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건물 옥상에는 방이 하나 있었다.원래는 건물주가 창고로 쓰던 곳이었다. 서린이 결혼 전 작업실을 얻으면서 같이 빌려, 밤샘 작업을 하는 날이면 쪽잠을 자던 방이었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창문 하나. 3년 동안 비어 있던 방에서는 먼지와 마른 나무 냄새가 났다.서린은 거기서 사흘을 잤다.잠은 잘 왔다. 이상할 만큼 잘 왔다. 펜트하우스의 넓은 침대에서는 새벽 한 시, 두 시까지 도어락 소리를 기다리느라 눈을 감지 못했는데, 이 좁은 방에서는 기다릴 사람이 없었다.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밤이 이렇게 가벼운 줄 그녀는 몰랐다.첫날 아침 열 시 정각, 구하람이 출근했다."안녕하세요! 어, 서린 씨? 웬일이세요, 평일 아침에?"스물넷의 하람은 늘 밝았다. 조향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지현의 추천으로 들어온 아이였다. 동그란 안경에 운동화 끈을 늘 두 번 묶는 아이. 1년 동안 서린은 하람이 지각하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잠깐 들렀어요. 원료 좀 볼 게 있어서.""아, 그럼 커피 타 드릴까요? 실장님은 아메리카노 맞으시죠?"하람이 제 책상으로 가서 엎어 둔 머그컵을 뒤집었다. 컵 옆의 시향지 몇 장을 아무렇지 않게 쓸어 서랍에 넣었다. 서린은 그 손을 보았다. 서두르지도, 머뭇거리지도 않는 손이었다. 버릇처럼 치우는 손.지현이 작업대 너머에서 서린을 보았다. 얼굴이 굳어 있었다. 서린은 아주 작게 고개를 저었다."하람 씨.""네?""요즘 개인 작업은 뭐 해요? 실장님이 하람 씨 코가 좋아졌다고 하던데."하람의 손이 한순간 멈췄다. 정말 한순간이었다. 커피 가루를 뜨던 숟가락이 공중에서 반 박자 머물렀다가 다시 움직였다."에이, 아니에요. 그냥 서린 씨 예전 향 따라 해 보는 연습이요. 한참 멀었어요.""어떤 향?""음, 3번이요. 무화과 들어간 거."3번에는 무화과가 들어가지 않았다. 무화과가 들어간 것은 7번뿐이었다."그렇구나. 열심히 해요."서린은 웃으며 원료장으로 돌아섰다. 등 뒤에서 하람이 커피를 젓는 소리가 들
Last Updated : 2026-10-15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