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이혼 서류는 내가 먼저 냈다: Kapitel 51 – Kapitel 60

100 Kapitel

51화. 고소

고소장은 두 통이었다.한 통은 두꺼웠고 한 통은 얇았다. 두꺼운 쪽에는 영업비밀 침해가 들어 있었다. 원본증명 등록증 열한 장, 분석회 보고서, 금고 기록. 그리고 민수진이 검찰에 먼저 낸 자료를 함께 봐 달라는 한 줄. 얇은 쪽에는 명예훼손이 들어 있었다. 12월 첫 주 밤 열한 시에 올라온 글 한 편과 캡처 한 장, 그리고 그 글이 퍼진 경로를 날짜별로 정리한 표."두 개 같이 넣는 거, 진짜 맞지?"오승아가 서류 봉투 두 개를 무릎에 올려놓고 물었다. 서초동으로 가는 택시 안이었다. 창밖으로 12월 중순의 회색 하늘이 지나갔다."응.""하나씩 넣으면 언론에 두 번 나와. 두 번 이기는 거야.""한 번이면 돼."승아가 서린을 흘겨보았다. 그러다 한숨을 쉬고 봉투를 끌어안았다."너 진짜 재미없는 의뢰인이다.""알아."아침에 서린은 작업실에서 봉투를 한 번 더 열어 보았다. 서류를 넘기지는 않았다. 그냥 냄새를 맡았다. 새로 뽑은 종이의 따뜻한 토너 냄새 사이로, 등록증 열한 장에서만 조금 다른 냄새가 났다. 2년 동안 서랍에 들어 있던 종이였다. 나무 서랍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그 서랍을 처음 연 날을 그녀는 기억했다. 결혼하고 첫봄이었다. 펜트하우스 부엌에서 저녁을 차려 두고, 아무도 오지 않는 식탁 앞에서 노트북으로 첫 번째 원본증명을 신청했다. 그때는 누구에게 보여 줄 생각이 없었다. 누가 훔쳐 갈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적어 두고 싶었다. 이 향은 내가 만들었다고. 이 집에서 내가 한 일 중에 내 이름이 붙는 게 하나쯤은 있었으면 해서.그 종이가 오늘 검찰청에 간다.서린은 봉투를 닫았다. 창밖으로 빵집 환풍구에서 첫 버터 냄새가 올라왔다.택시 안에서는 방향제 냄새가 났다. 싸구려 레몬. 서린은 창문을 한 뼘 내렸다. 찬 바람이 들어오자 승아가 목도리를 올리며 투덜거렸지만 창문을 닫으라고는 하지 않았다.* * *검찰청 민원실은 생각보다 조용했다.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동안 승아는 고소장을 한 번 더 넘겼다. 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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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옥탑의 겨울

서린은 일요일 오후에 옥탑방으로 돌아왔다.승아네 집에서 보낸 날은 열이틀이었다. 캐리어 하나를 끌고 골목에 들어서자 빵집 사장이 가게 문을 열고 나왔다. 앞치마에 밀가루가 하얗게 묻어 있었다."돌아왔네. 기자들 다 갔어요. 요 며칠 코빼기도 안 보여.""그동안 죄송했어요. 가게 앞이 시끄러웠죠.""시끄럽긴 했지. 근데 그 사람들이 빵은 좀 사 갔어. 매상은 올랐어요."사장이 웃으며 종이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소금빵 두 개가 들어 있었다. 아직 따뜻했다. 서린이 지갑을 꺼내려 하자 사장이 손을 저었다."그리고 그 까만 차. 저 끝에 서 있던 거. 그것도 그저께부터 안 와요."서린의 손이 지갑 위에서 멈췄다."양복 입은 젊은 사람 둘이 교대로 앉아 있었거든. 처음엔 기자인 줄 알았지. 근데 기자들이 골목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면 그 사람들이 먼저 내려서 막더라고. 우리 가게 앞에서 사진 찍으려는 사람도 한 번 쫓아냈어. 누가 보냈는지는 끝까지 말 안 하던데."사장은 말을 멈추고 서린을 보았다. 무언가 알고 있는 눈이었다. 그러나 묻지 않았다."아무튼 이제 조용해요. 들어가 쉬어요."* * *옥탑방은 추웠다.열이틀 동안 비워 둔 방에서는 닫힌 공기 냄새가 났다. 먼지 앉은 창틀, 식은 벽지, 그리고 책상 위에 두고 간 시향지들. 종이에 묻혀 두었던 향은 대부분 날아가고 가장 무거운 것만 남아 있었다. 나무 계단. 그 냄새만은 열이틀을 버텼다.서린은 창문을 열었다. 찬 공기가 방을 한 바퀴 돌았다. 그다음 작은 석유난로에 불을 붙였다. 난로가 달아오르면서 기름 타는 냄새가 먼저 올라왔다. 3년 동안 펜트하우스에서는 한 번도 맡지 못한 냄새였다. 거기는 바닥이 늘 따뜻했고, 따뜻함에는 냄새가 없었다.그녀는 책상에 앉아 휴대폰을 열었다. 한참 화면을 보다가 짧게 썼다.「고마웠어요, 사람 둔 거.」보내고 나서 휴대폰을 엎어 놓았다. 답은 오 분 뒤에 왔다.「알고 있었어?」「처음부터요.」한참 동안 답이 없었다. 화면 위에 입력 중이라는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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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화. 첫눈 오는 날

서린은 휴대폰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골목 끝의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올려다보지도 않았다. 눈을 맞으며 서 있을 뿐이었다. 들어오겠다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돌아가려는 사람의 자세도 아니었다.3년 동안 그녀는 이 사람을 기다리는 쪽이었다. 현관 불을 켜 두고, 식은 국을 다시 데우고, 도어락 소리에 귀를 세우는 쪽. 지금은 자리가 바뀌어 있었다. 저 사람이 밖에 서 있고 그녀가 안에 있었다. 그 사실이 통쾌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프지도 않았다. 그냥 낯설었다.그녀는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이번에는 내려놓지 않았다.「거기서 뭐 해요.」골목 끝에서 작은 불빛이 켜졌다. 휴대폰 화면이었다. 그 불빛이 한참 켜져 있다가 꺼졌다. 답이 왔다.「눈 와서.」「눈은 집에서도 와요.」「……알아.」서린은 창문 너머로 그 사람을 보았다. 코트 어깨에 쌓인 눈이 이제 제법 하얬다. 얼마나 서 있었는지 그 눈이 말해 주고 있었다.그녀는 한 번 더 썼다.「올라오세요. 계단 미끄러워요.」이번에는 답이 오지 않았다. 대신 골목 끝의 사람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처음으로 옥탑방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서린은 창가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 *철제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났다. 한 칸 한 칸 조심스러웠다. 중간에 한 번 미끄러지는 소리가 나고, 짧은 숨소리가 났다. 서린은 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문을 열었다.도혁이 계단 맨 위 칸에 서 있었다. 머리카락에 눈이 녹아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한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첫눈 병이었다."들어와도 돼?"한 달 전쯤이었다. 작업실 앞 골목에서 그는 똑같은 말을 했다. 그날 서린은 안 된다고 했다."신발 털고요."도혁이 계단 위에서 구두를 한쪽씩 털었다. 눈 뭉치가 철제 계단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코트 어깨도 털었다. 그러고 나서야 문턱을 넘었다.옥탑방은 그가 들어서자 갑자기 좁아졌다. 키가 큰 사람이었다. 천장 가까이에 걸린 빨랫줄에 머리가 닿을 뻔해서 그가 고개를 숙였다. 서린은 그걸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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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하루 하나

첫 번째 질문은 다음 날 아침 일곱 시에 왔다.「좋아하는 음식.」물음표도 없었다. 서린은 이불 속에서 그 문자를 보았다. 밤새 쌓인 눈에 창밖이 하얗게 밝았다. 그녀는 한참 화면을 보다가 답을 썼다.「들기름 두부요.」보내고 나서 조금 후회했다. 너무 쉽게 대답한 것 같았다. 그러나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베개 밑에 넣고 다시 눈을 감았다.답장은 오지 않았다. 하루 하나라고 했으니까.* * *그날 저녁, 도혁은 회사 근처 한정식집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강민재가 알아봐 준 곳이었다. 들기름 두부를 제일 잘한다는 집. 포장이 되느냐고 묻자 주인이 이상한 얼굴을 했다. 두부는 바로 부쳐서 바로 먹어야 한다고 했다. 도혁은 혼자 들어가 앉았다.두부가 나왔다. 노릇하게 부친 두부 위에 들기름이 반짝였다. 고소한 냄새가 테이블 위로 번졌다. 그는 젓가락으로 한 조각을 집었다.그리고 기억났다.본가 제삿날. 3년 동안 1년에 몇 번씩 있었던 그 자리. 긴 상 끝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전도 고기도 거의 먹지 않았다. 그녀 앞에 놓인 두부 접시만 조금씩 비어 갔다. 그는 그걸 본 적이 있었다. 분명히 보았다. 다만 그게 좋아해서 먹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걸 먹을 자격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신경 쓰지 않았다.그는 두부를 입에 넣었다. 부드러웠다. 들기름 향이 코 뒤로 올라왔다. 맛있었다. 그게 더 견디기 어려웠다.그녀는 이걸 좋아해서 먹었다. 그 긴 상에서,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자리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나 골라 조용히 먹고 있었던 것이다.도혁은 한 접시를 다 먹었다. 혼자서. 계산하며 주인에게 물었다."내일도 해요?"* * *두 번째 질문.「싫어하는 음식.」「없어요.」세 번째 날 아침 일곱 시에 문자가 왔다. 그런데 질문이 아니었다.「거짓말.」서린은 이불 속에서 소리 없이 웃었다. 그리고 답했다.「이건 질문 아니에요. 오늘 하나 쓰셨어요.」한참 뒤에 답이 왔다.「……알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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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대답 대신

열두 번째 질문은 오지 않았다.12월 31일 아침 일곱 시, 서린은 습관처럼 휴대폰을 보았다. 화면은 조용했다. 여덟 시에도, 아홉 시에도 조용했다. 그녀는 그 조용함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열한 번째 질문에 대답이 올 때까지 다음 질문을 하지 않겠다는 것. 하루 하나라는 규칙을 그녀가 정했으니, 그 규칙을 깨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한 재촉이었다.서린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책상 서랍을 열었다.수첩이 있었다. 집을 나온 뒤 새로 산 손바닥만 한 수첩. 앞쪽에는 옥탑의 향 배합이 적혀 있었다. 뒤쪽에는 이혼하고 나서부터 다른 것을 적기 시작했다. 향이 아닌 것들을.그녀는 뒤쪽 페이지를 폈다.「아빠 — 결혼 전에 받은 돈. 누구한테서, 얼마, 왜.」10월 어느 새벽, 술 취한 아버지의 전화를 끊고 휴대폰 메모장에 적었다가 다음 날 수첩으로 옮긴 줄이었다. 휴대폰에 적은 건 지워질 것 같았다. 그 옆에 11월에 적은 줄이 하나 더 있었다. 태강 로비 옆 카페에서 아버지를 만난 날이었다.「그 양반 = 누구?」아버지는 태강 그 양반이 너를 먼저, 라고 말하다가 입을 닫고 가 버렸다. 서린은 그 뒷말을 한 달 넘게 비워 두었다.그리고 그 아래, 한정식집에서 돌아온 날 밤에 적은 줄.「회장님 — 네 시아비가 정한 결혼. 네 아비 말만 믿지 마라.」서린은 세 줄을 나란히 놓고 오래 보았다. 향을 짤 때처럼. 어떤 원료는 혼자서는 아무 냄새도 안 난다. 다른 원료 옆에 놓아야 비로소 무엇인지 드러난다.결혼 전에 받은 돈. 태강의 그 양반. 시아버지가 정한 결혼.세 줄이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서린은 볼펜을 들었다. 세 줄 아래에 이름 하나를 쓰려다가 멈췄다. 볼펜 끝이 종이에 닿기 직전에서 떨렸다. 그녀는 그 이름을 알았다. 결혼하기 전 봄, 그 이름이 적힌 명패를 본 적이 있었다. 병실 문 옆에서.그 봄의 병실은 창이 남쪽으로 나 있었다. 창턱에 작은 병 하나가 놓여 있었다. 서린이 두고 온 병이었다. 그 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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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결혼 전

아버지가 고른 곳은 공장 앞 골목의 순댓국집이었다.1월 3일 점심. 서린은 약속보다 이십 분 일찍 도착했다. 골목은 그대로였다. 녹슨 셔터가 절반쯤 내려간 공장들, 폐지 실은 손수레, 전봇대에 붙은 임대 전단. 아버지의 공장 자리에는 이제 다른 간판이 걸려 있었다. 화학 원료 공장이 아니라 택배 물류 창고였다. 셔터 안에서 테이프 뜯는 소리가 났다.순댓국집 문을 열자 냄새가 한꺼번에 몰려왔다.돼지 뼈 우린 국물, 들깨 가루, 새우젓. 그리고 오래된 나무 식탁에 밴 소주 냄새. 서린은 문턱에서 잠깐 멈췄다. 이 냄새를 마지막으로 맡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결혼하고 나서는 한 번도 오지 않았다.주인 할머니가 행주를 들고 나왔다. 서린을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아이고. 한 사장 딸내미 아니야?""안녕하세요.""세상에. 시집가서 부잣집 사모님 됐다더니. 얼굴이 왜 이렇게 빠졌어. 거기서 밥을 안 줬나."할머니가 서린의 팔을 잡고 구석 자리로 끌었다. 벽 쪽 창가, 콘센트 두 개가 붙은 자리. 서린이 초등학생 때 숙제를 하던 자리였다. 식탁 모서리에 누군가 칼로 새긴 작은 별이 아직 있었다. 서린이 새긴 것이었다. 그날 아버지에게 크게 혼났다."아빠 오시면 같이 시킬게요.""그래, 그래. 섞박지는 먼저 줄게. 너 이거 좋아했잖아."할머니가 작은 접시를 내려놓았다. 무를 크게 썰어 담근 섞박지였다. 서린은 젓가락으로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시고, 달고, 조금 쨍했다. 무가 입 안에서 아삭 소리를 냈다.그 맛이 그대로였다. 열 살 때도, 열다섯 살 때도, 공장이 기울기 시작한 스무 살 때도 이 맛이었다. 서린은 두 번째 조각을 집으려다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목이 조금 막혔다.* * *아버지는 정각에 왔다.문을 열고 들어서는 한기택은 11월에 태강 로비 옆 카페에서 본 모습보다 더 작아 보였다. 오래된 점퍼, 목이 늘어난 스웨터. 손에 편의점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안에 귤 몇 개가 들어 있었다."오래 기다렸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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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두 개의 거짓말

그날 밤 서린은 작업실 불을 켜지 않았다.옥탑방으로 올라가지도 않았다. 2층 작업실 창가 의자에 외투를 입은 채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아버지가 준 귤 봉지가 있었다. 할머니가 싸 준 섞박지 봉지는 작업실 작은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새콤한 냄새가 새어 나왔다.그녀는 수첩을 펴지 않았다. 적을 필요가 없었다. 머릿속에서 이미 두 줄이 나란히 서 있었다.딸에게는, 네가 안 가면 아빠는 끝이다.시어머니에게는, 우리 딸이 태강 돈 보고 들어가겠답니다.같은 사람이 같은 해에 한 두 개의 말이었다. 한쪽에서는 딸을 빚에 팔려 가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다른 쪽에서는 돈을 좇아 들어오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두 말은 서로 반대였다. 그런데 둘 다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이 결혼이 성사되는 곳.서린은 귤 하나를 꺼내 손바닥 위에서 굴렸다. 껍질이 차가웠다.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게 더 싫었다. 공장이 무너지던 해의 아버지를 그녀는 기억했다. 밤마다 사무실 불을 켜 두고 장부를 넘기던 등. 딸이 편하게 살기를 바랐다는 말도 거짓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거짓말 두 개로 딸을 좋은 집에 보내고 싶었던 사람.그 거짓말 두 개가 3년 동안 한 식탁에 앉아 있었다.그녀는 식탁 이쪽 끝에서, 빚 대신 왔으니 참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식탁 저쪽 끝에서, 돈 보고 온 여자니 곁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믿었다. 둘 다 서로를 보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이미 안다고 생각했으니까.그 사이에 차가 식었다. 국이 식었다. 3주년의 스테이크가 식었다. 아무도 데우지 않았다.서린은 귤을 봉지에 도로 넣었다. 화가 났다. 소리 내지 않는 종류의 화였다. 목 뒤가 뜨겁고 손끝이 차가워지는. 그녀는 그 화를 어디에도 쏟지 않았다. 대신 일어나서 불을 켰다. 원료장 문을 열었다.* * *다음 날 아침 지현이 출근했을 때, 원료장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병 백이십 개가 전부 꺼내져 작업대 위에 줄 서 있었다. 라벨은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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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새 빚

서류철 안의 숫자는 짧았다.「한기택. 신규 대출 실행 3,000만 원. 담보 없음. 보증 없음. 승인 사유: 기존 거래처 관계 고려.」도혁은 마지막 줄을 두 번 읽었다. 기존 거래처 관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그는 알았다. 태강캐피탈 영업 창구에서 한기택은 여전히 차도혁 전무의 장인이었다. 이혼 기사가 났어도, 입장문이 나갔어도. 창구 직원들은 그 이름 앞에서 서류를 한 장 덜 넘겼다."언제야.""지난주 화요일입니다. 새해 첫 영업일 바로 다음 날이요.""용도는.""기재된 건 사업 운영 자금입니다. 그런데 한기택 씨 사업자는 작년 봄에 폐업 신고가 되어 있습니다."강민재가 서류철 뒤쪽을 넘겼다. 캐피탈 쪽에서 붙여 보낸 메모가 있었다. 결혼 뒤로 한기택이 태강캐피탈에서 새로 빌린 돈의 목록이었다. 네 번. 이번이 다섯 번째였다. 앞의 네 번은 전부 매달 말일 도혁의 개인 계좌에서 조금씩 갚아지고 있었다. 한기택도 서린도 모르게."전무님, 이번 건도 기존처럼 상환 일정에 넣을까요?"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1월 한강이 얼어붙은 가장자리를 하얗게 드러내고 있었다.3년 동안 그는 이걸 왜 갚았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았다. 처음에는 태강 이름이 걸린 빚이 사돈 집에서 터지면 곤란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그냥 습관이었다. 이혼 뒤에는, 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였다. 그 사람이 모르는 채로.그런데 모르는 채로 주는 건 한 번 더 묻지 않는 것과 비슷했다.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방식이었다."아니.""네?""이번 건은 내가 직접 가서 정리할게. 주소."* * *강민재가 적어 준 주소는 서울 서쪽 끝의 오래된 공장 골목이었다.도혁은 직접 운전했다. 골목 입구에 차를 세우자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그는 차에서 내려 한동안 서 있었다. 녹슨 셔터, 기름 얼룩이 번진 보도, 전봇대마다 붙은 임대 전단. 택배 창고 앞에서 지게차가 후진하는 경고음을 냈다.3년 동안 그는 이 동네에 와 본 적이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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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기일

회장의 전화는 기일 전날 밤 아홉 시에 왔다.서린은 옥탑방에서 원료 목록을 정리하고 있었다.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잠깐 손을 멈췄다. 이혼하고 나서 회장에게 전화가 온 건 처음이었다. 한정식집에 부를 때는 비서실을 통했다."네, 회장님.""자고 있었냐.""아뇨.""내일이 네 시아비 기일이다."회장은 늘 그랬다. 인사도, 돌려 말하는 것도 없었다. 낮고 마른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한 마디씩 떨어졌다."알고 있어요.""제사엔 부르지 않으마. 네 자리가 아니어서가 아니다. 네가 불편할 거고, 그 방에 불편한 사람이 하나 더 있으면 제사가 안 된다."서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불편한 사람이 누구인지 회장은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대신 오전에 산소에 가 봐라. 열 시 전에는 아무도 없다. 관리인한테 말해 두었다.""……네.""그 애가 좋아할 거다."서린의 손끝이 전화기를 조금 세게 쥐었다. 그 애. 회장이 쉰이 넘은 아들을 그렇게 불렀다. 죽은 아들을."회장님.""왜.""왜 저한테 이러세요. 저는 이제…….""알고 있으니까."회장이 짧게 말했다. 무엇을 알고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잠깐의 침묵 뒤에 마른기침 소리가 났다."도혁이한테는 여전히 말하지 마라. 그놈이 요새 무언가를 알아 온 얼굴이다. 무엇을 알아 왔는지는 모르겠다만. 제 발로 오게 둬라."전화가 끊겼다.서린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한참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1월의 바람이 옥상 빨랫줄을 흔들었다. 빨래집게 하나가 떨어져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났다.* * *다음 날 새벽 여섯 시, 서린은 작업실로 내려갔다.원료장 맨 아래 칸, 잠금장치가 달린 작은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 낡은 노트 한 권이 있었다. 표지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노트. N의 번호가 붙은 향들이 적힌 금고 속 노트와는 다른 것이었다. 번호도, 이름도 붙이지 않은 배합들이 적혀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한 번만 만든 향들.그녀는 노트를 넘겨 한 장에서 멈췄다. 연필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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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기소

"언제요."산소 앞에서 도혁은 그것 하나만 더 물었다. 서린은 받침돌 위 작은 병의 뚜껑을 닫으며 대답했다."그건 제가 말씀드릴 게 아니에요.""그럼 누가."서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병을 비석 발치에 그대로 두고 일어났다.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에서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도혁은 따라가지 않았다. 따라가면 그녀가 한 대답까지 도로 가져갈 것 같았다.그날 저녁 본가 제사에서 그는 절을 두 번 했다. 제사상 끝에는 들기름 두부가 올라 있었다. 회장이 시킨 것이었다. 아무도 그 접시에 손을 대지 않았다.* * *1월 마지막 주 월요일, 승아가 아침 여덟 시에 전화를 걸었다."야, 났다."서린은 옥탑방 창가에서 머리를 묶고 있었다. 한 손으로 머리끈을 입에 문 채 전화를 받았다."뭐가.""기소. 유세아, 민수진 둘 다.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영업비밀 침해. 명예훼손은 따로 병합 검토 중이고. 방금 기사 떴어."서린은 머리끈을 손으로 옮겨 머리를 마저 묶었다. 그리고 창밖을 보았다. 빵집 환풍구에서 첫 반죽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그렇구나.""그렇구나? 야, 이거 검찰이 네 손 들어 준 거야. 기소율 생각하면 엄청 빠른 거라고. 수진이 넘긴 게 결정적이었어. 문자, 송금, CCTV 원본. 세아 쪽 변호사가 매니저 단독 범행이라고 끝까지 우겼는데, 지시 문자에 세아 말투가 그대로 있더래.""하람 씨는?"승아가 잠깐 말을 멈췄다. 그러다 목소리를 낮췄다."공소장에 이름은 있어. 그런데 피고인이 아니라 사건 경위 쪽에. 네 탄원서, 그리고 걔가 먼저 자수한 거, 협박 정황. 검사가 따로 처분하겠대. 좋은 쪽으로 갈 것 같아. 아직 확정은 아니고."서린은 잠깐 눈을 감았다. 창틀을 잡은 손에 힘이 조금 빠졌다."고마워, 변호사님.""……야, 갑자기 존칭 쓰지 마. 소름 돋아."승아가 전화 너머에서 무언가를 후루룩 마셨다. 아침 커피인 모양이었다."첫 공판은 3월쯤 잡힐 거야. 그때까지 세아는 출국금지 그대로고. 너는 증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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