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원수의 집의 며느리로 위장취업: Chapter 1 - Chapter 10

35 Chapters

제1화: 계약

짝-!고개가 사정없이 돌아갔다. 터져버린 입술 새로 비릿한 쇠 냄새가 왈칵 번졌다. 왼쪽 뺨이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렸다.시뻘건 손자국 위로 차가운 종이 뭉치가 날아와 사정없이 흩어졌다."눈깔 똑바로 안 떠? 어디서 사람을 빤히 쳐다봐, 이 불임 덩어리가."남편 박도진의 목소리였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는 아직 잉크 냄새도 가시지 않은 흑백 초음파 사진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임신 5주 차.검은 점 하나가 찍힌 사진 뒤로, 은은한 니치 향수 향을 풍기는 여자가 도진의 팔에 제 몸을 착 달라붙이고 있었다. 도진의 첫사랑이자 태성 갤러리의 프라이빗 아트 딜러, 신서린이었다."봤지? 서린이가 내 아이를 가졌어. 태성그룹의 진짜 핏줄이라고."결혼 10주년 기념일 저녁이었다. 내가 반나절 동안 주방에 서서 도진이 좋아하는 한우 갈비찜과 복어 맑은탕을 끓여 낸 식탁 위로 초음파 사진이 짓밟히듯 내동댕이쳐졌다. 서린은 도진의 어깨 너머로 턱을 치켜들며 비릿하게 웃었다."언니, 10년 동안 무자식 상팔자로 시댁 밥 축냈으면 염치는 있어야죠. 오빠한테 언제까지 매달려 있을 생각이었어요?"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흐트러진 앞머리 사이로 도진의 오만한 얼굴이 보였다. 그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두툼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내 이마를 툭툭 쳤다.모욕적인 마찰음이 이마를 타고 뼛속까지 파고들었다."이혼 소장이야. 읽고 내일 당장 이 집에서 나가. 위자료? 10년 동안 밥 먹여주고 옷 입혀줬으면 감사한 줄 알아야지. 넌 우리 집안에 발 들인 순간부터 공짜 식모였어, 강은서."10년 전, 내 아버지 강창수 회장의 한양건설을 집어삼키고 아버지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던 박태식 회장의 아들. 그 원수의 핏줄 밑으로 기어들어 가 발을 닦고, 토사물을 치우고, 온갖 구타와 폭언을 견뎌 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내 눈동자에는 눈물 한 방울 고이지 않았다.대신 심장 밑바닥에서부터 서늘한 전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지난 10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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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축출

콰르릉-!천둥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거칠게 열렸다. 거실로 들이닥친 사람은 시어머니 배옥순이었다. 반지를 낀 손을 치켜들고, 시모는 바닥의 서류부터 훑어보았다."이게 무슨 꼴이야! 도진아, 이 천한 년이 아직도 안 나가고 버텨?"배옥순은 식탁의 이혼 소장과 서린을 번갈아 보더니 표독스럽게 웃었다. 시모는 내가 10년 동안 매일 아침 무릎 꿇고 주물러 주던 그 발로 내 무릎 앞을 걷어찼다."잘했다, 내 아들! 애도 못 배는 돌부처를 10년이나 거둬 먹였으면 천벌은 면했지. 서린아, 네가 우리 집안을 살렸다!""어머님, 저 너무 무서웠어요. 은서 언니가 오빠 지분을 빼앗겠다고 헛소리를 해서……."서린이 눈물 없는 얼굴로 시모의 품에 안겨 가증스럽게 속삭였다. 시모는 내 머리채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나는 가볍게 고개를 틀어 피했다. 시모의 손끝에서 역겨운 사향 냄새가 훅 풍겼다."어디서 대가리를 빳빳이 쳐들어? 야, 이 종년아! 네가 걸친 거 전부 우리 도진이 돈이야! 당장 몸만 나가!"시모는 다용도실에서 100리터짜리 검은 쓰레기봉투 세 장을 낚아채 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러고는 안방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내 낡은 옷가지들을 닥치는 대로 쑤셔 넣기 시작했다."어머님, 제가 도와드릴게요. 이런 싸구려 옷은 우리 아기한테도 해로워요."서린이 맞장구를 치며 내 화장대를 뒤엎었다. 내가 가계부를 쓰며 보관해 둔 낡은 통장들이 마룻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도진은 소파에 거만하게 앉아 양주를 들이켜며 그 꼴을 비열하게 관망했다."강은서, 이제 네 현실을 알겠어? 넌 내 집에서 쓰레기봉투 세 개짜리 인생이야."창밖에서는 거센 장대비가 유리창을 두들겨 패듯 쏟아져 내렸다. 시모는 내 짐이 쑤셔 박힌 봉투를 질질 끌고 가 현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비 오는 날 먼지 나게 쫓겨나 봐야 제 분수를 알지!"퍽-!촤악-!시모와 서린이 봉투들을 비 내리는 마당 한가운데로 내던졌다. 비닐이 찢어지며 진흙탕 물 위로 내 옷가지들이 젖어 들었다. 차가운 비 냄새와 젖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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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가면

쏴아아아-!대문 밖으로 나서는 순간, 차가운 빗줄기가 온몸을 사정없이 적셨다. 머리칼이 젖어 뺨에 달라붙었지만, 내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고 가벼웠다. 10년간 족쇄처럼 옭아매던 그 지옥 같은 저택의 기운이 빗물과 함께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강은서! 거기 안 서?!"등 뒤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들렸다. 대문이 요란하게 열리더니, 비에 젖은 생쥐 꼴을 한 박도진이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그의 손에는 420억 원의 담보권 실행 통지서가 뜬 스마트폰이 위태롭게 쥐여 있었다."이게 뭐야! 블랙스톤 파트너스가 왜 우리 집을 경매에 넘겨?! 네가 수작 부린 거지?! 당장 말해!"도진이 내 어깨를 낚아채려 손을 뻗었다. 술 냄새와 빗물 비린내가 진동하는 역겨운 손길이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은 내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치익-!어둠이 짙게 깔린 골목 끝에서 날카로운 브레이크 마찰음과 함께 강렬한 헤드라이트 불빛이 폭우를 갈랐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미끄러져 들어온 것은 최고급 블랙 롤스로이스 팬텀이었다. 거대한 차체가 내 앞에 부드럽게 멈춰 섰다.철컥-!차 문이 열리며 검은 우산을 든 단정한 수트 차림의 사내들이 일사불란하게 내렸다. 그들 한가운데서 걸어 나온 남자는 대형 로펌의 대표이자 내 충직한 가신, 한민혁 변호사였다. 민혁은 커다란 검은 우산을 내 머리 위로 정확하게 받쳐 들며 허리를 깊이 숙였다."대표님, 10년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약속하신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정적. 장대비가 우산 위로 투두둑 떨어지는 소리만이 골목을 채웠다. 도진은 넋이 나간 눈으로 민혁과 나를 번갈아 보며 바들바들 떨었다."대, 대표님……? 민혁 선배, 지금 제정신입니까? 저 종년한테 대체 뭐라고 부른 겁니까?!"도진의 대학 선배이자 과거 태성그룹의 법률 자문을 맡았던 민혁이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민혁의 무테안경 너머 서늘한 눈동자가 도진을 벌레 보듯 내려다보았다."박도진 씨, 입조심하십시오. 당신이 방금 진흙탕에 내던진 분은, 태성그룹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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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독사

리무진의 부드러운 가죽 시트에 등을 깊숙이 기댔다. 차창 밖으로 번지는 도시의 네온사인이 빗물에 번져 핏빛처럼 일렁였다. 목덜미에 걸린 작은 열쇠 펜던트를 만지작거리자, 10년 전 그 지옥 같았던 겨울의 냄새가 코끝을 파고들었다.피 냄새. 그리고 타버린 종이 냄새.***스무 살의 나는 그날 모든 것을 잃었다. 믿었던 동업자 박태식 회장의 치밀한 배신으로, 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일군 한양건설은 하루아침에 부도 처리되었다. 신기술 특허는 박태식의 태성그룹으로 빼돌려졌고, 남겨진 것은 수백억의 부도 어음뿐이었다."은서야, 미안하다. 이 아비가 너무 무력해서……."정릉동 단칸방의 좁은 책상 위에 남겨진 아버지의 유서. 그리고 바닥에 싸늘하게 식어 있던 아버지의 굳은 손. 장례를 치르는 내내 내 눈물은 마를 날이 없었다.하지만 원수들은 상복을 입은 나를 비웃었다. 장례식장 빈소에 들이닥친 박태식은 거짓 눈물을 훔치며 내 손을 끈적하게 쥐었다."어린 계집애가 뭘 알겠냐. 남은 빚은 삼촌이 알아서 할 테니 주식 포기각서에 도장이나 찍어라."그 박태식의 등 뒤에서, 스물두 살의 박도진이 서 있었다. 상복을 입은 내 가슴과 다리를 음흉하게 훑어내리던 그 역겨운 눈빛. 슬픔에 젖어 벌벌 떠는 나를 다루기 쉬운 먹잇감으로 여기던 그 비열한 입꼬리.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동시에 타오르던 슬픔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독기로 바뀌었다. 나는 장례식장 화장실 거울 앞에서 흐트러진 머리를 단단히 묶어 올렸다.'울지 마, 강은서. 칼을 품어. 저 가문 전체를 바닥부터 씹어 삼킬 때까지.'단순한 복수는 성에 차지 않았다. 저들이 가진 돈, 명예, 저택, 그리고 뼈와 살점까지 남김없이 발라내야 했다. 나는 아버지를 따르던 한민혁 변호사를 극비리에 만났다."민혁 변호사님, 블랙스톤 파트너스를 함께 세워주세요. 아버지의 기술과 거래처를 믿었던 사람들을 설득해볼게요. 저는 박도진의 집안으로 들어갈 겁니다.""은서 씨, 그 집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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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거절

그날 밤 도진과 서린은 한남동 대저택 안방으로 돌아갔다. 내가 차를 타고 떠나자, 도진은 진흙 묻은 서류 봉투를 신발로 밀어냈다."법원 도장 하나 찍혔다고 다 되는 줄 알아? 아침에 전화 몇 통이면 끝나."도진이 샴페인을 땄다. 서린은 대답 대신 그의 지갑을 확인했다. 명품관에 가자는 말에 도진은 블랙카드를 꺼내 흔들었다.그녀 앞에서까지 겁먹은 얼굴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다음 날 오전 11시, 청담동의 명품관. 이곳에서 두 사람이 한 말은 나중에 매장 직원에게 전해 들었다. 도진은 기세등등하게 서린을 옆에 끼고 청담동 최고급 명품관 프라이빗 VVIP 라운지에 나타났다.내가 10년간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남편의 대접을, 첫사랑에게 과시하려는 속셈이었다."서린아, 마음에 드는 거 전부 골라. 우리 아기 품은 상인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어머, 오빠 최고야! 저 다이아몬드 목걸이랑 악어가죽 백, 둘 다 살래요!"서린이 도진의 볼에 입을 맞추며 교태를 부렸다. 진열장 한 칸을 통째로 털어 담은 보석과 가방의 가격만 도합 2억 8,000만 원. 도진은 우쭐한 표정으로 지갑에서 태성그룹 최상위 VVIP 블랙 법인카드를 꺼내 매니저에게 건넸다."일시불로 긁어요.""네, 고객님.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매니저가 단말기에 카드를 꽂았다. 지잉- 하는 기계음과 함께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단말기 화면에 붉은색 오류 경고가 깜빡였다.[승인 거절: 법인카드 사용 정지]매니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카드를 다시 긁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저…… 고객님, 카드가 승인 거절되었습니다. 지급정지 상태라고 나오는데요.""뭐? 그럴 리가 없어! 그 카드 월 한도가 5억이야! 단말기 고장 아니야?"도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소리쳤다. 서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시며 불안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도진은 짜증스럽게 지갑에서 개인 플래티넘 카드를 세 장이나 꺼내 테이블 위에 던졌다."이걸로 나눠서 긁어. 아침부터 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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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낙인

도진이 명품관에서 굴욕을 맛보며 사색이 되어가던 시각. 한남동 대저택에서는 배옥순이 지인과 통화하고 있었다. 내가 떠난 집 안의 사정은 그날 현장에 갔던 집행 보조 인력이 나중에 전해주었다."어머, 영숙 엄마! 그래, 내가 그 지긋지긋한 불임 종년을 드디어 맨몸으로 내쫓았다니까! 서린이가 벌써 우리 도진이 핏줄을 가졌잖아. 10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간다니까!"배옥순은 늘 며느리에게 손걸레질을 시키던 최고급 이태리 대리석 바닥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시모가 쥔 잔에는 식은 커피가 반쯤 남아 있었다. 한 모금 마신 배옥순이 얼굴을 찌푸리고 잔을 내려놓았다.혼자 남은 거실에서 배옥순은 통화 상대가 웃을 때마다 목소리를 더 높였다. 시모는 죄책감은커녕, 친구들에게 며느리를 쫓아낸 무용담을 떠벌리며 승리감에 취해 낄낄거렸다.쿵, 쿵, 쿵-!그때, 대저택의 육중한 철문이 부서질 듯 울렸다. 이어 거실 인터폰이 신경질적인 경고음을 울려대기 시작했다."누구야, 아침부터 천박하게 문을 두들겨?! 김 기사! 문 안 열어주고 뭐 해?!"배옥순이 신경질적으로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현관으로 걸어갔다. 벌컥 문을 열어젖힌 시모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문 앞에는 단정한 정장 차림의 남녀 대여섯 명과 경찰관 두 명이 도열해 있었다.그들의 손에는 두툼한 법원 집행 서류와 함께, 선명한 붉은색 스티커 뭉치가 들려 있었다."배옥순 씨 되십니까."가장 앞에 선 서울중앙지방법원 소속 집행관이 차가운 목소리로 서류를 펼쳐 보였다."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나온 집행관입니다. 부동산 담보권 실행을 위한 경매개시결정 관련 서류와 유체동산 압류 집행 서류입니다. 지금부터 압류 대상 확인 및 압류표 부착을 시작하겠습니다.""뭐, 뭐라고?! 압류?! 이놈들이 어디라고 함부로 기어들어 와! 우리 아들이 태성그룹 후계자 박도진이야! 당장 꺼지지 못해?!"배옥순이 악을 쓰며 집행관의 멱살을 잡으려 달려들었다. 하지만 옆에 서 있던 경찰관들이 시모의 양팔을 단단히 낚아채 벽 쪽으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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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대면

명품관을 떠나 테헤란로의 블랙스톤 파트너스 사옥으로 돌아왔다. 50층 집무실에 올라 코트를 벗자, 도진이 한남동에서 어머니를 태우고 이쪽으로 출발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내 손에는 차가운 얼음이 채워진 크리스털 글라스가 들려 있었다.어둡고 묵직한 마호가니 책상 위 대형 모니터 네 대에는 1층 로비의 고화질 CCTV 화면이 실시간으로 선명하게 송출되고 있었다.끼이익-!로비 정문 앞 회전문에 급정거한 검은색 세단에서 세 마리의 짐승이 굴러떨어지듯 허겁지겁 내렸다. 명품관에서 카드가 정지되어 개망신을 당하고 도망쳐 온 박도진. 한남동 저택에 붙은 붉은 압류 딱지를 보고 실신했다가 악만 남아 날뛰는 시모 배옥순.그리고 300억대 상속남의 환상이 깨질까 봐 사색이 된 채 도진의 팔에 매달린 신서린이었다."강은서 나와! 어디서 천한 종년이 감히 사모펀드 대표 행세를 해?!"도진의 찢어지는 고함이 로비 인터폰 스피커를 타고 내 집무실까지 생생하게 울려 퍼졌다. 도진은 핏발 선 눈으로 로비 보안 데스크의 대리석 상판을 쾅쾅 내리치며 직원들의 멱살을 잡으려 발악했다. 그의 곁에서 배옥순은 명품 대리석 바닥에 주저앉아 헝클어진 머리채를 쥐어뜯으며 짐승처럼 통곡했다."도둑년아! 10년 동안 밥 먹여주고 사람 만들어 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아?! 내 샹들리에 물어내! 내 집 당장 내놔!"로비에 있던 펀드 직원들이 뒤로 물러섰다. 회사 앞에서 기다리던 기자 몇 명이 소란을 듣고 유리문 쪽으로 모였다. 휴대전화 카메라가 들리자 도진은 얼굴을 돌렸지만, 어머니는 고함을 멈추지 않았다.나는 리모컨을 들어 보안실 인터폰 연결 버튼을 가볍게 눌렀다."민혁 변호사님, 1층 난동 정리하고 올려보내세요. 벌레들과 놀아줄 준비가 끝났습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즉시 집행하겠습니다.]모니터 화면 속에서, 완벽하게 재단된 네이비 수트를 입은 한민혁이 건장한 사설 경호팀 여덟 명을 이끌고 로비 중앙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도진이 민혁을 발견하자마자 입가에 허연 침을 튀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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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역전

띵-!경쾌한 전자음과 함께 50층 펜트하우스 전용 엘리베이터의 골드 메탈 문이 좌우로 열렸다. 복도 바닥에 깔린 최고급 페르시아 양탄자 위로 세 마리의 짐승이 경호원들의 손에 이끌려 비틀거리며 쏟아져 나왔다.쿵-!육중한 양개형 마호가니 원목 문이 열리며, 내 집무실의 웅장한 전경이 그들의 시야를 집어삼켰다. 통유리창 너머로 발아래 까마득하게 펼쳐진 서울 도심의 마천루들. 벽면을 장식한 수십억 원 호가의 바스키아와 박수근의 원작 회화들.그리고 은은하게 퍼지는 최고급 에스프레소 원두의 향과 묵직한 오크 향."이…… 이게 다 뭐야……?"서린이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으며 바들바들 떨었다. 서린의 시선이 벽의 그림과 책상 위 명패를 오갔다. 가격부터 가늠하던 눈이 내 이름에 멎었다.그러나 도진은 여전히 현실을 부정하려는 듯 핏대를 세우며 악을 썼다. 그의 땀에 젖은 셔츠에서 술 냄새와 비린내가 풍겼다."강은서! 숨지 말고 나와! 어디서 스폰서 영감탱이라도 물어서 이딴 호사를 누려?! 당장 얼굴 까고 기어 나와!"배옥순도 헝클어진 머리를 쥐어뜯으며 삿대질을 해댔다."천하에 몹쓸 년! 시댁 돈을 빼돌려 사기꾼 놈들과 작당을 해?! 네년이 그러고도 사람이야?!"그들의 천박한 비명이 집무실의 정적을 사납게 찢어발겼다. 그 순간, 창가를 등지고 서 있던 육중한 가죽 하이백 체어가 낮은 마찰음을 내며 스르륵 180도 회전했다.스르륵- 탁.의자가 멈춰 섰다. 완벽하게 재단된 차콜 그레이 명품 수트에 올백으로 단정하게 넘긴 흑발. 다리를 꼬고 앉아 차가운 흑요석 같은 눈동자로 그들을 내려다보는 내 모습이 온전히 드러났다.10년간 낡은 고무장갑을 끼고 화장실 변기를 닦던 여자. 시어머니의 각질투성이 발을 주무르고, 남편의 토사물을 받아내던 순종적인 종년. 나는 도진의 손부터 봤다.늘 먼저 올라오던 손이 이번에는 바지 옆에 붙어 있었다."……헉?!"도진의 입에서 숨이 턱 막히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는 의자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한 걸음 뒤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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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상속녀

대리석 바닥에 무릎이 짓눌린 도진의 거친 숨소리가 집무실을 채웠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채 기어 다니던 시모 배옥순은 여전히 꿈을 꾸는 사람처럼 헛손질을 해댔다."네가…… 네년이 왜 거기 앉아 있어?! 왜?!"배옥순의 목소리는 찢어질 듯 갈라져 있었다. 시모의 눈동자에는 지독한 현실 부정과 광기 어린 경악이 뒤섞여 있었다."우리 집에서 10년 동안 시어머니 발이나 닦던 고졸 식모년이…… 어떻게 저런 자리에 앉아 있느냐고! 어떤 사기꾼 놈이랑 눈이 맞아서 이딴 연극을 벌여?!"나는 도진 앞에서 자세를 고쳐 섰다. 경호원들이 그의 팔을 잡고 있는 동안, 배옥순은 바닥의 서류를 끌어모았다.또각, 또각.규칙적인 구두 굽 소리가 적막한 집무실 대리석 바닥을 울릴 때마다, 도진의 어깨가 사시나무 떨듯 움찔거렸다. 나는 도진의 눈앞에 멈춰 섰다. 나는 몸을 낮춰 도진이 시선을 피하지 못하게 했다.그의 무릎 옆에 흩어진 서류 봉투를 집어 들었다. 어젯밤, 그가 내 이마를 서류 봉투로 모욕적으로 쳤던 그 손버릇이 떠올랐다. 나는 봉투를 그의 눈앞에 펼쳤다."고졸 식모년? 연극?"내 서늘한 목소리에 도진이 뺨을 맞은 듯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붉게 충혈된 눈동자 속에 비친 내 모습은, 그가 알던 바보 며느리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그가 먼저 시선을 내렸다."배옥순 씨,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네. 10년 전, 내 아버지 강창수 회장의 한양건설을 도둑질해 태성그룹의 밑천으로 삼은 건 당신들의 그 잘난 박태식 회장이었어.""한…… 한양건설?!"배옥순의 입술이 허옇게 질려 파르르 떨렸다. 강창수라는 이름이 나오자 배옥순은 입을 벌린 채 내 얼굴과 바닥의 서류를 번갈아 보았다."당신들이 10년간 한남동 저택에서 누린 다이아몬드, 명품 백, 최고급 외제차…… 전부 내 아버지의 피눈물과 목숨값 위에 세워진 거였어.""언니…… 그, 그럼 한양건설 때문에 처음부터 오빠한테 접근한 거예요?!"구석에 처박혀 있던 서린이 경악으로 비명을 질렀다. 도진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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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덫

집무실에 감도는 묵직한 침묵 속에서, 도진의 젖은 머리카락에서 커피 방울이 바닥으로 뚝, 뚝 떨어졌다. 시모 배옥순은 여전히 대리석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마호가니 책상 위에서 검은색 하드커버 가죽 서류철 한 권을 꺼내 들었다.스르륵- 탁.첫 페이지를 넘기는 얇은 종이 마찰음이 서늘하게 울려 퍼졌다. 도진의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서류철의 빽빽한 활자를 향해 굳어졌다."자, 이제 지난 10년간 당신들이 쌓아 올린 빚의 장부를 정산할 시간이야."내 목소리는 차분하고 청량했다. 마치 친절한 은행원이 고객에게 잔고를 안내하듯, 지극히 사무적인 어조였다."첫 번째. 2019년 4월 12일. 박도진 씨가 강남 텐프로 마담에게 홀려 투자금 명목으로 30억을 날렸을 때.""……!""회사 공금에 손을 댔다가 박태식 회장에게 맞아 죽을 뻔했던 날이지. 사시나무 떨듯 울며 내 방으로 찾아온 널 위해, 내가 아는 금융권 펀드를 소개해 준다며 사인하게 했던 주식 양도 담보 계약서."나는 도진의 눈앞에 서류를 펼쳐 보였다. 그곳에는 7년 전, 공포에 질려 도진이 직접 찍었던 선명한 인감도장이 박혀 있었다."두 번째. 2021년 9월. 배옥순 씨가 청담동 사모님 모임에서 가짜 다이아몬드 밀수 펀드에 물려 날린 70억."배옥순이 숨을 들이켜며 파르르 떨었다."남편 박 회장이 알면 이혼당할까 봐 며느리 손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했지? 내가 시어머니 어깨를 주물러주며 아무도 모르게 막아드리겠다고, 한남동 대저택에 1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하게 만들었던 그 대출 약정서.""너…… 너 설마……!""세 번째. 2023년 11월. 박도진 씨가 신사업이라며 코인 사기단에 속아 날린 법인 자금 150억의 연대보증 각서. 당신들이 무능하게 싼 똥을 치워준 착한 며느리가 누구였지?"도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다 못해 잿빛으로 썩어 들어갔다. 그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마법처럼 급전을 구해와 가문의 파멸을 막아주던 '구원의 천사'. 도진이 계약서의 서명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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