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이혼 서류는 내가 먼저 냈다: Kapitel 41 – Kapitel 50

100 Kapitel

41화. 캡처 한 장

전화는 밤 11시 4분에 왔다.서린은 옥탑방 책상에서 계약서 사본을 봉투에 넣고 있었다. 오후에 서명한 종이였다. 잉크가 아직 조금 번질 것 같아서 한 장씩 사이에 습자지를 끼웠다. 휴대폰 화면에 「실장님」이 떴다."서린 씨, 자요?""아뇨.""그럼 지금 바로 유세아 계정 들어가 봐요. 바로요."지현의 목소리가 떨렸다. 화난 떨림인지 겁난 떨림인지 서린은 구별하지 않았다. 스피커로 돌리고 화면을 열었다.글은 짧았다.「N은 제 향을 훔친 표절 조향사입니다. 태강그룹 전 며느리 한서린 씨가 N이라는 건 평가회에 계셨던 분들이 다 아십니다. 저는 그날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말하겠습니다. 아래는 N 작업실 직원이 새벽에 금고를 여는 장면입니다. 이 금고에 무엇이 들어갔는지, N이 답해야 합니다.」그 아래 사진이 한 장 붙어 있었다.회색 철제 금고. 그 앞에 쪼그려 앉은 사람. 동그란 안경, 두 번 묶은 운동화 끈. 천장 카메라가 비스듬히 내려다본 각도였지만 얼굴은 흐리게 가리지 않았다. 누가 봐도 구하람이었다.사진 오른쪽 아래가 잘려 있었다. 원래 날짜와 시각이 찍혀 있어야 할 자리였다."이거 우리 CCTV잖아요. 지워진 15분. 그게 왜 저 여자한테…….""수진 씨가 가지고 있었겠죠.""서린 씨는 왜 이렇게 태연해요!"서린은 대답하지 않고 사진을 크게 키웠다. 하람의 손이 금고 안쪽으로 들어가 있었다. 무언가를 넣는 손인지 꺼내는 손인지, 사진 한 장으로는 알 수 없었다. 향은 시간이 지나야 정체를 드러내는데, 사진은 시간을 잘라 버린다. 세아는 그걸 알고 이 한 장을 골랐다.댓글 수가 새로고침할 때마다 백 단위로 올랐다.「헐 재벌 며느리가 N이었어?」「이혼하자마자 남의 향으로 브랜드 낸 거네」「직원 얼굴 그대로 올려도 되나……」마지막 댓글은 금방 밀려 내려갔다."하람이는요?"지현이 물었다. 서린은 그제야 손을 멈췄다."전화해 볼게요. 실장님은 주무세요. 내일 일찍 오시고요.""이 상황에 잠이 와요?""안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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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승아네

"짐 싸."오승아는 전화로 인사 대신 그 말부터 했다."기사 봤어. 너 거기 계속 있으면 저 사람들 밤새 벽돌 건물 올려다보고 있을 거야. 옥탑방 창문에 불 켜지는 것까지 찍어서 올린다. 내가 아는 기자들이 그래.""작업실은?""작업실은 낮에 가. 잠은 우리 집에서 자. 토 달지 마."서린은 토를 달지 않았다. 옷 가방 하나에 옷 세 벌과 수첩, 노트북, 그리고 7번 병을 넣었다. 금고에서 옥탑방으로 옮겨 두었던 마지막 한 병이었다. 남의 집에 신세를 지러 가면서도 그 병만은 두고 갈 수 없었다.내려가기 전에 작업실에 들렀다. 지현이 아직 불을 켜 두고 원료 주문서를 쓰고 있었다. 서린을 보자 펜을 내려놓았다."가요?""며칠만요. 실장님도 오늘은 뒷문으로 나가세요.""나는 괜찮아요. 도시락 아줌마잖아요."지현이 웃으려다 말았다. 대신 책상 서랍에서 작은 병 하나를 꺼내 서린의 가방 옆주머니에 꽂았다. 라벨도 없는 병이었다. 서린은 뚜껑을 열지 않고도 알았다. 캐모마일과 약간의 라벤더. 지현이 잠 못 드는 밤마다 베개에 뿌리는 것이었다."승아 씨네 가서 뿌리고 자요. 남의 집 베개는 냄새가 달라서 잠이 안 와."밤 아홉 시, 승아의 차가 인쇄소 뒤편 좁은 길에 섰다. 서린은 뒷문으로 나가 조수석에 탔다. 골목 입구 쪽에서는 아직 카메라 불빛이 두어 개 깜빡이고 있었다.빵집 앞 벤치에 남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검은 패딩에 빵 봉투를 무릎에 올려 둔 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서린은 창밖으로 그 남자를 잠깐 보았다. 아침에도 저 벤치에 누가 앉아 있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왜?""아니야.""아니긴. 너 그 얼굴 할 때마다 뭐 맡은 거잖아.""빵 냄새."승아가 콧방귀를 뀌고 액셀을 밟았다.성수대교를 건너는 동안 둘은 말이 없었다. 라디오에서 교통 정보가 흘러나왔다. 승아의 차 안은 늘 그랬듯 방향제가 없었다. 대신 뒷좌석에 쌓인 서류 봉투에서 종이 냄새가, 컵홀더에 꽂힌 빈 커피 컵에서 식은 원두 냄새가 났다.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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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원본증명

승아의 사무실 회의 탁자 위에 종이 열한 장이 나란히 놓였다.「영업비밀 원본증명서」. 맨 위에 적힌 제목은 전부 같았다. 다른 건 아래쪽의 번호와 날짜뿐이었다. 서린이 2년 반 동안 한 장씩 모은 종이였다. 7번이라는 이름도 없는 향이 버전을 바꿀 때마다, 펜트하우스 부엌 식탁에서 전자지문을 뽑아 올린 기록."이게 다야?"승아가 물었다. 서린은 3년 전 어느 현관에서 들은 말을 떠올렸다. 같은 말인데 전혀 다르게 들렸다."응. 이게 다야.""충분하네."문이 열리고 지현과 하람이 들어왔다. 하람은 여전히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사흘 만에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지현이 하람의 등을 가볍게 밀어 의자에 앉혔다."하람 씨, 부탁할 게 있어요."서린이 종이 열한 장을 하람 앞으로 밀었다."이거 표로 정리해 줄래요? 버전 번호, 등록 번호, 등록 날짜, 그 버전에서 바뀐 원료. 바뀐 원료는 제가 불러 줄게요."하람이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손끝이 망설였다."……제가 해도 돼요? 저, 이거랑 관련된 사람인데.""그래서 하람 씨가 해요. 누구보다 이 향을 잘 아니까."하람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마스크를 턱 밑으로 내리고 노트북을 열었다.* * *한 시간 동안 사무실에는 두 사람의 목소리만 오갔다."1번 버전.""등록 번호 앞자리 2, 날짜는 2년 전 3월 14일이요. 어, 2번부터 5번까지도 전부 같은 날이에요. 번호만 이어지고요.""그날 한꺼번에 했어요. 그 전에는 노트에만 적어 뒀어요. 1번은 바뀐 원료 없음. 뼈대만 있었어요. 젖은 돌, 삼나무 기름, 머스크."하람이 받아 적었다. 키보드 소리가 빠르고 고르게 났다.서린은 첫 번째 종이를 손끝으로 눌렀다. 결혼하고 맞은 첫봄이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저녁 식탁 앞에서, 그때까지 노트에만 있던 다섯 버전을 한꺼번에 올렸다. 그런데 이 향이 처음 시작된 건 그보다 훨씬 전, 3년 전 9월이었다. 성수동 작업실 2층, 지금은 하람이 앉는 창가 자리에서였다.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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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게오르크

영상은 3분 12초였다.게오르크라는 노인은 천천히 말했다. 독일어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한국어 자막이 두 줄씩 떴다. 목소리는 낮고 쉬어 있었다. 말 사이사이에 마른기침이 섞였다.「세아의 할아버지와 나는 젊을 때 같은 오케스트라 뒤편에서 일했습니다. 그는 악기를 고쳤고, 나는 향을 만들었습니다.」「흰 목련과 비에 젖은 돌. 그 향은 내가 세아에게 줬습니다. 그 아이가 열여섯 살 때, 처음 첼로 콩쿠르에서 떨어진 날에.」「누가 그 향을 자기 것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빈에 와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마지막 장면에서 노인은 작은 유리병을 카메라 쪽으로 들어 보였다. 병 안의 액체가 창가 햇빛에 옅은 호박색으로 빛났다. 그리고 영상이 끝났다.아침 여덟 시에 기사 제목이 바뀌어 있었다.「빈 원로 조향사 "그 향은 내가 세아에게 줬다"」「N 원본증명 vs 60년 공방 증언… 진실은?」댓글은 다시 반으로 갈렸다. 어제 N 쪽으로 기울었던 사람들 가운데 절반이 돌아섰다. 「날짜는 서류고 할아버지는 사람이잖아」라는 댓글에 좋아요가 삼천 개 붙었다.* * *작업실에서 지현은 아침부터 같은 영상을 다섯 번째 돌려 보고 있었다."저 할아버지 진짜 있는 사람이에요? 연기면 너무 잘하는데. 나 저 기침 소리에 좀 넘어갈 뻔했어요.""있는 사람일 거예요."서린이 말했다. 작업대에서 시향지를 자르는 중이었다. 가위 소리가 일정했다."있는 사람인데요?""사람은 있는데, 조향사는 아닐 거예요."지현이 영상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서린은 가위를 내려놓고 화면 앞으로 왔다. 1분 40초 근처로 영상을 돌렸다. 노인이 시향지를 들고 코에 가져가는 장면이었다."손 보세요."지현이 안경을 이마에서 내려 썼다."시향지 한가운데를 잡았어요. 향이 묻는 끝에서 제일 먼 쪽이 아니라, 가운데요. 저렇게 잡으면 손가락 냄새가 같이 올라와요. 조향 처음 배우는 날 실장님이 제일 먼저 고쳐 준 게 그거였잖아요.""……맞아요. 끝을 잡아라, 코는 종이 끝에서 한 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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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빈

빈의 12월 아침은 계피 냄새로 시작했다.골목마다 크리스마스 시장이 서 있었다. 나무 판잣집 지붕에 전구가 매달려 있었고, 뜨거운 와인을 파는 솥에서 정향과 오렌지 껍질 냄새가 김과 함께 올라왔다. 윤이안은 코트 깃을 세우고 그 사이를 지나갔다. 파리보다 공기가 한 겹 더 차고 말랐다. 숨을 들이쉬면 코끝이 먼저 아팠다.주소는 어제 오후 다섯 시에 왔다. 서울은 새벽 한 시였을 것이다. 캡처 두 장, 지도 링크 하나, 그리고 짧은 문장.「22번지 2층입니다. 1층은 기념품 가게. — 차도혁」인사도 없었다. 이안은 그 문장을 한참 보다가, 그 남자다운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우스웠다. 10년 동안 N을 찾아다닌 자신보다, 향을 모르는 그 남자가 먼저 창밖을 보았다.초록 간판의 카페는 지도에 찍힌 그대로 있었다. 23번지. 그 건너편 22번지 1층에서 중년 여자가 가게 문을 열고 있었다. 붉은 스카프를 두른 여자가 진열창의 스노볼을 하나씩 닦았다.이안은 가게로 들어갔다.진열대에는 작은 바이올린 모형, 작곡가 얼굴이 찍힌 초콜릿 상자, 눈 내리는 유리구슬이 빼곡했다. 가게 안쪽 벽에는 향수병 모양의 유리 장식품이 걸려 있었다. 속에 색깔 있는 물이 담겨 있었다. 향은 없었다."2층을 볼 수 있을까요."주인이 닦던 스노볼을 내려놓고 이안을 위아래로 보았다."또 촬영이에요? 이번 달에만 두 번째네."* * *2층은 창고였다.아니, 창고를 방처럼 꾸며 둔 곳이었다. 영상 속 나무 선반이 그대로 있었다. 갈색 유리병이 빼곡했다. 이안은 병 하나를 집어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물이 들어 있었다. 차에 우린 것 같은 옅은 갈색 물. 옆 병도, 그 옆 병도 같았다.그는 방 한가운데 서서 숨을 들이쉬었다.먼지. 크리스마스 장식 상자에서 나는 계피 향 방향제. 1층에서 올라오는 초콜릿 포장지 냄새. 그리고 바닥 틈에서 올라오는 오래된 나무 냄새.없는 것이 있었다.향을 만드는 방은 나무에 알코올이 스며 있다. 원료를 쏟고, 닦고, 또 쏟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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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하람의 결심

영상은 새벽 세 시에 도착했다.서린은 승아네 소파에서 그 알림을 들었다. 소송이가 가슴 위에서 고개를 들었다. 휴대폰 화면에 이안의 이름과 파일 하나. 6분 40초. 그 아래 한 줄.「대본 없이 찍었습니다. 판단은 한서린 씨께 맡기겠습니다.」서린은 이어폰을 끼고 영상을 끝까지 보았다. 분장실 거울, 붉게 남은 수염 자국, 쉰 목소리. 마지막에 노인이 손을 들어 턱선 높이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시늉을 했다. 단발머리.그녀는 영상을 한 번 더 보지 않았다. 필요한 건 다 들었다. 대신 휴대폰을 가슴 위에 엎어 두고 천장을 보았다. 소송이가 휴대폰 위로 턱을 괴었다. 고양이 털에서 나는 햇볕 냄새가 새벽 공기 속에 조금 식어 있었다.순서의 셋째 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넷째 줄이 먼저 올 것 같았다. 서린은 그걸 알았다.* * *아침 아홉 시, 작업실.서린은 노트북을 작업대 가운데 놓고 영상을 틀었다. 지현이 팔짱을 끼고 보았다. 하람은 조금 떨어진 창가 자리에서 보았다.노인이 영수증을 꺼낼 때 지현이 "아이고" 했다. 노인이 광고 촬영인 줄 알았다고 할 때 지현이 "세상에" 했다. 노인이 대본을 준 사람의 머리 모양을 손으로 그려 보일 때, 지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수진 씨예요."목소리가 이상하게 차분했다. 사흘 내내 떨리던 목소리가 아니었다."7월에 저한테 처음 연락한 사람도 저 사람이에요. 병원 앞 카페에서 만났어요. 엄마 투석비 얘기를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요. 저 사람이 먼저 말했어요. 사정이 급하시죠, 하고.""하람 씨.""대표님, 저 결심했어요."하람이 일어섰다. 두 손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가 뺐다."제가 다 말할게요. 영상으로요. 제 얼굴 나온 그 사진 옆에 제 얼굴로 다시 나가서, 제가 7월 19일 새벽에 금고 열었다고, 병 꺼내서 저 사람한테 줬다고, 오백만 원 받았다고. 그럼 N이 도둑이 아니라는 거, 다들 알잖아요. 대표님 이름에 붙은 거 다 떨어지잖아요."작업실이 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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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머스크 T-7

라벨티 연구소 3층 세미나실에는 의자가 쉰 개 놓였다.그중 마흔한 개가 찼다. 기자가 스물여섯, 향 커뮤니티 운영자가 셋, 라벨티 연구원이 여덟, 그리고 맨 앞줄 가운데에 남궁혜가 앉아 있었다. 일흔셋의 원로 조향사는 회색 숄을 두르고 지팡이를 무릎에 비스듬히 기대 두었다. 기자들이 사진을 찍으려 하자 손바닥을 들어 막았다. 한 번에 모두 멈췄다.맨 앞줄 오른쪽 끝에 빈 의자가 하나 있었다. 등받이에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유세아 측」.초대장은 일주일 전에 보냈다. 답은 오지 않았다. 표상진 대표가 두 번 전화를 걸었고, 두 번 다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갔다.세미나실 뒤쪽 벽에 도혁이 서 있었다. 라벨티 TF 책임자 자격이었다. 의자에 앉지 않았다. 팔짱도 끼지 않았다. 강민재가 옆에서 의자를 권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 이 방에서 앉아야 할 사람은 따로 있었다.그 사람은 단상 옆 작은 탁자에 앉아 있었다.한서린. 검은 니트에 머리를 하나로 묶었다. 명찰은 달지 않았다. 대신 탁자 위에 종이 한 장이 세워져 있었다. 「N」.기자 하나가 속삭였다. 진짜 얼굴을 보여 주네. 옆 기자가 대답했다. 이제 숨길 게 없다는 거지.서린은 그 말을 들었다. 탁자 밑에서 휴대폰이 한 번 떨렸다. 하람이었다. 첫 경찰 조사를 마치고, 다음 부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대표님, 저 오늘 엄마 투석실 앞에서 생중계 기사 계속 새로고침하고 있을게요. 원료장 셋째 칸 병, 오늘 아침에 제가 먼지 닦아 놨어요.」서린은 답장을 짧게 보냈다. 「봤어요. 반짝이던데요.」 그리고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 *백 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오늘 분석은 라벨티 연구소가 아니라 외부 공인 분석기관에서 했습니다. 저희는 장소만 빌려 드립니다. 저희가 하면 태강 편이라고 하실 테니까요."작은 웃음이 돌았다. 백 소장은 웃지 않았다. 그는 연구소 사람답게 하얀 가운 소매를 두 번 접어 올리고 있었다.단상 위에 커다란 화면이 켜졌다. 분석기관에서 온 연구원이 앞으로 나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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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단발머리

사흘 동안 휴대폰이 꺼져 있던 사람은 나흘째 저녁 골목에 서 있었다.여섯 시 십 분이었다. 해는 이미 졌다. 인쇄소 셔터가 반쯤 내려와 있었고, 그 앞 가로등 아래 여자 하나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서 있었다. 턱선에서 자른 단발. 화장기 없는 얼굴. 발밑에 담배꽁초가 세 개 있었다. 코트 어깨에 인쇄소 셔터의 먼지가 희게 묻어 있었다.서린은 빵집에서 나오던 참이었다. 소금빵 봉투를 든 채 걸음을 멈췄다.민수진이었다.빵집 앞 벤치에서 검은 패딩의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요 며칠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였다. 서린은 그쪽을 보지 않고 고개만 아주 조금 저었다. 남자가 다시 앉았다. 빵 봉투를 무릎에 올려놓았다. 누가 시켰는지 물을 필요는 없었다."한서린 씨."수진이 먼저 말했다.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10분만 시간 주세요. 그 뒤엔 안 올게요."서린은 수진을 보았다. 그리고 수진의 발밑 꽁초를 보았다. 한 시간은 기다린 사람이었다."올라와요. 밖은 추워요."수진이 놀란 얼굴을 했다. 문전박대를 예상하고 온 얼굴이었다. 서린은 소금빵 봉투를 다른 손으로 옮겨 들고 건물 입구로 걸었다. 뒤에서 수진이 담배를 비벼 끄는 소리가 났다. 꽁초를 줍는 소리도 났다. 서린은 그걸 듣고 돌아보지 않았다.* * *작업실에는 지현이 남아 있었다. 문이 열리고 수진이 들어오자 지현이 의자에서 반쯤 일어섰다. 손에 들고 있던 시향지가 바닥에 떨어졌다."실장님, 차 한 잔만 부탁해요. 세 잔이요."지현은 서린을 한 번, 수진을 한 번 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주전자에 물을 받았다. 물 받는 소리가 평소보다 컸다. 찬장에서 보리차 티백을 꺼내는 손도 거칠었다. 티백 상자가 한 번 떨어졌다. 지현은 그걸 줍고, 잠깐 망설이다가 제일 좋은 잔 세 개를 꺼냈다. 손님은 손님이었다.수진은 작업실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원료장, 작업대, 창가 자리. 그리고 원료장 뒤 회색 철제 금고. 수진의 시선이 거기서 멈췄다."……여기구나."혼잣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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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동경

안쪽 작은 침실은 비어 있었다.유세아는 한남동 호텔 스위트룸의 거실에서 그 방 문간까지 걸어가 안을 보았다. 침대 위 이불이 반듯하게 개어 있었다. 옷장 문이 조금 열려 있었고, 옷걸이 여섯 개가 빈 채로 흔들렸다. 책상 위에는 이 방 카드 키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에 쪽지 같은 건 없었다.빈에서 3년, 서울에서 석 달. 옆방에 누가 살았는지, 세아는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수진은 늘 거기 있었다. 새벽에 연습실 문을 열어 주고, 공연 전에 활에 송진을 먹여 두고, 울 때 휴지를 건넸다. 거기 있는 게 당연한 사람이었다. 당연한 것은 없어지기 전까지 보이지 않았다.욕실에 가 보았다. 선반에 샴푸가 한 병만 남아 있었다. 흰 장미와 분가루 냄새가 나는, 세아의 것. 수진은 3년 동안 따로 샴푸를 사지 않았다. 세아의 것을 같이 썼다. 이제야 그게 생각났다.세아는 거실로 돌아와 첼로 케이스를 열었다.첼로가 아니라 케이스 뚜껑 안쪽이 보고 싶었다. 악보를 넣는 얇은 주머니. 그 안에 손을 넣으면 늘 같은 것이 만져졌다. 작고 각진 유리병. 뚜껑을 열어도 이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병. 라벨에 인쇄된 한 글자만 닳지 않고 남아 있었다.N. 그리고 그 아래 작은 숫자, 6.* * *5년 전, 빈.스물여섯의 세아는 매일 밤 연습실에서 울었다. 무대에만 오르면 왼손이 굳었다. 음이 떨렸다. 교수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 문제라고 했다. 네 소리에는 네가 없다고. 서울에서는 천재 소리를 듣던 손이 빈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그날도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비가 왔다. 비를 피하려고 들어간 곳이 구시가지의 작은 향수 편집숍이었다. 점원이 시향지 하나를 건넸다. 파리에서 들어온 거예요. 조향사 얼굴이 없어요.세아는 그 종이를 코에 댔다.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았다. 차 잎과 무화과, 흔한 시작이었다. 그런데 십 분쯤 지나자 무언가가 올라왔다. 따뜻하고 조용한 것. 어릴 때 엄마 무릎에 누워 있으면 나던 냄새 같기도 했고,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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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태강의 입장

첫 번째 초안은 A4 두 장이었다.홍보실이 밤새 쓴 문장이었다. 「태강그룹은 최근 불거진 일련의 사안에 대하여 깊은 유감을 표하며」로 시작해서, 「향후 관계 기관의 판단을 존중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서」로 끝났다. 가운데에는 유세아라는 이름도, N이라는 이름도 없었다.강민재가 그 두 장을 들고 전무실에 들어갔다. 도혁은 첫 문단만 읽고 종이를 돌려주었다."짧게."강민재가 나가서 한 장으로 줄였다. 다시 들어갔다."짧게."반 장이 되었다."짧게."오전 열 시가 넘어가자 강민재는 더 이상 홍보실에 가지 않았다. 자기 자리에서 직접 고쳤다. 「깊은 유감」을 지웠다. 「일련의 사안」을 지웠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을 지웠다. 지울 때마다 문장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그런데 도혁은 그때마다 같은 말을 했다."짧게."여섯 번째에 강민재는 전무실 문 앞에서 한 번 숨을 골랐다. 일곱 번째에는 커피를 한 잔 더 탔다. 여덟 번째 초안을 돌려보낸 뒤 도혁은 창가에 섰다. 스스로도 왜 이렇게까지 줄이는지 알았다. 이 문장을 읽을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 긴 문장을 싫어하는 사람. 입장문 하나를 쓰면서도 설명을 다 빼고 날짜와 번호만 남긴 사람. 그 사람이 읽다가 한 줄이라도 꾸민 말을 만나면 거기서 화면을 끌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울 말이 더 보였다. 창밖으로 12월의 햇빛이 유리에 부딪혀 하얗게 번졌다. 그는 그 빛을 한참 보다가 책상으로 돌아가 아홉 번째를 기다렸다.아홉 번째에 홍보실장이 직접 올라왔다."전무님, 이렇게 짧으면 성의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유세아 씨 이름을 직접 쓰는 건 좀……. 그쪽 집안이 재단 시절부터 저희랑 인연이 있는 집이라, 이사님들 중에도 불편해하시는 분이 계십니다.""누구요.""예?""불편해하시는 이사님이 누구냐고요."홍보실장이 입을 다물었다. 대답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쇼케이스를 밀어붙였던 이사들. 어머니의 재단 시절부터 가까웠던 얼굴들."그분들한테 전해 주세요. 불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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