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이혼 서류는 내가 먼저 냈다: Kapitel 21 – Kapitel 30

100 Kapitel

21화. N입니다

아침 일곱 시, 옥탑방 문이 두 번 울렸다.지현이었다. 한 손에 보온병, 다른 손에 은박지로 싼 김밥 두 줄을 들고 있었다. 눈 밑이 거뭇했다. 서린보다 덜 잔 얼굴이었다."먹고 가요. 빈속에 가면 안 돼요.""실장님이 가는 것도 아닌데요.""그러니까요. 내가 가는 것보다 더 떨려요."지현은 김밥을 접시에 옮기며 서린의 옷을 위아래로 훑었다. 회색 코트, 검은 바지. 그리고 현관에 놓인 흰 운동화에서 눈이 멈췄다."……구두 안 신어요? 태강 본사인데.""걸어서 들어갈 거예요. 제 발로요."지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대신 보온병 뚜껑을 열어 보리차를 따랐다. 구수한 김이 올라왔다. 서린은 김밥 한 조각을 집었다. 참기름 냄새, 단무지 냄새. 시금치를 너무 오래 데쳤는지 조금 물렀다. 지현이 새벽에 싼 김밥이었다."맛있어요.""거짓말. 시금치 물렀잖아요.""그래도 맛있어요."지현이 코를 한 번 훌쩍였다. 그러고는 괜히 창문을 열었다. 골목 아래 빵집에서 첫 반죽 굽는 냄새가 올라왔다.* * *월요일 아침, 태강그룹 본사 로비는 늘 같은 냄새가 났다.대리석 바닥을 닦은 세제의 레몬 향. 회전문으로 밀려 들어오는 11월의 찬 공기. 그리고 로비 한가운데 커다란 화분에서 올라오는 젖은 흙냄새. 서린은 3년 동안 이 냄새를 일 년에 두어 번 맡았다. 회장 생신이나 창립 기념 행사 때, 도혁의 팔을 잡지 않고 반 걸음 뒤에서 걸어 들어오며.오늘은 혼자였다.아홉 시 사십 분. 서린은 안내 데스크 앞에 섰다. 회색 코트, 검은 바지, 운동화. 머리는 낮게 묶었다. 가방에는 서류 봉투 하나와 시향지 몇 장이 들어 있었다."방문 등록 도와드릴까요?""네. 22층 라벨티 TF 회의요."직원이 모니터를 확인하더니 잠깐 멈칫했다. 서린을 한 번 보고, 화면을 한 번 더 보았다."성함이…….""N으로 되어 있을 거예요."직원은 더 묻지 않았다. 방문증이 인쇄되어 나왔다. 목걸이 줄이 달린 흰 카드였다. 이름 칸에 N 한 글자.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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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처음부터요

회의는 한 시간 반 동안 이어졌다.도혁이 나간 뒤 회의실의 공기는 한동안 어색하게 굳어 있었다. 표상진이 먼저 그 공기를 깼다. 숫자만 믿는 사람답게, 그는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고 계약금 이야기부터 꺼냈다. 서린은 그게 고마웠다.조건 셋은 그대로 회의록에 올라갔다. 전략실 부장이 한 줄씩 읽어 확인했고, 서린은 한 줄씩 고개를 끄덕였다. 백 소장은 회의 내내 거의 말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딱 한 번 물었다."원본증명, 7번도 있습니까.""열한 개 있어요."백 소장은 더 묻지 않았다. 코를 한 번 만지고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서린은 그 수첩의 글씨를 읽지 않았다. 읽지 않아도 알았다. 지난주 연구소에 들어온 시제품 하나의 이름일 것이다.회의 중간에 비서가 차를 새로 내왔다. 서린은 찻잔에 코를 먼저 댔다. 현미녹차였다. 3년 동안 본가 행사 때마다 태강 사람들이 내오던 그 차. 그녀는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맛은 3년 전과 같았다. 달라진 건 그녀가 앉은 자리였다.열한 시 반, 회의가 끝났다.표상진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하겠다고 했다. 서린은 정중하게 사양했다. 복도 끝 화장실에 들렀다 가겠다고 했다. 표상진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고 회의실로 돌아갔다.복도는 길었다. 한쪽 벽이 통유리였고, 유리 너머로 라벨티 연구원들이 쓰는 작은 사무실이 보였다. 흰 가운을 입은 젊은 여자 둘이 복도 끝 정수기 앞에 서 있었다. 서린이 지나가자 둘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그러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야, 네가 말해.""아니, 네가 먼저 말하자며.""……저, N 선생님. 사인……."말이 거기서 끊겼다. 찌른 쪽도 찔린 쪽도 얼굴이 빨개졌다. 둘은 서로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쿡쿡 웃었다. 한 사람의 가운 주머니에 시향지가 한 뭉치 꽂혀 있었다. 시트러스, 앰버, 그리고 아주 조금의 바닐라. 오전 내내 무언가를 맡고 있었던 손이었다.서린은 걸음을 멈췄다."명함 있어요?""네? 아, 네!"한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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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블라인드

화요일 아침, 작업실 벽에 못 하나가 새로 박혀 있었다.하람이 출근해서 제일 먼저 본 게 그 못이었다. 원료장 옆, 10년 전 개업 날 찍은 사진 액자 바로 아래. 누가 박았는지는 물을 필요가 없었다. 작업대 위에 망치가 그대로 놓여 있었고, 지현이 의자 위에 올라가 빈 액자를 대 보고 있었다."실장님, 뭐 하세요?"지현이 화들짝 놀라 의자에서 휘청했다. 하람이 달려가 의자 다리를 잡았다."아, 아무것도 아니야."지현의 손에 액자가 들려 있었다. 사진이 들어갈 자리에 작은 종이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하람이 고개를 기울여 들여다보았다.「태강그룹 라벨티 대표이사 표상진」명함이었다. 어제 서린이 회의에서 받아 온 것을 지현이 달라고 해서 가져간 그 명함."……실장님, 이거 액자에 넣으신 거예요?""넣은 게 아니라, 그냥, 보관을 좀…….""못까지 박으셨잖아요."지현의 귀가 빨개졌다. 그녀는 액자를 등 뒤로 감추며 의자에서 내려왔다."10년이야, 하람아. 10년 동안 파리 사람들이 이 골목 모르고 지나갔어. 우리 N이 이제 대한민국 제일 큰 회사 22층에 들어갔다고. 명함 하나 거는 게 뭐가 어때서.""안 어때요. 근데 이거 대표님 이름이 너무 크게 보여요. 우리 작업실에 이 아저씨가 제일 높은 사람처럼 걸려 있잖아요."지현이 액자를 내려다보았다. 표상진이라는 세 글자가 작업실 벽 한가운데를 차지할 뻔했다. 그녀는 한참 고민하더니 액자를 서랍에 넣었다."……나중에 N 계약서 나오면 그거 걸자.""그게 더 이상해요, 실장님."둘이 동시에 웃었다. 하람의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웃다가 멈추고, 휴대폰을 한 번 보고, 다시 제 책상으로 돌아갔다. 지현은 그 등을 보다가 망치를 공구함에 넣었다. 서린은 계단참에서 그 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람의 소매에서 오늘도 소독약 냄새가 났다. 어제보다 조금 더 짙었다.* * *오후 두 시, 작업실 전화가 울렸다.N의 공식 번호였다. 10년 동안 이 번호로 걸려 온 전화는 거의 지현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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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소독약 냄새

하람은 사흘 동안 출근하지 않았다.첫날 아침에는 문자가 왔다. 「실장님 죄송해요. 엄마가 좀 안 좋으셔서 오늘 못 나가요.」 둘째 날에는 문자가 조금 늦게 왔다. 열한 시가 넘어서였다. 셋째 날에는 오지 않았다.지현은 셋째 날 오후 내내 휴대폰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전화를 걸면 하람이 받지 않을 것 같았다. 받지 않으면 더 걱정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걸지 않았다. 대신 원료 주문서를 두 번이나 잘못 썼다."실장님."서린이 작업대에서 고개를 들었다."하람 씨 어머님, 어느 병원이에요?"지현이 멈칫했다."……건대 쪽 신장내과요. 입사할 때 비상 연락처 적으면서 알게 됐어요. 투석하신대요. 일주일에 세 번. 하람이가 한 번도 먼저 말한 적은 없는데.""오늘이 투석하시는 날이에요?""월, 수, 금이요. 오늘 금요일이니까……."서린은 앞치마를 벗었다. 옷걸이에서 코트를 내렸다."다녀올게요.""서린 씨, 지금 가면 하람이가……."지현이 말을 삼켰다. 가면 하람이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요. 그 말을 하려다 만 것이었다. 금고 이야기, 봉투 이야기, 한남동 카페 이야기. 그 모든 걸 서린이 이미 알고 있다는 걸 하람만 몰랐다."아무 얘기도 안 들을 거예요."서린이 말했다."그냥 빵 주고 올게요."* * *같은 시각, 태강 본사 22층 집무실.강민재가 서류철 세 권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두께가 한 뼘은 되었다. 사흘 밤을 새운 얼굴이었다."N 관련 자료입니다. 10년 치요. 공개된 건 전부 모았습니다. 공모전 기록, 협업 브랜드, 출시한 향 여섯 개의 원료 분석 기사, 파리 업계 인터뷰에서 N이 언급된 부분까지요."도혁은 첫 권을 펼쳤다. 맨 앞장에 10년 전 그라스 학생 공모전 결과표 사본이 있었다. 1등, 2등, 그리고 3등 칸. 이름 대신 N 한 글자. 국적 칸에는 「Corée」.그 아래 4등 칸에 윤이안의 이름이 있었다.도혁은 그 두 줄을 오래 보았다. 열아홉 살의 아내와 스물두 살의 그 남자가 같은 종이 위에 한 칸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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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알아요

월요일 아침 아홉 시 사십 분, 하람이 작업실 문을 열었다.평소보다 20분 일렀다. 동그란 안경, 대충 묶은 머리, 금요일 병원에서 입었던 카디건.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늘 들고 오던 편의점 커피도 없었다.지현은 원료 주문서를 쓰다가 고개를 들었다. 하람의 얼굴을 보고 볼펜을 내려놓았다.서린은 창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앞에 찻잔이 둘 놓여 있었다. 하나는 김이 올라왔고, 하나는 비어 있었다. 서린은 빈 잔에 차를 따랐다. 보리차였다."앉아요, 하람 씨."하람은 앉지 않았다. 테이블 앞에 선 채 두 손을 모아 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서린 씨. 저 말할게요. 이번엔 끊지 마세요."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찻잔을 하람 쪽으로 밀어 두었다. 그리고 기다렸다.하람이 숨을 들이쉬었다. 첫 마디가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두 번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세 번째에 말이 쏟아졌다."7월 19일 새벽이었어요. 두 시쯤. 금고 열었어요. 비밀번호는 실장님이 원료장 앞에서 누르실 때 뒤에서 봤어요. 몇 번 보니까 외워졌어요. 7번 병 하나 꺼냈어요. 그리고 CCTV, 그 시간 거 지웠어요. 15분이요. 제가 지웠어요."지현이 눈을 감았다. 알고 있던 일이었다. 그래도 하람의 입으로 듣는 건 달랐다."병은 민수진이라는 사람한테 줬어요. 유세아 씨 매니저요. 엄마 병원비가 밀려서, 투석 횟수가 늘어서, 대학 병원 쪽으로 옮기라고 해서, 그러다 어디서 제 사정을 들었는지 그 사람이 먼저 연락이 왔어요. 향 하나만, 아무도 모르는 거 하나만 가져오면 된다고. 500만 원이요. 받았어요."하람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그다음엔 노트 사진이요. 두 달 뒤에 또 연락이 왔어요. 병이 바닥나기 전에 배합표가 필요하다고. 금고에서 노트 꺼내서 찍었어요. 7번 수정본이라고 적힌 거요. 또 봉투 받았어요. 그리고 원료장 셋째 칸, 갈색 병. 거기서 5그램 덜어 갔어요. 노트에 그 병이 적혀 있어서요."말이 끝나자 작업실이 조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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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사돈

화요일 오후 한 시, 강민재는 책상 밑에서 김밥을 먹고 있었다.정확히는 책상 위에서 먹었다. 다만 집무실 문이 열릴 때마다 은박지를 반쯤 접어 서류철 뒤로 밀어 넣었다. 5년째 하는 동작이라 손이 알아서 움직였다. 편의점 참치마요 김밥. 오늘은 오전 회의가 두 개 겹쳐서 점심 시간을 놓쳤다.집무실 문이 열렸다. 은박지가 서류철 뒤로 들어갔다.도혁이 나왔다. 코트를 팔에 걸고 있었다. 오후 두 시 외부 일정이 있었다. 그는 강민재의 책상 앞을 지나가다 멈췄다. 서류철 뒤로 비죽 튀어나온 은박지 끝을 보았다. 참기름과 마요네즈 냄새가 책상 주변에 남아 있었다.도혁이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는 얼굴을 했다. 그리고 말했다."밥 먹었어요?"강민재가 막 삼킨 김밥이 목에 걸렸다.그는 기침을 했다. 한 번, 두 번, 멈추지 않았다. 얼굴이 빨개졌다. 도혁이 책상 위 생수병을 집어 뚜껑을 따서 내밀었다. 강민재는 그걸 받아 반 병을 마셨다. 그래도 기침이 잦아들지 않았다."……괜찮아?""네, 네. 괜찮, 괜찮습니다."강민재가 눈물이 맺힌 눈으로 도혁을 올려다보았다. 5년이었다. 5년 동안 도혁이 그에게 한 질문은 전부 일에 관한 것이었다. 보고서 올렸어, 일정 바꿨어, 그 건 어떻게 됐어. 밥 이야기는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 그것도 존댓말로.도혁도 자기가 방금 한 말을 되짚는 얼굴이었다. 입에 익지 않은 말이 엉뚱한 모양으로 나온 것을 뒤늦게 안 사람처럼. 공책 한 권이 떠올랐다. 「강민재 비서 — 점심을 자주 거름. 편의점 김밥. 명절 선물은 한우보다 과일 좋아함.」 서린의 글씨였다. 그 공책에는 집사람, 기사, 경비, 비서까지 이 남자 주변 사람들이 전부 적혀 있었다."……먹었냐고."도혁이 반말로 다시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어색했다."지, 지금 먹고 있었습니다.""다 먹고 해. 두 시 일정은 나 혼자 가.""네? 아니, 전무님, 그건 제가 자료를—""자료는 태블릿에 있잖아. 앉아서 먹어. 체해."마지막 말은 거의 중얼거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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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아빠

"여기서 말고요."서린이 먼저 말했다. 로비 한가운데였다. 김 반장이 게이트 옆에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보지 않는 척하는 고개였다. 출입증을 찍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흘끗거렸다."저기 카페로 가요. 20분만요. 세 시에 약속이 있어요."한기택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딸의 목에 걸린 흰 카드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였다. 걸음을 옮기면서도 두 번이나 그 카드를 돌아보았다. 잘못 본 게 아닌지 확인하려는 사람처럼.로비 옆 카페는 태강 직원들로 반쯤 차 있었다. 원두 볶는 냄새, 우유 스팀 냄새, 캐러멜 시럽 냄새. 서린은 카운터를 지나쳤다. 카페 입구 옆 편의점에 들어갔다. 냉장고 문을 열고 보리차 한 병을 꺼냈다. 천이백 원.한기택이 뒤따라 들어와 그 병을 보았다."커피 안 마시냐. 아빠가 사 줄게.""이게 좋아요."3년 동안 본가에서 내오는 커피는 늘 입에 맞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고른 원두였다. 산미가 강하고 끝이 썼다. 서린은 한 번도 남기지 않았다. 남기면 말이 나왔다. 대신 집에 돌아오면 보리차를 끓여 마셨다. 입 안에 남은 쓴맛을 구수한 것으로 덮으려고.오늘은 처음부터 보리차였다.한기택은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켰다. 두 사람은 창가 구석 자리에 앉았다. 서린은 병뚜껑을 돌렸다. 딸깍. 볶은 보리 냄새가 올라왔다. 어릴 적 공장 사무실 주전자에서 늘 나던 냄새였다."……N이."한기택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N이 너였어?"서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보리차를 한 모금 마셨다. 부정하지 않는 게 대답이었다."신문에 나오던 그거. 파리가 찾는다는 거. 그게, 그게 너였어? 공장 구석에서 기름통 냄새 맡던 네가?""네."한기택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무언가 무거운 것에 얻어맞은 사람처럼. 그리고 웃었다. 울음 반, 웃음 반."하, 참. 내 딸이. 내 딸이 그런 걸……. 아빠는 몰랐다. 너 향수 공방 다니는 거, 그냥 취미로 하는 줄 알았어. 시집가서 심심하니까 하는 건 줄.""알려 드린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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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경쟁 입찰자

수요일 오전, 태강 본사 22층에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발신인은 메종 리안 대표 윤이안. 수신인은 라벨티 니치 퍼퓸 TF. 참조에 N의 공식 메일 주소가 들어 있었다. 제목은 짧았다.「메종 리안 — N 조향사 협업 정식 제안서 사본 송부의 건」표상진은 첨부 파일을 열고 3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연필을 쥔 채 도혁의 집무실로 걸어갔다. 노크도 하지 않았다."전무님. 리안이 들어왔습니다."도혁은 태블릿을 받아 들었다. 프랑스어와 영어와 한국어가 나란히 적힌 제안서였다. 한국어 쪽이 조금 어색했다. 너무 공손했다. 그러나 조건은 어색하지 않았다.「N 이름의 단독 브랜드 설립. 브랜드 소유권 100% N. 메종 리안은 유럽 유통과 생산만 맡음. 첫 향의 선택, 출시 시기, 가격 결정 모두 N 단독 권한. 계약금은 별도 협의. 파리 전시 공간 상시 제공.」맨 아래에 손글씨 서명과 함께 한 줄이 덧붙어 있었다.「이 제안서는 태강 TF에도 공유합니다. 공정한 경쟁을 원합니다. — 윤이안」"이거, 우리한테 보낸 게 선전포고입니다."표상진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N 이름 단독 브랜드라니. 우리 안은 라벨티 브랜드 아래 N 라인이잖습니까. 소유권이 우리한테 있고요. 이러면 비교가 안 됩니다. 조향사 입장에서 누가 자기 이름을 남의 간판 밑에 넣고 싶겠습니까."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제안서를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정확했다. 10년 동안 한 사람을 기다린 사람이 쓴 문장이었다. 무엇을 주어야 그 사람이 올지, 10년 동안 생각한 사람의."이사회는요.""벌써 난리입니다. 전략실 부장들이 오후에 대책 회의를 잡자고 합니다.""잡으세요. 저는 빠지고요. 그 회의에 제가 있으면 N 측에서 불편해하실 겁니다.""네?""조건 셋째 기억하시잖습니까. 협상 테이블 맞은편에 저는 안 앉습니다."표상진이 입을 다물었다. 도혁은 태블릿을 돌려주었다."대신 보고서는 제가 쓰겠습니다. 비교 보고서. 우리 안과 리안 안.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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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들기름 두부

토요일 아침,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회장님께서 오늘 점심을 함께하고 싶어 하십니다. 12시, 삼청동 솔내. 차는 보내 드리지 않겠습니다. 편하신 대로 오시라는 말씀입니다. — 회장 비서실」서린은 그 문자를 옥탑방 창가에서 읽었다. 창밖에는 밤새 내린 비가 그쳐 있었다. 골목 지붕마다 물기가 남아 반짝였다. 젖은 기와와 젖은 슬레이트 냄새가 창틈으로 들어왔다.차는 보내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 한 줄을 오래 보았다. 3년 동안 본가에 갈 때마다 태강의 검은 차가 옥탑이 아닌 펜트하우스 앞에 섰다. 기사가 문을 열어 주었고 그녀는 뒷좌석에 앉았다. 도착하면 또 누군가 문을 열어 주었다. 그 차를 보내지 않겠다는 건, 이제 그녀가 그 집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를 그 집 사람으로 부르는 게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서린은 답장했다. 「네. 가겠습니다.」열 시쯤 지현이 옥탑방에 올라왔다. 토요일인데도 작업실에 나와 원료 재고를 세던 참이었다. 서린이 옷장 앞에서 코트를 고르는 걸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어디 가요? 토요일에?""회장님이 점심 드시자고요."지현이 들고 있던 재고 목록을 떨어뜨렸다."회장님이요? 태강 회장님? 그 할아버지요?""네.""왜요? 무슨 일로요? 혼자 가요? 승아 변호사님 불러요?""밥 먹으러 가는 거예요, 실장님.""밥이 제일 무서운 거예요! 드라마 보면 재벌 할아버지가 밥 먹자고 하면 꼭 봉투가 나온다고요. 이거 받고 떨어져라, 하고."서린은 웃었다. 코트를 하나 골라 팔에 걸었다. 월요일에 태강에 입고 간 그 회색 코트였다."봉투 나오면 실장님 드릴게요.""아니, 받지 말라고요!"지현이 계단을 내려가며 한 번 더 외쳤다. 봉투 받지 마요. 진짜로. 서린은 창문을 닫았다. 젖은 기와 냄새가 방 안에 조금 남았다.* * *삼청동 골목 끝 한정식집은 한옥이었다. 낮은 담장 너머로 감나무 가지가 뻗어 있었다. 가지 끝에 까치밥으로 남긴 감 두어 개가 빨갛게 매달려 있었다. 비에 씻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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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두 장의 제안서

월요일 오전 열 시, 태강 본사 22층 대회의실.그날과 같은 방이었다. 같은 긴 테이블, 같은 새 카펫 냄새. 달라진 게 있다면 테이블 맞은편 가운데 의자였다. 오늘 그 자리에는 서린이 앉았고, 상석은 비어 있었다. TF 책임자의 자리였다. 누구도 그 의자에 앉지 않았다. 의자는 테이블 안쪽으로 반듯하게 밀려 있었다.표상진이 서류 봉투를 서린 앞에 내려놓았다. 두 손으로. 넥타이는 한 번에 맨 모양이었다. 오늘은 고쳐 매지 않았다."새 안입니다. 이사회에서 금요일 밤 늦게 통과됐습니다."서린은 봉투를 열었다. 새 종이 냄새와 아직 덜 마른 인쇄 잉크 냄새가 올라왔다. 오늘 아침에 급히 뽑은 종이였다. 표지를 넘겼다. 첫 장의 첫 줄을 읽고 잠깐 멈췄다.「N 단독 브랜드 설립. 브랜드 소유권 N 100%. 라벨티는 국내 및 아시아 유통 전담. 생산은 태강 오송 공장 설비 우선 제공. 첫 향의 선택, 출시 시기, 가격 결정은 N 단독 권한.」리안의 제안서와 거의 같은 문장이었다. 다른 건 유통 지역과 생산 설비, 그리고 계약금의 자릿수 하나였다."……많이 바뀌었네요.""네. 많이 바뀌었습니다."표상진이 웃었다. 조금 지친 웃음이었다."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안이 아닙니다. 저는 처음에 반대했습니다. 브랜드 소유권을 통째로 넘기는 건 라벨티한테 남는 게 없다고요. 그런데 비교 보고서 한 장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숫자가 그렇게 나오더라고요.""누가 쓴 보고서요?"표상진이 입을 다물었다. 전략실 부장들이 서로를 보았다. 백 소장이 코를 만졌다.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셋의 눈이 한꺼번에 같은 곳을 피했다. 서린은 비어 있는 상석 의자를 한 번 보았다. 그리고 다시 서류로 눈을 내렸다.마지막 장 맨 아래에 작은 글씨의 주석이 붙어 있었다. 「본 제안의 근거는 첨부 비교 분석표 참조.」 서린은 첨부를 넘기지 않았다. 넘기지 않아도 누구의 표인지 알았다. 표 한 장에 그 사람 냄새가 났다. 필요 없는 말은 다 빼고, 숫자만 남기는 사람."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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