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의 형이 제 정체를 알아버렸다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41 - チャプター 50

95 チャプター

무대가 끝난 자리에서

첫 셔터를 누른 뒤에도 유리의 손끝에는 미세한 떨림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 사진이 저장될수록 폐극장에서 들었던 기계적인 셔터음은 조금씩 멀어졌다. 지금 카메라 안에 들어오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촬영된 일상이 아니었다. 시온은 유리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관객들은 사전에 촬영 범위를 안내받았다. 모두가 서로의 존재를 알고 동의한 장소에서 각자의 순간을 나누고 있었다.유리는 뷰파인더 안의 시온을 따라 움직였다. 첫 곡은 루미너스의 데뷔곡을 새롭게 편곡한 노래였다. 일곱 해 전에는 불안하게 흔들리던 목소리가 이제는 공연장을 단단히 채웠다. 시온이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오자 붉은 조명이 그의 어깨와 머리카락 위로 쏟아졌다.찰칵.유리는 시온의 얼굴만 당겨 찍지 않았다. 무대 위로 길게 뻗은 빛과 그 앞에 선 사람, 객석에서 일제히 들리는 응원봉까지 한 장면에 담았다. 오래전 첫 쇼케이스에서 담고 싶었던 것과 같은 구도였다. 다만 그때는 비어 있는 객석을 숨기기 위해 프레임을 좁혔고, 지금은 가득 찬 자리를 보여 주기 위해 렌즈를 넓혔다.시온이 노래하는 동안 관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박자로 응원봉을 흔들었다. 어두운 객석 위로 작은 빛들이 물결처럼 움직였다. 유리는 사전에 촬영 동의한 구역으로 렌즈를 돌렸다. 노래를 따라 부르다 눈물을 닦는 사람, 친구와 손을 맞잡은 사람, 무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면서도 옆 사람의 떨어진 응원봉을 주워 주는 사람이 보였다.그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스무 살이 채 되지 않아 보이는 관객이 유리의 출입증을 확인한 뒤 조심스럽게 웃었다. 두 손으로 응원봉을 쥔 모습에서 일곱 해 전의 자신이 겹쳐 보였다. 유리는 카메라를 들기 전 입 모양으로 물었다.찍어도 될까요?관객은 눈물을 닦고 고개를 끄덕였다.찰칵.셔터가 눌렸다. 사진 안에는 완벽하게 정돈된 얼굴 대신 눈물로 번진 화장과 떨리는 입술, 무대에서 돌아온 사람을 바라보는 안도감이 담겼다.그 순간 유리는 자신이 이 사진 에세이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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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으로 여는 전시

라움 사진미술관에서 보낸 메일에 답장을 쓰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유리는 전시 제안이 기쁘다는 말과 정식으로 기획안을 검토하고 싶다는 말을 적었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하고 싶다고 마음을 정했는데도 ‘수락하겠습니다’라는 짧은 문장을 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십 분째 첫 문장만 쓰고 있습니다.”등 뒤에서 태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리는 노트북 화면을 가리려다 그가 이미 모두 읽었다는 것을 깨닫고 손을 내렸다.“첫인상이 중요하잖아요.”“전시를 하고 싶다고 답하면 됩니다.”“너무 간단하잖아요.”“하고 싶다는 말을 복잡하게 쓸 이유가 있습니까?”태준은 유리의 의자 등받이에 한 손을 짚고 몸을 숙였다. 공연장에서 돌아온 뒤 넥타이와 재킷을 벗어 둔 그는 셔츠 소매까지 팔꿈치 아래로 걷어 올리고 있었다. 실밥을 푼 상처 위에는 얇은 보호 밴드만 붙어 있었지만, 유리는 그가 팔을 움직일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상처부터 확인했다.“팔 아파요?”“아닙니다.”“그런데 왜 자꾸 미간을 찌푸려요?”“민유리 씨가 일을 끝내지 않아서요.”“내가 답장 쓰는 게 왜 태준 씨를 불편하게 하는데요?”“촬영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까.”유리는 그가 의자 가까이 몸을 붙이는 것을 느끼고 어깨를 움츠렸다. 공연장의 빈 객석에서부터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태준은 보상을 이야기했지만, 막상 유리가 촬영본 정리와 메일 확인에 빠져들자 옆에서 기다리기만 했다.“그게 그렇게 중요해요?”“공연 내내 다른 남자를 찍게 두었습니다.”“그 다른 남자가 태준 씨 동생이잖아요.”“그래서 참고 있는 겁니다.”“안 참는 것처럼 보이는데.”“아직은 충분히 참고 있습니다.”태준의 입술이 유리의 귀 아래를 천천히 스쳤다. 목덜미에 따뜻한 숨이 닿자 키보드 위에 올려 둔 손가락이 멈췄다.“메일부터 보내야 해요.”“보내십시오.”“이러고 있으면 어떻게 써요?”“제가 대신 써 드릴까요?”“안 돼요. 내 전시인데 내가 답해야죠.”“그럼 간단하게 쓰면 됩니다.”태준은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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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내가 진술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피해자 의견 진술은 증인신문이 아닙니다.”정태준은 식탁 위에 놓인 서류를 반듯하게 맞추며 말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침착한 목소리였지만, 유리는 그가 같은 설명을 오늘만 벌써 세 번째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선서도 하지 않고, 변호인에게 직접 반대신문을 받지도 않아요. 재판장에게 사건으로 입은 피해와 처벌에 관한 의견을 말하는 겁니다. 질문이 나오더라도 재판장이 필요한 범위에서만 할 거고요.”“네, 변호사님.”유리가 일부러 공손하게 대답하자 태준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민유리 씨.”“네, 정태준 변호사님.”“지금 장난할 기분 아닙니다.”“그러니까 하는 거예요.”유리는 붉은 펜으로 빽빽하게 수정된 진술서를 집어 들었다. 초안의 절반 이상에 밑줄과 화살표가 그어져 있었다. ‘지속적인 공포를 느꼈다’는 문장 옆에는 구체적인 증상을 추가하라는 표시가 있었고, ‘일상이 무너졌다’는 표현 밑에는 출근 중단과 주거 이전, 불면 증세를 날짜별로 정리해 놓았다.법률 문서로서는 더없이 완벽했다. 너무 완벽해서 유리의 글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이대로 읽으면 판사님은 잘 이해하시겠죠.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남기혁 씨 주장이 왜 말이 안 되는지도요.”“그래야 하니까요.”“그런데 나는 못 읽을 것 같아요.”태준의 손이 멈췄다.유리는 진술서를 내려다보았다. 종이에 적힌 모든 문장은 사실이었다. 남기혁은 칠 년 동안 자신을 뒤쫓았고, 개인정보를 빼냈으며, 집에 침입해 카메라를 설치했다. 사진을 조작해 정시온의 열애설에 이용했고, 폐극장으로 유인했으며, 그곳에서도 자신이 원해서 왔다는 식으로 말했다.그런데 활자로 정돈된 순간, 그 일들은 자신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버렸다. ‘피해자’라는 이름 아래 가지런히 분류된 항목처럼 보였다.“내가 왜 무서웠는지는 여기 다 있어요. 그런데 내가 왜 화가 났는지는 없는 것 같아요.”“화가 났다는 표현도 넣을 수 있습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유리는 종이를 뒤집었다.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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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석에 선 남자

“내가 나가죠.”태준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러나 오현석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네가 나가겠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야. 지금 넌 민유리 씨의 법률대리인이야. 재판부가 증인 신청을 받아들이면 적어도 네 증언과 관련된 절차에서는 대리인 역할을 내려놔야 할 수도 있어. 증언 전에 다른 증인의 진술을 듣지 못하게 퇴정 명령이 내려질 수도 있고.”“그때는 네가 대리하면 됩니다.”“그 말을 이렇게 쉽게 하냐?”“쉽지 않아.”태준은 구겨진 증인 신청서를 천천히 펴서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종이 가장자리를 누르는 손끝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그래도 해야 해. 저쪽이 노리는 건 명확하니까.”유리도 알 수 있었다. 남기혁 측이 정말로 확인하고 싶은 것은 증거가 수집된 과정이 아니었다. 태준과 자신이 언제부터 좋아했고, 언제부터 함께 살았으며, 누가 먼저 관계를 제안했는지 법정에서 묻고 싶은 것이었다. 두 사람의 연애를 드러내 유리의 진술이 태준에게 영향을 받은 결과처럼 보이게 만들려는 의도였다.그리고 남기혁은 그 과정 자체를 즐길 것이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유리의 사생활을 법정이라는 이름으로 들여다보면서, 또다시 그것을 알 권리가 있다고 믿을 테니까.“증인 신청이 받아들여질까요?”유리의 질문에 현석이 잠시 말을 골랐다.“전부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겁니다. 동거 경위나 연애 과정은 공소사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니까요. 다만 태준이가 초기 신고 과정에 관여했고, 윤서린 씨에게서 메모리카드를 넘겨받을 때도 함께 있었으니 증거 수집 경위를 확인하겠다는 부분은 재판부가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어요.”“그럼 저쪽 변호사가 태준 씨한테 직접 질문하는 거죠?”“예. 하지만 재판장이 허용한 범위를 벗어나면 검사가 이의를 제기할 거고, 저도 피해자 대리인으로서 의견을 낼 겁니다.”유리는 탁자 위의 신청서를 바라보았다. 증인 정태준. 활자로 적힌 이름이 낯설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증언석으로 보내며 손을 내밀어 주던 사람이 이번에는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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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찍어도 될까요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기울어 있었다.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유리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법원 앞에서 쏟아지던 플래시와 질문, 차 안에서도 끊임없이 울리던 휴대전화 알림이 문밖에 남겨진 듯 집 안은 고요했다. 불을 켜지 않은 거실에는 창밖에서 들어오는 붉은 노을만 길게 번져 있었다.태준은 먼저 보안 장치를 확인했다. 현관 잠금 상태를 살피고 창문 센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한 뒤에야 넥타이 매듭에 손을 올렸다. 법정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던 매듭이 조금 느슨해졌다. 셔츠 깃 사이로 단단한 목선이 드러났지만, 그는 외투를 벗지도 못한 채 휴대전화를 꺼냈다.“회사와 미술관 쪽 기사까지 정리해 봐야겠습니다. 시온 소속사에서 준비한 입장문도 검토해야 하고요.”“정태준 씨.”“네.”“오늘 증언은 끝났어요.”“알고 있습니다.”“모르는 사람 같은데.”유리가 그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빼앗았다. 태준은 반사적으로 되찾으려다 손을 멈췄다. 유리가 그대로 전원을 끄자 미간이 좁아졌지만, 항의하지는 않았다.“지금부터 한 시간만 변호사 하지 마요.”“한 시간이면 기사가 수십 개는 더 나옵니다.”“그 기사들, 태준 씨가 안 본다고 사라지지 않아요.”“그래서 봐야 합니다.”“봐서 당장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태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유리는 그의 휴대전화를 소파 위에 올려놓은 뒤 외투 깃을 잡았다. 천천히 어깨에서 벗겨 내자 태준의 시선이 그녀의 손을 따라 움직였다.“아까 약속했죠?”“무슨 약속 말입니까?”“사진.”그제야 태준은 거실 한쪽에 놓인 카메라 가방을 바라보았다. 오전에 급하게 나가느라 식탁 위에 두고 간 가방이었다. 지퍼 사이로 파란 별과 초승달 장식이 달린 스트랩이 조금 보였다. 그가 직접 골라 준 새 장식이었다.“오늘 꼭 찍어야 합니까?”“싫어요?”“싫은 건 아닙니다.”태준은 느슨해진 넥타이를 다시 만졌다. 법정에서 사적인 관계를 질문받을 때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남자가 카메라 앞에 서는 일에는 드물게 망설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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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감형 사유가 아닙니다

‘피고인은 아직도 자신의 마음만 진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유리는 첫 문장을 적은 뒤 한동안 펜을 움직이지 못했다. 미술관 회의실의 대형 화면에는 여전히 〈허락받은 시선〉이라는 작품명이 떠 있었다. 창가에 선 태준과 침대에서 막 눈을 뜬 자신의 사진이 나란히 놓여 있었지만, 조금 전까지 따뜻하게 느껴졌던 두 장의 사진 위로 남기혁의 반성문이 검은 그림자처럼 드리운 기분이었다.사랑하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라는 말.유리는 그 변명을 폐극장에서도 들었다. 자신을 오래 지켜봤고, 누구보다 잘 알며, 언젠가는 진심을 알아줄 거라고 믿었다는 남기혁의 목소리가 귓가에 되살아났다. 그에게 유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정해진 대답을 할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대상이었다.“오늘 안에 완성하지 않으셔도 됩니다.”현석이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검찰이 의견을 묻기는 했지만 제출 기한까지는 여유가 있어요. 반성문 원문도 먼저 확인하셔야 하고요.”“원문을 꼭 봐야 할까요?”“필수는 아닙니다. 제가 요지만 정리해서 설명드릴 수도 있어요.”현석의 말투는 조심스러웠다. 변호사로서는 원문을 확인하라고 권하는 편이 맞겠지만,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글을 굳이 읽게 만들 수는 없었다.유리는 노트를 내려다보았다.“편지는 안 읽겠다고 했어요.”남기혁이 자신에게 보내려 했던 편지는 끝내 받지 않았다. 어떤 단어로 포장하든 결국 유리의 거절을 다시 해석하려는 글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반성문은 유리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니었다. 재판부를 설득해 형을 줄이려는 문서였고, 그 안에는 자신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그런데 이건 읽어야 할 것 같아요.”“읽는다고 해서 답을 전부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알아요.”유리는 펜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고 싶은 게 아니에요. 재판부에 무엇을 사실처럼 말하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거예요.”현석이 잠시 유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사무실로 돌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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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다음 날

선고기일까지 남은 삼 주는 길면서도 짧았다.유리는 매일 아침 다온북스로 출근했고, 퇴근한 뒤에는 라움 사진미술관으로 향했다. 인화된 사진의 색감을 확인하고 작품 사이의 간격을 조정하며, 캡션에 들어갈 문장을 몇 번씩 고쳤다. 집으로 돌아오면 태준과 늦은 저녁을 먹었고, 자정이 넘어서까지 전시 도록의 교정지를 펼쳐 놓았다.해야 할 일이 많아서 다행이었다.손을 움직이고 있는 동안에는 선고 결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남기혁이 몇 년을 선고받을지, 재판부가 반성문을 어떻게 판단할지, 혹시 일부 혐의가 인정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은 잠깐씩 떠올랐다가도 인화지와 교정 기호 사이로 밀려났다.그러나 잠들기 직전이면 어김없이 돌아왔다.“또 안 자고 있습니까?”침실 문이 열리고 태준이 들어왔다. 소파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던 유리는 황급히 창을 닫았지만 이미 늦었다.“뭘 보고 있었어요?”“아무것도 아니에요.”“아무것도 아닌 화면을 그렇게 심각하게 봅니까?”태준은 유리 옆에 앉아 닫힌 노트북 위에 손을 올렸다. 억지로 열어 보려는 대신 유리가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행동이었다. 유리는 한동안 그의 손등을 바라보다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비슷한 사건 판결이요.”“검색하지 말라고 했잖아요.”“어느 정도 나올지 궁금해서요.”“사건마다 범행 기간과 수법, 피해 정도, 증거관계가 다릅니다. 기사에 나온 형량만 비교해도 정확한 예측은 못 해요.”“알아요. 그런데 자꾸 보게 돼요.”유리는 닫힌 노트북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쓸었다.“징역이 길게 나오면 안심할 것 같다가도, 그 형이 끝나면 다시 나오는 거잖아요. 짧게 나오면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렸나 싶을 것 같고요. 어떤 판결이 나오면 내가 괜찮아질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태준은 쉽게 위로하지 않았다. ‘반드시 중형이 나올 것’이라거나 ‘이제 다 끝났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노트북을 테이블 아래로 치우고 유리의 손을 잡았다.“판결이 당신을 괜찮게 만들어 주지는 못할 겁니다.”유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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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 집입니다

“이미 결제했어.”시온이 작품 구매 확인서를 흔들자 태준의 눈매가 더 가늘어졌다.“취소해.”“왜 자꾸 취소하래? 누나 첫 전시의 첫 판매인데 축하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야?”“내 사진을 네 집에 걸겠다는 말을 먼저 했잖아.”“형만 나온 사진도 아니고 누나 사진이랑 한 작품이잖아. 제목도 좋고.”시온은 붉은 스티커가 붙은 〈허락받은 시선〉을 올려다보았다. 창가에 선 태준의 사진과 침대에서 막 눈을 뜬 유리의 사진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란히 걸려 있었다. 작품의 의미보다 자신의 사진이 동생 집에 걸린다는 사실이 더 신경 쓰이는지 태준의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전시가 끝나도 배송하지 마십시오.”태준이 이수진에게 진지하게 말하자 시온이 기가 막힌 얼굴로 끼어들었다.“구매자는 나야.”“모델의 권리도 있어.”“초상권은 소유권이 아니라며.”“이제 법률 공부까지 하겠다는 거냐?”“형이 아까 그렇게 말했잖아.”유리는 두 형제 사이에 서서 길게 숨을 내쉬었다. 전시장 입구에는 기자들이 개막 행사를 기다리고 있었고, 관계자들은 첫 공식 인터뷰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그런데 정작 작품 속 모델들은 사진을 누가 가져갈 것인지를 두고 어린아이처럼 다투고 있었다.“그러면 이렇게 해요.”유리가 두 사람의 말을 끊었다.“전시 종료 후 최종 인화본은 시온 씨에게 배송하고, 태준 씨에게는 같은 규격으로 작가 증명 인화본을 한 점 따로 제작해 줄게요.”“내 사진인데 왜 내가 복제본을 받아야 합니까?”“작품은 내가 찍었으니까요.”“누나 말이 맞아.”시온이 곧장 유리의 편을 들었다. 태준은 배신당했다는 듯 동생을 보았지만 시온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대신 내 작품에는 빨간 스티커 붙어 있는 거죠?”“네. 첫 구매 기록도 시온 씨 이름으로 남고요.”“좋아.”“안 좋아.”“형은 조용히 해.”“정시온.”두 사람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려는 순간, 이수진이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유리에게 다가왔다.“작가님, 인터뷰 시작해야 해요. 기자들이 기다리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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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의 어머니도 제 팬이었습니다

가족 식사 당일, 유리는 퇴근 후 한 시간 동안 옷장 앞을 떠나지 못했다.“이건 너무 차려입은 것 같고, 이건 회사 갈 때랑 똑같고, 이건 또 너무 편해 보여요.”침대 위에는 원피스 두 벌과 블라우스 세 장, 재킷 하나가 차례로 놓여 있었다. 평소라면 십 분 안에 옷을 고르고 남은 시간에는 카메라 배터리를 확인했을 텐데, 오늘은 소매 길이 하나까지 신경 쓰였다.태준은 침실 문에 기대선 채 유리가 옷을 바꿔 들 때마다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다 괜찮습니다.”“지금 다섯 번째 똑같은 대답이에요.”“다 괜찮으니까요.”“그중에서 하나를 골라 달라는 뜻이잖아요.”“내가 고르면 그대로 입을 겁니까?”유리는 침대 위의 옷을 내려다보다가 솔직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마 한 번은 다시 생각할 것 같아요.”“그럼 왜 묻습니까?”“그래도 태준 씨 의견은 듣고 싶으니까요.”태준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 침대 가까이 다가왔다. 옷들을 천천히 살펴보던 그가 아이보리색 블라우스와 짙은 남색 치마를 집어 들었다.“이게 좋겠습니다.”“왜요?”“당신한테 잘 어울리니까.”“그건 다른 옷도 그렇다면서요.”“그리고 우리 어머니가 좋아할 색입니다.”유리는 블라우스를 받아 들었다.“어머니가 아이보리색을 좋아하세요?”“정확히는 온리원이 예전에 행사장에서 입었던 아이보리색 셔츠를 좋아합니다.”“그걸 어떻게 알아요?”“사진을 보여 주면서 몇 번이나 말했으니까.”태준의 대답은 담담했지만 유리는 오히려 더 긴장됐다. 최애의 부모님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부담스러운데, 그 어머니가 자신의 홈마 시절 옷차림까지 기억하고 있었다.“정말 내 굿즈도 가지고 계세요?”“네.”“뭘요?”“슬로건, 포토북, 달력, 엽서 세트.”“잠깐만요.”유리가 손을 들었다.“내가 판매한 포토북은 두 종류였는데.”“둘 다 있습니다.”“달력은 한정 수량이었어요.”“시온이 직접 구해 줬습니다.”“정시온 씨가 자기 어머니한테 홈마 굿즈를 구해 줬다고요?”“어머니가 원하셨으니까.”유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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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라는 말 대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태준은 반지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다.유리 역시 먼저 묻지 않았다. 차 안에서 약지 위에 닿았던 입술의 감촉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고, 태준이 언젠가 제대로 묻겠다고 했으니 기다려 보기로 했다. 기다리는 일이 답답하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 이전에는 누군가 정해 놓은 순간이 언제 덮쳐 올지 몰라 불안했지만, 이번에는 자신에게 먼저 허락을 구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현관문이 열리자 센서등이 켜졌다. 전날 도착한 수납함과 옷걸이는 아직 거실 한쪽에 쌓여 있었고, 유리의 새 작업실에는 조립되지 않은 책상이 포장된 채 놓여 있었다.태준은 코트를 벗기도 전에 소매부터 걷었다.“뭐 해요?”“책상 조립하려고요.”“지금요?”“어제 못 했잖아요.”“밤 열한 시가 다 됐어요.”“설명서를 보면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유리는 바닥에 놓인 상자를 바라보았다. 상자 옆면에는 성인 두 명이 함께 조립하라는 그림과 예상 소요 시간 구십 분이 적혀 있었다.“두 시간은 걸릴 것 같은데.”“설명서에는 구십 분이라고 돼 있습니다.”“그건 가구 조립을 자주 해 본 사람 기준이죠.”“순서대로 하면 됩니다.”태준은 이미 공구함까지 가져오고 있었다. 유리는 말려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블라우스 소매를 걷었다.“그러면 같이 해요.”“피곤하다면서요.”“태준 씨 혼자 하면 새벽 세 시에 끝날 것 같아서.”“나를 뭘로 보는 겁니까?”“라면 물도 계량컵으로 재는 사람.”“그건 정확한 조리를 위한 과정입니다.”“책상도 나사 길이 하나씩 자로 잴 거죠?”태준은 대답하지 않고 부품 봉투를 종류별로 정렬했다. 유리는 그 모습을 보고 결국 웃었다.두 사람은 거실 바닥에 나란히 앉아 설명서를 펼쳤다. 태준은 부품 번호를 확인하고 유리는 나사를 건넸다. 처음에는 예상보다 순조로웠지만, 서랍 레일을 반대 방향으로 고정한 사실을 발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내가 이쪽이라고 했잖아요.”“그림이 모호했습니다.”“화살표까지 있는데요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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