다. 최민규의 목소리는 박소라보다 작고 불분명했지만, 대화의 의미는 분명했다.—병원 사진은 빼는 게 낫지 않습니까? 그건 바로 문제 될 텐데.—그래서 값이 붙는 거예요. 얼굴이 잘 나온 것만 고르세요. 가족 사진은 정시온 혼자 있는 것보다 묶어서 팔아야 하고요.—출처 물어보면 뭐라고 합니까?—팬이 찍었다고 하면 돼요. 요즘 팬들은 병원까지 따라가잖아요.유리의 손
Last Updated : 2026-10-09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