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장은 같이 읽자면서, 왜 혼자 도망갔어요?”책갈피를 쥔 이서가 식당으로 내려왔을 때, 도진은 커피잔을 들다가 그대로 멈췄다. 밤새 내린 비 때문에 정원 돌계단은 색이 짙어져 있었고, 창가에 놓인 식탁에는 갓 구운 빵과 잘라 놓은 배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는 이서의 손에서 삐져나온 종이를 보자 웃었다.“도망간 게 아니라 출근 준비하듯 퇴장한 건데. 우리 애기 자는 얼굴이 너무 예뻐서, 조금만 더 있다간 아침까지 책을 읽을 뻔했거든.”“책이 아니라 제 얼굴만 읽으셨겠죠.”“우리 여보, 독해력이 아주 우수해. 남편 마음을 한 번에 맞히네.”이서는 의자를 빼다가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눌렀다. 도진의 눈 밑에는 옅은 피로가 남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잠든 뒤 무엇을 했는지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책의 접힌 모서리도 반듯하게 펴 놓았고, 침대 옆 물컵에는 새 물까지 채워 두었다. 이서는 그가 밤새 자기 방에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문밖으로 나갔을 때 아쉬웠을 얼굴을 떠올렸다.“다음 장은 오늘 밤에 읽어요. 대신 낮에는 남자친구 시험부터 볼래요?”도진이 포크를 내려놓았다. 포크 끝에 꽂혀 있던 배 조각이 접시로 미끄러졌다.“잠깐. 나 지금 남편인데 남자친구 시험도 봐? 승진이야, 재입사야?”“30일 동안 다시 연애해 보는 거예요. 하루에 한 번씩, 저랑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하는 거죠. 처음부터 배우고 싶어요. 당신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도.”그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잠깐 걷혔다. 이서는 지난밤 읽다 만 소설을 떠올렸다. 주인공이 같은 거리를 두 번 걸을 때마다 다른 풍경을 발견하던 장면이었다. 이미 함께 살던 집이지만 둘에게는 모르는 길이 아직 많았다. 오늘부터는 하루하루 직접 기억하고 싶었다.이서는 그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길 바라면서도 조금 겁이 났다. 결혼사진 속 자신은 그를 먼저 끌어안고 웃었다. 지금은 같은 식탁에 마주 앉아 있으면서도 그가 좋아하는 계절이 뭔지 몰랐다. 그래서 달력에 거창한 기념일을 채우기보다
최신 업데이트 : 2026-10-24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