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무진의 부드러운 가죽 시트에 등을 깊숙이 기댔다. 차창 밖으로 번지는 도시의 네온사인이 빗물에 번져 핏빛처럼 일렁였다. 목덜미에 걸린 작은 열쇠 펜던트를 만지작거리자, 10년 전 그 지옥 같았던 겨울의 냄새가 코끝을 파고들었다.피 냄새. 그리고 타버린 종이 냄새.***스무 살의 나는 그날 모든 것을 잃었다. 믿었던 동업자 박태식 회장의 치밀한 배신으로, 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일군 한양건설은 하루아침에 부도 처리되었다. 신기술 특허는 박태식의 태성그룹으로 빼돌려졌고, 남겨진 것은 수백억의 부도 어음뿐이었다."은서야, 미안하다. 이 아비가 너무 무력해서……."정릉동 단칸방의 좁은 책상 위에 남겨진 아버지의 유서. 그리고 바닥에 싸늘하게 식어 있던 아버지의 굳은 손. 장례를 치르는 내내 내 눈물은 마를 날이 없었다.하지만 원수들은 상복을 입은 나를 비웃었다. 장례식장 빈소에 들이닥친 박태식은 거짓 눈물을 훔치며 내 손을 끈적하게 쥐었다."어린 계집애가 뭘 알겠냐. 남은 빚은 삼촌이 알아서 할 테니 주식 포기각서에 도장이나 찍어라."그 박태식의 등 뒤에서, 스물두 살의 박도진이 서 있었다. 상복을 입은 내 가슴과 다리를 음흉하게 훑어내리던 그 역겨운 눈빛. 슬픔에 젖어 벌벌 떠는 나를 다루기 쉬운 먹잇감으로 여기던 그 비열한 입꼬리.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동시에 타오르던 슬픔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독기로 바뀌었다. 나는 장례식장 화장실 거울 앞에서 흐트러진 머리를 단단히 묶어 올렸다.'울지 마, 강은서. 칼을 품어. 저 가문 전체를 바닥부터 씹어 삼킬 때까지.'단순한 복수는 성에 차지 않았다. 저들이 가진 돈, 명예, 저택, 그리고 뼈와 살점까지 남김없이 발라내야 했다. 나는 아버지를 따르던 한민혁 변호사를 극비리에 만났다."민혁 변호사님, 블랙스톤 파트너스를 함께 세워주세요. 아버지의 기술과 거래처를 믿었던 사람들을 설득해볼게요. 저는 박도진의 집안으로 들어갈 겁니다.""은서 씨, 그 집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
Last Updated : 2026-09-27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