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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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쇼케이스

초대장은 문지현 앞으로 왔다.두꺼운 미색 카드였다. 금박으로 찍은 글씨가 손끝에 걸렸다. 「라벨티 첫 번째 향 — 빈의 한 병. 첼리스트 유세아와 함께하는 밤.」 그 아래에 손으로 쓴 한 줄이 따로 있었다. 「N 선생님께서 꼭 와 주셨으면 합니다. 유세아 드림.」"저 부르는 거예요, 이거."지현이 카드를 작업대에 내려놓았다. 손을 떼자마자 카드에서 향이 올라왔다. 흰 목련이었다. 종이에까지 뿌린 것이다."실장님을 N으로 알고 있으니까요.""그러니까 저보고 가서 구경하라는 거잖아요. 자기가 N 앞에서 N 향으로 박수받는 거."서린은 카드를 집어 코 가까이 가져갔다. 목련 아래 돌 냄새가 반쯤만 살아 있었다. 뿌린 지 반나절쯤 된 종이였다."가요.""네?""셋이 같이 가요. 하람 씨도요."하람이 원료장 앞에서 고개를 돌렸다. 손에 든 갈색 병을 떨어뜨릴 뻔했다."저, 저도요?""네. 하람 씨 코가 필요해요."하람은 대답 대신 병을 제자리에 넣었다. 셋째 칸이었다. 병을 넣는 손이 조금 늦었다. 서린은 그 손을 보지 않은 척했다.그날 저녁 택시 안에서 지현은 말이 많았다. 긴장하면 말이 많아지는 사람이었다. 드레스 코드가 있는지, 가서 뭘 먹어도 되는지, 누가 N이냐고 물으면 뭐라고 해야 하는지."안 물어볼 거예요.""왜요?""물어볼 필요가 없으니까요. 저쪽은 이미 답을 정해 놨어요."지현은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열었다. 그럼 웃기라도 할까요, N처럼. 하람이 창밖을 보며 조그맣게 웃었다. 오늘 처음 웃는 거였다. 택시 안에는 방향제 냄새가 짙었다. 인공 레몬이었다. 서린은 창문을 손가락 한 마디만큼 내렸다.* * *쇼케이스는 목요일 저녁 청담동의 한 갤러리에서 열렸다. 블라인드 평가회 바로 전날이었다.도혁은 끝까지 반대했다."평가회가 내일입니다. 결과도 안 나온 향을 하루 먼저 내보이는 건 순서가 틀렸습니다.""순서요, 전무님."표상진 대표가 태블릿을 돌려 보였다. 막대그래프가 세 개 있었다."언론이 먼저 달아오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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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쇠 냄새

기사는 새벽 여섯 시에 올라왔다.「라벨티 첫 향수, 한 시간 뒤 녹 냄새?」사진은 두 장이었다. 첼로를 켜는 세아, 그리고 손목에 코를 댄 채 얼굴을 찡그린 기자의 옆얼굴. 쇼케이스에 왔던 다른 기자 둘이 같은 경험을 했다고 적혀 있었다. 처음 한 시간은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웠다. 그다음부터는 녹슨 철문을 만진 손 같았다고.서린은 그 기사를 옥탑방 창가에서 읽었다. 여섯 시 십 분이었다. 잠은 다섯 시에 깼다. 어젯밤 갤러리에서 묻어 온 냄새가 아직 니트 소매에 남아 있었다. 목련은 날아가고, 그 자리를 녹이 차지하고 있었다. 서린은 니트를 벗어 창밖 빨랫줄에 걸었다. 찬 공기에 하루 두면 빠질 냄새였다.기사 밑에 첫 댓글이 달려 있었다. 「어제 갔는데 진짜임. 집에 와서 손목 맡고 소름.」 서린은 휴대폰을 엎어 놓고 물을 끓였다. 보리차를 한 잔 우렸다.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할 필요가 없었다. 공기가 알아서 말하고 있었다.일곱 시가 되자 같은 내용의 기사가 열한 개로 늘었다.향수 커뮤니티는 더 빨랐다. 쇼케이스에서 받은 시향지를 한 시간마다 맡아 보고 후기를 쓴 사람이 있었다. 「1시간: 목련 예쁨. 1시간 20분: 어? 2시간: 지하철 손잡이.」 그 글에 댓글이 수백 개 달렸다. 누군가 향 이름을 바꿔 불렀다. 빈의 한 병이 아니라 빈 깡통 한 병. 그 말이 오전 내내 돌았다.열 시에 세아 쪽 입장문이 나왔다.「쇼케이스에서 느끼신 금속성은 의도된 미네랄 노트입니다. 빈의 오래된 돌길과 비 온 뒤 철제 난간의 기억을 담고자 했습니다. 향은 시간에 따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지현이 작업실 컴퓨터 앞에서 입장문을 소리 내어 읽었다. 다 읽고 나서 의자를 뒤로 젖혔다."철제 난간이래요. 서린 씨. 철제 난간.""문장은 잘 썼네요.""그게 지금 할 말이에요?""다른 할 말이 없어서요."하람은 원료장 앞에서 병 라벨을 닦고 있었다. 셋째 칸 앞에서 손이 한참 멈춰 있다가 다시 움직였다. 서린은 그걸 보고 하람의 커피 잔을 가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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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문지현

내용증명은 세 장이었다.지현은 그 세 장을 작업대 위에 한 장씩 나란히 펴 놓았다. 다리미로 편 것처럼 반듯하게. 손바닥으로 몇 번이나 쓸었다. 그래도 종이 끝이 조금씩 들렸다.「통지인 유세아는 피통지인 문지현이 지난 9월부터 수차례에 걸쳐 통지인의 향수 제품 판매 중단을 요구하며 통지인의 명예와 활동을 훼손하겠다는 취지의 협박을 하였고, 11월 26일 라벨티 쇼케이스에서는 특정 기자를 동원하여 제품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게 함으로써 통지인의 업무를 방해하였음을 알립니다.」지현은 그 문단을 세 번 읽었다. 세 번째에는 입술만 움직였다."9월부터요. 제가 9월부터 협박을 했대요. 저 9월에 뭐 했는지 알아요? 다온이 수행평가 도와주느라 밤마다 모기 잡는 법 조사했어요. 모기요."하람이 물 한 잔을 가져와 지현 손 옆에 놓았다. 지현은 물을 보지 않았다.서린은 두 번째 장을 집어 들었다. 종이에서 복사기 토너 냄새와 법무법인 사무실의 방향제 냄새가 났다. 인공 라벤더였다. 서류를 급하게 뽑은 냄새였다. 날짜는 오늘, 발송 시각은 오후 한 시. 세아가 호텔 라운지에 앉아 있던 그 무렵이었다."실장님.""괜찮아요. 저 괜찮아요."지현이 손을 저었다. 괜찮지 않은 손이었다. 손끝이 떨렸다."저 이런 거 처음 받아 봐요. 가게 할 때 월세 밀려서 받은 독촉장 말고는요. 근데 그때는 제가 잘못한 거였잖아요. 이번엔……."말이 거기서 끊겼다. 지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다 겨우 이어 말했다."다온이가 알면 어떡해요. 걔 요즘 휴대폰만 들여다봐요. 엄마 이름이 인터넷에 뜨면……. 고1이에요. 반 애들이 다 봐요."작업실이 조용해졌다. 원료장 유리문에 오후 햇빛이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서린은 지현을 10년 동안 보아 왔다. 향수 가게를 접던 날에도, 남편이 짐을 싸 나가던 해에도, 지현은 이렇게 떨지 않았다. 욕을 하고, 소주를 마시고, 다음 날 아침에는 가게 셔터를 올렸다. 그 사람이 지금 서류 세 장 앞에서 손끝을 떨고 있었다. 자기 일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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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거짓말

강민재의 보고서는 일요일 아침에 왔다.두 장이었다. 한 장은 두 달 전 그가 이미 받아 본 내용을 다시 정리한 것이었다. 빈 구시가지, 그 주변 반경 3킬로미터 안의 조향 공방 목록. 할아버지가 하는 곳도, 할머니가 하는 곳도, 이름 없는 공방도 없었다. 현지 향료 조합에 문의한 답장 사본까지 붙어 있었다.두 번째 장은 새것이었다.「문지현 실장 휴대폰 번호와 유세아 씨 번호 간 통화·문자 기록, 9월 이후 0건(통신사 확인 불가 범위 제외, 쌍방 지인 진술 기준). 쇼케이스 당일 '쇠 냄새' 기사를 처음 쓴 기자는 향수 전문 칼럼을 7년째 연재 중이며, 라벨티·무향 스튜디오 어느 쪽과도 거래 이력 없음.」맨 아래에 강민재가 손으로 한 줄을 덧붙여 두었다.「전무님, 제가 알아본 범위에서는 협박은 없었습니다.」도혁은 보고서를 접어 코트 안주머니에 넣었다.거실 탁자 위에 첫눈 병이 서 있었다. 아침마다 한 번씩 뿌린 지 두 달이 넘었다. 병 안의 액체가 어깨선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그는 병을 들어 불빛에 비춰 보았다. 30밀리리터. 아침에 한 번씩만 누르는데도 줄어드는 게 눈에 보였다. 언젠가는 바닥이 난다. 그다음은 없었다. 그녀가 두고 간 병은 하나였다.그는 오늘 아침의 몫을 뿌렸다. 베르가모트가 먼저 올라왔다. 차가운 첫 숨. 그 냄새를 맡고 나서야 휴대폰을 집을 수 있었다.세아에게 문자를 보냈다. 저녁 일곱 시. 한남동, 그 집.* * *한남동의 작은 이탈리아 식당은 일요일이라 한산했다. 두 달 전 호텔 라운지에서 세아는 할아버지를 할머니로 바꿔 말했다. 그때 도혁은 그렇구나, 한마디만 했고, 그 이상은 묻지 않았다.세아는 먼저 와 있었다. 오늘은 향을 뿌리지 않았다. 도혁은 자리에 앉기 전에 그걸 알았다. 대신 샴푸 냄새와 호텔 비누 냄새가 났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으려는 척하는 냄새였다."오빠가 먼저 불러 줘서 좋다."세아가 웃었다. 이틀 전 호텔 라운지에서보다 얼굴이 밝았다. 내용증명이 기사로 나간 다음이었다. 승아의 말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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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전날 밤

봉투는 열한 개였다.서린은 작업대 위에 누런 서류 봉투를 한 줄로 늘어놓았다. 봉투마다 앞면에 날짜 하나, 번호 하나. 7번의 버전 순서였다. 맨 왼쪽이 첫 번째, 2년 전 3월 14일. 다섯 번째 봉투까지는 날짜가 모두 같았다. 맨 오른쪽이 열한 번째, 올해 6월 2일.봉투 안에는 특허청 영업비밀 원본증명서가 한 장씩 들어 있었다. 등록 번호, 등록 일시, 전자 지문 값. 그 옆에 그 버전의 배합표 사본. 원본은 금고에 있었다. 사본에도 서린의 필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여섯 번째가 이거죠. 2년 전 4월."하람이 봉투 하나를 가리켰다. 오늘 아침부터 봉투를 정리하는 일을 하람이 맡았다. 서린이 맡긴 것이었다. 하람은 처음에 손을 뒤로 뺐다. 제가 만져도 돼요, 하고 물었다. 서린은 대답 대신 첫 번째 봉투를 하람 손에 쥐여 주었다."네. 목련이 처음 들어간 버전이에요. 그 전까지는 돌 냄새만 있었어요.""돌 냄새만요?""비 온 뒤 옥상 바닥 같은 거. 그걸로는 사람을 붙잡을 수가 없더라고요. 너무 조용해서."하람이 봉투 겉면을 손끝으로 쓸었다. 2년 전 4월. 그녀가 이 작업실에 들어오기도 전이었다."그럼 무화과는요?""아홉 번째요. 작년 여름. 골목 끝 집 담장에 무화과나무가 있었어요. 잎이 비 맞는 냄새가 좋아서."하람은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 받아 적을 필요가 없는 말이었다. 서린은 말리지 않았다.지현이 창고에서 종이 상자 하나를 들고 왔다. 원료 병이 담겨 오던 상자였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봉투 열한 개를 순서대로 세워 넣었다. 딱 맞았다. 지현은 상자 뚜껑을 덮고 노끈으로 열십자를 묶었다. 매듭을 두 번 지었다."이거 내일 제가 들고 갈게요. 서린 씨는 빈손으로 들어가요.""무거워요.""안 무거워요. 종이잖아요."지현은 상자를 한 번 들어 보고 도로 내려놓았다. 무겁다는 얼굴이었다. 그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오후 세 시, 오승아가 작업실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자, 하람 씨. 연습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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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블라인드 평가회

라벨티 연구소 3층 평가실은 냄새가 없는 방이었다.벽은 흰색, 바닥은 회색 타일. 공조기가 한 시간에 열두 번 공기를 갈았다. 향을 맡는 방은 원래 그렇게 만든다. 앞사람의 향수, 점심에 먹은 김치찌개, 누군가의 섬유유연제가 섞이지 않도록. 들어오는 사람들은 입구에서 무향 비누로 손을 씻었다. 향수를 뿌리고 온 사람은 들어올 수 없다고 안내문에 적혀 있었다.세아는 입구에서 멈췄다. 오늘은 향을 뿌리지 않았다. 안내문을 한 번 읽고, 손을 씻었다.윤정숙은 씻지 않으려 했다. 염 이사가 옆에서 뭐라고 속삭이자 마지못해 손끝만 물에 적셨다. 그녀 뒤로 여자 셋이 따라 들어왔다. 태강문화재단 시절 화요일마다 오찬을 함께하던 사람들이었다. 윤정숙이 오늘 아침 전화를 돌려 불러 모았다. 좋은 구경 시켜 주겠다고.평가실 한쪽 벽을 따라 참관석이 스무 개 놓여 있었다. 앞줄에 표상진, 염 이사, 윤정숙과 재단 친구들. 그 옆에 세아와 수진. 수진은 단발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 태블릿만 보고 있었다.뒷줄 끝에 도혁이 앉았다. 협상 테이블이 아니었으니 조건에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맨 뒤를 골랐다.그 반대편 끝에 지현과 하람, 승아가 앉았다. 지현의 무릎 위에 노끈으로 묶은 종이 상자가 있었다. 하람은 두 손을 무릎 사이에 끼우고 있었다.평가실 오른쪽 구석에는 흰 천을 친 가림막이 서 있었다. 사람 키보다 조금 높았다. 그 안에 의자 하나, 작은 탁자 하나. 천 너머로 사람의 윤곽이 희미하게 비쳤다. 머리를 묶은 윤곽이었다.세아는 그 가림막을 한 번 보고 지현 쪽을 보았다. 지현은 참관석에 앉아 있었다. 세아의 미간이 아주 조금 좁아졌다. 그리고 도로 풀렸다. 대리인을 앉혔겠지. 그렇게 읽는 얼굴이었다.가림막 안에서 서린은 눈을 감고 있었다.천 한 겹은 얼굴을 가려도 냄새는 가리지 못했다.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방의 공기가 조금씩 달라졌다. 무향 비누로 씻어도 사람은 제 냄새를 데리고 온다. 표상진의 구두약. 염 이사의 담배. 윤정숙에게서는 헤어스프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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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한 시간

처음 소리를 낸 건 재단 친구 중 한 사람이었다."……어머, 저 사람 정숙 씨 며느리 아니야?"속삭임이라고 하기엔 컸다. 평가실은 원래 조용한 방이었다. 그 말이 벽에 부딪혀 한 번 더 울렸다. 윤정숙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녀는 떨어진 가방을 끝내 줍지 않고 허리를 폈다."전 며느리야."윤정숙이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세아는 아직 서 있었다. 시선이 서린에게서 지현에게로, 지현에게서 다시 서린에게로 옮겨 갔다. 한 번, 두 번. 무언가를 맞춰 보려는 사람처럼. 그리고 맞지 않는다는 걸 아는 사람처럼."말도 안 돼."세아가 웃었다. 이번에는 소리 내어."N이 당신이라고요? 3년 동안 오빠 집에서 밥하던 사람이? 쇼는 여기까지 해요. 문지현 씨가 뒤에서 만든 향을 당신이 들고 나와서 이름만 빌려 쓰는 거잖아요. 제자인지 뭔지 몰라도."지현이 벌떡 일어나려 했다. 승아가 지현의 팔을 잡아 도로 앉혔다. 승아는 고개를 한 번 저었다. 지금은 아니라고.밥하던 사람. 서린은 그 말을 들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3년 동안 그녀는 밥을 했다. 미디엄 레어를 알아내려고 접시 가장자리를 세고,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차 온도를 맞추고, 아무도 오지 않는 식탁을 차렸다. 그 3년 동안에도 그녀는 N이었다. 그 둘이 한 사람 안에 있을 수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 설명할 말은 없었다.재단 친구들이 윤정숙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무언가를 묻는 입 모양이었다. 윤정숙은 대답하지 않았다. 앞만 보고 있었다. 그 옆얼굴이 3년 전 결혼식 날 폐백실에서 본 얼굴과 닮아 있었다. 무언가를 억지로 삼키는 얼굴.서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심사위원 테이블로 걸어갔다. 연구원에게 목례를 하고, D라고 적힌 시향지 한 장을 집었다. 그리고 B 시향지 한 장을 집었다. 두 장을 나란히 들고 세아 앞으로 갔다. 세 걸음 앞에서 멈췄다."맡아 보세요.""뭐라고요?""두 장이요. 유세아 씨 코로요."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서린은 시향지를 내민 채 기다렸다. 재촉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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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기회

엘리베이터가 3층에 멈췄다가 문을 열었다. 아무도 타지 않았다. 문이 도로 닫혔다.서린은 윤정숙을 보았다. 3년 동안 이 사람 앞에서 그녀는 늘 반 발짝 뒤에 서 있었다. 본가 현관에서도, 제사상 앞에서도, 재단 바자회 천막 아래에서도. 오늘은 반 발짝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다고 앞으로 나서지도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비웃지 않았어요.""거짓말."윤정숙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연구소 직원 두 명이 복도 끝에서 걸음을 멈췄다가 슬그머니 방향을 틀었다."3년이야. 3년 동안 우리 집 밥을 먹으면서, 우리 집 옷을 입으면서, 뒤에서는 N이니 뭐니 하면서 우리를 비웃고 있었던 거잖아. 내가 재단 행사에서 향수 이야기 할 때마다 속으로 웃었겠지. 무식한 시어미라고.""어머님.""어머님이라고 부르지 마. 이제 남이야."윤정숙이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굽 소리가 복도 타일 위에서 딱딱하게 울렸다."그리고 세아는 뭐니. 그 애가 가져온 향이 가짜라고? 네가 무슨 짓을 해 놨길래 그런 말이 나와. 남의 향에 쇠 냄새가 나게 만든 것도 너 아니야? 너 같은 애가 무슨 짓을 못 하겠어."지현이 앞으로 나서려 했다. 서린이 손을 들어 막았다. 손끝 하나만 들었다. 지현이 멈췄다. 승아도 입을 다물었다. 이건 서린의 차례라는 걸 둘 다 알았다.서린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고쳐 불렀다."윤 여사님."그 호칭에 윤정숙의 얼굴이 움찔했다. 뒤에 선 재단 친구들이 서로를 보았다. 한 사람이 입을 가렸다."N이면."윤정숙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N이면 왜 말 안 했어. 처음부터 말했으면 됐잖아. 그랬으면 내가……. 우리가 너를 그렇게……."그녀가 말끝을 삼켰다. 그렇게, 다음에 올 말을 그녀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렇게 대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 말을 입 밖에 내는 순간 무엇을 인정하게 되는지도.서린은 그 삼킨 말을 들었다. 들리지 않는 말이었지만 들렸다."말할 기회를 주신 적 없어요."조용한 목소리였다. 화가 나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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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저녁 한 번

토요일 아침, 기사는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평가회는 비공개였다. 라벨티 법무팀이 참관인 전원에게 비밀 유지 각서를 받았다. 신문에 난 건 「빈의 한 병」 만장일치 최하위와 출시 철회 기사, 그리고 태강의 짧은 입장문뿐이었다. 승아는 어젯밤 이름이 나올 거라고 장담했다가 오늘 아침 문자 한 줄을 보냈다. 「씨…… 각서 받았대. 내가 졌다.」 N이 누구인지는 어디에도 없었다.대신 향수 커뮤니티에 익명 글이 하나 올라왔다. 「평가회 다녀온 지인 말로는 N이 재벌가 전 며느리라던데. 진짜?」 조회 수는 몇백에서 멈췄다. 댓글은 대부분 비웃었다. 재벌 며느리가 무슨 조향이냐고. 소설 쓰지 말라고. 서린은 그 댓글들을 읽고 조금 웃었다. 3년 전의 자기라도 그렇게 썼을 것이다.서린은 옥탑방 창문을 열었다. 골목 아래에서 버터와 설탕 냄새가 올라왔다. 토요일 빵은 평일보다 달았다.지현이 계단을 올라왔다. 손에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서린 씨. 다온이가 문자 보냈어요.""뭐래요.""어젯밤에 제가 말해 줬거든요. 내용증명 그거, 이제 괜찮다고. N은 엄마가 아니라 서린 언니라고. 그랬더니 아침에 이렇게 왔어요."지현이 휴대폰 화면을 서린 쪽으로 돌렸다. 「헐 대박. 언니가 N이었어? 그럼 나 N한테 향 퀴즈 배운 거임?」 그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근데 엄마가 N보다 더 멋있음. 옆에 10년 있었으니까.」서린은 그 문자를 오래 보았다. 지현은 화면을 도로 가져가 제 가슴에 댔다. 괜히 헛기침을 했다.* * *이안은 오후 네 시에 왔다.작업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정확히 세 번이었다. 하람이 문을 열자 이안이 허리를 숙였다. 손에 작은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다. 프랑스 버터였다. 오리스 버터가 아니라 다른 상표였다. 이번에는 통관 서류 없이 공항 면세점에서 샀다고 했다."어제는 인사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였사옵니다."하람이 이안을 보았다. 이안이 하람을 보았다. 하람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못 드렸습니다.""네. 그거요."이안은 진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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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서명

월요일 오후 두 시, 태강그룹 본사 로비.김 반장은 회전문 옆 경비 데스크에서 방문증 묶음을 정리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머리를 묶은 여자가 회전문을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검은 코트, 손에는 갈색 페트병 하나.4주 전 월요일이 떠올랐다. 그날 그는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입을 열었다. 사모님, 하고. 그리고 방문증 이름 칸을 보고 고쳐 불렀다. 사진 칸이 비어 있던 방문증이었다.오늘은 고쳐 부를 필요가 없었다. 김 반장은 일어나서 방문증을 건넸다. 이번에는 사진 칸에 사진이 붙어 있었다. 지난 금요일 평가회가 끝난 뒤 출입 등록용으로 라벨티가 받아 간 사진이었다. 이름 칸에는 두 줄이 적혀 있었다. N. 그리고 그 아래 작은 글씨로, 한서린."N 선생님. 22층입니다.""감사합니다, 반장님."서린이 목례를 했다. 김 반장도 허리를 숙였다. 로비에서 20년을 서 있었다. 이 건물에 드나드는 사람 중에 그에게 반장님이라고 불러 주는 사람은 몇 없었다. 3년 동안 이 여자는 그중 하나였다. 명절마다 경비실에 떡 상자를 두고 가던 사람. 그는 그걸 기억했다.뒤따라 들어온 지현과 승아도 방문증을 받았다. 지현은 방문증을 목에 걸고 한참 내려다보았다. 「무향 스튜디오 실장 문지현」. 이번에는 N이라는 글자가 그녀 이름 옆에 없었다. 지현은 그게 이상하게 좋았다.* * *22층 대회의실은 4주 전과 같은 방이었다.긴 테이블, 통유리 창, 창밖의 한강. 다른 게 있다면 테이블 위의 서류였다. 두꺼운 계약서 두 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표지에는 「무향(無香) 브랜드 유통 계약서」.표상진 대표와 백 소장이 먼저 와 있었다. 법무팀 과장 둘, 전략실 사람 하나. 표상진은 서린이 들어오자 일어나 두 손으로 악수를 청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있었다. 오늘은 숫자 때문에 흘리는 땀이 아니었다."N 선생님. 아니, 한서린 선생님. 뭐라고 불러 드려야 할지…….""편하신 대로요.""그럼 오늘은 N 선생님으로 하겠습니다. 계약서에 적힌 이름이 그거니까요."서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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