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빈 간택에서 떨어지려고 회귀했더니 세자가 장독대로 찾아왔다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11 - チャプター 20

80 チャプター

11화. 조청

“재간택에도 나오시오. 내가 보고 싶소.”세자가 돌아서려는 순간, 새미가 장독대 앞을 가로막았다. 손에는 아직 바가지가 들려 있었다. 손잡이를 쥔 손가락이 하얗게 눌렸다.강내관이 급히 걸음을 멈췄다. 세자는 새미와 부딪히기 전에 발을 멈췄다. 그의 팔에 안긴 된장 단지가 살짝 기울었다.“단 낭자, 길을 비켜 주시오.”“먼저 제 부탁을 들어주세요.”“무슨 부탁이오?”새미는 바가지를 내려놓았다. 세자의 눈을 보고 말해야 했다. 장독이나 할머니 쪽으로 시선을 피하면 다시는 입을 열기 어려울 것 같았다.“저를 떨어뜨려 주십시오.”강내관의 입이 벌어졌다. 세자는 새미를 가만히 바라봤다.“그건 내가 정할 수 없소.”“세자께서 말씀하시면 되잖아요.”“중전마마께서 정하실 일이오. 내가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그럼 초간택 때 제 이름에 점을 찍으신 분은 누구예요?”새미는 묻고 나서야 목이 잠긴 것을 느꼈다. 재간택 명단을 읽던 내관은 새미의 이름이 올라온 까닭을 몰랐다. 그날 후보들을 살피던 중전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발 뒤에서 붓 소리가 났다. 그 이름에 점을 찍은 사람이 누구인지, 새미는 알지 못했다.세자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잠시 말을 골랐다.“내가 그 이름에 점을 찍었소.”새미는 바가지를 다시 집을 뻔하다가 손을 멈췄다.“왜요?”“그대가 하는 말을 더 듣고 싶었소.”“저는 간장 한 종지가 귀하다고 했어요.”“그 말도 들었소.”“그럼 더 들으실 말은 없잖아요.”“아직 있소.”새미는 손가락을 접었다. 하나, 둘. 그만 세려 했는데 셋째 손가락도 저절로 접혔다.“저하께서 붙이고 싶다고 붙는 게 아니라고 하셨잖아요.”“그렇소.”“그럼 왜 저를 보고 싶다고 하세요?”“보고 싶어서요.”“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마음을 바꿀 거라고 생각하세요?”“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소.”세자는 짧게 말했다. 새미는 그 말이 더 답답했다. 세자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했지만, 새미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밀어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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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장떡

장떡이 기름 위에서 지글거렸다. 새미는 뒤집개로 가장자리를 눌러 익힘을 살폈다. 반죽에 섞은 된장 냄새가 올라오자, 맞은편에서 엿을 늘이던 장수가 고개를 돌렸다.“그게 뭣이오?”“장떡입니다. 장맛을 보시고 사세요.”새미는 작은 조각을 접시에 올려 길을 지나는 사람에게 내밀었다. 장터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발길은 바빴고 손님은 바빴다. 눈길 한 번 주고 지나가는 사람은 많아도, 선뜻 값을 치르는 사람은 드물었다.밤톨이는 낮은 상 옆에 쪼그려 앉아 손님을 살폈다. 앞니 빠진 자리를 혀로 건드리면서도 눈은 장떡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누나, 나도 맛봐도 돼?”“손님한테 먼저 드려야지.”“나도 손님이잖아.”“네가 돈 냈어?”밤톨이는 허리춤에 손을 넣었다가 빼냈다. 엽전 꾸러미가 있는 자리였다. 새미는 그 손을 보았지만 모르는 척했다.“그 돈은 네가 모은 거니까 장떡 사 먹는 데 써도 돼.”“그럼 안 사 먹을래.”“잘 생각했어.”“대신 남은 거 먹을래.”새미는 뒤집개를 들고 동생을 쳐다봤다. 밤톨이는 입을 다물고 장떡을 바라봤다. 그때 장터를 지나던 아주머니 하나가 상 앞에 멈췄다. 새미는 곧장 장떡 조각을 건넸다.“맛보셔요. 오늘 담근 장으로 만든 건 아니고, 묵은 된장을 조금 넣었어요.”아주머니가 조각을 받아 입에 넣었다. 씹는 동안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된장이 짜지 않네.”“짠맛이 세면 밀가루 맛이 안 나요. 이 된장은 3년쯤 묵어서 짠맛이 가라앉았어요. 끝에 콩 단맛이 남습니다.”아주머니가 장떡을 한 조각 사 갔다. 밤톨이는 아주머니가 멀어지는 걸 확인하고는 상 아래로 고개를 들이밀었다.“누나, 나도 방금 냄새 맡았어. 콩 단맛이 나?”“먹어 봐야 알지.”“그럼 하나만 먹을게.”“손님한테 팔 장떡이야.”“맛을 알아야 손님한테 팔지.”새미는 뒤집개를 내려놓고 밤톨이의 손등을 가볍게 밀었다.“손님한테 설명하는 건 내가 할게. 너는 사람 오면 불러.”밤톨이는 입을 삐죽였지만 상 옆으로 돌아갔다. 곧 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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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장아찌

새미는 세자의 손을 내려다봤다.“손 놓으시오, 저하. 아니, 선비님.”세자는 손을 풀었다. 새미의 손목에 남은 손가락 자국은 옅었다. 세자는 손을 거두고 장터 쪽을 돌아봤다. 염씨장전 사람들은 멀찍이 서서 이쪽을 살피고 있었다.“다친 데는 없소?”“없습니다.”“손목은 괜찮소?”새미는 손목을 한 번 문질렀다.“괜찮습니다. 다음에는 먼저 물어보세요.”“그러겠소.”“저 사람들이 다시 오면 제가 말할 겁니다.”“알고 있소.”“그럼 이제 장떡을 더 사시겠어요?”“남은 것은 손님 몫이라 하지 않았소?”“기억은 하시네요.”“기억할 말은 기억하오.”세자는 상에 놓인 접시를 보았다. 장떡은 두 조각 남아 있었다. 새미는 솥 안에 남은 반죽을 살폈다. 손님이 더 오지 않으면 오늘 장사는 여기까지였다.“오늘은 그만 팔겠습니다.”“장터가 아직 붐비는데도?”“기름이 식기 전에 팔 만큼 팔았어요. 남은 반죽까지 다 부치면 집에 가져갈 장떡이 너무 많아져요.”밤톨이가 접시를 내려다봤다.“집에 가져가면 내가 먹으면 되잖아.”“너 혼자 다 먹을 거야?”“할매도 먹고 아부지도 먹고 누나도 먹고.”“아부지는 장떡보다 술안주를 먼저 찾을걸.”“그럼 내가 먹을 게 늘어나네.”새미는 밤톨이의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밀어 올렸다. 밤톨이는 머리를 털며 상 밑에 들어가 그릇을 챙겼다. 세자는 빈 접시를 들었다.“이건 내가 씻겠소.”“손님은 돈만 내시면 됩니다.”“돈은 냈소. 그럼 그릇을 씻어도 되지 않겠소?”“그릇을 씻는 게 값에 들어가진 않아요.”“그렇다면 오늘은 내 마음대로 하겠소.”세자는 접시를 들고 물통 쪽으로 갔다. 새미는 그릇을 빼앗지 않았다. 세자는 소매가 물에 닿지 않게 걷어 올리고, 접시를 헹궜다. 강내관이 곁에 있었다면 그 손으로 물을 만지시면 아니 된다며 기겁했을 테지만, 장터에는 세자를 모시는 내관이 없었다.새미는 솥의 불을 끄고 뚜껑을 덮었다. 그 사이 세자는 접시를 닦아 상 위에 올려놓았다. 물기가 남은 가장자리를 새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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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끓인 장

끝분이 안채에서 뛰어나왔다. 새미는 비스듬히 놓인 뚜껑을 가리켰다.“저것만 열린 게 아니에요.”새미는 바가지를 내려놓고 가운데 줄을 살폈다. 독 하나의 뚜껑이 옆에 놓여 있었다. 그 옆 독도, 뒤쪽 독도 틈이 벌어져 있었다. 빗물이 독 안으로 떨어지고 있었다.끝분은 치마를 걷어 올리고 장독대 안으로 들어왔다.“뚜껑부터 덮어라. 물 더 들어가면 안 된다.”“네.”새미는 젖은 손으로 뚜껑을 들었다. 무거운 뚜껑이 손에서 미끄러졌다. 끝분이 반대쪽을 잡아 함께 올렸다. 두 사람은 뚜껑을 제자리에 놓고 가장자리를 눌렀다.밤톨이가 부엌에서 헝겊을 들고 나왔다. 앞니 빠진 자리가 빗물에 젖어 반짝였다.“누나, 독이 깨졌어?”“아니. 뚜껑이 열렸어. 불 켜지 말고, 할매 말 잘 들어.”밤톨이는 헝겊을 끝분에게 건넸다. 끝분은 뚜껑 틈을 훔치고 손바닥으로 눌렀다.“열린 게 몇 개여?”새미는 장독 사이를 옮겨 다녔다. 뚜껑의 위치를 보고, 빗물이 고인 자리를 확인했다. 씨간장 독은 닫혀 있었다. 맨 앞줄 가운데의 뚜껑에는 빗물 자국이 없었다.“씨간장 독은 괜찮아요. 열린 건 10개예요.”끝분이 입술을 다물었다.“그럼 물부터 퍼내야제. 장마다 다 섞이기 전에.”“바가지로 뜨면 장도 같이 버려져요.”새미는 독 안을 들여다봤다. 빗물이 장 위에 얇게 고여 있었다. 물은 간장보다 색이 옅었다. 독 가장자리로 흐른 빗물이 장에 닿아 있었다.“체랑 큰 그릇 가져올게요. 장을 먼저 옮기고, 독 안쪽을 닦아야 해요.”“물 들어간 장을 어디다 담을라고?”“깨끗한 독에 받으면 돼요. 뚜껑 잘 닫힌 독 중에 비어 있는 게 있어요.”“비어 있는 독은 메주 넣을 자리여.”“오늘은 그 독을 쓰고, 나중에 다시 씻을게요.”끝분은 열린 뚜껑을 손으로 짚었다.“서두르되 장은 쏟지 마라. 오래 묵은 놈은 물 한 방울에도 맛이 달라져.”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의 말이 맞았다. 지난 생 궁 장고에서도 장맛이 달라진 것을 늦게 알아차렸다. 그때는 독 앞에서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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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깨강정

“그렇지.”새미는 가희의 손을 내려다봤다. 손가락이 꽉 맞물려 있었다. 비단 소매 끝에는 장독대에서 묻은 흙이 조금 묻었다.“나도 떨어지고 싶어.”“그럼 우리 같이 하자.”가희는 손을 놓지 않았다. 목소리는 여전히 높았지만, 끝이 조금 떨렸다.“같이 뭘 해?”“재간택에서 떨어지는 거.”“어떻게?”“그건 이제부터 생각해야지.”가희가 손을 놓고 치맛자락을 매만졌다. 조금 전까지 코를 가리던 소매가 손목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너는 초간택에서 간장 한 종지가 귀하다고 했잖아. 그렇게 말하고도 붙었는데, 이번엔 뭘 할 건데?”“그 대답은 틀린 게 아니었어요.”“그러니까 문제지.”새미는 가희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맞았다. 새미는 귀한 것을 귀하다고 했을 뿐인데, 그 말이 세자빈 자리에 어울린다고 받아들여졌다.“이번에는 장 이야기만 하자.”“무슨 질문을 받아도?”“네. 장을 어디서 담그는지, 어떻게 익히는지, 어떤 장을 좋아하는지. 장 이야기만요.”“그럼 또 성실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그럴 수도 있어요.”“그럴 수도 있다고?”“간택에서 무슨 답이 먹힐지는 저도 몰라요. 지난번에는 떨어지려고 한 대답이 붙는 쪽으로 갔으니까요.”“그럼 대답만으로 안 되겠네.”“몸가짐도 조금 조절해야 해요.”가희가 허리를 폈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손을 무릎 위에 포갰다. 턱도 살짝 내렸다. 예법을 가르칠 때의 자세였다.“이 정도면 너무 반듯해요?”“조금요.”가희는 어깨를 풀었다. 이번에는 등을 구부리고 손을 늘어뜨렸다.“이 정도는?”“너무 흐트러졌어요.”“그럼 중간은 어디야?”“모르겠어요. 제가 궁중 예법을 다시 배운다고 생각하고 맞춰 봐야죠.”새미는 처음 간택을 준비하던 때를 떠올렸다. 예법을 익히고, 말을 고르고, 손을 어디에 둘지 살폈다. 궁에 들어간 뒤에는 그 모든 게 몸에 붙었다. 그때 가희와 마주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둘은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새미는 그 일을 오래 붙들지 않았다. 지난 생의 궁은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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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소금 한 섬

도강의 귀가 붉어졌다. 가희는 새미의 팔을 꼬집었다.“뭘 아하야?”“아무것도 아니야.”“아무것도 아닌 얼굴이 아닌데.”“가희야, 가마꾼이 기다리고 있어.”새미가 사립문 쪽을 가리켰다. 가희는 꾸러미를 다시 여몄다.“갈게. 장 담그는 건 다음에 또 알려 줘.”“옹기 뚜껑은 열어 보지 말고.”“알았어.”“장 익는 데 시간이 걸려.”“그 말도 알았어.”가희는 도강을 지나치며 고개를 숙였다. 도강은 가희가 먼저 가는 걸 확인한 뒤에야 뒤따랐다. 새미는 문밖으로 나가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도강이 가희의 걸음에 맞춰 속도를 늦췄다.“아하.”이번에는 끝분이 부엌에서 헛기침을 했다.“그 소리는 그만 내라. 장독들이 다 듣겄다.”“장독들은 귀가 없잖아요.”“귀가 없어도 눈치는 있제.”―3월 18일 아침, 새미는 장부를 펴 놓고 남은 소금을 살폈다. 소금자루를 기울여도 바닥에 조금 깔린 소금만 흘러나왔다. 손끝으로 집어 혀에 대니 짠맛이 먼저 오고 쓴맛이 뒤따랐다. 간수가 덜 빠진 소금이었다.“이걸로는 안 돼요.”끝분은 옆에 놓인 빈 그릇을 치웠다.“얼마나 남았는디?”“장 담글 데 쓰기엔 모자라요. 지금 남은 건 소금물 맞출 때도 아껴야 해요.”“그럼 장터에서 사 오면 되제.”“염씨장전에서 값을 올렸어요.”새미가 장부를 덮었다. 소금은 얼마 전까지 1섬에 2냥이었다. 염대길이 도성 소금을 사들이기 시작한 뒤로 값이 5냥까지 뛰었다. 물안장에 필요한 소금을 그 값에 사면 장을 팔아도 남는 게 없었다.“5냥을 다 주고 사 오면 빚 갚을 돈이 줄어요.”“안 사면 장을 못 담그고.”끝분은 말끝을 흐리지 않았다. 소금 없는 장은 장이 아니었다. 새미도 알고 있었다. 지난 생에도 소금값이 오르자 작은 장집들이 먼저 문을 닫았다. 다만 이번에는 그때처럼 손 놓고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서쪽 나루에 배가 들어와요.”“언제?”“3월 20일이에요.”끝분이 새미를 가만히 바라봤다. 새미는 장부 귀퉁이를 손가락으로 눌렀다.“꿈에서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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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고춧가루

세자가 장독대에 들어섰을 때, 새미는 독 뚜껑을 닦던 헝겊을 멈췄다.쪽빛 도포를 입은 선비 차림이었다. 그런데 지난번처럼 장터에서 마주친 사람인 척하지는 않았다. 새미는 허리춤의 맛숟가락을 손끝으로 눌렀다.“저하께서 또 오셨습니까?”“그렇소.”“이번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장독을 닦으러 왔소.”세자는 고개를 숙여 장독대 앞에 놓인 물그릇을 살폈다. 새미는 그가 장을 사러 온 게 아니라는 대답을 듣고도 잠시 더 기다렸다. 세자는 다른 말을 보태지 않았다.“저하께서 장독을 닦으신다고요?”“그러면 안 되오?”“안 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옷을 버리실 수 있습니다.”“옷은 빨면 되오.”“독은 닦으면 되지만, 도포에 장이 묻으면 빨아야 합니다.”“그 말은 들었소.”“누가 그러셨습니까?”세자는 대답하지 않고 소매를 걷었다. 손목 위로 드러난 손에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검지와 중지의 마디가 특히 거칠었다.새미의 시선이 그 손에 멈췄다.“손을 다치신 겁니까?”“활을 쏘다 생긴 굳은살이오.”“장독을 닦는 손하고는 다르네요.”“그럴지도 모르오.”“독을 닦다 손이 쓸리면 곤란합니다. 헝겊을 느슨하게 쥐지 마십시오.”“알겠소.”세자는 새미가 내민 헝겊을 받았다. 손끝이 닿지는 않았다. 새미는 물그릇을 독 앞에 내려놓고 닦을 자리를 가리켰다.“이 독은 오늘 볕을 받았으니 겉면이 마른 뒤에 닦아야 합니다. 물을 너무 많이 묻히면 옹기 틈으로 들어가요.”“그럼 이 독부터 닦겠소.”“저건 아직 그늘에 있었는데요.”세자는 손을 멈췄다. 새미는 말없이 볕이 든 쪽의 독을 가리켰다.“저기부터 하십시오. 독마다 상태가 다릅니다.”“알겠소.”세자는 방향을 바꾸었다. 새미는 헝겊 끝을 한 번 접어 그의 손에 다시 잡아 주었다.“손바닥으로 누르지 말고, 손가락으로 천천히 문지르세요. 독에 흠집이 나면 안 됩니다.”“그대는 독을 닦을 때도 사람을 가르치는구려.”“처음 하시는 분에게는 알려 드려야 하니까요.”“그렇다면 잘 배우겠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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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미역국

세자의 손이 독 뚜껑에서 떨어졌다. 새미는 장부에 적힌 이름을 바라봤다. 『기다림이』. 먹이 번진 글씨가 마르며 가장자리부터 옅어졌다.“3년은 깁니다.”“장에는 그리 긴 시간이 아니오.”“사람에게는 길 수도 있습니다.”세자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뚜껑 위에 손을 다시 얹지도 않았다. 새미는 그 침묵이 싫지 않다고 생각했다가, 곧 허리춤의 맛숟가락을 만졌다. 손끝에 나무의 모서리가 닿았다.‘장독 일 때문이야.’새미는 마음속으로 한 번 더 말했다. 세자가 독을 닦고 고추장을 담그고 이름까지 지었으니, 그 독을 보면 자꾸 세자가 떠올랐다. 독이 없으면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정하면 그만이었다.“이름을 지으셨으니, 저하께서도 기억하셔야 합니다.”“잊지 않겠소.”“독이 어디 있는지도요.”“그대가 알려 주었으니 기억하겠소.”“장부에도 적혀 있습니다.”“장부를 보면 되겠구려.”세자는 새미가 내놓은 말을 하나씩 받아 주었다. 새미는 그 말들이 마음에 걸리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장부는 독의 이름과 담근 날을 적었다. 사람의 마음까지 적어 두는 물건은 아니었다.끝분은 장부를 손에 들고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독 이름 하나 지었다고 아주 맡긴 독처럼 말허네.”“제가 맡겠다고 했습니다.”세자가 대답하자 끝분의 눈썹이 올라갔다.“그럼 도령도 장부에 손도장 찍어야 쓰겄네.”“손도장이 필요하오?”“필요할 때가 있제. 말은 바람 타고 날아가도 장부는 남응께.”“그렇다면 장부에 적힌 이름을 잊지 않겠소.”끝분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새미는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나려는 것을 눌렀다. 할머니는 장부를 들고도 사람까지 독 하나 맡기려 했다. 한 번 맡은 것은 끝까지 살피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세자는 소매를 내려 손목을 가렸다. 장을 담글 때 묻은 먹이 손가락 옆에 남아 있었다. 새미는 깨끗한 헝겊을 내밀었다.“먹이 묻었습니다.”“장부를 쓸 때 묻었소.”“지워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그렇다면 두어도 되오.”“손에 먹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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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젓갈

새미는 소매 안쪽에 접어 둔 쪽지를 손끝으로 눌렀다. 종이가 바스락거렸다.『내일 둘 다 장 냄새 풍기고 가자.』오늘이 바로 그 내일이었다.“새미야.”가희가 옆에서 낮게 불렀다. 새미는 쪽지에서 손을 떼고 가희를 돌아봤다. 가희는 고운 비단 치마를 입고 있었지만, 고름을 잡은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였다.“뭐 묻었어?”“아니. 아무것도.”“그럼 왜 웃었어?”“네 쪽지가 생각나서.”가희는 고개를 돌렸다. “웃을 때가 아니잖아.”“그러게.”새미는 대답하면서 대기실 안을 살폈다. 후보 일곱 명이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상궁들은 자리를 오가며 옷깃과 머리 모양을 확인했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오갈 때마다 후보들의 어깨가 조금씩 굳었다.재간택에서 무엇을 물을지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예법을 물을 수도 있고, 집안의 내력을 물을 수도 있었다. 초간택에서 간장 한 종지가 귀하다고 말한 새미에게는 장 이야기를 다시 꺼낼 수도 있었다.새미는 무릎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놓았다. 손가락이 저절로 숫자를 세려 했다. 하나, 둘. 손을 모아 무릎을 눌렀다.“그렇게 손에 힘을 주면 손등이 하얘져.”가희가 속삭였다.“네 손도 고름을 잡아당기고 있어.”가희는 손을 내려다봤다. 고름 끝이 조금 구겨져 있었다. 얼른 펴려다가 이번엔 반대쪽 손으로 치마를 눌렀다.“난 안 떨려.”“그래.”“진짜야.”“알았어.”“새미야, 너도 떨려?”“조금.”“그런데 얼굴은 멀쩡하네.”“속은 안 보여.”가희는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새미는 웃지 않았다. 웃으면 가희가 더 긴장할 것 같았다.맞은편에 앉은 윤보옥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었다. 치맛자락은 주름 하나 없이 무릎을 덮었고, 손은 소매 위에 얌전히 포개져 있었다. 보옥의 앞에 선 상궁이 옷깃을 살피려 하자 보옥은 먼저 고개를 숙였다.“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상궁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옮겼다. 보옥은 그 뒤로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예법을 아는 사람은 많았지만, 예법을 빈틈없이 지키는 사람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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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다식

세자는 새미 앞에 섰다. 새미는 예를 올리려다 손을 멈췄다. 발 너머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두 사람에게 쏠렸다.“저하께서 장독을 지키시면 저는 무엇을 지키면 됩니까?”“그대가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시오.”“궁에 오면 장독을 지킬 수 없습니다.”“그러니 별궁에서 떨어지려거든 떨어지시오. 그동안은 내가 곁에 있겠소.”새미는 세자의 얼굴을 살폈다. 웃을 때 먼저 올라가는 왼쪽 눈썹은 가만히 있었다. 농담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저하께서 곁에 계시면 떨어지기가 더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그럴 수도 있소.”대답이 너무 곧아 새미는 다음 말을 놓쳤다. 세자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숨기는 것이 있으면 아직 말할 때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세자가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중전이 부채를 무릎에 놓았다.“저하께서는 후보의 답을 대신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대가 할 말을 들으러 나오셨지요.”“예, 중전마마.”새미는 고개를 숙였다. 세자는 새미에게서 조금 떨어져 섰다. 그가 내민 것은 손도, 약속도 아니었다. 별궁에서 떨어지라는 허락이었다. 그 허락이 어째서 더 곤란한지 새미는 알고 싶지 않았다.“단새미, 연가희, 윤보옥. 세 사람을 삼간택 후보로 두겠다.”중전의 말이 떨어지자 새미는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하나, 둘. 셋까지 세기 전에 손을 폈다.가희는 새미의 옆에서 숨을 들이켰다. 고름을 잡으려던 손이 옷자락 위에서 멈췄다. 보옥은 허리를 곧게 세우고 중전께 예를 올렸다.“명을 받들겠습니다.”가희도 얼른 고개를 숙였다.“예, 중전마마.”새미는 잠깐 늦었다.“예, 중전마마.”후보 일곱 명에서 셋으로 줄었다. 기쁜 사람도 있고,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후보들의 마음은 셋으로 줄어들지 않았다.중전은 세 사람을 차례로 바라봤다.“삼간택은 서두르지 않겠다. 4월 10일부터 별궁에서 지내며 교육을 받을 것이다. 그곳에서 예법을 익히고, 서로의 생활도 살펴라.”“예.”“별궁에서는 서로 다투지 말고, 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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