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승준은 첫사랑과 결혼하기로 했다. 7년을 함께한 여자, 강시아는 눈물 한 방울, 원망 한 마디 없이 승준을 축복했고, 그의 결혼식을 직접 준비해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승준의 결혼식 날, 시아 역시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웨딩카 두 대가 거리를 스쳐 지나가고, 서로 다른 부케가 하늘을 가르던 순간, 시아의 입에서 마지막 인사가 흘러나왔다. “행복하길 바랍니다.” 그제야 승준은 깨달았다. 시아를 향해 달려가 여자의 손을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아야, 넌 내 사람이야.” 그 순간, 시아의 웨딩카에서 내린 한 남자가 그녀를 품에 안으며 차분히 물었다. “이 여자가 당신의 사람이라면... 저는 누구의 사람이었을까요?”
Voir plus은산은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제가 맡을게요.”마지원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베개에 몸을 기대더니 천천히 눈을 감았다.은산은 단목 상자를 들고 병실을 나섰는데 마음은 착잡했고, 복잡한 감정이 뒤섞였다.병실로 돌아왔을 때 시아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마 선생님이 무슨 일로 불렀나요?” 시아가 묻자 은산은 상자를 여자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걸 나한테 맡기면서 죽고 나면 전부 동서에게 넘기라고 했어요.”시아의 손이 가볍게 떨렸고 곧장 받지는 못했다.“그분이 정말 그렇게 말했어요?”은산이 고개를 끄덕였다.“자기 몸이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고도 했죠.”시아는 한참이나 말이 없다가 마침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면 형님이 갖고 계세요. 당장은 받을 수 없어요.”그러고는 창가로 다가가 멀리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눈가가 붉게 젖어 있었다.은산은 시아의 등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피로 맺어진 끈은 끝내 완전히 끊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MG그룹, 본사 대표실.두꺼운 커튼이 드리워져 실내는 어둑했고, 승준은 소파에 몸을 웅크린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손가락은 소파 팔걸이를 움켜쥐며 하얗게 질려 있는 것으로 보아 약기운이 또다시 발작한 것이다.시야는 흐려졌고, 귀에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가득했는데 마치 수없이 작은 벌레들이 신경을 갉아먹는 듯했다.끊어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지금 보니, 승준은 스스로를 너무 과신했던 모양이었다.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대표님 괜찮으세요?”문밖에서 비서가 조심스레 두드리며 걱정 가득한 목소리를 냈다.“꺼져요!”승준은 탁자 위의 찻잔을 집어 던지자 유리 깨지는 소리가 사무실 정적 속에 날카롭게 퍼졌다.곧 문밖은 곧 잠잠해졌다.승준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자 밝은 화면 불빛이 눈에 사무치게 따가웠다.한참을 망설이던 끝에 시아와의 대화창을 열었다.[오후 세 시, MG그룹 옥상에서 만나자.]문자를 보내자마자 모든 기운이 빠져나간 듯,
시아는 한쪽에서 조용히 둘의 티키타카를 지켜보고 있었다.화면으로 보면 따뜻해 보였지만 이성적인 관점에서 시아는 알았다.은산은 아직 젊고 앞날이 창창했다.한 사람의 평생을 회복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걸어 잠글 대상은 아니었다.또한 시아는 알고 있었다.은산은 성격이 완강하고 집안에 닥친 사건으로 마음속에 무언가가 쌓였으며, 더군다나 하씨 집안의 도움도 받았다.이는 설령 은산이 떠난다 해도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돌아오는 길 내내 시아는 말이 없자 지호가 여자의 손을 잡았다.“무슨 생각 중이야?”시아가 정신을 차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경매에서 되찾아온 보석들을 형님에게 돌려줄까 생각 중이었죠.”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어. 원래 자기 것이니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게 옳지.”시아가 미소를 띠었다.“그러면 내일 당장 돌려주죠.”지호가 알겠다고 대답했고 잠시 뒤 덧붙였다.“참, 마지원이 입원했어.”시아가 잠시 멈췄다.“무슨 일인데요?”“도경란 면회하고 나오다가 피를 토하면서 쓰러졌대. 의사가 말하길 급격한 심장 문제에 피로가 누적돼서 겹친 거라 안정 취하래.”시아는 잠깐 침묵하다가 담담히 알았다는 듯 대답했다.지호가 그런 시아를 바라보다 낮게 물었다.“한 번 보러 갈래?”그러나 시아는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그러고는 잠시 멈춘 뒤 화제를 바꿨다.“정선그룹 쪽은 어때요?”“위기는 넘겼어. 은행이 파산 신청을 철회했고, 회장님이 회사를 재정비 중이야.”시아가 드디어 미소를 보였다.“다행이네요.”지호가 시아의 눈 밑에 어른거리는 다크서클을 보며 물었다.“피곤해?”시아가 고개를 저으며 지호의 어깨에 기대었다.“조금요. 하지만 마음은 놓여요.”지호가 시아의 어깨를 감싸고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잠깐 쉬어. 다음 일은 내가 맡을게.”시아는 눈을 감고 가볍게 알겠다고 했다.창밖의 밤은 깊었지만 새벽은 반드시 올 것이었다.다음 날, 시아는 병원
주호민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도경란은 그때 하원하의 출셋길을 열어주려고, 한 여자를 시켜 주창석 회장을 성폭행범으로 몰았어요.”“그 사건은 한동안 세상에 크게 퍼졌고, 결국 주창석 회장은 주한그룹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상대가 요구한 합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그래서 입막음용으로 거액의 돈을 건넨 거고요.”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갔다.“그리고 도경란은 그 돈으로 하원하의 인맥을 관리하고 길을 닦았어요. 그래서 그의 세력이 빠르게 커질 수 있었던 거죠.”시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랫동안 침묵했다.주씨 집안과 도경란 사이에 그런 앙금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그렇다면 시우의 배신도 충분히 납득이 갔다.“그러니까 대표님이 도경란에게 접근한 건 처음부터 복수 때문이었단 말이죠?”“맞아요. 대표님은 그 후로 내내 당시의 진실을 파헤치셨어요. 3년 전, 해외에서 그 여자를 찾아냈을 때는 이미 암 말기였죠. 그래서 죽기 직전에 모든 사실을 털어놓은 거예요.”시아는 깊게 숨을 내쉬었고 마음속에서 시우에 대한 편견이 조금씩 사라지는 걸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그랬군요.”시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호민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솔직히 말해줘서 고마워요.”호민은 미소를 지었다. 시아가 시우를 오해해 왔음을 알기에, 무심코 남자의 입장을 변호하게 되었다.“대표님은 사실 외부에서 떠도는 말처럼 냉혈하거나 잔혹한 사람이 아니에요. 다만 감정을 드러내는 게 서툴 뿐이죠.”시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마음속에서 이미 결심이 굳어졌다.구영병원 병실 안.은산은 헐렁한 티셔츠 차림에 머리를 대충 뒤로 묶은 채, 병상 곁에 앉아 하자유에게 정성스레 사과를 깎아주고 있었다.자유는 아이처럼 두 눈을 반짝이며 그 사과를 바라보다가 손을 뻗었지만, 손끝이 닿기도 전에 은산이 살짝 손등을 톡 쳐냈다.“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다 돼요.”은산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눈빛에는 시아가 지금껏 본 적 없는 온화한 기운이 감돌았다.시아는 문가에 서 있다가 순
도경란이 강이원의 죽음을 더욱 세밀하게 묘사할수록, 마지원의 손가락 마디는 하얗게 질렸고 손등 위의 핏줄이 또렷하게 드러났다.“맞네요, 당신 그 두 아들놈도...”도경란이 갑자기 미친 듯 웃어댔는데 그 웃음소리가 접견실 안에 메아리쳤다.“그 애들, 당신 친자가 아니예요! 내가 유전자 검사결과에 손을 댔거든요!”마지원은 눈을 감았다가 깊게 숨을 들이켰다.“왜 지금 이걸 말하는 거지?”“왜냐고요?”도경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고 눈빛은 점점 흐릿해졌다.“시아는 정말 운이 좋아요. 만약 주시우가 갑자기 배신하지 않았다면, 사흘 전이 바로 걔가 죽을 날이었을 거니까요.”말을 잇던 도경란은 바싹 마른 입술을 핥으며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난 이미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해 뒀었는데 아쉽네요.”마지원은 잠시 침묵하다가 광기에 잠식된 여자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았다.“후회는 안 돼?”“후회요?”도경란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내가 일찍이 경고했었지. 자기가 한 나쁜 짓은 부메랑처럼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온다고.”마지원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칼날처럼 차갑게 파고들었다.도경란의 눈빛은 서서히 어두워졌다.“사실은 나도 후회한 적 있어요.”여자는 고개를 떨구며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중얼거렸다.“처음부터 당신이랑 제대로 살아보려 했어요. 하지만 내가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러서, 이제는 돌아갈 수가 없거든요.”잠깐 접견실은 적막에 잠겼다.마지원은 도경란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오늘 여기 오기 전까지 난 줄곧 당신을 증오했어.”“그런데 지금은 깨달았지. 증오는 아무 소용없는 낭비라는 걸.”도경란은 고개를 들어 놀란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는데 마치 그의 뜻을 이해할 수 없는 듯했다.“누구나 젊을 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하지.”마지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았다.“도경란, 당신에게 아직 양심이 남아 있다면, 하원하 뒤에 있는 배후가 누구인지 말해.”도경란은
“주시우가 도경란에게 접근한 건 아마 다른 목적이 있었을 거야.”시아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그 목적이 무엇이든 적어도 우리 쪽에는 간접적으로 도움이 된 셈이죠.”“그렇지.”지호가 낮게 대답하며 시아의 미간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마 위로 손을 올려 주름을 펴주듯 쓰다듬었다.“도경란이 이미 잡혔으니, 이제 끝이야.”“아니요! 아직 끝난 게 아니죠. 하원하가 있잖아요!”시아의 목소리는 싸늘해졌고 눈빛에는 날카로운 빛이 번졌다.“그 사람은 아직 대가를 치르지 않았어요.”이에 지호는 시아의 손을 힘 있게 붙잡았다.“걱정하지 마. 절대 못 도망가니까.”도경란이 체포되면서 여자가 저질렀던 수많은 죄가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물론 그 뒤에는 하현그룹과 주한그룹의 압박도 크게 작용했다.그러나 경찰의 심문 속에서도 도경란은 입을 굳게 닫은 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러다 사흘째 되는 날, 드디어 입을 열었지만 요구 단 하나만 내놓았다.“마지원을 만나게 해줘요.”심문하던 경찰이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마지원 씨는 이미 법원에 정식으로 이혼 소장을 제출했습니다. 더는 당신을 만나지 않을 겁니다.”도경란은 비웃음을 흘리며 손끝으로 책상을 두드렸다.“그 사람에게 전해요. 만약 강이연의 진짜 사망 원인을 알고 싶다면, 나를 만나러 오라고요.”“그렇지 않으면 어떤 비밀은 땅속 깊이 묻힌 채로 영원히 사라질 거라고요.”이 소식이 마성그룹에 전해졌을 때 마지원은 서류에 서명하고 있었다.“회장님, 교도소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부, 아니, 도경란 씨가 어떻게든 회장님을 뵙겠다고 합니다.”비서는 마지원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조심스레 말했다.그 이름을 듣는 순간, 마지원의 손이 멈췄고, 펜촉에서 번진 잉크가 종이 위로 퍼져 번졌다.“안 만나.”“하지만...”비서는 한참 망설이다가 결국 그대로 전해 들은 말을 옮겼다.“도경란 씨가 말하길, 회장님께서 강이연 씨의 죽음을 알고 싶다면 직접 만나러 오셔야 한다고 했습니다.”마
“도경란이 손에 넣은 게 정말 하현그룹의 기밀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하 대표와 강 비서가 일부러 흘린 미끼일 뿐이에요. 그 사람들이 그렇게 어리석을 리가 없죠.”잠시 침묵하던 시우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하 대표도, 강 비서도 멍청하지 않아요. 아마도 도경란의 의도를 일찌감치 간파했기에 일부러 판을 짜 맞춰준 거죠.”“도경란은 자신을 과신했어요. 세상 누구든 이용할 수 있다고 착각했죠.”시우는 시선을 가라앉히며 낮게 덧붙였다.“하지만 도경란이 잊은 게 있죠. 사냥꾼은 언제나 사냥감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는 걸요.”같은 시각, 구영시 경찰서의 심문실.도경란은 마치 이곳이 차분한 다과 모임이라도 되는 듯 우아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도경란 씨, 당신은 살인 교사와 상업 사기 혐의가 명백합니다. 변명할 게 있습니까?”도경란은 가볍게 웃으며 손끝으로 탁자를 두드렸다.“증거요? 어떤 증거 말이죠?”“하원하의 진술? 아니면 주시우의 고발?”도경란은 고개를 들어 날카로운 눈빛을 내리꽂았다.“형사님, 마성그룹은 주한그룹 못지않은 힘을 가진 집안이죠. 그러니 그쪽 편을 들기 위해 마성그룹을 적으로 돌릴 수 있나요?”심문을 맡은 형사는 무표정했다.“마성그룹이라면 마지원 씨를 말씀하십니까?”남자는 서류 한 장을 밀어주며 차갑게 말했다.“안타깝지만, 마지원 씨는 이미 이혼 소송을 제기했고, 동시에 당신의 공금 횡령 증거를 직접 제출했습니다.”도경란의 웃음이 얼어붙었다.“그럴 리 없어요!”도경란이 벌떡 일어서며 의자를 밀어내자 바닥에 날카로운 소음이 울려 퍼졌다.“그 사람이 감히 어떻게 나를 배신해요!”그러나 경찰은 차갑게 응시했다.“도경란 씨, 진정하세요. 당신의 죄목은 이게 전부가 아니니까요.”“20년 전, 주창석 회장을 함정에 빠뜨린 사건. 그 증거 또한 확보했습니다.”도경란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누가, 누가 말한 거죠?”경찰은 대답 대신 녹음기를 누르자 스피커에서 힘없는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도경란이 시킨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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