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감히 누구 앞에서 싫다 좋다를 입에 올리느냐? 네가 이 집안에 들어온 날부터 네 몸도, 네 이름도 윤씨 가문의 것이다. 죽은 지아비를 따라가지 못한 것도 부끄러운 일인데, 살아 있는 동안 정절이라도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
하경은 정씨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찢어진 소매를 움켜쥐었고, 잠시 뒤 입술 사이로 억눌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머님께서는 제가 살아 있는 것이 부끄러우십니까?"
정씨는 대답 대신 하녀에게 눈짓했다. 하녀 하나가 곧바로 열녀문 아래에 놓인 목패를 가져왔고, 정씨는 거기에 적힌 글귀를 하경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네가 우리 집안에 보답할 길을 마련해 준 것이다. 저 문이 세워진 이상, 네가 죽는 날까지 정절을 지키겠다는 뜻을 온 고을이 알게 될 테니 다시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거라."
하경은 목패에 적힌 물목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한곳에 오래 머물자 도겸도 그 글귀를 살폈는데, 자신이 장부에서 확인했던 전답과 곡식 창고의 이름이 그곳에 적혀 있었다.
"제 친정에서 가져온 재산입니다."
하경이 목패를 가리키며 말했다.
"남편의 장례를 치르는 데 필요하다며 가져가셨던 전답과 곡식 창고를 열녀문을 세우는 데 쓰셨군요. 제 허락은 한 번도 구하지 않으셨으면서, 이제는 제 이름까지 저 문에 묶어 두시려는 겁니까?"
정씨의 얼굴이 굳었다. 그녀는 하경의 혼수는 이미 윤씨 집안의 재산이라며 일축했고, 죽은 지아비의 아내가 따로 재물을 주장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몰아세웠다.
도겸은 그 말을 들으며 장부에 적혀 있던 거래 내역을 떠올렸다. 윤씨 집안이 하경의 혼수를 마음대로 처분했다는 의혹은 있었지만, 정씨가 직접 그 재산을 가문의 소유라고 주장하는 모습을 보니 문제는 생각보다 깊어 보였다.
"오늘 밤부터 네 방 문을 밖에서 잠글 것이다. 고유제가 끝날 때까지 누구도 들이지 말고, 음식도 내 허락 없이는 가져다주지 말아라."
정씨의 명령에 하녀들이 고개를 숙였다.
하경은 아무 말 없이 정씨를 바라보았다. 도겸은 그녀가 그 말을 처음 듣는 사람처럼 놀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오히려 익숙한 처분을 다시 확인한 듯, 그녀의 어깨가 조금 내려앉았다.
정씨는 아들에게 하경을 데리고 들어오라고 명한 뒤 몸을 돌렸다. 시율은 어머니가 멀어지는 모습을 기다렸다가 하경의 손목을 다시 움켜쥐었다.
"들으셨지요? 어머니 말씀을 따르셔야 합니다. 괜히 고집을 부리시면 형수님만 힘들어집니다."
그는 하경을 열녀문 기둥 쪽으로 끌고 갔다. 여인이 버티자 허리를 감싸 안아 억지로 움직이게 했고, 젖은 버선이 돌바닥에 미끄러지면서 그녀의 등이 기둥에 부딪혔다.
시율은 하경의 얼굴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형수님은 제 말을 들으셔야 한다고요."
하경은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
"놓아주십시오."
시율은 손을 놓기는커녕 그녀의 턱을 붙잡아 얼굴을 들어 올렸다. 하경이 고개를 돌리자 그는 짜증스럽게 숨을 내쉬더니, 이번에는 달래듯 목소리를 낮췄다.
"형수님, 제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정말 모르십니까? 형님이 돌아가신 뒤 누가 곁을 지켰습니까? 누가 다른 사내들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막았습니까?"
그는 하경의 뺨에 붙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려 했다. 그녀가 손을 쳐 내자 시율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고, 그는 하인들이 보는 앞에서 거절당했다는 사실이 견디기 어려운 듯 주위를 사납게 둘러보았다.
"모두 고개를 돌려라!"
하인들이 서둘러 몸을 돌렸다.
시율은 하경의 양어깨를 붙잡아 기둥에 밀어붙였다. 그녀가 빠져나갈 틈을 찾으며 몸을 움직일 때마다 그는 팔을 뻗어 길을 막았고, 끝내 허리를 끌어안으려 하자 하경은 고개를 돌리며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저는 도련님의 형수입니다. 그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시율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형수, 형수, 그놈의 형수!"
그가 낮게 웃었다.
"형님은 죽었습니다. 그런데 형수님은 살아 계시잖습니까. 제가 삼 년 동안 무엇을 참고 살았는지 아십니까?"
하경은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팔 아래로 몸을 낮춰 빠져나가려 했지만, 시율이 다시 손목을 움켜쥐는 바람에 짧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도겸은 그제야 두 사람 사이로 다가섰다.
"윤 도련님, 그만하시지요."
***해가 떠오를 무렵, 마차는 관문에서 멀리 떨어진 길에 들어섰다.비가 그치자 들판 위로 옅은 햇빛이 번졌다. 도겸은 마부에게 속도를 조금 늦추라고 지시한 뒤 장필을 불렀다.“윤씨 집안의 움직임을 계속 살펴라. 시율은 여기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장필이 고개를 숙였다.“사람을 더 붙이겠습니다.”“그리고 관문에서 있었던 일은 빠짐없이 기록해 두어라. 그 사내가 어떤 말을 했는지도.”“형수님을 제 여자라고 한 말까지 말씀입니까?”도겸은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그 말도.”장필이 물러간 뒤 도겸은 마차 안으로 돌아왔다.하경은 겉옷 안쪽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고 있었다. 전날 밤 그가 받아 적어 준 혼수 목록이었다. 그녀는 접힌 부분을 펴서 한참 들여다보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접었다.윤씨 집안은 여인의 재산을 빼앗고, 방을 잠그고, 열녀문을 세웠다. 시율은 그 모든 일을 곁에서 지켜보며 하경을 제 여자라고 믿고 있었다.그런데 그 집안에서 끝내 빼앗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하경이 포기하지 않은 자신의 뜻이었다.도겸은 그것이 지금 자신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조금 더 가면 쉴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하경이 고개를 들었다.“대행수님의 상단입니까?”“제가 관리하는 별채가 있습니다. 사람이 많지 않고 의원도 부를 수 있습니다.”그녀는 잠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도겸은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그곳에 머무르실지는 직접 결정하시면 됩니다. 다른 곳을 원하신다면 알아보겠습니다.”하경은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대행수님께서는 제가 계속 함께 가도 괜찮으십니까?”도겸은 그 질문을 듣고 잠시 말을 잃었다.관문 앞에서 그토록 분명하게 자신의 뜻을 밝힌 여인이, 정작 자신과 동행해도 되는지를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그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답했다.“저는 부인께서 함께 가시기를 바랍니다.”하경의 눈이 조금 커졌다.도겸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다만 그것이 부인께서 반드시 제 곁에 계셔야 한다는 뜻은 아
도겸이 돌아보자 하경은 안쪽에서 다시 빗장을 걸고 있었다.딸깍.작은 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르며 들려왔다.도겸은 그 소리를 듣고 시율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그녀가 스스로 닫은 문이었다.***관문이 열리자 도겸은 호위들에게 길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관문 책임자는 더는 윤씨 집안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했다. 정식 체포 명령이 없었고, 수색 과정에서 여러 상인과 행인에게 피해를 입힌 사실까지 드러났기 때문이었다.도겸은 책임자에게 오늘 벌어진 일을 기록으로 남기라고 요구했다. 윤씨 집안이 관문을 사사로이 막았다는 사실과 하경이 자신의 뜻으로 동행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내용도 빠뜨리지 말라고 했다.책임자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도겸이 마차에 오르기 전 마지막으로 돌아보았을 때, 시율은 호위들에게 붙잡힌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젖은 도포는 진흙투성이였고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었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마차만 쫓고 있었다.“백도겸!”도겸이 걸음을 멈췄다.“그 여자를 데려간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오.”도겸은 사내를 바라보았다.“후회할 일은 당신이 더 많을 겁니다.”“무슨 뜻이오?”“부인의 혼수 목록을 가져간 사람이 누구인지부터 확인하고 있습니다.”시율의 표정이 달라졌다.도겸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열녀문을 짓는 데 들어간 돈도 조사할 생각입니다. 윤씨 집안에서 정당하게 쓴 돈이라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겠지요.”시율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도겸은 더 말하지 않고 마차로 돌아왔다.그가 문을 두드리자 안쪽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누구십니까?”“백도겸입니다.”잠시 뒤 빗장이 풀렸다.도겸이 마차에 오르자 하경은 그를 확인하고서야 문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얼굴빛은 창백했고, 다친 손목을 감싼 천에는 다시 피가 배어 나와 있었다.도겸은 맞은편에 앉으며 약갑을 꺼냈다.“손목을 다시 살펴보셔야겠습니다.”하경은 고개를 끄덕이고 스스로 천을 풀기 시작했다. 도겸은 깨끗한 물을 준비해 그녀가 손을 뻗기 편한 자리에
도겸은 그의 팔을 놓으며 낮게 말했다.“마차에서 내려오십시오.”시율은 뒤로 밀려났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하경을 향해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형수님! 내가 이대로 보내 드릴 것 같소? 어디를 가든 찾아낼 것이오. 그 사람이 형수님을 숨겨도 소용없소!”하경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도겸은 그녀의 입술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도 하경은 문을 닫지 않았다.“찾아오셔도 돌아가지 않겠습니다.”시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왜!”그의 고함이 관문을 울렸다.“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소? 형수님을 위해서라면 뭐든 했는데, 왜 나를 버리고 저 사내를 따라간다는 말이오!”도겸은 그제야 시율이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형수가 자신을 버렸다는 말.그것은 동생이 형수에게 할 말이 아니었다.시율은 하경을 이미 제 여자로 여기고 있었다.***하경은 마차 발판에 한 발을 내디뎠다.도겸은 그녀가 내려오려는 줄 알고 옆으로 물러섰다. 시율 역시 기대에 찬 얼굴로 손을 뻗었다.그러나 하경은 땅에 내려서지 않았다. 발판 위에 선 채 관문 앞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시율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도겸은 그녀의 손끝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차가운 바람에 젖은 상복이 흔들렸고, 왼쪽 손목의 천에는 다시 붉은 기운이 번지고 있었다.“도련님, 잘 들으십시오.”시율은 숨을 죽였다.“저는 백 대행수께 억지로 끌려온 것이 아닙니다. 제가 부탁드렸습니다.”관문 앞에 모인 사람들이 술렁였다.하경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그 집에서는 제 뜻대로 문 하나 열지 못했습니다. 제 친정에서 가져온 재산도 제 것이 아니었고, 제가 먹는 음식과 입는 옷까지 모두 허락받아야 했습니다.”그녀의 시선이 다친 손목으로 내려갔다.“그런데도 저는 삼 년 동안 참았습니다. 남편을 잃은 여자가 어디로 갈 수 있겠느냐는 말을 믿었으니까요.”도겸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하경은 울지 않았다. 그러나 눈가가 붉어져 있었고, 말을
새벽바람이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흰 상복은 곳곳이 찢어져 있었고, 왼쪽 손목에는 붉게 물든 천이 감겨 있었다. 도겸이 건넨 검은 겉옷이 가느다란 어깨를 덮고 있었지만, 그 아래로 드러난 상처까지 가려 주지는 못했다.도겸은 그녀가 문턱에 선 모습을 보며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려 했다. 그러나 하경이 스스로 문틀을 붙잡고 균형을 잡는 것을 확인하고는 손을 거두었다.시율이 먼저 달려들었다.“형수님!”그는 마차 발판에 발을 올리려 했지만, 도겸이 앞을 막아섰다.“거기서 말씀하십시오.”시율은 그를 노려보다가 하경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형수님, 대체 왜 이러시는 거요? 어머님께서 밤새 기다리셨소. 지금 돌아오시면 내가 다 해결하겠소.”하경은 대답하지 않았다.도겸은 그녀의 오른손이 문틀을 세게 움켜쥐는 모습을 보았다.시율은 한층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형수님이 화가 나신 것은 알겠소. 내가 어젯밤 방에 들어간 것이 싫으셨다면 다시는 그러지 않겠소. 그러니 이리 내려오시오.”그가 손을 내밀었다.하경의 시선이 그 손에 머물렀다가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도겸은 그녀가 몸을 조금 뒤로 물리는 것을 알아차렸다.시율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형수님.”하경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돌아가지 않겠습니다.”시율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무슨 말씀을…….”“저는 그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시율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억지로 웃었다.“형수님, 지금 겁이 나서 그러시는 것이오. 백 대행수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사람은 형수님을 책임지지 못하오.”그는 도겸을 손가락질했다.“저 사람은 장사꾼이오. 필요할 때는 웃으며 사람을 데려가지만,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는 자들이란 말이오!”도겸은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하경이 어떤 선택을 할지 자신이 대신 설명하거나 변호할 생각은 없었다.시율이 다시 손을 뻗었다.“어서 내려오시오. 내가 데려가겠소.”하경은 그 손을 피했다.“도련님은 늘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남의 집 과부를 데리고 밤새 도망치더니, 이제는 그 여자가 하는 말을 모두 믿겠다는 것이오?”그가 도겸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백도겸. 형수님은 내 사람이오.”도겸은 움직이지 않았다.시율은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당연한 사실을 털어놓는 사람처럼 말을 이었다.“형님이 죽은 뒤 삼 년이오. 삼 년 동안 그 여자 곁에 있었던 건 나란 말이오. 아프면 내가 의원을 불렀고, 굶으면 내가 밥을 들여보냈소. 형수님이 울던 밤에도 내가 그 문밖에 있었소.”그의 눈빛이 기이하게 번들거렸다.“그렇게 삼 년을 보냈는데, 어느 날 나타난 사내가 데려가겠다고 하면 내가 순순히 내줘야 한단 말이오?”도겸은 시율을 똑바로 바라보았다.형수라는 호칭을 입에 올리면서도 그 여인을 형의 아내로 대하지 않는 사내였다. 그가 말하는 삼 년은 가족을 돌본 시간이 아니라, 제 것이라고 믿는 여인을 감시한 시간에 가까웠다.“그분은 당신 것이 아닙니다.”시율의 웃음이 사라졌다.“뭐라고 했소?”“부인은 사람입니다. 당신이 몇 년을 지켜보았든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시율은 순식간에 도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입 다무시오!”도겸은 제 옷깃을 쥔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어 시율의 손목을 잡아 천천히 떼어 냈다.“관문 앞입니다. 사람들 보는 데서 더 추해지지 마십시오.”시율이 주먹을 치켜들자 장필과 호위 둘이 곧장 다가와 두 사람 사이를 막아섰다.도겸은 그들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눈짓했다. 이 사내를 때려눕히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시율과의 싸움이 아니라, 하경이 선택한 길을 열어 주는 일이었다.***관문 책임자가 허둥지둥 달려온 것은 그때였다.“백 대행수님, 윤 도련님. 두 분 모두 진정하십시오.”도겸은 책임자에게 몸을 돌렸다.“누가 통행을 막으라고 명했습니까?”책임자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시율을 힐끗 바라보았다.“윤씨 집안에서 열녀문 방화 사건을 알렸습니다. 죄인을 놓칠 수 없다고 하여…….”“관아의 공문은?”“아직 도착하지
“정식 공문은?”“아직 없습니다.”도겸은 젖은 장갑을 벗어 장필에게 건넸다.“책임자를 데려와라. 뒤따라오는 우리 상단의 마차들은 강 건너에서 대기시키고, 이곳에서 피해를 본 상인들의 이름도 받아 두어라.”장필은 곧바로 움직이려다 잠시 걸음을 멈췄다.“윤씨 집안 사람들이 계속 마차를 뒤지려 들 겁니다.”“그러니 누구의 허락으로 그 짓을 하는지부터 밝혀야지.”도겸이 관문으로 다가갈수록 수색은 더욱 난폭해지고 있었다. 윤씨 집안 사내 하나가 젊은 여인이 탄 가마의 문을 열어젖히더니, 놀라 소리를 지르는 여인의 턱을 붙잡아 얼굴을 돌리려 했다.“손을 떼라.”사내가 고개를 돌렸다.“누구…….”“지금 당장.”도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사내는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자 황급히 손을 놓았다. 도겸은 여인이 다시 가마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 가마꾼들에게 길가로 물러나 있으라고 손짓했다.그때 뒤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내가 허락했다!”윤시율이었다.그는 도겸을 발견하자 고삐를 거칠게 당겼다. 말이 앞발을 들어 올리며 울부짖었고,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길가로 물러섰다.시율은 말에서 뛰어내리다시피 내려 도겸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백도겸. 형수님을 어디에 숨겼소?”도겸은 사내의 얼굴을 차분히 살폈다.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입술 한쪽에는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밤새 말을 달린 사람답게 피로가 짙었지만, 그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억눌리지 않는 분노였다.도겸은 시율이 하경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보다, 그녀가 자신의 뜻을 거슬렀다는 사실에 더욱 격분하고 있다고 판단했다.“사람을 찾는다면 관아에 신고하십시오.”“내 형수님을 찾는데 관아의 허락까지 받아야 한단 말이오?”시율은 도겸의 어깨 너머를 살폈다.그의 눈길이 검은 마차에 닿는 순간 표정이 달라졌다.“저 마차…….”도겸이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시율이 그를 밀치듯 지나쳐 달려갔다.“형수님!”그의 고함에 관문 앞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돌아보았다.“형수님!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